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한국방송공사(KBS)는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시작하여, 대한민국 공영방송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국영 방송 시기를 거쳐 1973년 공사로 전환되었으며,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민영 방송사를 흡수했다. KBS는 1TV, 2TV, 뉴스 D 등 텔레비전 채널과, 1라디오, 2라디오, 클래식FM 등 다양한 라디오 채널을 운영하며, DMB 방송과 해외 방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재원은 수신료와 광고 수익으로 구성되며, 정치적 편향성, 수신료 징수 및 사용, 프로그램 관련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특수법인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 한국교육방송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는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방송하는 대한민국의 공영 교육 방송사로, 지상파 TV, 라디오,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하며 본사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다. - 특수법인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 방송문화진흥회
방송문화진흥회는 MBC 경영 관리·감독 및 방송문화진흥자금 운용을 수행하며,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하는 9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MBC 사장 임명 및 해임 결정권을 가지는 대한민국의 기관이다. - 1927년 설립된 라디오 방송국 - KBS 제1라디오
KBS 제1라디오는 1927년에 개국하여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하며, 1994년 광고방송을 폐지하고 수신료로 운영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라디오 채널이다. - 1927년 설립된 라디오 방송국 - 영국방송공사
영국방송공사(BBC)는 1922년 설립된 영국의 공영 방송사로, 텔레비전, 라디오,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신료를 재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국 - 한국교육방송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는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방송하는 대한민국의 공영 교육 방송사로, 지상파 TV, 라디오,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하며 본사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다. -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국 - AFN Korea
AFN Korea는 한국 전쟁 직후 설립된 미군 방송국으로, 라디오에서 텔레비전 방송으로 확장하며 한국 방송 기술 발전에 기여했고,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의 통제 없이 운영되며 미국 문화를 소개하고 군사정권 시대 언론 통제를 우회하는 역할도 했으며, 현재는 라디오, 위성 TV, 인터넷 라디오 채널 AFN Pacific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방송공사 - [회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회사 이름 | 한국방송공사 |
로마자 표기 | Hanguk Bangsong Gongsa |
한자 표기 | 韓國放送公社 |
영어 이름 | Korean Broadcasting System |
![]() | |
![]() | |
유형 | 법정법인 |
산업 | 공영 방송 |
전신 | 경성방송국 (1927–1932) 조선방송협회 (1932–1945) |
설립일 |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 라디오 방송 시작) 1956년 5월 (텔레비전 방송 시작) 1973년 3월 3일 (공영 방송 기관으로 재설립) |
설립자 | 조선총독부 |
본사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 |
서비스 지역 | 전 세계 |
주요 인물 | 박장범 (사장 겸 CEO) |
주요 상품 | 텔레비전 라디오 웹 포털 |
소유주 | 대한민국 기획재정부 |
직원 수 | 4,701명 (2020년 6월 1일 기준) |
자회사 | KBS 미디어 KBS 아트비전 KBS 비즈니스 KBS N KBS i (2011년 폐쇄) KBS 시큐리티 E-KBS KBS 아메리카 KBS 재팬 몬스터 유니온 |
웹사이트 | 기업 웹사이트 |
