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시메오네
1. 개요
디에고 시메오네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벨레스 사르스필드, 피사, 세비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인테르 밀란, 라치오, 라싱 클루브 등에서 뛰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106경기에 출전하여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 킹 파흐드컵 우승, 1996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하여 라싱 클루브,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 리버 플레이트, 산 로렌소, 칼초 카타니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을 지휘했다.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 2011-12 UEFA 유로파리그, 2013-14, 2020-21 라리가 우승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 이름 | 디에고 파블로 시메오네 곤살레스 |
|---|---|
| 원어 이름 | Diego Pablo Simeone González |
| 애칭 | 쵸로 (El Cholo) |
| 출생일 | 1970년 4월 28일 |
| 출생지 |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 키 | 1.77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현재 클럽 (감독)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 로마자 표기 (스페인어) | 'djego 'paβlo sime'one |
| 로마자 표기 (이탈리아어) | 'djɛːɡo sime'oːne, 'djeː- |
| 별칭 로마자 표기 (스페인어) | el 'tʃolo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유소년 클럽 | 벨레스 사르스피엘드 |
|---|---|
| 클럽 | 1987-1990: 벨레스 사르스피엘드 (76경기, 14골) 1990-1992: 피사 (56경기, 6골) 1992-1994: 세비야 (64경기, 12골) 1994-199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98경기, 21골) 1997-1999: 인테르 밀란 (57경기, 11골) 1999-2003: 라치오 (90경기, 15골) 2003-200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6경기, 2골) 2005-2006: 라싱 클루브 (38경기, 3골) |
| 총 출장 | 515 경기 |
| 총 득점 | 84 골 |
| 청소년 대표 | 1989: 아르헨티나 U-20 (4경기, 1골) 1996: 아르헨티나 U-23 (6경기, 1골) |
|---|---|
| 성인 대표 | 1988-2002: 아르헨티나 (108경기, 11골) |
| 클럽 | 2006: 라싱 클루브 2006-2007: 에스투디안테스 2007-2008: 리버 플레이트 2009-2010: 산로렌소 2011: 카타니아 2011: 라싱 클루브 201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
| 코파 아메리카 | 1991 칠레 우승 1993 에콰도르 우승 |
|---|---|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992 사우디아라비아 우승 |
| CONMEBOL-UEFA 컵 오브 챔피언스 | 1993 아르헨티나 우승 |
| 올림픽 | 1996 애틀랜타 은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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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세리에 A의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세리에 A의 축구 선수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축구 감독 -
마르셀로 비엘사
마르셀로 비엘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을 거쳐 여러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을 지도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 U-23 대표팀을 금메달로 이끌고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로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축구 감독 -
엑토르 쿠페르
엑토르 쿠페르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과 국가대표팀 경력, 감독으로서 유럽 클럽 및 여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코파 CONMEBOL 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특히 이집트 대표팀의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시메오네가 14살이었을 때, 그의 유소년 코치인 빅토리오 스피네토는 그를 "초로"라고 불렀는데, 그의 활기찬 플레이가 전 보카 주니어스 선수이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였던 카멜로 시메오네(혈연관계 없음)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시메오네는 1990년 이탈리아 세리에 A 클럽 피사로 이적했다. 클럽은 그의 첫 시즌에 강등되었고, 다음 해 승격에 실패한 후 시메오네는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로 이적했다. 시메오네는 세비야에서 두 시즌을 뛰었고, 그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아틀레티코에서 그는 1995-96 시즌에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를 모두 차지한 팀의 일원이었으며, 주장을 역임했다.
1997년, 시메오네는 인터 밀란으로 돌아와 세리에 A에서 뛰었다. 그리고 두 시즌 동안 풀타임으로 활약하며 호나우두가 이끄는 팀에서 1997-98 UEFA컵을 우승했다. 1999년 시메오네는 동료 아르헨티나 선수들인 네스토르 센시니, 마티아스 알메이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함께 스벤-예란 에릭손의 라치오에 합류했다. 시메오네가 합류하기 전 시즌, 라치오는 스쿠데토에 근접했었고, 그는 한 시즌 후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마지막 경기 전까지 유벤투스가 2점 차로 앞서 있었지만, 비가 내린 페루자에서 유벤투스가 패배하고 라치오가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레지나를 상대로 3-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시메오네의 첫 세리에 A 우승이 확정되었다. 스페인에서 더블을 달성한 후, 그는 라치오가 인터 밀란을 제치고 1999-2000 코파 이탈리아를 차지하며 이탈리아 더블을 추가했다.
