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노마루도노
1. 개요
산노마루도노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의 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다. 후시미성 산노마루에 거처를 받아 산노마루도노로 불렸으며, 1598년 다이고지 벚꽃놀이에 참여했다. 히데요시 사후 섭관가 니조 아키자네와 재혼했으나 1603년에 사망했다. 묘신지에 묘소가 있으며, 초상화가 남아있다.
| 씨명 | 삼노마루도노 / 쇼요인도노 |
|---|---|
| 후리가나 | さんのまるどの / しょうよういんどの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명 | 해당사항 없음 |
|---|---|
| 생년월일 | 생년 미상 |
| 출생지 | 아즈치성 |
| 사망일 | 게이초 8년 2월 5일 (1603년 3월 17일) |
| 사망지 | 해당사항 없음 |
| 사인 | 해당사항 없음 |
| 유해 발견 | 해당사항 없음 |
| 묘지 | 묘신지 (교토시 우쿄구 하나조노) |
| 기념비 | 해당사항 없음 |
| 국적 | 해당사항 없음 |
| 별칭 | 산노마루도노, 쇼요인도노, 정춘 (법명) |
| 종교 | 해당사항 없음 |
| 종파 | 해당사항 없음 |
| 배우자 | 도요토미 히데요시, 니죠 아키자네 |
| 비혼 배우자 | 해당사항 없음 |
| 자녀 | 없음 |
| 부모 | 아버지: 오다 노부나가, 어머니: 지토쿠인 |
| 양부 | 가모 우지사토 |
| 친척 | 해당사항 없음 |
| 보충 | 해당사항 없음 |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내 -
요도도노
요도도노는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 사이에서 태어난 아자이 삼자매의 맏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어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낳았으며,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리의 후견인으로서 도요토미 가문의 실권을 장악하고 도쿠가와 막부와 대립하다 오사카 전투에서 패배하여 히데요리와 함께 자결한 인물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내 -
고다이인
고다이인은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활약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 부인으로, 그의 출세를 돕고 조정과의 교섭을 담당했으며, 사후에는 고다이지를 건립하여 여생을 보내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
니조가 -
니조 요시모토
남북조 시대 공경인 니조 요시모토는 간파쿠와 셋쇼를 역임하며 조정의 안정과 권위 회복에 힘썼고, 렌가에 뛰어났으며, 아시카가 요시미쓰와의 관계를 통해 무가 정권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
니조가 -
니조 야스미치
니조 야스미치는 에도 시대 초기의 공경으로, 도요토미 히데카츠의 외손자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이름을 받았으며, 조정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천황 옹립에 관여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하이카이와 교토 가노파 화가들과 교류하는 등 문화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
16세기 일본의 여자 -
다유
다유는 에도 시대 유녀와 게이샤 사회에서 시작된 칭호로, 기예와 미모, 교양을 갖춘 최상위 유녀를 지칭하며, 요시와라에서는 오이란으로 대체되었지만 교토에서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16세기 일본의 여자 -
운코인
운코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실이자 정치적 조언가로서 막부 초기 안정에 기여한 인물로,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마츠다이라 타다요시를 양육하고 오사카 전투에서 평화 협상에 기여했으며, 이에야스 사후에는 운코인, 이치이노츠보네 등으로 불렸다.
2. 약력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묘신지에 쇼요인이라는 탑두를 건립하였다. 게이초 4년(1599년) 무렵, 정실 부인을 잃은 니조 아키자네와 재혼하였다. 게이초 7년(1602년)에는 산보인 기엔(아키자네의 친동생)에게 물품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게이초 8년(1603년)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교토 묘신지에 있다. 묘신지의 탑두인 잣카인에는 산노마루도노의 초상화가 남아 있는데, 사망 직후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의 풍속을 짐작할 수 있다.
2.1. 출생과 가계
산노마루도노의 생모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의 유모였던 지토쿠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이운인을 세운 묘신지 56세 큐텐 소주이는 그녀의 외삼촌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으나, 그 과정이나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후시미성 산노마루에 거처를 얻어 산노마루도노라 불렸다고 하며, 임진왜란 시기에 히데요시에게 시집갔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혼노지의 변 이후, 이복 언니 소오인의 남편 가모 우지사토에게 맡겨져 그의 양녀가 되었다고 한다. 가모 우지사토의 여동생 산죠도노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궁이었는데, 아마도 함께 인질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와서 측실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2.2.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지만, 그 경위나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후시미성 산노마루에 거처를 받았기 때문에 산노마루도노로 칭해졌다고 하며, 시집 간 것도 축성 시기와 같은 임진왜란 시기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혼노지의 변 이후, 이복언니인 소오인의 남편 가모 우지사토에게 맡겨져 그의 양녀가 되었다고 한다. 우지사토의 여동생 산죠도노도 히데요시의 후궁이었으며, 아마도 함께 인질로 히데요시의 곁에 와서 측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사료에 처음 이름이 나오는 것은 게이초 3년(1598년) 3월, 다이고지의 꽃놀이에 대한 기록이며, 산노마루도노는 네 번째 가마로 꽃놀이에 참가했다. 수행원은 히라츠카 타메히로, 카타기리 카츠모토로, 측실 서열로는 3위였다. 자세한 것은 다이고의 꽃놀이 문서를 참고하라.
그 해 8월, 히데요시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묘신지에 쇼요인이라는 탑두를 건립하였다.
2.3.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게이초 3년 8월에 사망하자, 산노마루도노는 그의 공양을 위해 묘신지에 쇼요인(韶陽院)이라는 탑두를 건립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게이초 4년 상이 끝난 시기나 이듬해 즈음 정실을 잃었던 섭관가 니조 아키자네와 재혼하였다. 게이초 7년에는 산보인 기엔 (아키자네의 친동생)에게 나무통과 종이, 천 등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게이초 8년에 사망하였다. 법호는 쇼요인전화엄정춘대선정니(韶陽院殿華厳浄春大禅定尼)이다. 묘소는 교토의 묘신지에 있다.
4. 산노마루도노가 등장하는 작품
* 센고쿠츠야모노가타리 (1969년, 아사히방송, 배우 미우라 요시코)
* 여자 태합기 (1981년, NHK대하드라마, 배우 야마모토 케이코)
* 사랑에 불타는 센고쿠의 여자 ~도요토미가의 사람들이~ (1988년, TBS, 배우 혼아미 치카코)
* 토시이에와 마츠 ~카가 백만석 이야기~ (2002년, NHK대하드라마, 배우 이시하마 카나에)
* 네네 ~여자 태합기 (2009년, 테레비도쿄, 배우 이츠키 모모)
* 전국 염문 이야기 (1969년, 아사히 방송, 배우 미우라 토쿠코)
* 여인 태합기 (1981년, NHK 대하 드라마, 배우 야마모토 케이코)
* 사랑에 불타는 전국 시대의 여인 - 도요토미 가문의 사람들로부터 - (1988년, TBS, 배우 혼아미 슈코)
* 토시이에와 마츠 ~카가 백만석 이야기~ (2002년, NHK대하드라마, 배우 이시하마 카나에)
* 네네 ~여인 태합기 (2009년, TV 도쿄, 배우 키 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