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
1. 개요
광한루는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누각으로, 조선 시대에 건립되었다. 태조 때 황희가 광통루라는 이름으로 지었으며, 세종 16년 정인지가 개축한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인조 16년에 재건되었으며, 호남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하며, 현재 광한루원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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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2.1. 건립과 개칭
태조 때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광통루'(廣通樓)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세종 16년(1434년) 정인지가 누각을 고쳐 세운 뒤, 마치 옥황상제가 산다는 월궁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도 같다 하여 ‘광한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2.2. 소실과 재건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년) 남원부사 신감에 의하여 다시 지어졌으며,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전면에는 부사 이상억이 쓴, ‘호남제일루’라는 판액이 걸려 있다. 누각에는 83점의 편액이 있으며, 용성지에 실려 있는 것과 합하면 약 200여 수가 된다. 김종직, 정철, 정인지, 강희맹, 백광훈, 이경여 등의 시가 있다.
3. 건축 및 특징
4. 문화적 의의
4.2. 광한루원
광한루는 현재 광한루원이라는 공원으로 확장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