그는 로마에서 3시즌 더 뛰었는데, 여기에는 마지막 날의 드라마도 포함되어 있다. 2001-02 시즌 마지막 날 전 소속팀 인터 밀란을 상대로 시메오네가 넣은 골은 사실상 그의 옛 직장의 우승 꿈을 망쳤다.
라치오와의 계약을 해지한 후, 시메오네는 2003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2시즌을 보냈다. 총 165경기에 출전하여 31골을 기록했다. 2004년 12월, 그는 유럽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라싱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1. 클럽 경력
1987년 CA 베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0년까지 리그 76경기 14골을 기록했다.
1990-91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피사 SC로 이적한 뒤 1990-91 시즌 33경기 4골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팀의 세리에 B 강등을 막지 못했다.
강등 이후 1991-92 시즌 공식전 28경기 2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B 1991-92 시즌 6위의 성적에는 일조했으나 세리에 A 승격까지는 이끌지 못한 채 1991-92 시즌을 끝으로 피사와 결별했다.
1992-93 시즌을 앞두고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 FC로 트레이드되어 두 시즌 동안 공식전 73경기 16골을 터뜨리며 두 시즌 연속 리그 중위권의 성적에 일조하는 활약을 펼쳤다.
두 시즌간 펼친 세비야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4-95 시즌을 앞두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1996-97 시즌까지 공식전 126경기 27골의 맹활약으로 1995-96 시즌 더블(라리가 1995-96 우승, 코파 델 레이 1995-96 우승), 1996-97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6 준우승 등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인테르 밀란 이적을 통해 6년만에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하여 두 시즌 동안 공식전 84경기 14골을 터뜨리며 세리에 A 1997-98 준우승, 1997-98년 UEFA 유로파리그 우승, 코파 이탈리아 1998-99 4강, 1998-99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등을 이끌었다. 1998년 UEFA컵에서는 에서 라치오를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8-99 시즌을 마무리한 후 같은 이탈리아 리그의 SS 라치오로 이적하여 2002-03 시즌까지 네 시즌 동안 공식전 136경기 18골을 기록하며 1999-2000 시즌 더블 달성(세리에 A 1999-2000 우승, 코파 이탈리아 1999-2000 우승), 1999년 UEFA 슈퍼컵 우승, 1999-2000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세리에 A 2000-01 3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0 우승, 코파 이탈리아 2002-03 4강, 2002-03년 UEFA 유로파리그 4강 진출 등의 굵직한 성과들을 남겼다. 특히 세리에 A 2001-02 시즌에서는 비록 팀은 리그 6위에 머물렀지만 친정팀인 인터와의 최종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노리던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라치오로 이적하여, 센시니, 알메이다, 크레스포, 베론 등 많은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시메오네의 합류와 함께 스쿠데토(리그 우승) 경쟁에 뛰어든 그들의 팀은 시메오네의 활약으로 유벤투스 FC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에 기여했다. 최종전을 앞두고 승점 2점 차이로 뒤처져 있었지만, 유벤투스는 폭우 속 페루자 칼초 전에서 패했고, 라치오는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레지나 1914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처음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1999-2000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결승전에서 인터를 꺾고 우승하며 스페인 시절에 이어 2관왕을 달성했다. 이후 2002-03 시즌까지 라치오에서 활약했다. 2001-02 시즌 최종전 인터전에서는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 인터의 리그 우승 꿈을 산산이 조각냈다.
2002-03 시즌 종료 후 라치오를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7년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한 뒤 두 시즌반 동안 공식전 47경기 3골을 기록했다.
2004-05 시즌이 진행 중이던 2004년 12월, 라싱 클루브 이적을 통해 1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 2005-06 시즌까지 리그 38경기 3골을 기록하며 2005 토르네오 클라우수라 3위의 성적에 일조한 후 2005-06 시즌을 끝으로 19년간의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1. 벨레스 사르스피엘드
1987년 CA 베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0년까지 리그 76경기 14골을 기록했다.
1987년 CA 베레스 사르스필드에서 데뷔하여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다.
2.1.2. 피사 SC
1990-91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피사 SC로 이적한 뒤 1990-91 시즌 33경기 4골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팀의 세리에 B 강등을 막지 못했다.
