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대
1. 개요
백인대(白仞臺)는 하천 절벽에 위치하여 배를 타고 건너가 계단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송시열이 제자 구문찬과 강론하고 시문을 주고받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937년 구문찬의 후손이 6각정을 지었으나 훼손되었고, 199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백인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6각형 단층에 초익공, 겹처마, 모임지붕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막새기와와 망와, 절병통 등을 사용하였다.
| 이름 | 백인대 |
|---|---|
| 유형 | 향토문화유산 |
| 지정 번호 | 2 |
| 지정일 | 2008년 4월 21일 |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열미리 산174 |
| 시대 | 현대 |
| 소유 | 광주시 |
| 참고 | 6각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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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백인대는 하천을 낀 절벽에 있어 배를 타고 건너가서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이 이 지역 출신의 제자로 알려진 구문찬과 강론하며 시문으로 화답을 나누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37년 구문찬의 후손이 6각정을 지었으나 훼손된 것을 1996년에 복원하였다.
2.1. 조선시대
백인대는 하천을 낀 절벽에 있어 배를 타고 건너가서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이 이 지역 출신의 제자로 알려진 구문찬과 강론하며 시문으로 화답을 나누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37년 구문찬의 후손이 6각정을 지었으나 훼손된 것을 1996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현재의 백인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6각형 단층이며, 초익공, 겹처마에 모임지붕으로 꾸몄다. 막새기와를 사용하였으며, 내림마루 끝단에는 망와를 세웠다. 모임지붕 한가운데는 절병통을 세웠으나 지금은 탈락되어 있다. 정자 외곽에는 계자 난간을 설치하였다.
3. 건축
현재의 백인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6각형 단층이며, 초익공, 겹처마에 모임지붕으로 꾸몄다. 막새기와를 사용하였으며, 내림마루 끝단에는 망와를 세웠다. 모임지붕 한가운데는 절병통을 세웠으나 지금은 탈락되어 있다. 정자 외곽에 계자 난간을 설치하였다.
3.1. 구조
백인대는 하천을 낀 절벽에 있어 배를 타고 건너가서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이 이 지역 출신의 제자로 알려진 구문찬과 강론(講論)하며 시문(詩文)으로 화답을 나누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37년 구문찬의 후손이 6각정을 지었으나 훼손된 것을 1996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현재의 백인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6각형 단층이며, 초익공, 겹처마에 모임지붕으로 꾸몄다. 막새기와를 사용하였으며, 내림마루 끝단에는 망와를 세웠다. 모임지붕 한가운데는 절병통을 세웠으나 지금은 탈락되어 있다. 정자 외곽에 계자 난간을 설치하였다.
3.2. 특징
백인대는 하천을 낀 절벽에 있어 배를 타고 건너가서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이 이 지역 출신의 제자로 알려진 구문찬과 강론(講論)하며 시문(詩文)으로 화답을 나누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37년 구문찬의 후손이 6각정을 지었으나 훼손된 것을 1996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한다.
현재의 백인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6각형 단층이며, 초익공, 겹처마에 모임지붕으로 꾸몄다. 막새기와를 사용하였으며, 내림마루 끝단에는 망와를 세웠다. 모임지붕 한가운데는 절병통을 세웠으나 지금은 탈락되어 있다. 정자 외곽에 계자 난간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