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다라셀리아
1. 개요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1957년 1월 9일에 태어난 소련의 축구 선수로, FC 디나모 트빌리시와 소련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1981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했으며, 198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의 아들 비탈리 다라셀리아 2세도 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딸 크리스티나는 축구 심판이 되었다. 다라셀리아는 1982년 12월 13일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그의 고향인 조지아 오참치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다.
| 이름 | 비탈리 다라셀리아 |
|---|---|
| 원어 이름 | ვიტალი დარასელია |
| 로마자 표기 | Vitaly Daraselia |
| 출생일 | 1957년 1월 9일 |
| 출생지 | 소련 오참치라 (現 조지아 오참치라) |
| 사망일 | 1982년 12월 13일 |
| 사망지 | 소련 제스타포니 (現 조지아 제스타포니) |
| 키 | 1.72m |
| 포지션 | 은퇴 (과거 미드필더) |
| 클럽 연도 | 1974 1975–1982 |
|---|---|
| 클럽 | 암라니 오참치라 디나모 트빌리시 |
| 출장수 (골) | 192 (26) |
| 국가대표팀 연도 | 1978–1982 |
|---|---|
| 국가대표팀 | 소련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22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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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
조지아 출신 축구 선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는 SSC 나폴리에서 뛰며 뛰어난 드리블과 득점력으로 '크바라도나'라는 별칭을 얻었고, 나폴리의 세리에 A 우승과 조지아 국가대표팀의 UEFA 유로 2024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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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카자이슈빌리
발레리 카자이슈빌리는 조지아 국적의 축구 선수로, FC 루스타비에서 프로 데뷔하여 울산 HD FC에서 K리그1 우승을 이끌었으며, 조지아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한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압하지야인 모친과 조지아인 부친 사이에서 1957년 1월 9일에 출생했다. 그의 출생일은 1957년 10월 9일로 기록이 변경되었는데, 이로 인해 국내 유소년부에서 본래보다 더 오래 뛸 수 있었다. 다라셀리아는 디나모 트빌리시와 소련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1981년에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수비수를 제치고 쇄도해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결승골을 기록했다.
3. 생애와 사망
그의 아들 비탈리 다라셀리아 2세(1978년생)도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그의 딸 크리스티나는 축구 심판이 되었다. 1978년 9월, 트빌리시가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원정 갔을 때 비탈리의 아내가 둘째 출산이 임박했다. 경기를 앞두고, 그는 동료들에게 말해 이후 결승골을 넣을 선수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비탈리가 손수 결승골을 넣었다.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1982년 12월 13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차는 산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강에 빠졌고, 시신은 강물에 휩쓸려 모래에 파묻혔다. 사고 발생 13일 후, 탐지 구조견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다.
3.1. 가족
그의 아들 비탈리 다라셀리아 2세(1978년생)도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그의 딸 크리스티나는 축구 심판이 되었다. 1978년 9월, 트빌리시가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원정 갔을 때 비탈리의 아내가 둘째 출산이 임박했다. 경기를 앞두고, 그는 동료들에게 말해 이후 결승골을 넣을 선수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비탈리가 손수 결승골을 넣었다.
3.2. 사망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1982년 12월 13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차는 산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강에 빠졌고, 시신은 강물에 휩쓸려 모래에 파묻혔다. 사고 발생 13일 후, 탐지 구조견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다.
4. 사후
다라셀리아의 고향인 조지아의 오참치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다. 2009년 12월, 다라셀리아의 모친은 오참치라의 그의 자택이자 박물관이 도둑맞고 불탔다고 알렸다.
4.1. 오참치레 경기장
조지아의 오참치레에는 비탈리 다라셀리아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다. 2009년 12월, 다라셀리아의 모친은 오참치라에 있는 그의 자택이자 박물관이 도둑맞고 불탔다고 알렸다.
4.2. 자택 박물관 사건
2009년 12월, 다라셀리아의 모친은 조지아의 오참치레에 있는 그의 자택이자 박물관이 도둑맞고 불탔다고 알렸다. 오참치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다.
5. 개요
6. 선수 경력
6.1. 클럽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압하지야인 모친과 조지아인 부친 사이에서 1957년 1월 9일에 태어났다. 이후 1957년 10월 9일로 출생 기록이 변경되었는데, 이로 인해 국내 유소년부에서 더 오래 뛸 수 있었다. 디나모 트빌리시와 소련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1981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결승골을 기록했다.
6.2. 국가대표팀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소련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8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출전 기회는 한 번에 불과했다.
7. 생애와 사망
그의 아들 비탈리 다라셀리아 2세(1978년생)도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그의 딸 크리스티나는 축구 심판이 되었다. 1978년 9월, 트빌리시가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원정 갔을 때 비탈리의 아내가 둘째 출산이 임박했다. 경기를 앞두고, 그는 동료들에게 말해 이후 결승골을 넣을 선수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비탈리가 손수 결승골을 넣었다.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1982년 12월 13일에 교통사고로 영면에 들었는데, 그의 차는 산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강에 빠졌다. 그의 시신은 강에 흘러가 모래에 파묻혔다. 그는 사고 13일 후 탐지 구조견에 발견되었다.
7.1. 가족
비탈리 다라셀리아 2세(1978년생)는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그의 딸 크리스티나는 축구 심판이 되었다. 1978년 9월, 나폴리 원정 경기 당시 비탈리의 아내가 둘째 출산이 임박했다. 경기를 앞두고 그는 동료들에게 득점하는 선수의 이름을 따 아이 이름을 짓겠다고 말했고, 이후 직접 결승골을 넣었다.
7.2. 사망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1982년 12월 13일에 교통사고로 영면에 들었는데, 그의 차는 산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강에 빠졌다. 그의 시신은 강에 흘러가 모래에 파묻혔다. 그는 사고 13일 후 탐지 구조견에 발견되었다.
8. 사후
다라셀리아의 고향인 조지아 오참치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다. 2009년 12월, 다라셀리아의 모친은 오참치라의 그의 자택이자 박물관이 도둑맞고 불탔다고 알렸다.
8.1. 오참치레 경기장
조지아 오참치레에는 비탈리 다라셀리아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다. 2009년 12월, 다라셀리아의 모친은 오참치레에 있는 그의 자택이자 박물관이 도둑맞고 불탔다고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