약칭 | KBS, 한국방송 |
슬로건 | 공정과 혁신으로 새로운 KBS |
방송 채널 정보 | |
KBS 1TV 개국일 | 1961년 12월 31일 |
KBS 1TV 위성 채널 | 9번 (HD) |
KBS 1TV 디지털 채널 | 지니 TV: 9번 B TV: 9번 U+ TV: 9번 |
KBS 2TV 개국일 | 1980년 12월 1일 |
KBS 2TV 위성 채널 | 7번 (HD) |
KBS 2TV 디지털 채널 | 지니 TV: 7번 B TV: 7번 U+ TV: 7번 |
KBS NEWS D 개국일 | 2010년 3월 3일 |
KBS 제1라디오 개국일 | 1927년 2월 16일 |
KBS 제2라디오 개국일 | 1933년 4월 26일 |
KBS 해피FM 개국일 | 2003년 10월 20일 |
KBS 제3라디오 개국일 | 2000년 1월 1일 |
KBS 사랑의 소리방송 개국일 | 1995년 12월 20일 |
KBS 제1FM 개국일 | 1979년 4월 2일 |
KBS 클래식FM 개국일 | 2007년 4월 16일 |
KBS 제2FM 개국일 | 1965년 6월 26일 |
KBS 쿨FM 개국일 | 2003년 10월 20일 |
KBS 사회교육방송 개국일 | 1972년 8월 15일 |
KBS 한민족방송 개국일 | 2007년 8월 15일 |
기타 정보 | |
직원 수 (추정) | 약 9,000명 ~ 12,000명 |
시장 정보 | (방송법에 따라 설립된 공영방송사이므로, 비상장 기업, 사회적 기업단체) |
자본금 | 3000억원 (방송법 근거) |
매출액 | 2조 500억 원 |
자산 총액 | 1,800억 대한민국 원 (2012년 결산 기준) |
영업 이익 | 800억원 (2021년 공시 기준) |
순이익 | 5조 원 (2021년) |
주주 | 대한민국 정부, 시청자(수신료 운영체계)+KBS 광고판매에 낙찰된 광고주의 일부자본+대한민국 정부의 보조금 |
사장 | 박장범 |
2. 역사
1926년 11월 30일, 사단법인 경성방송국 설립이 허가되었고, 1927년 1월 20일 시험 방송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개국하면서 호출 부호 JODK, 주파수 870킬로사이클, 송신 출력 1kW로 방송을 시작했다.[1] 1932년 4월 7일에는 사단법인 조선방송협회로 개편되었고, 경성방송국은 경성중앙방송국으로 개칭되었다.
1933년 4월 26일, 경성중앙방송국은 한국어로 제2방송을 시작하고, 기존 방송은 일본어로 제1방송이 되었다. 송신 출력은 모두 10kW였다. 1935년 9월 21일 부산방송국을 시작으로 전국 네트워크를 확장했으며, 1937년 4월 17일에는 경성중앙방송국 제2방송의 송신 출력을 50kW로 증강했다.
1945년 8월 15일 종전의 칙령을 중계 방송했고, 8월 26일에는 소련군이 남북 중계 회선을 차단했다. 9월 9일, 미군이 경성중앙방송국을 접수하고 일본어 방송을 종료하면서 미군의 관리 하에 놓였다. 1948년 8월 6일 대한민국 발족과 함께 조선방송협회는 대한방송협회로 개칭된 후 해산되고 국영화되었다.
1953년 8월 15일, KBS월드라디오의 전신인 "자유대한의 소리" 방송이 시작되었고, 1961년 7월 1일 "서울국제방송국"으로 개칭되었다. 같은 해 10월 15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대한방송이 국가에 접수되어 폐국되었다. 12월 31일, 대한방송을 계승하는 형태로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이 개국했다.
1968년 7월 25일, 서울중앙방송국, 서울국제방송국,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이 통합되어 국영중앙방송국이 발족되었다. 1973년 3월 3일, 방송 사업이 공사화되면서 "한국방송공사"가 발족되었다.[74][75][56] 1976년에는 여의도방송센터 본관 운영을 시작했고, 1979년에는 FM 스테레오 음악 방송을 시작했다.
1980년 12월 1일, 언론통폐합 정책에 따라 동양방송, 동아방송 등 민영 방송을 통합하고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1981년 2월 2일에는 제3텔레비전, 교육 FM 방송을 시작했고, 1990년 12월 27일 제3텔레비전과 교육 FM 방송을 한국교육개발원으로 이관했다.
2000년에는 라디오 제3방송 "사랑의 소리 방송"을 시작했고, 2001년 3월 3일 "한국방송"이라는 애칭을 도입했다. 같은 해 11월 5일에는 디지털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58] 2004년 10월 31일에는 지역 방송국 통폐합을 실시했다. 2012년 12월 31일, 수도권 지역을 마지막으로 아날로그텔레비전 방송을 종료했다.[59][60]
2. 1. 일제강점기: 경성방송국 (JODK)
1927년 2월 16일,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호출 부호 '''JODK'''를 사용하는 경성방송국(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한국어)으로 시작했다.[1] 한국 최초의 라디오방송이었다.1932년 조선방송협회(Chōsen Broadcasting Corporation|朝鮮放送協會|Chōsen Hōsō Kyōkai일본어)로 개편되었다.
1935년 경성중앙방송국으로 개칭하고 조선방송협회를 결성, 1936년 부산방송국(JBAK)을 시작으로 전국 네트워크를 확장하였다.
