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 (신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심지는 신라 시대의 승려로, 진표의 불골간자를 둘러싼 기적적인 일화와 동화사 창건과 관련된 설화의 주인공이다. 속리산에서 열린 법회에 늦게 도착하여 참가하지 못했지만, 눈이 내리지 않는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법당 출입을 허락받았다. 이후 불골간자가 심지의 옷에 계속 붙어 다니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결국 간자를 받게 되었다. 심지는 이후 중악에서 산신과의 만남을 통해 간자를 봉안할 장소를 정하고, 그 자리에 동화사를 창건했다. 동화사 창건 당시 오동나무가 겨울에 꽃을 피운 일화로 인해 절 이름을 유가사에서 동화사로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심지 (신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법명 | 심지(心地) |
출생일 | 삼국시대(자세한 연도는 미상) |
출생지 | 신라(자세한 지역은 미상) |
입적일 | ?년(??세) |
기타 정보 | |
간자 | 진표가 받은 간자는 미륵보살의 손가락 뼈라고 함 |
2. 불골간자 수수
진표가 속리산에서 불골간자(佛骨簡子)를 নিয়ে 과증법회(果證法會)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심지가 찾아갔지만, 늦게 도착하여 법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심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고 참회하였는데, 7일 후 심지가 있던 자리 주변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신성하게 여겼으나, 심지는 병을 핑계로 법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법회가 끝난 후 심지는 옷에 간자 두 개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심은 간자를 상자에 보관했으나, 간자는 다시 심지의 옷에 붙었다. 결국 영심은 "부처의 뜻은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이 그것을 받들라"며 심지에게 간자를 주었다.[2]
2. 1. 속리산 법회
속리산에서 영심(永深)이 진표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받들어 과증법회(果證法會)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하지만, 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승려로서 법회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예배하고 참회하였다.그런데 7일이 지나 큰 눈이 내렸는데, 심지가 서 있는 자리 사방으로 열 자 거리에는 눈이 떨어지지도 쌓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신이하게 여겨 마침내 그가 법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심지는 병을 핑계로 법당에는 들어가지 않은 채 물러나 다른 방에서 법당을 향해 절을 올렸다.
법회가 끝나고 돌아오던 심지는 간자 두 개가 옷섶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가서 영심에게 알렸는데, 영심은 자신이 간자를 넣어둔 상자를 살폈다. 분명히 간자를 함 속에 깊이 넣어놨는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심은 상자가 봉해져 있는 것은 예전과 같았지만 간자만이 없어져 있는 것에 놀라 다시 심지로부터 간자를 전해받아 보관했지만, 마찬가지로 상자에 넣어둔 간자가 다시 심지의 옷에 붙어있는 일이 생기자, 영심은 "부처의 뜻은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이 그것을 받들라"며 간자를 심지에게 전해주었다.[2]
2. 2. 간자의 기적
속리산에서 영심(永深)이 진표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받들어 과증법회(果證法會)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늦게 도착하여 승려로서 법회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예배하고 참회하였다.7일 후 큰 눈이 내렸는데, 심지가 서 있는 자리 사방으로 열 자 거리에는 눈이 내리지도 쌓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신이하게 여겨 그가 법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심지는 병을 핑계로 법당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방에서 법당을 향해 절을 올렸다.
법회가 끝나고 돌아오던 심지는 옷섶에 간자 두 개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영심에게 알렸다. 영심은 간자를 함 속에 깊이 넣어두었기에 그럴 리 없다며 상자를 살폈다.
상자는 봉해져 있었지만 간자만 없어진 것에 놀란 영심은 심지로부터 간자를 돌려받아 보관했다. 그러나 간자가 다시 심지의 옷에 붙어있는 일이 발생하자, 영심은 "부처의 뜻은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이 그것을 받들라"며 간자를 심지에게 전해주었다.[2]
3. 동화사 창건
심지는 불골간자를 봉안할 장소를 찾기 위해 중악 산신들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 간자를 던졌다. 간자는 바람에 날려 중악 깊은 곳 숲의 샘물 속에 떨어졌고, 심지는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간자를 모셨다. 이 절이 바로 동화사이다.[3][4]
절을 중창할 때 겨울임에도 오동나무 꽃이 활짝 피어, 심지는 절 이름을 유가사에서 동화사로 바꾸었다. 현재 동화사 경내 조사전 앞에는 '심지조사나무'라 불리는 오동나무가 있다.
3. 1. 산신과의 만남
심지가 그 간자를 정수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오자, 산신이 두 선자(仙子)를 데리고 심지를 맞이하여 산꼭대기에 그를 데려다 바위 위에 앉히고는 엎드려 불문에 귀의하기를 청했다.심지는 "지금 땅을 가려서 성간(聖簡)을 봉안해야 하는데,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니 함께 높이 올라가 간자를 던져 점을 쳐보자"고 하고는 중악 산신들과 산꼭대기에 올라 서쪽을 향해 던졌다.
간자는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가 중악 깊은 곳의 숲의 샘물 속에 떨어졌고, 심지는 간자가 떨어진 샘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지어 간자를 모시게 되었다. 바로 지금의 동화사였다.[3][4]
3. 2. 동화사 창건과 오동나무 설화
심지가 그 간자를 정수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오자, 산신이 두 선녀를 데리고 심지를 맞이하여 산꼭대기에 그를 데려다 바위 위에 앉히고는 엎드려 불문에 귀의하기를 청했다.심지는 "지금 땅을 가려서 성스러운 간자를 봉안해야 하는데,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니 함께 높이 올라가 간자를 던져 점을 쳐보자"고 하고는 중악 산신들과 산꼭대기에 올라 서쪽을 향해 던졌다.
간자는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가 중악 깊은 곳의 숲의 샘물 속에 떨어졌고, 심지는 간자가 떨어진 샘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지어 간자를 모시게 되었다. 바로 지금의 동화사였다.[3][4]
절을 다시 지을 당시 계절이 겨울이었는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고, 심지는 이에 감탄하여 절의 이름을 유가사에서 동화사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동화사 경내의 조사전 앞에는 '심지조사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오동나무가 서있다.
참조
[1]
웹인용
간자 (簡子)
https://encykorea.ak[...]
한국중앙학연구원
2023-05-26
[2]
웹인용
심지 (心地)
https://encykorea.ak[...]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02-18
[3]
웹인용
심지 (心地)
https://encykorea.ak[...]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02-18
[4]
서적
삼국유사
13세기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