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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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모스크바 대공(Великие князья Московские)은 모스크바 대공국을 지배했던 대공의 칭호입니다. 초기에는 모스크바가 대공국보다 작은 공국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모스크바 공작(Князья Московские)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이후 모스크바가 대공국으로 승격하면서 모스크바 대공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나중에는 모스크바 및 전 루스의 대공(Великие князья Московский и всея Руси)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모스크바 대공국(Великое княжество Московское)은 중세 말기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공국으로, 1283년부터 1547년까지 존속했습니다. 때로는 '모스크바'(Muscovy)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들은 '다니엘로비치'라고 불리며, 첫 번째 왕자인 다닐 알렉산드로비치의 후손이자 류리크 왕조의 한 갈래입니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기(Монголо-татарское иго)에 성장했습니다. 1238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모스크바가 불타고, 1293년에는 약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모스크바 공국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다닐 알렉산드로비치(Дан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는 몽골의 위협을 피해 숲과 강이 있는 안전한 지역으로 도시를 옮겼습니다.
다닐 알렉산드로비치의 아들 유리(Юрий)는 킵차크 칸국의 우즈베크 칸과 동맹을 맺고, 칸의 누이와 결혼하여 블라디미르 대공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유리의 후계자인 이반 1세(Иван I)는 몽골과 협력하여 다른 루스 공국들로부터 공물과 세금을 징수하며 '대공' 직책을 유지했고, 이를 통해 자금을 축적하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이반 3세(Иван III)는 노브고로드 공국을 비롯한 다른 루스 제후들을 복속시키고, 1480년 우그라 강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과의 예속 관계를 청산하여 루스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제3의 로마' 사상을 표방하며 차르(царь)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반 3세의 계승자인 바실리 3세(Василий III)와 이반 4세(Иван IV, 뇌제) 통치기까지 모스크바 대공국이라는 명칭이 이어졌으나, 이반 4세가 1547년 루스 차르국(Русское царство)을 선포하면서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반 4세는 카잔 칸국을 정복한 것을 기념하여 성 바실리 대성당(Собор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을 건립했습니다.
모스크바 대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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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명칭 | 대공 |
원어명 | Великие князья Московский и всея Рус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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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 크냐지(1283년 ~ 1325년) 벨리키 크냐지(1325년 ~ 1547년) |
관저 | 모스크바 크렘린 |
통치 | |
임기 | 종신직 |
시작 | 862년 |
초대 |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
마지막 | 이반 4세 |
폐지 | 154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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