강등 이후 1991-92 시즌 공식전 28경기 2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B 1991-92 시즌 6위의 성적에는 일조했으나 세리에 A 승격까지는 이끌지 못한 채 1991-92 시즌을 끝으로 피사와 결별했다.
2.1.3. 세비야 FC
1992-93 시즌을 앞두고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 FC로 트레이드되어 두 시즌 동안 공식전 73경기 16골을 터뜨리며 두 시즌 연속 리그 중위권의 성적에 일조하는 활약을 펼쳤다.
2.1.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기
1994-95 시즌을 앞두고 세비야에서의 두 시즌 간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996-97 시즌까지 공식전 126경기 27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1995-96 시즌 더블(라리가 1995-96 우승, 코파 델 레이 1995-96 우승), 1996-97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6 준우승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3년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하여 2시즌을 더 뛰었다.
2.1.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7-98 시즌을 앞두고 인테르 밀란 이적을 통해 6년만에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하여 두 시즌 동안 공식전 84경기 14골을 터뜨리며 세리에 A 1997-98 준우승, 1997-98년 UEFA 유로파리그 우승, 코파 이탈리아 1998-99 4강, 1998-99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등을 이끌었다. 1997년 다시 세리에 A로 돌아와 인테르에서 호나우두 등과 함께 뛰었다. 1998년 UEFA컵에서는 에서 라치오를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1.6. SS 라치오
1998-99 시즌을 마무리한 후 같은 이탈리아 리그의 SS 라치오로 이적하여 2002-03 시즌까지 네 시즌 동안 공식전 136경기 18골을 기록하며 1999-2000 시즌 더블 달성(세리에 A 1999-2000 우승, 코파 이탈리아 1999-2000 우승), 1999년 UEFA 슈퍼컵 우승, 1999-2000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세리에 A 2000-01 3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0 우승, 코파 이탈리아 2002-03 4강, 2002-03년 UEFA 유로파리그 4강 진출 등의 굵직한 성과들을 남겼다. 특히 세리에 A 2001-02 시즌에서는 비록 팀은 리그 6위에 머물렀지만 친정팀인 인터와의 최종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노리던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1999년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라치오로 이적하여, 센시니, 알메이다, 크레스포, 베론 등 많은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시메오네의 합류와 함께 스쿠데토(리그 우승) 경쟁에 뛰어든 그들의 팀은 시메오네의 활약으로 유벤투스 FC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에 기여했다. 최종전을 앞두고 승점 2점 차이로 뒤처져 있었지만, 유벤투스는 폭우 속 페루자 칼초 전에서 패했고, 라치오는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레지나 1914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처음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1999-2000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결승전에서 인터를 꺾고 우승하며 스페인 시절에 이어 2관왕을 달성했다. 이후 2002-03 시즌까지 라치오에서 활약했다. 2001-02 시즌 최종전 인터전에서는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 인터의 리그 우승 꿈을 산산이 조각냈다.
2.1.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기
2003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하여 2시즌을 뛴 후 모국 라싱 클럽으로 이적했다. 팬으로서 라싱 클럽에서 은퇴한다는 꿈을 이루며, 2006년 은퇴했다.
2.1.8. 라싱 클루브
2004-05 시즌이 진행 중이던 2004년 12월 라싱 클루브 이적을 통해 1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 2005-06 시즌까지 리그 38경기 3골을 기록하며 2005 토르네오 클라우수라 3위의 성적에 일조한 후 2005-06 시즌을 끝으로 19년간의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팬으로서 라싱 클럽에서 은퇴한다는 꿈을 이루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1996년 하계 올림픽에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여 6경기 1골을 기록하면서 1928년 대회 이후 무려 68년만에 아르헨티나의 올림픽 은메달 획득에 공헌했다.
