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테도번
1. 개요
시모테도번은 1806년 미이케번의 번주였던 다치바나 다네요시가 무쓰국 시모테도로 좌천되면서 설치되었다. 2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하루는 막부의 요직을 역임했고, 1850년에는 영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 편에 섰으나,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센다이번과의 전투에서 진야가 소실되었고, 1868년 미이케번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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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시로국의 번 -
마쓰마에번
마쓰마에번은 홋카이도 남부를 지배하며 에조와의 교역으로 성장한 번으로, 가키자키 가문이 기반을 닦고 마쓰마에로 성씨를 바꾼 후 에조와의 무역 독점권을 인정받아 경제를 유지했으나, 러시아의 남하와 정세 변화 속에서 변동을 겪다가 폐지되었다. -
이와시로국의 번 -
고오리번
고오리번은 마쓰다이라 다다나오가 시라카와 신덴 번에서 옮겨와 1700년에 개창되었으며 오쿠다이라 씨 계통의 마쓰다이라 씨가 3대 동안 다스리다가 1747년에 시노즈카번으로 이봉되며 폐번된 후 막부 직할령이 되었다. -
다테시 (후쿠시마현)의 역사 -
다테씨
다테 씨는 무쓰국 다테군에서 유래하여 겐페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센고쿠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지를 받았으나, 메이지 시대에 화족으로 서임된 일본의 씨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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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라정
호바라정은 후쿠시마현 다테군에 위치했던 지역으로, 고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다테 가문의 세력 기반, 에도 시대에는 요네자와 번의 영지였으나, 1955년 5개의 정·촌이 합병하여 신설되었지만 2006년에 다테시로 통합되면서 폐지되었고, 니트 제조업과 전자기기 관련 공장이 주요 산업이며, 복숭아를 비롯한 다양한 과일 재배가 활발하고, 쓰츠코비키 축제와 다카코 20경 등의 문화 유적과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다치바나씨 (무가) -
야나가와시
야나가와시는 후쿠오카현 남부 지쿠고 평야에 위치하며 운하 관광으로 유명하고, 농업, 수산업, 제조업, 관광업이 발달한 도시로, 1952년 시로 승격되었으며 2005년 주변 지역과 합병했다. -
다치바나씨 (무가) -
다치바나 긴치요
다치바나 긴치요는 전국 시대 규슈의 다치바나 씨족 당주로서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으로 가문을 이끌었으며, 시마즈 씨족과의 전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후에도 활약한 여성 영주이다.
2. 번의 역사
미이케번의 6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치카가 1805년 막부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로 파면되고 강제 은거된 후, 그 뒤를 이은 7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요시도 이듬해인 1806년 무쓰국 시모테도로 좌천되면서 시모테도 번이 설치되었다.
이후 2대 번주인 다치바나 다네하루는 막부의 가이케이부교(会計奉行일본어)가 되었고, 이어서 로주격으로 승진하였다. 1850년에는 시모테도 영지의 절반을 이전 미이케 번의 땅과 교환하였다. 1868년 보신 전쟁 때 신정부 측에 서서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센다이번과 싸웠는데, 이때 진야가 소실되었다. 같은 해 음력 9월에 다시 미이케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시모테도 번은 폐지되었다. 현재 옛 시모테도 땅에 구 번사들에 의해 세워진 '회고의 비'가 있다.
2.1. 설립 배경
미이케번의 6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치카가 1805년 음력 11월, 막부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로 파면되고 강제 은거된 후, 그 뒤를 이은 7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요시도 이듬해인 1806년 무쓰국 시모테도로 좌천되었다. 이로써 시모테도번이 설치되었다.
2.2. 막부 요직 진출과 영지 교환
미이케번의 6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치카(立花種周)가 1805년 음력 11월, 막부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로 파면되고 강제 은거된 후, 그 뒤를 이은 7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요시도 이듬해인 1806년에 무쓰국 시모테도로 좌천되면서 시모테도번이 설치되었다.
이후 2대 번주인 다치바나 다네하루는 막부의 가이케이부교(会計奉行일본어)가 되었고, 이어서 로주격으로 승진하였다. 1850년에는 시모테도 영지의 절반을 이전 미이케 번의 땅과 교환하였다. 1868년 보신 전쟁 때 신정부 측에 서서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센다이번과 싸웠는데, 이때 진야가 소실되었다. 같은 해 음력 9월에 다시 미이케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시모테도 번은 폐지되었다. 현재 옛 시모테도 땅에 구 번사들에 의해 세워진 '회고의 비'가 있다.
2.3. 보신 전쟁과 번의 폐지
1805년 미이케번의 6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치카(立花種周)가 막부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로 파면되고 강제 은거된 후, 그 뒤를 이은 7대 번주 다치바나 다네요시도 이듬해인 1806년 무쓰국 시모테도로 좌천되면서 시모테도번이 설치되었다.
이후 2대 번주인 다치바나 다네하루는 막부의 회계봉행(会計奉行일본어)을 거쳐 로주격으로 승진하였다. 1868년 보신 전쟁 때 시모테도번은 신정부 측에 서서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센다이번과 싸웠으나, 이 과정에서 진야가 소실되었다. 같은 해 음력 9월, 시모테도번은 미이케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폐지되었다.
2.3.1. 보신 전쟁 당시 번 내부의 갈등
가에이 3년(1850년), 시모테도번은 약 절반의 지행지를 구령인 미이케군 내와 영지 교체했다.
게이오 4년(1868년), 제3대 번주 타네야스는 외국 봉행으로 추천받아 노중격의 회계 총재가 되었지만, 이미 보신 전쟁이 시작되었고,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패배한 직후였다. 같은 해 1월 24일, 타네야스는 그 직을 사임했다. 같은 해 3월 2일에는 미이케 진야의 번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관군 측에 서기로 결정하고, 3월 13일에 일단 시모테도 번으로 돌아간 뒤 에도를 거쳐 신정부로 향했다.
하지만, 국토에서는 가로 야야마 가이키가 시모테도 번을 대표하여 오우에쓰 열번 동맹에 조인하는 등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후에 관군 측에 선 것이 판명되어 오우에쓰 열번 동맹 맹주인 센다이 번으로부터 분노를 샀다. 같은 해 5월 15일, 신정부는 와카도시요리·노중격 재임 중의 책임을 문제 삼으면서도, 에도에서 사쿠보 파의 기하타를 설득하고 있던 점 등이 평가되어 유면되었다。
같은 해 8월 14일, 200명의 센다이 번 병사가 영내로 진입했다. 같은 해 8월 16일에는 진야가 불태워졌고, 영내는 센다이 병사와 시모테도 번 병사 및 지원 온 야나가와 번 병사와의 전쟁터가 되었다. 이상의 경위로 번청을 소실했기 때문에, 같은 해 9월에 미이케로 옮겨 시모테도 번은 폐번되었다. 한편으로는 시모테도의 구령은 분령지로서 미이케 번에 남겨졌다. 현재 시모테도 땅에는 구 번사들에 의해 세워진 '회고의 비'가 세워져 있다.
2.4. 폐번 이후
1868년 보신 전쟁 당시 시모테도번은 신정부 측에 서서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센다이번과 싸웠으나, 이 과정에서 진야가 소실되었다. 같은 해 음력 9월, 미이케번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시모테도번은 폐지되었다. 현재 옛 시모테도 땅에는 구 번사들이 세운 '회고의 비'가 있다.
3. 역대 번주
| 대 | 씨명 | 관위 | 재직 기간 | 향년 | 비고 |
|---|---|---|---|---|---|
| 1 | 다치바나 다네요시 {{lang|ja|다치바나 다네요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