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 요시타케
1. 개요
시바 요시타케는 1436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2세의 나이에 가문을 계승한 인물이다. 숙부 시바 모치요시와 시바 모치타네, 가이 조지의 후견을 받았으며, 이마가와 노리타다와 영지 문제로 다투고, 가신들의 암살 미수 사건과 쇼군의 중재를 겪었다. 1451년에는 복직을 시도한 오다 고히로를 거부하고, 종사위하 지부다이부에 서임되었다. 1452년 아시카가 요시마사로부터 이름자 한 글자를 받아 '요시타케'로 개명하고, 시바 요시토시를 양자로 삼았으나, 18세에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시바 씨의 적류는 단절되었다. 그의 사후, 시바 가문에서는 후계자 쟁탈전인 무에이 소동이 발발했다.
| 씨명 | 시바 씨 |
|---|---|
| 이름 | 시바 요시타케 |
| 시대 | 무로마치 시대 중기 |
| 출생 | 에이쿄 7년 (1435년) |
| 사망 | 교토쿠 원년 9월 1일 (1452년10월 13일) |
| 어릴 적 이름 | 지요토쿠마루(千代徳丸) |
| 다른 이름 | 간데노코지 도노(勘解由小路殿) |
| 계명 | 동선원전도수영원(洞仙院殿道寿永源) |
| 관위 | 종사위하지부다이유 |
| 막부 | 무로마치 막부에치젠, 오와리, 도토미슈고 |
| 씨족 | 시바 씨 |
| 부모 | 아버지: 시바 요시사토 |
| 배우자 | 정실: 기라 요시히사의 딸 |
| 자녀 | 양자: 요시토시 |
| 아버지 | 시바 요시사토 |
|---|---|
| 정실 | 기라 모치히로의 딸 |
| 자녀 | 아들: 시바 요시카도 딸: 죠쿄인(盛経院) (호소카와 모토치카(細川元有)의 계실) 딸: 시미즈씨(清水氏)에게 시집감 |
| 전임자 | 시바 요시사토 |
|---|---|
| 후임자 | 시바 요시토시 |
| 임기 | 1436년 - 1452년 |
| 대수 | 9 |
-
시바씨 -
기요스성
기요스성은 시바 요시시게가 축성한 성으로 오다 가문의 거성이 되었으며, 오다 노부나가의 주요 활동 무대이자 기요스 회의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지만, 기요스 고에시로 인해 폐성된 후 일부 유적과 복원된 천수각을 통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시바씨 -
이치노다니 아사쿠라씨 유적
이치노다니 아사쿠라씨 유적은 후쿠이현 후쿠이시에 위치하며 1471년부터 1573년까지 아사쿠라 씨의 거성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유적으로, 요새화된 지형과 교토 문화를 수용한 성하 마을, 그리고 아사쿠라관 터, 정원, 무사 저택, 상인 마을, 사찰 등으로 구성되어 일본의 국가지정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1452년 사망 -
황희
황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재상으로, 세종 시대에 영의정을 지내며 태평성대를 이끌었으나, 친인척 비리 옹호 논란도 있는 인물이다. -
1452년 사망 -
게미스토스 플레톤
게미스토스 플레톤은 동로마 제국의 철학자, 학자, 정치 사상가로서 플라톤 철학 부흥을 주도하며 르네상스 시대 서유럽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피렌체 공의회에서 플라톤 철학을 서구에 재소개했으며, 미스트라스에서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비잔티움 제국 개혁 사상을 제시했다. -
슈고 다이묘 -
호소카와 요리유키
호소카와 요리유키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무장이자 정치가로, 아시카가 요시미츠 쇼군 시대에 관령으로서 막부를 통치하며 시코쿠 평정에 공헌하고 행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가네요키의 정변으로 실각 후 복귀했으나 메이토쿠의 난 이후 병사했다. -
슈고 다이묘 -
호소카와 마사모토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무로마치 막부 말기의 세키가와 가문 당주이자 관령으로, 명응의 정변을 통해 쇼군을 옹립하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기행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호소카와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후계자 문제로 인한 암살 사건으로 요절하여 가문이 쇠락하게 되었다.
2. 생애
永享일본어 8년(1436년) 아버지가 낙마하여 사망하자 2세에 가독을 계승하였다. 처음에는 숙부인 시바 모치요시(斯波持種일본어)와 분가의 시바 모치타네(斯波持種일본어), 집사인 가이 조지(甲斐常治일본어)의 후견을 받았다.
嘉吉일본어 원년(1441년) 윤9월, 스루가 슈고 이마가와 노리타다와 도토미의 영지를 두고 다투었다. 文安일본어 4년(1447년), 시바 모치타네와 가이 조지의 대립으로 시바 모치타네를 따르는 가신들에 의한 가이 조지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고, 8대 정이대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중재에 나섰다. 같은 해 기라 요시나오의 딸과 결혼하였다. 宝徳일본어 3년(1451년), 전 오와리 슈고다이 오다 고히로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유모 이마산쿄쿠를 통해 복직을 요청했으나 거부하였다. (후에 오다 고히로는 자살하였다.) 같은 해 11월 원복하여 종사위하 지부다이부에 임명되었다.
享徳일본어 원년(1452년) 4월 21일, 아시카가 요시마사에게서 이름자 한 자(偏諱)를 받았다. 6월 22일 시바 모치타네의 아들 시바 요시토시를 양자로 삼았으나, 9월 1일 후계자 없이 18세로 사망하여, 시바 요시마사 이래 시바 씨의 적류는 단절되었다.
요시타케 사후, 무에이가는 시부카와 씨 출신의 시바 요시카도와 시바 요시토시 간의 후계자 쟁탈(무에이 소동)이 벌어졌다.
2.1. 가독 상속과 후견
永享일본어 8년(1436년) 아버지가 낙마하여 사망하였으므로, 2세에 가독을 계승하였다. 처음에는 숙부인 시바 모치요시({{lang)، 다음에는 분가의 시바 모치타네({{lang)와 집사인 가이 조지({{lang)의 후견을 받았다.
2.2. 정쟁과 갈등
1441년 윤9월, 스루가 슈고 이마가와 노리타다와 도토미의 영지를 두고 다투었다. 1447년, 시바 모치타네와 집사인 가이 조지의 대립이 발생하여, 시바 모치타네에게 동정하는 가신들에 의해 가이 조지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중재에 나섰고, 같은 해 기라 요시나오의 딸과 결혼하였다. 1451년, 전 오와리 슈고다이 오다 고히로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유모 이마산쿄쿠를 통해 복직을 요청했으나 거부하였다. (후에 오다 고히로는 자살하였다.) 같은 해 11월, 원복하여 종사위하 지부다이부에 임명되었다.
2.3. 쇼군과의 관계 및 사망
교토쿠 원년(1452년) 4월 21일,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로부터 이름자 한 자(偏諱)를 받았다. 6월 22일에는 시바 모치타네의 아들인 시바 요시토시를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9월 1일에 후계자가 없이 18세로 사망하였으므로, 시바 요시마사 이래의 시바 씨의 적류는 단절되었다.
요시타케의 사후, 무에이가는 시부카와 씨 출신의 시바 요시카도와 시바 요시토시에 의한 후계자 쟁탈(무에이 소동)이 발발하게 된다.
4. 이름자를 받은 인물
* 다이호지 겐지(데와의 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