1988년 7월 14일 호주와의 호주 200주년 골드컵 3차전에서 아르헨티나 A대표팀 소속으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이틀 후에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3위 결정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2번의 코파 아메리카(1991, 1993)에서 3골을 터뜨리며 2연속 코파 아메리카 제패를 이끌었고 개최국이자 홈팀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992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의 컨페드컵 초대 챔피언 등극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후 3번의 FIFA 월드컵 본선(1994, 1998, 2002)에 참가했지만 1994년 대회에서는 16강, 그 다음 대회인 1998년 대회에서는 8강, 2002년 대회에서는 1962년 이후 40년만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쓴 맛을 보았다. 1994년 월드컵에서는 모든 4경기에 전 경기 출전했고, 조별 리그 첫 경기인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8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자메이카와의 경기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6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파울을 얻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또한, 시메오네를 걷어찬 데이비드 베컴이 보복 행위로 간주되어 퇴장당했다. 시메오네는 나중에 베컴을 퇴장시키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척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잉글랜드와의 1998년 FIFA 월드컵 16강전 당시 데이비드 베컴 현 인터 마이애미 구단주 겸 솔퍼드 시티 공동 구단주가 시메오네 감독의 파울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걷어차는 행위를 범하며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시메오네 감독은 베컴 구단주를 퇴장시키기 위해 '베컴이 발로 걷어차서 부상당한 척 했다'고 인정했는데 이에 대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시메오네가 베컴에게 먼저 깊은 태클을 날렸고 이후 베컴이 보복하자 1톤의 벽돌이 쏟아지듯 무너졌다고 묘사하며 이 사건을 상세하게 비판했다.
다음 경기인 8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는 태클을 받아 실제로 부상을 입었다. 뒤이어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아르튀르 뉘만의 태클에 큰 부상을 입으면서 팀의 8강 탈락을 씁쓸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마지막 국제 대회였던 2002 월드컵에서는 2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조별 리그 최종전 스웨덴과의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탈락했다.
그래도 2001년 3월 28일 베네수엘라와의 2002년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 11차전에서 A매치 통산 100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아르헨티나 선수로는 최초로 FIFA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는 영예를 안았고 이와 함께 대표팀 선배인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어 아르헨티나 대표팀 최다 출전 선수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밝혔으며 현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 부문 6위에 올라 있다.
2.2.1. 아르헨티나 U-23 대표팀
1996년 하계 올림픽에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여 6경기 1골을 기록하면서 1928년 대회 이후 무려 68년만에 아르헨티나의 올림픽 은메달 획득에 공헌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2.2.2. 아르헨티나 A대표팀
1988년 7월 14일 호주와의 호주 200주년 골드컵 3차전에서 아르헨티나 A대표팀 소속으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이틀 후에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3위 결정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2번의 코파 아메리카(1991, 1993)에서 3골을 터뜨리며 2연속 코파 아메리카 제패를 이끌었고 개최국이자 홈팀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992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의 컨페드컵 초대 챔피언 등극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후 3번의 FIFA 월드컵 본선(1994, 1998, 2002)에 참가했지만 1994년 대회에서는 16강, 그 다음 대회인 1998년 대회에서는 8강, 2002년 대회에서는 1962년 이후 40년만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쓴 맛을 보았다.
그래도 2001년 3월 28일 베네수엘라와의 2002년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 11차전에서 A매치 통산 100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아르헨티나 선수로는 최초로 FIFA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는 영예를 안았고 이와 함께 대표팀 선배인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어 아르헨티나 대표팀 최다 출전 선수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밝혔으며 현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 부문 6위에 올라 있다.
잉글랜드와의 1998년 FIFA 월드컵 16강전 당시 데이비드 베컴 현 인터 마이애미 구단주 겸 솔퍼드 시티 공동 구단주가 시메오네 감독의 파울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걷어차는 행위를 범하며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시메오네 감독은 베컴 구단주를 퇴장시키기 위해 '베컴이 발로 걷어차서 부상당한 척 했다'고 인정했는데 이에 대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시메오네가 베컴에게 먼저 깊은 태클을 날렸고 이후 베컴이 보복하자 1톤의 벽돌이 쏟아지듯 무너졌다고 묘사하며 이 사건을 상세하게 비판했다.
뒤이어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아르튀르 뉘만의 태클에 큰 부상을 입으면서 팀의 8강 탈락을 씁쓸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킹 파흐드컵 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1994년 월드컵에서는 모든 4경기에 전 경기 출전했고, 조별 리그 첫 경기인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8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자메이카와의 경기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6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파울을 얻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또한, 시메오네를 걷어찬 데이비드 베컴이 보복 행위로 간주되어 퇴장당했다. 시메오네는 나중에 베컴을 퇴장시키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척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음 경기인 8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는 태클을 받아 실제로 부상을 입었다. 마지막 국제 대회였던 2002 월드컵에서는 2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조별 리그 최종전 스웨덴과의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탈락했다.
