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암사 현왕도
1. 개요
서울 용암사 현왕도는 1878년 금어 봉간이 제작하여 삼각산 용암사에 봉안된 불화로, 인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현왕재에 사용되었다. 현왕이 용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있고 판관, 사자, 녹사, 동자가 배치된 구성을 보이며, 붉은색, 청색, 녹색을 사용하고 의복에 일출문 등 19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을 나타낸다. 제작 시기와 봉안 장소가 명확하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당시 불교 신앙과 미술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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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작품 -
움직이는 말
움직이는 말 카드 세트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릴랜드 스탠퍼드의 의뢰로 고속으로 달리는 말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포착하여 말의 보행에 대한 인식을 뒤엎고 영화 발달에 영향을 미친 사진 카드 모음으로, 다양한 제목과 언어로 출시되었다. -
1878년 작품 -
서울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서울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는 망자를 심판하는 시왕과 지옥으로 인도하는 사자를 묘사하여 불교의 윤회 사상과 지옥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불교 미술 작품이다. -
서울 서대문구의 문화유산 -
신촌역 (경의선)
신촌역은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이 운행되는 경의선 철도역으로, 1921년 개통 이후 신촌연결선을 통해 서강대역과 연결되기도 했으며, 구 역사는 등록문화재로 지정, 2006년 민자역사로 이전하며 현대화되었다. -
서울 서대문구의 문화유산 -
독곡집 권상
《독곡집》 권상은 조선 초 문신 성석린의 시와 사를 모아 엮은 시문집으로, 2권 2책 중 권1 1책만이 전해지는 국내 유일본 초간본이다. -
조선의 불화 -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은 1780년에 제작된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한 송광사 중심의 고려 후기 고승 16명의 초상화 16점으로,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 기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조선의 불화 -
봉은사 칠성도
봉은사 칠성도는 1895년에 조성된 불화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여러 불교적 존재들이 묘사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서울·경기 지역 칠성도상의 특징을 계승하고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 용암사 현왕도의 구성 및 특징
2.1. 현왕
2.2. 판관과 사자
2.3. 녹사와 동자
2.4. 색채와 문양
3. 현왕 신앙과 현왕도
현왕(現王)은 중국 당나라 말기에 찬술된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에서 내세에 성불할 것을 수기 받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미래불(未來佛)인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를 지칭한다. 조선시대 불교 의식집에는 '성왕(聖王)'으로 처음 등장하며, 이후 '현왕'과 혼용되다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현왕'으로 통일되었다. 현왕도는 인간이 죽은 후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현왕재를 위해 조성된 불화이다.
서울 용암사 현왕도는 중앙에 현왕이 4마리의 용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있고 좌우에 판관(判官) 2위, 사자(使者) 2위가 배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4폭으로 된 병풍을 두르고, 하단에는 녹사(錄事)와 동자(童子)가 표현되어 있다.
색체와 문양표현은 19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경향을 보여주는데, 붉은색과 코발트 계열의 밝은 청색, 채도가 낮은 진한 녹색을 채용하였으며, 현왕의 의복 문양은 외곽에 화형(花形)을 두르고 안에 일출문(日出紋)을 시문하였는데, 이러한 문양은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조선 후반기 3기(1801~1929)의 불화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화기를 통해 광서 4년(1878),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한 불화승 봉간(奉侃)에 의해 조성되었음이 확인되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색채와 문양, 필선 등 19세기 전형적인 불화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4. 제작 배경 및 화기(畵記)
현왕도(現王圖)는 인간이 죽은 후 3일이 되는 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설행하는 현왕재를 위해 조성된 불화이다. 현왕은 중국 당나라 말기 찬술의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에서 내세에 성불할 것을 수기 받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미래불(未來佛)인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를 지칭한다. 조선 1574년 석왕사에서 판각한 불교의식집 『권공제반문(權供諸般文)』에 ‘성왕(聖王)’으로 처음 나타나며, 1691년 용흥사에서 판각한 『제반문』에서 ‘현왕’으로 등장한 이후 ‘성왕’과 ‘현왕’이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19세기 말-20세기 초 ‘현왕’으로 통일되었다.
서울 용암사 현왕도는 화면 하단 중앙부의 화기(畵記)를 통해 1878년(광서 4년)에 금어(金魚) 봉간(奉侃)이 단독으로 조성하여 삼각산 용암사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기에는 제작 연대, 봉안 장소, 참여한 승려들과 시주자들의 명단, 그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화면 하단 중앙부에 세로 6.3cm 가로 22.8cm 크기의 화기란이 마련되고 화기가 묵서되어 있다. 화기를 통해 광서 4년인 1878년 한파당의 증명 아래 금어 봉간(奉侃)이 단독으로 조성하여 삼각산 용암사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극락왕생(왕생정계)하기를 발원하고 있다.
화기(畵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光緖四年戊寅二月日落□成于三角山龍巖寺留□本庵
證明 漢波信□
誦呪 比丘天熙
持殿 比丘宥學
金魚 比丘奉侃
鐘頭 比丘聰眼
供司 比丘聚祚
別座 比丘尼圓翊
都監 比丘完眞
化主 比丘尼灒熙
別供 比丘尼奉義
同參施主
乾命 辛丑生姜氏
信女 甲戌生金氏白蓮
坤命 癸未生林氏
坤命 癸未生吳氏
往生淨界之大願
5. 의의 및 평가
용암사 현왕도는 19세기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불화승 봉간(奉侃)의 작품으로, 제작 연대와 봉안 장소가 명확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1878년(광서 4년)에 조성되어 삼각산 용암사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왕도는 붉은색과 코발트 계열의 밝은 청색, 채도가 낮은 진한 녹색을 사용하고, 의복에는 화형(花形) 안에 일출문(日出紋)을 시문하는 등 19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문양은 왕실발원 괘불화의 본존상에 많이 채용되었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당시의 불교 신앙과 미술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