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정
1. 개요
석탄정은 선조 14년(1581) 유운 선생이 건립한 정자이다. 유운은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정자를 지었으며, 이후 후손들에 의해 순조 30년(1830)에 중건되었다. 철종 4년(1853)과 1939년에 중수되었고, 1981년에는 상풍루가 신축되었다. 상풍루는 석탄정과 비교하여 주변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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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의 향토문화유산 -
최여겸 순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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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의 누정 -
광한루
광한루는 조선 시대 남원에 세워진 누각으로, 광통루에서 유래하여 광한청허부의 의미를 담아 개칭되었고, 정유재란 후 재건되었으며, 춘향전의 배경으로 광한루원으로 확장되어 관리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누정 -
광제정
광제정은 조선 초 양돈이 지어 그의 호를 딴 이름으로 불리게 된 광양의 정자로, 택지 개발로 위치가 이전되었으며, 양돈의 후손이 다시 지었고, 내부에 온돌방과 현판들이 걸려 있으며, 광산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향사례를 지낸다. -
대한민국 배경이 적용된 -
수력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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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배경이 적용된 -
2014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2. 역사
석탄정은 선조 14년(1581)에 석탄(石灘) 유운(1547-1611) 선생이 건립한 정자이다. 그는 인품이 고매하고 문장이 출중하여 선조 때 청암찰방(靑巖察訪)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석탄정을 짓고 동서에 상풍루와 영월헌을 세웠다. 또한 정자 앞에는 조대(釣臺)를 만들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풍치를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정자들은 민몰(泯沒)되고, 후손들은 순조 30년(1830)에 이곳에 다시 석탄정을 중건하였다. 철종 4년(1853)과 1939년에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에는 석탄정 뒤에 상풍루를 후손들의 성금으로 신축했다. 상풍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평면은 2×1칸 초석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고복형(鼓覆形) 초반 등 전체적 모습이 석탄정과 비교되며 주변과도 조화롭지 못하다.
2.1. 건립
석탄정은 선조 14년(1581)에 석탄(石灘) 유운(1547-1611) 선생이 건립한 정자이다. 그는 인품이 고매하고 문장이 출중하여 선조 때 청암찰방(靑巖察訪)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석탄정을 짓고 동서에 상풍루와 영월헌을 세웠다. 또한 정자 앞에는 조대(釣臺)를 만들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풍치를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정자들은 민몰(泯沒)되고, 후손들은 순조 30년(1830)에 이곳에 다시 석탄정을 중건하였다. 철종 4년(1853)과 1939년에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에는 석탄정 뒤에 상풍루를 후손들의 성금으로 신축했다. 상풍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평면은 2×1칸 초석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고복형(鼓覆形) 초반 등 전체적 모습이 석탄정과 비교되며 주변과도 조화롭지 못하다.
2.2. 중건 및 중수
석탄정은 1581년(선조 14년) 석탄(石灘) 유운/柳澐중국어(1547-1611) 선생이 건립한 정자이다. 그는 청암찰방(靑巖察訪)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석탄정을 짓고 동서에 상풍루와 영월헌을 세웠다. 또한 정자 앞에는 조대(釣臺)를 만들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풍치를 돋우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자들은 민몰(泯沒)되고, 후손들은 1830년(순조 30년)에 석탄정을 중건하였다. 1853년(철종 4년)과 1939년에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에는 석탄정 뒤에 상풍루를 후손들의 성금으로 신축했다. 상풍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평면은 2×1칸 초석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고복형(鼓覆形) 초반 등 전체적 모습이 석탄정과 비교되며 주변과도 조화롭지 못하다.
2.3. 상풍루 신축
1981년 석탄정 뒤편에 상풍루가 후손들의 성금으로 신축되었다. 상풍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평면은 2×1칸 초석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고복형(鼓覆形) 초반 등 전체적인 모습이 석탄정과 비교되며 주변과도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