3. 지도자 경력
3.1. 라싱 클루브
시메오네는 선수 은퇴 직후 라싱 클루브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6년 2월 17일 라싱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같은 팀의 감독이 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클럽 회장이 교체됨에 따라 레이날도 메를로(Reinaldo Merlo)에게 감독직을 물려주었다.
3.2.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
디에고 시메오네는 2006년 5월 18일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보카 주니어스와의 2006 아페르투라 최종전에서 2-1로 승리하며 1983 나시오날 이후 23년 만에 팀의 통산 5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06 클라우수라에서도 팀을 3위로 이끌었으며, 10월에는 데일리 올레의 설문 조사에서 아르헨티나 리그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로베르토 페르푸모(Roberto Perfumo)는 그를 "타고난 감독"이라고 칭찬했다.
2007 아페르투라에서는 초반 부진을 겪었으나, 막판 9경기 무패 행진을 이끌며 6위로 시즌을 마감한 뒤 에스투디안테스를 떠났다.
3.3. CA 리버 플레이트
2007년 12월 15일, 시메오네는 다니엘 파사렐라의 후임으로 리버 플레이트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계약 기간은 1년으로, 2008년 1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산 로렌소에 2라운드에서 패배하며 조기 탈락했지만, 2008 클라우수라에서 올림포를 모뉴멘탈에서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2008년 코파 수다메리카나 8강에 진출했지만, 리가 MX의 CD 과달라하라에 패배했다. 또한, 리그에서 11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으로 2008년 11월 7일, 시메오네는 리버 플레이트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4. CA 산로렌소
2009년 4월 15일, 시메오네는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2009 Copa Libertadores) 1라운드 탈락 후 미겔 앙헬 루소(Miguel Ángel Russo)의 후임으로 산 로렌소 사령탑에 부임했다. 그러나 성적 부진으로 인한 비판이 커지면서 2010년 4월 3일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3.5. 칼초 카타니아
2011년 1월 19일 마르코 잠비올로 감독 후임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카타니아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강등 위기에 놓인 카타니아의 세리에 A 잔류를 이끌었다. 취임 5개월만인 같은 해 6월 1일 카타니아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3.6. 라싱 클루브
2011년 6월 1일, 시메오네는 카타니아가 강등을 면하는 데 기여한 후 사임했다. 카타니아 감독직에서 물러난지 20일 후인 6월 21일, 라싱 클루브의 감독직으로 복귀하여 6개월간 팀을 이끌었다. 이는 그가 두 번째로 라싱 클럽을 맡게 된 것이며, 일주일 전 사임한 미겔 안헬 루소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3.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디에고 시메오네는 라싱 클루브 감독직에서 물러난 직후 현역 시절 친정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2011-12년 UEFA 유로파리그 우승, 2012년 UEFA 슈퍼컵 우승, 코파 델 레이 2012-13 우승, 라리가 2013-14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13 준우승, 코파 델 레이 2013-14 4강, 2013-14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14 우승, 2015-16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코파 델 레이 2016-17 4강, 2016-17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라리가 2017-18과 라리가 2018-19 준우승, 2017-18년 UEFA 유로파리그 우승, 2018년 UEFA 슈퍼컵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19-20 준우승, 라리가 2020-21 우승 등 굵직한 성과들을 거두었다.
2011-12 시즌 중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의 후임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에 취임하여 1년 반 계약을 맺었다. 첫 시즌에 아틀레틱 빌바오를 3-0으로 꺾고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2-13 시즌에는 첼시를 4-1로 꺾고 UEFA 슈퍼컵을 차지했다. 2012-13 라리가에서는 바르셀로나에 이어 2위로 전반기를 마쳤고, 최종적으로 팀을 리그 3위에 올려놓으며 17년 만에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2-1로 꺾고 2012-13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3년 3월에는 계약을 2017년까지 연장했다.
2013-14 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13에서는 바르셀로나에 패했지만, 라리가에서 8연승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출발을 보였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1-0으로 꺾으며 1999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이후 처음으로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승리한 아틀레티코 감독이 되었다. 캄프 누에서 열린 시즌 최종전에서 디에고 고딘의 헤딩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 1996년 이후 18년 만에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시메오네는 엘레니오 에레라에 이어 아틀레티코에 리그 우승을 안겨준 두 번째 아르헨티나 감독이자, 루이스 아라고네스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두 번째 인물이 되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리그 1위, 16강에서 AC 밀란을 합계 5-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합계 2-1, 준결승에서 첼시를 합계 3-1로 꺾고 1974년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게 연장전 끝에 1-4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4-15 시즌, 스페인 슈퍼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합계 1-0으로 패배했다.
