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요시노부
1. 개요
미야케 요시노부는 일본의 역도 선수로,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자위대에서 복무하며 선수 육성에 기여했고, 자위대 체육학교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는 여러 직책을 맡았으며, 2014년 현역으로 복귀하여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했다. 1968년 내각총리대신 표창, 1989년 무라타정 명예 군민으로 추대되었으며, 일본 스포츠상, 자수포장, 서보소수장, 도쿄도 명예 도민, 문화공로자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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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39년 11월 24일 |
|---|---|
| 출생지 | 미야기현시바타군무라타정 |
| 키 | 1.54m |
| 몸무게 | 56-60kg |
| 학력 | 호세이 대학 |
| 가족 | 미야케 요시유키(동생) |
| 친척 | 미야케 히로미(조카) |
| 종목 | 역도 |
|---|---|
| 세부 종목 | 남자 페더급 - 밴텀급 |
| 올림픽 | 1964년 도쿄 남자 페더급: 금메달 1968년 멕시코시티 남자 페더급: 금메달 1960년 로마 남자 밴텀급: 은메달 |
|---|---|
|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 1962년 부다페스트: 금메달 (-56kg) 1963년 스톡홀름: 금메달 (-60kg) 1965년 테헤란: 금메달 (-60kg) 1966년 동베를린: 금메달 (-60kg) 1961년 빈: 동메달 (-56kg) |
| 아시안 게임 | 1966년 방콕: 금메달 (-60kg) |
| 명예의 전당 | 국제 역도 연맹 명예의 전당 (19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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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박수일 (1944년)
박수일은 1944년생으로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U-20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행정가로 활동하다 2008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
육상자위대 장관 -
호리 에이조
호리 에이조는 육군 중장 호리 타케오의 양자이자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한 일본 육군 군인으로, 대본영 육군부 참모로 활동하며 미군 전술을 분석하고 『적군전법 빨리알기』를 저술했으며, 전후 육상 자위대에서 주 서독 대사관 방위 주재관을 역임하다 1995년에 사망했다. -
1966년 아시안 게임 역도 참가 선수 -
황호동
황호동은 신민당 소속 제9대 국회의원이자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역도 무제한급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역도 선수였다. -
1966년 아시안 게임 역도 참가 선수 -
모함마드 나시리
모함마드 나시리는 이란의 역도 선수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했고,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와 아시안 게임에서도 여러 차례 메달을 획득했으며 1995년 국제 역도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경력 및 인물
미야케 요시노부는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을 계기로 역도에 입문, 단기간에 두각을 나타냈다. 1962년 호세이 대학 졸업 후 육상자위대에 입대하여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 1960년 로마 올림픽 은메달,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자위대 체육학교장 등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 결정 후인 2014년 5월에 현역으로 복귀하여 마스터스 대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1. 어린 시절과 역도 입문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남동생 미야케 요시유키는 일곱째였다.
학교에 가려면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 등을 하느라 학교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가끔 유도나 야구를 즐기는 정도였다.
오가와라 상업고 2학년 때인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을 보고 처음으로 올림픽과 역도라는 경기를 알게 되었다. 유도에서 불리한 작은 체구를 강화하기 위해 역도로 단련할 것을 생각하고, 같은 마을에 있는 시바타 농림고에서 연습하는 한편, 집에서 트롤리 차축을 바벨 대신 사용하는 등 맹렬한 연습을 했다. 그 결과, 경험 반년 만에 고교 선수권에서 입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2.2. 올림픽 2연패와 세계 기록 경신
1962년 호세이 대학을 졸업하고 육상자위대에 입대한 미야케 요시노부는 이후 역도 선수로서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며 많은 세계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1960년 로마 올림픽부터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였는데, 호세이 대학 재학 중 출전한 로마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고,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3연패를 노렸던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4위에 그쳤다.
도쿄 올림픽 당시 일본에는 경험 많은 지도자가 부족했기에, 미야케는 당시 급여가 1만 2~3천 엔 수준이었음에도 80000JPY이나 하는 최신 카메라를 빚을 내어 구입했다. 그는 자신의 폼을 스스로 확인하며 이길 수 있는 폼을 익혔다. 날림 공사로 건설되는 역도 경기장 시부야 공회당을 보면서, 선수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의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이후 경기에도 탄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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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은퇴 후 활동과 사회 기여
1997년에 자위대 체육학교장(재임 기간 중, 조카 토시히로도 소속)을 마지막으로 퇴관(최종 계급은 육장보)하였다. 퇴관 후에는 고마츠 제작소 고문을 맡는 한편, 일본 트라이애슬론 연합 부회장, 일본 올림픽 선수 협회 상무 이사, 도쿄도 웨이트리프팅 협회 부회장, 도쿄 국제 대학 특명 객원 교수, 도쿄 국제 대학 웨이트리프팅부 감독 등을 맡고 있다.
도쿄, 멕시코 올림픽 연패의 공적으로 1968년에 내각총리대신 표창을 받았고, 1989년에는 고향인 미야기현시바타군무라타정의 명예 군민으로 추대되었다. 그 후, 자수포장을 수훈했고, 2011년에는 서보소수장을 수훈했다. 또한, 현저한 공적이 있었던 자위관으로서 현역 자위관 시절에 제1급 상여 (제2호 방위 기념장)을 2회 수상했다 (제1급 상여를 2회 수상한 자위관은 미야케와 오하라 히토미 2명뿐이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한자 | 출생년도 | 비고 |
|---|---|---|---|---|
| 아버지 | 미야케 요시유키 | 三宅義行 | 1945년 | |
| 조카 | 미야케 히로미 | 三宅宏実 | 1985년 |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역도 48kg급 은메달 |
| 조카 | 미야케 도시히로 | 三宅敏博 | 전 일본 여자 역도 대표팀 감독 |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역도 페더급 동메달리스트인 미야케 요시노부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역도 여자 48kg급 은메달리스트인 미야케 히로미의 삼촌이다. 전 일본 여자 역도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미야케 도시히로도 그의 조카이다. 미야케 요시노부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아버지와 함께 시상대에 올랐으며, 이는 일본에서 올림픽 개인 종목 같은 대회, 같은 종목에서 형제가 함께 시상대에 오른 유일한 사례이다.
4. 주요 경기 전적
| 대회 | 결과 | 종목 |
|---|---|---|
| 1960년 로마 올림픽 | 은메달 | 역도 |
| 1964년 도쿄 올림픽 | 금메달 | 역도 |
|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 금메달 | 역도 |
| 1972년 뮌헨 올림픽 | 4위 | 역도 |
| 토탈 세계 기록 8회, 스내치 세계 기록 13회, 저크 세계 기록 6회, 총 27회 우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