지역 | 호출 부호 |
---|---|
평양 | JBBK |
청진 | JBCK |
이리 | JBFK |
함흥 | JBDK |
대구 | JBGK |
광주 | JBHK |
대전 | JBIK |
원산 | JBJK |
해주 | JBKK |
신의주 | JBLK |
춘천 | JBMK |
마산 | JBOK |
목포 | JBNK |
성진 | JBPK |
청주 | JBQK |
강릉 | JBRK |
1937년 경성중앙방송국 제2방송(한국어)이 시작되었다.
2. 2. 해방 이후: 국영방송 서울중앙방송
1945년 해방 이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국영화되었다.[56] 194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호출부호 '''HL'''을 인정받았으며, 국영 방송인 '''대한방송협회'''에서 '''KBS'''라는 약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72]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칭되었다.2. 3. 텔레비전 방송 시작과 성장
1961년 10월 15일 텔레비전 방송(HLKA-TV)이 개시되었고,[56] 1963년부터 수신료 및 광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KBS가 독자적으로 수신료를 징수했으나, 이후 공공기관 위탁 징수를 거쳐 1994년부터는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에 통합되어 징수되고 있다.[66] 수신료의 일부는 한국교육방송공사(EBS)와 한국전력공사에 배분된다.[65] 1969년에는 광고 방송이 폐지되고 교육 방송이 시작되었다.2. 4. 공영방송 전환
1973년 3월 3일, 국영 방송에서 공영 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지금의 한국방송공사(KBS)가 창립되었다.[74][75][56] 1976년에는 여의도에 현재의 사옥이 준공되었다.[76][77] 1979년에는 KBS 스테레오(현재 KBS 1FM)가 개국하면서 FM 방송을 시작했다.2. 5. 1980년대: 언론통폐합과 민주화 운동
1980년 언론통폐합 지침에 따라 동양방송(서울본사 및 부산지국)과 동아방송 등 민간 방송국을 인수 합병했고,[78] 12월 1일부터 텔레비전 컬러 방송을 개시하였다. 같은 날 KBS 제2FM은 광고방송을 폐지했다. 12월 22일에는 KBS 2TV가 컬러방송을 개시했고, 1981년 2월 2일 KBS 3TV를 개국했다. 1981년 3월 7일부터 KBS 1TV, KBS 제1라디오, KBS 제1FM, KBS 2TV, KBS 제2라디오는 광고방송을 시작했다.1982년 1월 25일 KBS 2TV의 광고 형식이 변경되었고, KBS 1TV의 광고는 스포츠 프로그램, 실황 중계, 영화 등에서 축소되었다. 4월에는 평일 오전 시간대에 블록 광고를 편성하여 광고 시간이 늘어났다. 라디오 채널도 KBS 제1라디오, KBS 제1FM, KBS 제2라디오도 텔레비전 채널과 같이 광고방송을 실시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에는 농민, 종교단체들의 "KBS 시청료 거부 운동" 확산을 일으켰지만,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138일간 방영하였다. 1985년 음성다중방송을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 한국방송공사는 국내 대회의 주관방송사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1985년 5월 1일 KBS 1TV는 술 광고를 폐지했고, 오후 시간대(20:00 ~ 22:30)의 광고방송을 줄였다.[79]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주관 방송했다. KBS 1TV는 1986년 7월 평일 오후 블록광고(20:30~20:35)를 폐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주관 방송했고, 릴 테이프 입출력 방식의 대형 컴퓨터, 위성 송출 장비, 텔레텍스트, 크로마키 스튜디오 등이 외국 취재진들을 위해 완비된 최첨단 올림픽 프레스 센터 건물을 개관하였다. KBS 1TV는 1988년 ~ 1989년 오전에 뉴스를 시작할 때 광고방송을 방영했다.[80]

2. 6. 1990년대: 민영방송 분리와 수신료 제도 변화
1990년 12월 27일, KBS 3TV와 교육 FM이 KBS에서 분리되어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설립되었다.1994년 텔레비전 수신료 제도 개정 이후 1TV와 제1라디오는 광고 방송을 중단했다.[57]

2. 7.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전환과 국제화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의 주관 방송을 실시하였다. 2011년에는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 주관방송을 맡아 3D 중계방송을 실시했고, 2012년에는 여수 엑스포의 주관방송을 실시했다.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ITU 전권회의를 주관방송하였으며, 해외 대상 24시간 방송 서비스인 KBS WORLD 24가 출범하였다. 2017년에는 한국방송 개시 90주년을 맞았다.
