마쓰다이라 스케마사
1. 개요
마쓰다이라 스케마사는 1744년에 태어나 1762년에 사망한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미카와 요시다 번주 마쓰다이라 스케노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752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하마마쓰 번주가 되었다. 1758년 미야즈 번으로 이봉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1761년 양자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이듬해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이름 | 마쓰다이라 스케마사 |
|---|---|
| 다른 이름 | 이요노카미 |
| 출생일 | 1744년 11월 3일 |
| 출생지 | 아이치현요시다, 미카와국, 일본 |
| 사망일 | 1762년 2월 11일 |
| 사망지 | 교토부미야즈, 단고국, 일본 |
| 국적 | 일본 |
| 직업 | 다이묘 |
|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
| 어릴 적 이름 | 도요노스케 |
| 관위 | 종5위하・이요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시게, 이에하루 |
| 번 | 도토미하마마쓰번주, 단고미야즈번주 |
| 씨족 | 혼조 마쓰다이라 가문 |
| 아버지 | 마쓰다이라 스케노리 |
| 어머니 | 오카모토 씨 |
| 형제자매 | 스케마사, 가토 아키히로의 정실 등 |
| 배우자 | 없음 |
| 자녀 | 스케타다 |
| 묘소 | 도쿄도다이토구아사쿠사의 안요 사, 교토부미야즈시 가나야다니의 다이초 사 |
| 계명 | 신가쿠인덴 슌요 다이카쿠 가쿠젠 다이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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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번 (미카와국) 사람 -
마쓰다이라 기요무네
마쓰다이라 기요무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주요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간토 이봉 후 무사시국에서 영주로서 영민 증가 정책을 펼쳐 그의 자손들이 이에야스 부자로부터 편휘를 받았다. -
미야즈번주 -
아오야마 요시히데
아오야마 요시히데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아마가사키 번주를 거쳐 이야마 번, 미야즈 번을 다스렸으며, 동생의 자살 사건으로 출사가 정지되었으나 단고 솜옷감 생산을 장려하여 현금 수입을 올렸다. -
미야즈번주 -
나가이 나오유키 (1614년)
나가이 나오유키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요도 번의 2대 번주였으며, 이후 단고 미야즈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다. -
혼조 마쓰다이라가 -
다카모리번
다카모리번은 겐로쿠 10년부터 쇼토쿠 원년까지 에치젠국 뉴군 다카모리에 위치했던 번으로, 기슈 마쓰다이라가와 혼조 마쓰다이라가가 다스렸으나 후사 없이 폐번되어 막부 직할령이 되었다. -
혼조 마쓰다이라가 -
하마마쓰번
하마마쓰번은 에도 시대 도토미국 하마마쓰에 있던 번으로, 여러 후다이 다이묘 가문이 번주를 역임하며 '출세성'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점이기도 했으며, 폐번치현 이후 시즈오카현에 편입되었다.
2. 생애
1744년 미카와 국 요시다 번의 다이묘 마쓰다이라 스케노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752년 부친이 사망하자 8세의 나이로 하마마쓰 번의 다이묘가 되었다.
1758년 단고 국 미야즈 번으로 옮겨갔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정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1761년 양자인 마쓰다이라 스케타다에게 번주 자리를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두 달 후 1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마쓰다이라 스케마사는 1744년 9월 29일 미카와 국 요시다 번의 다이묘 마쓰다이라 스케노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양자 스케요리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1747년 2월 2일에 세자로 지명되었다. 1752년 5월 12일,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이어 하마마쓰 번 다이묘가 되었다.
1758년 12월 27일, 단고 국 미야즈 번으로 옮겨갔다. 1761년 4월 25일, 건강이 좋지 않아 쇼군에게 봉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영지를 반납하거나 양자를 들여 은거할 것을 요청했다. 5월 3일, 막부는 양자 상속과 은거를 허가했다. 스케마사는 쇼군에게 오메미에를 하지 못했지만, 친족 합의 청원에 따라 혼조 마쓰다이라 가의 게이쇼인과의 연고로 특별히 가문 존속이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