2015-16 시즌, 리그 38경기에서 18실점만을 기록하며 유럽 5대 리그 최고의 수비 기록을 세웠다. 리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서 PSV 아인트호벤을 승부차기로 꺾고,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합계 3-2, 준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원정 다득점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레알 마드리드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6-17 시즌, 리그 3위,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했다.
2017-18 시즌, 라리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17-18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여 2017-18 UEFA 유로파리그로 이동, 결승에서 마르세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9월 5일, 아틀레티코와 2020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18-19 시즌, 라리가 2위,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에 패배했다.
2019-20 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리버풀을 꺾었으나, 8강에서 라이프치히에 패배했다. 2020년 6월 27일,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를 2-1로 꺾고 라리가 195승을 기록, 루이스 아라고네스를 제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많은 리그 승리를 거둔 감독이 되었다.
2020-21 시즌, 2020-21 라리가에서 레알 바야돌리드를 꺾고 두 번째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7월 8일, 아틀레티코와 2024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21-22 시즌과 2022-23시즌에도 리그 3위를 기록했다.
2023-24 시즌 중인 2023년 11월, 아틀레티코와 2027년 6월까지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2024년 11월 23일, 알라베스와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모든 대회를 통틀어 클럽에서 700번째 경기를 치렀다.
4. 감독 스타일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 플라타 감독 시절 처음 사용한 이 포메이션은 두 명의 윙어가 안쪽으로 이동하여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고, 풀백에게 공간을 만들어 공격에 유동성을 부여한다. 공격 시에는 4-2-2-2 형태로 변형되며,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중원 싸움에서 수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시메오네 감독은 이 포메이션을 활용하여 2006 아페르투라에서 보카 주니어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도 이 포메이션을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리버 플레이트 감독 시절에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과 유사한 공격적인 3-3-1-3 포메이션을 사용하여 2008 클라우수라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선수들의 부상과 이적으로 인해 3-3-1-3 포메이션이 역효과를 냈고, 팀은 최하위를 기록하며 시메오네 감독은 경질되었다.
시메오네 감독의 팀은 수비의 압축성과 빠른 역습을 특징으로 한다.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깊게 수비하며, 상대 진영에서 압박을 통해 공을 탈취하고 유동적인 4-2-2-2 포메이션으로 빠르게 공격을 전개한다. 수비 시에는 상대를 측면으로 유도하고, 수적 우위를 통해 공을 빼앗거나 후방 패스를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러한 전술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2015-16 레스터 시티와 비교되기도 한다.
카타니아 감독 시절에는 4-2-3-1과 4-3-1-2 포메이션을 번갈아 사용하며 역습 전술을 활용했다. 플레이메이커 아드리안 리치우티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고, 윙어들은 수비 시 안쪽으로 들어와 수비에 가담하는 형태였다. 시메오네 감독은 "엄격한 전술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선수 구성에 따라 유연하게 전술을 변화시킨다.
시메오네 감독은 세트피스 상황을 중요하게 여기며, 세트피스를 통해 득점 기회를 창출하고 상대의 세트피스 공격을 막는 데 집중한다. 2014년 라리가 우승을 확정짓는 골도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다. 또한, 경기 상황에 따라 빠르게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16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 1-0으로 뒤지자, 4-4-2에서 4-1-4-1로 포메이션을 변경하여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결국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규율을 심어주는 능력 또한 시메오네 감독의 강점으로 꼽힌다. 2014년 라리가 최종전 캄프 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며 우승을 확정지을 때, 주전 선수들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결집시켜 결과를 만들어냈다. 2017-18 UEFA 유로파리그 준결승전 아스날과의 경기에서는 선수 퇴장과 감독 퇴장이라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무승부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디에고 고딘은 "선수들은 그를 위해 죽을 것이다"라며 시메오네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2020-21 시즌에는 COVID-19와 팀 공격수들의 부상 위기 속에서 5-3-2와 3-5-2와 같은 3백 포메이션을 실험하며, 더 많은 점유율 중심의 스타일로 적응했다.