2018년 4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정치와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으며, 이러한 노력은 2019년 11월 KBS 방송 편성규약 개정으로 결실을 보았다.[87] 2018년 6월, KBS는 킨텍스에서 열린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주관 방송사 역할을 수행했다.[7]
2021년 7월 19일에는 KBS 다채널 방송이 개국되었다.[87] 9-2 채널은 KBS NEWS D로 전환, 9-3 채널은 KBS 제1라디오의 보이는 라디오와 독도 실시간 라이브로 활용, 7-2 채널은 9월 30일까지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8월 31일에는 9-2 채널을 24시간 재난전문채널 신설 계획을 발표하였다.[88]
2001년 HD 방송을 처음 시작한 KBS는 2012년 완전한 디지털 방송 전환을 완료했다. 2013년, KBS 월드 라디오는 창립 60주년을 기념했고, KBS 월드 TV는 개국 10주년을 기념했다. 2014년, 주로 해외 거주 한국인을 위한 KBS 월드 24가 개국했다. 2015년, KBS는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 아카이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7년, KBS는 세계 최초로 지상파 UHD 방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9년 5월, KBS는 비상시 긴급 서비스 제공을 위해 재난 방송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3. 운영 현황
KBS는 한국 정부와 방송 수신료로 운영되는 독립 공영 방송이다. KBS 매출의 약 49%는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텔레비전 수신료 2,500 원에서 나오며, 18.7%는 상업 광고 판매에서 발생한다.[8]
KBS는 본사 외에 18개의 지역 방송국, 12개의 해외 지국을 두고 있으며, KBSN, KBS 비즈니스, KBS 미디어 등 8개의 자회사를 통해 KBS 콘텐츠를 관리한다.
3. 1. 조직 구조

KBS는 한국 정부와 방송 수신료로 운영되는 독립적인 공영 방송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KBS 사장은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 대한민국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국의 정당들은 KBS 이사회 구성원을 지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8]
이러한 시스템은 정치인들에게 KBS 사장과 이사회 구성원을 효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통제권을 부여하여, KBS 운영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있다.[8]
KBS는 독립성 유지를 위해 2018년부터 '공영 자문단'을 설립하여 사장 및 최고경영자 선임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 공영 자문단은 발표, 패널 토론, 면접을 통해 사장 후보들을 심사하며,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를 대상으로 한다. 최종 임명은 대통령이 한다.[8]
KBS는 2019년 3월 1일 조직 개편을 통해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 디지털 업무 흐름 개선, 시청자 서비스 향상을 추진했다. 콘텐츠 제작 2본부를 신설하여 제작, 마케팅, 콘텐츠 사업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이를 통해 제작 기능의 창의성을 높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간소화하여 뛰어난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8]
전략기획본부 산하에 공영방송전략팀을 신설하여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KBS의 디지털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하게 했다. 프로그램본부의 디지털미디어부서 역할이 확대되었고, 보도본부 산하 디지털뉴스부서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시청자센터'는 KBS 사장 직속의 임원 부서가 되어 시청자 서비스 향상과 시청자 참여 기회 확대에 주력한다. 지역 방송국의 자율성 확대 요구에 따라 지역방송국 운영은 KBS 부사장 직속으로 개편되었다.[18]
3. 2. 재정
KBS의 수신료 제도는 1961년 텔레비전 방송 개시와 함께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KBS가 독자적으로 수신료를 징수하다가, 1994년부터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에 추가하여 징수하고 있다. 수신료의 일부는 한국교육방송공사(EBS)와 한국전력공사[65]에 배분된다.[66]현행 제도는 수신료 징수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수신료의 공평한 부담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이 징수 제도로 수신료 수입이 증가했고, 광고 수입도 증가했기 때문에 월 2,500원으로 2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67] 2023년 6월, 대통령실은 한국전력의 전기요금과 분리하여 KBS 수신료를 징수하도록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68]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KBS 수신료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이 수신료 불납 운동으로 당시 KBS는 수신료 수입이 50%나 감소하여 KBS 경영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언론 통폐합으로 인한 매체·조직의 비대화로 수신료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져 국영기업을 통해 광고를 유치하여 그 수입으로 부족분을 메우는 상황이었다.[69]
KBS 매출의 약 49%는 2,500 원의 의무적인 텔레비전 수신료에서 나오며, 나머지 18.7%는 상업 광고 판매에서 발생한다.[8]
3. 3. 지역국
인천광역시경기도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