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친 트리아나
1. 개요
몬친 트리아나는 마드리드 출신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스페인 축구 선수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3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두 번 진출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두 번 더 출전했고, 1931-32 시즌 라 리가 우승을 경험했다. 몬친 트리아나는 마드리드 자치 축구팀 대표로 1923-24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결승전에 출전했고, 1929년 스페인 국가대표로 한 경기를 소화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중 공화주의 민병대에 의해 체포되어 파라쿠에요스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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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바리아 출신 -
가브리엘 알론소
스페인 축구 선수 가브리엘 알론소는 셀타 비고, 레알 마드리드, 말라가에서 활약하며, 셀타 비고에서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우승을 경험했고, 스페인 국가대표로 195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4강 진출에 기여했다. -
온다바리아 출신 -
르네 프티
르네 프티는 프랑스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축구 선수와 토목 기사로 활동하며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우니온에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하고 프랑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은퇴 후 토목 기사로 활동하고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
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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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19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는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 유벤투스 FC 세리에 A 5회 연속 우승, 1934년 FIFA 월드컵 우승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
19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비르지니오 로세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수비수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였고, 프로 베르첼리와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 올림픽 동메달, 중부 유럽 국제컵 우승 등의 업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와 팔레르모에서 감독을 맡아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했다.
2. 클럽 경력
몬친 트리아나는 마드리드 출신으로, 191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9년 동안 클럽에 머물렀다. 그는 3번의 지역 선수권 대회 (1921년, 1925년, 1928년)에서 우승했고, 1921년과 1926년에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두 번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각각 아틀레틱 빌바오와 바르셀로나에게 패했다. 1920년대에 트리아나는 팀 동료 루이스 올라소와 함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수도의 중요한 팀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1929년과 1930년에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두 번 더 진출했다. 그는 두 경기 모두 출전했고, 심지어 두 번째 경기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상대로 골을 넣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두 결승전 모두 최소 점수 차로 패했다.
그는 리그에서 4시즌 동안 20경기에 출전했는데, 첫 시즌에는 주전으로, 다음 세 시즌에는 교체 선수로 출전했으며, 1931-32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몬친 트리아나는 3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2.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2.2. 레알 마드리드 시절
3. 국가대표 경력
몬친 트리아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 시절 마드리드 자치 축구팀 대표로 왕립 스페인 축구 연맹(RFEF)이 주최한 지역간 대회인 1923-24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결승전에 출전했다. 1923-24년 판 결승전에서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2골을 기록했으나, 경기는 4-4 무승부로 끝났고, 이틀 뒤 재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29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단 한 경기에 출전했다.
4. 사망
몬친 트리아나는 마드리드의 유복한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다. 1936년 쿠데타 직후 공화주의 민병대가 트리아나와 도망 중이던 그의 두 형제를 찾기 위해 집에 나타났다. 그들은 당국에 출두하여 재판 없이 마드리드의 모델 감옥에 수감되었다. 1936년 11월 7일, 인민 전선의 좌익 민병대가 수행한 "사카스" 중 하나에서 몬친은 파라쿠에요스 학살의 일환으로 끌려 나가 총살되었고, 그의 형제 두 명도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