그의 철학은 “초리즈모”(시메오네주의)라고 불리는 철저한 수비 중심의 강한 수비와 빠른 역습 스타일이 특징이다.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기본 포메이션이 5백이며, 카테나치오와 강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중시한다. 2022년 4월 6일 맨체스터 시티 FC전 등에서 5-5-0 포메이션의 파크 더 버스도 사용했다. 시메오네는 "진흙탕이 보이면 나는 곧바로 뛰어든다. 축구 세계에서 일어나는 도전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5. 경력 통계
| 구단 | 시즌 | 리그 | 컵 | 슈퍼컵 | 국제컵 | 총계 |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베레스 사르스필드 | 1987–88 | 프리메라 디비시온 | 28 | 4 | ||||||||
| 1988–89 | 16 | 2 | ||||||||||
| 1989–90 | 32 | 8 | ||||||||||
| 총계 | 76 | 14 | ||||||||||
| 피사 | 1990–91 | 세리에 A | 31 | 4 | 1 | 0 | — | — | 32 | 4 | ||
| 1991–92 | 세리에 B | 24 | 2 | 1 | 0 | — | — | 25 | 2 | |||
| 총계 | 55 | 6 | 2 | 0 | 0 | 0 | 0 | 0 | 57 | 6 | ||
| 세비야 | 1992–93 | 라리가 | 33 | 4 | 0 | 0 | — | — | 33 | 4 | ||
| 1993–94 | 31 | 8 | 0 | 0 | — | — | 31 | 8 | ||||
| 총계 | 64 | 12 | 0 | 0 | 64 | 12 |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994–95 | 라리가 | 29 | 6 | 8 | 2 | — | — | 37 | 8 | ||
| 1995–96 | 37 | 12 | 8 | 0 | — | — | 45 | 12 | ||||
| 1996–97 | 32 | 3 | 3 | 0 | 2 | 0 | 7 | 4 | 44 | 7 | ||
| 총계 | 98 | 21 | 19 | 2 | 2 | 0 | 7 | 4 | 126 | 27 | ||
| 인터 밀란 | 1997–98 | 세리에 A | 30 | 6 | 2 | 0 | — | 9 | 1 | 41 | 7 | |
| 1998–99 | 27 | 5 | 7 | 0 | — | 9 | 2 | 43 | 7 | |||
| 총계 | 57 | 11 | 9 | 0 | 0 | 0 | 18 | 3 | 84 | 14 | ||
| 라치오 | 1999–00 | 세리에 A | 28 | 5 | 7 | 2 | — | 12 | 0 | 47 | 7 | |
| 2000–01 | 30 | 2 | 2 | 0 | 1 | 0 | 8 | 1 | 41 | 3 | ||
| 2001–02 | 8 | 1 | 0 | 0 | — | 5 | 0 | 13 | 1 | |||
| 2002–03 | 24 | 7 | 3 | 0 | — | 7 | 0 | 34 | 7 | |||
| 총계 | 90 | 15 | 12 | 2 | 1 | 0 | 32 | 1 | 135 | 18 |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2003–04 | 라리가 | 28 | 2 | 4 | 0 | — | — | 32 | 2 | ||
| 2004–05 | 8 | 0 | 1 | 0 | — | 6 | 1 | 15 | 1 | |||
| 총계 | 36 | 2 | 5 | 0 | 0 | 0 | 6 | 1 | 47 | 3 | ||
| 라싱 | 2004–05 | 프리메라 디비시온 | 17 | 2 | ||||||||
| 2005–06 | 20 | 1 | ||||||||||
| 총계 | 37 | 3 | ||||||||||
| 통산 | 513 | 84 | ||||||||||
5.1. 클럽
디에고 시메오네는 선수 시절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1987-88 시즌부터 1989-90 시즌까지 활동했다. 이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C 피사로 이적하여 1990-91 시즌과 1991-92 시즌을 뛰었다.
1992-93 시즌부터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세비야 FC로 이적하여 두 시즌 동안 활약했다. 1994-95 시즌부터 1996-97 시즌까지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며 1995-96 시즌 팀의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했다.
1997-98 시즌 이탈리아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하여 두 시즌 동안 활약하며 1997-98 시즌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1999-00 시즌부터는 SS 라치오에서 네 시즌 동안 뛰면서 1999-2000 시즌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UEFA 슈퍼컵 우승을 달성했다.
