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테로 아랑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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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테로 아랑구렌은 18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22년 사망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선수이다. 그는 형 에우로히오 아랑구렌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에서 1911년부터 1918년까지 활약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스타 선수로 칭송받았다. 코파 델 레이 1917년 우승, 중부 선수권 대회 3회 우승을 기록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동상을 세웠다.

소테로 아랑구렌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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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의 소테로 아랑구렌
본명소테로 아랑구렌 라바일
출생일1894년 5월 7일
출생지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망일1922년 2월 26일
사망지스페인 산세바스티안
포지션미드필더
클럽 경력
클럽레알 마드리드
연도1911-1918
출장 (골)6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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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소테로 아랑구렌은 189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형 에울로히오 아랑구렌과 함께 마드리드 FC(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여 1911년부터 1918년까지 활약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스타 선수였다. 레알 마드리드 공식 웹사이트는 소테로 아랑구렌을 "하얀 군단의 첫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60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다. 1912년 3월 3일, 아랑구렌이 경기에 지각하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대신 출전한 일화도 있다.

2.1. 요절과 유산

아랑구렌은 1922년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레알 마드리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 동료 선수였던 알베르토 마침바레나(역시 젊은 나이에 사망)의 동상을 1군 탈의실 입구에 세웠다. 1925년에 세워진 이 동상은 현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탈의실 입구에 위치하며,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3. 선수 경력

소테로 아랑구렌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형 에우로히오 아랑구렌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르헨티나 선수였다. 1911년부터 1918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1912년 3월 3일, 아랑구렌이 경기에 늦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대신 출전하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아랑구렌을 "하얀 군단의 첫 상징"으로 묘사했다. 알베르토 마침바레나와 함께 제작된 그의 동상은 1925년에 세워져 현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탈의실 입구에 있으며,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3.1. 레알 마드리드

에우로히오 아랑구렌과 소테로 아랑구렌 형제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이다. 소테로는 1911년부터 1918년까지 7년 동안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활동하며 60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다. 1912년 3월 3일, 아랑구렌이 경기에 늦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급히 출전했다는 일화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 공식 웹사이트는 아랑구렌을 "하얀 군단의 첫 상징"으로 묘사했다. 28세에 요절한 그는 알베르토 마침바레나와 함께 동상으로 제작되어 1군 탈의실 입구에 세워졌다. 1925년에 세워진 이 동상은 현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탈의실 입구에 있으며,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4. 수상 경력

소테로 아랑구렌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1회 (1917년), 마드리드 선수권 대회 3회 (1912-13, 1915-16, 1916-17 시즌) 우승을 경험했다.

4.1. 코파 델 레이

1917년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했다.

4.2. 중부 선수권 대회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마드리드 축구단 소속으로 1912-13, 1915-16, 1916-17 시즌에 마드리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