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시팔라
1. 개요
마티 시팔라는 핀란드의 창던지기 선수였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1934년 리가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70.54m를 기록했다. 같은 해 토리노에서 열린 193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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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마티 카렐보 시팔라 |
|---|---|
| 별칭 | 해당 사항 없음 |
| 출생일 | 1908년 3월 11일 |
| 출생지 | 핀란드, 홀롤라 |
| 사망일 | 1997년 8월 22일 (향년 89세) |
| 사망지 | 핀란드, 코트카 |
| 키 | 1.83m |
| 몸무게 | 84kg |
| 스포츠 | 육상 |
|---|---|
| 종목 | 창던지기 |
| 소속 클럽 | Lahden Urheilijat, Lahti (핀란드) |
| 개인 최고 기록 | 70.54m (1934년) |
| 모교 | 해당 사항 없음 |
| 올림픽 | 은메달: 1932년 로스앤젤레스, 육상 창던지기 |
|---|---|
| 유럽 선수권 대회 | 은메달: 1934년 토리노, 창던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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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남자 창던지기 선수 -
타피오 라우타바라
타피오 라우타바라는 1948년 런던 올림픽 창던지기 금메달리스트이자 1958년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핀란드 육상 및 양궁 선수였으며, 배우와 가수로도 활동하다 1979년에 사망했다. -
핀란드의 남자 창던지기 선수 -
에이노 펜틸라
에이노 펜틸라는 핀란드의 육상 및 레슬링 선수로, 창던지기에서 올림픽 동메달, 레슬링 자유형 미들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창던지기 세계 기록을 경신했으며, 110m 허들 종목에도 출전, 이후 핀란드 육군 소령으로 복무하며 스포츠 클럽 경영에 참여했다. -
1908년 출생 -
에드워드 텔러
헝가리 출신 이론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수소폭탄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논쟁적인 활동으로 인해 과학 기술 발전과 윤리적 책임에 대한 논쟁을 야기한 인물이다. -
1908년 출생 -
존 바딘
존 바딘은 트랜지스터와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트랜지스터 발명과 BCS 이론 발표를 통해 현대 전자공학과 물리학 발전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다. -
1997년 사망 -
이호 (법조인)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하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다. -
1997년 사망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톈안먼 사건 무력 진압 등 비판도 받으며, 실사구시와 선부론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이다.
2. 경력
마티 시팔라는 1932년 핀란드 올림픽 선발전에서 세계 기록 보유자인 마티 야르비넨을 70.02m로 꺾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훈련 중 허리에 부상을 입었으나, 69.80m를 던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1934년 리가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70.54m를 세웠고, 같은 해 토리노에서 열린 193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69.97m를 던져 야르비넨에게 뒤져 은메달을 땄다.
시팔라는 창던지기 외에 종합 경기에도 출전했다. 1930년 핀란드 선수권 대회 십종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국제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종 경기에서는 여러 국내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1931년 핀란드 선수권 대회에서 4083점을 기록하며 올림픽 십종 경기 챔피언 파보 이리욜라를 꺾었다.
2.1. 올림픽 및 국제 대회
1932년 핀란드 올림픽 선발 시합에서 70.02m를 던져 세계 기록 보유자 마티 야르비넨을 꺾었다. 올림픽에서 야르비넨은 72.71m의 최고 투척과 함께 5번이나 70m를 넘어 던졌다. 훈련 중에 등이 결리던 시팔라는 자신의 첫 시도에서 68.14m를 던져 독일의 고트프리트 바이만보다 4cm나 적었으며, 다음의 4개의 라운드에서 향상시키는 데 실패하여 3번째 핀란드 선수 에이노 펜틸라가 5번째 라운드에서 68.70m를 도달할 때까지 3위에 머물렀다. 시팔라는 6번째 라운드와 결승전에서 69.80m를 던져 핀란드가 메달을 휩쓸면서 4위에서 2위로 들어왔다.
1934년 리가에서 70.54m의 개인 전력을 던지고, 그해 토리노에서 열린 193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9.97m를 던져 자신의 세계 기록을 깬 야르비넨에게 다시 밀려 은메달을 땄다.
2.2. 국내 대회
1932년 핀란드 올림픽 선발 시합에서 70.02m를 던져 세계 기록 보유자 마티 야르비넨을 꺾었다. 1934년 리가에서 70.54m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시팔라는 창던지기 외에 종합 종목에도 참가했다. 1930년 핀란드 선수권 대회 십종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고, 비올림픽 오종 경기에서는 여러 국내 타이틀을 획득했다. 1931년 핀란드 선수권 대회에서는 4083점을 얻어 올림픽 십종 경기 챔피언 파보 이리욜라를 꺾었으며, 두 선수 모두 마르티 톨라모의 비공식 세계 기록(4011점)을 넘었다.
2.3. 기타
1932년 핀란드 올림픽 선발 시합에서 70.02m를 던져 세계 기록 보유자 마티 야르비넨을 꺾었다. 훈련 중 등에 부상을 입은 시팔라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69.80m를 던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1934년 리가에서 70.54m의 개인 최고 기록을 던졌고, 그해 토리노에서 열린 193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9.97m를 던져 자신의 세계 기록을 깬 야르비넨에게 다시 밀려 은메달을 땄다.
창던지기 외에도 시팔라는 종합 경기에 참가했다. 1930년 핀란드 선수권 대회에서 십종 경기 은메달을 땄으나, 그 종목에서는 국제적인 엘리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비올림픽 오종 경기에서는 여러 국내 타이틀을 획득했다. 1931년 핀란드 선수권 대회에서 4083점을 득점하여 올림픽 십종 경기 챔피언 파보 이리욜라를 꺾었다.
3. 사망
1997년 코트카에서 사망했다. 1934년 토리노에서 열린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창던지기에서 2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