2003-04 시즌 다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하여 두 시즌을 더 소화한 후, 2004-05 시즌 아르헨티나 라싱 클루브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5.2. 국가대표팀
디에고 시메오네는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총 106번의 A매치에 출전해 11골을 기록했다. 1988년 7월 16일, 오스트레일리아 200주년 골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2년 킹 파드컵 결승전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득점했다. 1993 코파 아메리카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 칠레를 상대로 득점했다. 1998년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는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를 상대로 득점했고,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 에콰도르를 상대로 득점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골 |
| 1988 | 2 | 1 |
| 1989 | 3 | 0 |
| 1990 | 1 | 0 |
| 1991 | 9 | 2 |
| 1992 | 3 | 1 |
| 1993 | 13 | 1 |
| 1994 | 10 | 0 |
| 1995 | 8 | 2 |
| 1996 | 6 | 2 |
| 1997 | 9 | 1 |
| 1998 | 12 | 0 |
| 1999 | 11 | 1 |
| 2000 | 11 | 0 |
| 2001 | 6 | 0 |
| 2002 | 2 | 0 |
| |106||11 |
5.3. 감독 경력 통계
2023년 5월 14일 기준 디에고 시메오네의 감독 경력 통계는 다음과 같다.
| 팀 | 국적 | 취임 | 해임 | 기록 | ||||
|---|---|---|---|---|---|---|---|---|
| 경기 | 승리 | 무승부 | 패배 | 승률(%) | ||||
| 라싱 클루브 | 2006년 2월 | 2006년 5월 | 14 | 5 | 3 | 6 | 35.71 | |
|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 | 2006년 5월 | 2007년 12월 | 60 | 34 | 15 | 11 | 56.67 | |
| 리버 플레이트 | 2007년 12월 | 2008년 11월 | 44 | 20 | 12 | 12 | 45.45 | |
| CA 산로렌소 | 2009년 4월 | 2010년 4월 | 48 | 21 | 9 | 18 | 43.75 | |
| 칼초 카타니아 | 2011년 1월 19일 | 2011년 6월 1일 | 18 | 7 | 3 | 8 | 38.89 | |
| 라싱 클루브 | 2011년 6월 21일 | 2011년 12월 | 20 | 8 | 10 | 2 | 40.00 |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2011년 12월 23일 | 현재 | 623 | 367 | 143 | 113 | 58.91 | |
| 합계 | 830 | 463 | 196 | 171 | 55.78 | |||
6. 수상 내역
6.1. 선수
디에고 시메오네는 선수 시절 다양한 팀에서 활동하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1995-96 시즌 라리가와 1995-96 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했다. 인터 밀란에서는 1997-98 시즌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라치오에서는 1999-2000 시즌 세리에 A, 1999-2000 시즌 코파 이탈리아, 2000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그리고 1999년 UEFA 슈퍼컵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1991와 1993에서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2년 킹 파흐드컵 우승, 1996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다.
6.2.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는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006 아페르투라 우승, 리버 플레이트에서 2008 클라우수라 우승을 이끌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서는 라리가 우승 (2013-14, 2020-21), 준우승 (2017-18, 2018-19), 3위 (2012-13, 2014-15, 2015-16, 2016-17, 2019-20, 2021-22, 2022-23)을 기록했다. 코파 델 레이 우승 (2012-13), 4강 (2013-14, 2016-17),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13-14, 2015-16), 4강 (2016-17), UEFA 유로파리그 우승 (2011-12, 2017-18), UEFA 슈퍼컵 우승 (2012, 2018),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2014), 준우승 (2019-20)을 달성했다.
개인 수상으로는 라리가 이달의 감독상 (2013년 10월, 2015년 11월, 2017년 3월, 2023년 10월), 트로페오 코무니다드 이베로아메리카나 (2014), 라리가 올해의 감독상 (2012-13, 2013-14, 2015-16, 2020-21), 미구엘 무뇨스 트로피 (2013-14, 2015-16, 2020-21), 페이스북/MARCA 풋볼 어워드 (최우수 감독) (2016), IFFHS 세계 최고 클럽 감독 (2016), 글로브 사커 마스터 코치 특별상 (2017), IFFHS 클럽 감독 10년상 (2011-2020), 코넥스 어워드 (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