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왕씨
1. 개요
선비 왕씨는 고려 우왕의 왕비였으나, 우왕 폐위 후 유은지에게 재가하였다. 왕흥의 딸로 처음에는 변안열의 아들 현에게 시집갈 예정이었으나, 우왕의 요구로 혼인하게 되었다. 우왕이 폐위된 후, 유은지와 재혼했으나 조선 개국 후 재혼 사실이 문제가 되어 이혼하고 배주로 귀양을 갔다. 1983년 KBS 드라마 《개국》에서 최경선이 선비 왕씨 역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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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왕씨 -
왕영은
왕영은은 1981년 방송 데뷔 후 다양한 TV,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CF 모델 활동을 한 대한민국의 방송인이며, 현재 SBS 《좋은 아침》, 현대홈쇼핑 《왕영은의 톡 투게더》 등을 진행하고 있다. -
개성 왕씨 -
우왕
우왕은 고려 제33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이며, 이인임의 추대로 10세에 즉위하여 명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술과 여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왜구 침입, 명나라와의 관계 설정 문제, 요동 정벌 명령, 위화도 회군 등의 사건을 겪으며 폐위되어 처형되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고려의 왕비 -
희비 윤씨
희비 윤씨는 고려 충혜왕의 후궁이자 충정왕의 생모로, 아들 충정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외척인 민씨 가문이 권력을 얻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조선 왕실에 영향을 미친 파평 윤씨 가문 출신이다. -
고려의 왕비 -
순화원비
고려 충선왕의 비인 순화원비는 남양 홍씨로 남양부원군 홍규의 딸이자 공원왕후의 언니이며 자녀는 없었고, 그녀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고려사》에 남아있지 않다.
2. 생애
선비 왕씨는 우왕의 왕비였으나, 우왕이 폐위되면서 함께 폐출되었다. 왕씨의 아버지 왕흥은 딸을 변안열의 아들 현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우왕이 이 소식을 듣고 왕흥을 협박하여 결국 왕씨를 왕비로 맞이했다.
이성계 등은 우왕의 어머니 반야가 신돈의 첩이라는 이유로 우왕을 신돈의 후손으로 보고 폐위시켰으며, 왕비들도 근비 이씨와 현비 안씨를 제외하고 모두 폐출시켰다. 이후 왕씨는 문화 유씨 유은지와 재혼했으나, 1403년(태종 3년) 왕비였던 사람이 재혼했다는 이유로 유은지와 이혼하고 배주로 귀양 갔다.
2.1. 초기 생애와 우왕과의 혼인
선비 왕씨의 아버지 왕흥은 처음에 왕씨를 변안열의 아들 현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우왕이 달려와 왕흥에게 딸을 내놓으라고 하자, 왕흥은 딸이 집에 없음을 핑계로 그 자리를 모면하고, 이튿날 모두 집을 비우고 도주하였다. 하지만 결국 협박에 이기지 못해 딸을 내어 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를 비롯한 여러 관료들은 우왕의 어머니 반야가 신돈의 첩이라 하여 신돈의 후손으로 보고 우왕을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그의 왕비들도 근비 이씨와 현비 안씨를 제외하고 모두 폐출되었다.
2.2. 우왕 폐위와 왕비 강등
이성계 등 여러 관료들은 우왕의 어머니 반야가 신돈의 첩이라는 이유로 신돈의 후손으로 보아 우왕을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그의 왕비들도 근비 이씨와 현비 안씨를 제외하고 모두 폐출하였다.
한편 왕씨는 우왕 폐출 후 판통례문사 등을 지낸 문화 유씨 유은지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조선 개국 후인 1403년(조선 태종 3년), 왕비였던 사람이 재혼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유은지와 왕씨는 이혼하고, 왕씨는 배주로 귀양가야 했다.
2.3. 재혼과 귀양
왕씨는 우왕이 폐출된 후 판통례문사 등을 지낸 문화 유씨 유은지에게 재가하였다. 그러나 조선 개국 후인 1403년(태종 3년), 왕비였던 사람이 재혼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유은지와 왕씨는 이혼하고, 왕씨는 배주로 귀양가야 했다.
3. 가족 관계
| 구분 | 이름 | 생몰년 |
|---|---|---|
| 첫 번째 남편 | 우왕 | 1365년 ~ 1389년 |
| 두 번째 남편 | 유은지 | 1370년 ~ 144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