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존슨
1. 개요
아서 존슨은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선수 시절 그는 1902년 레알 마드리드의 첫 공식 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고, 1902년 코파 데 라 그란 페냐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1905년부터 1908년까지 4년 연속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1910년부터 192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초대 감독을 맡아 4번의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우승과 1917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으며, 레알 마드리드가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제안했다. 존슨은 1929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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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거주한 아일랜드인 -
맷 도허티
맷 도허티는 아일랜드 국적의 축구 선수로, 현재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뛰고 있으며,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 중이다. -
스페인에 거주한 아일랜드인 -
제1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
1769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아서 웰즐리 웰링턴 공작은 군인과 정치가로서, 마이소르 전쟁과 마라타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나폴레옹 전쟁과 워털루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영국 총리까지 역임했다. -
아일랜드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조 키니어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조 키니어는 토트넘 홋스퍼에서 선수로, 윔블던 FC 등 여러 클럽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며 FA컵, UEFA컵 우승 및 프리미어 리그 6위 등의 업적을 남겼고 아일랜드 공화국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했으며 2024년 77세로 사망 후 그의 뇌는 치매 연구에 기증되었다. -
아일랜드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데이비드 오리어리
데이비드 오리어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아스널 FC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여러 우승에 기여했고, 리즈 유나이티드를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는 등 감독으로서도 활동했다. -
아일랜드의 축구 감독 -
데이비드 오리어리
데이비드 오리어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아스널 FC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여러 우승에 기여했고, 리즈 유나이티드를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는 등 감독으로서도 활동했다. -
아일랜드의 축구 감독 -
로이 킨
로이 킨은 아일랜드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중앙 미드필더로 노팅엄 포레스트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서 수많은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감독과 코치직을 수행했다.
2. 선수 경력
존슨은 잉글랜드에서 가져온 축구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으며, 심지어 골키퍼 역할도 수행했다. 1903년 최초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골문을 지켰으나, 아틀레틱 클럽에게 3-2로 패했다. 이후, 1905년 코파 델 레이부터 1908년 코파 델 레이까지 4년 연속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마드리드 팀의 일원이었다.
2.1. 초기 생애 및 선수 활동
1879년 아일랜드가 여전히 영국의 일부였던 시절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존슨은 자신을 "아일랜드인"보다는 "영국 시민"을 나타내는 "잉글랜드인"으로 규정했다.
1902년 5월 13일, 레알 마드리드의 첫 공식 경기이자 최초의 엘 클라시코였던 1902년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에서 FC 바르셀로나에게 3-1로 패한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첫 번째 공식 골을 기록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가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컵인 코파 데 라 그란 페냐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잉글랜드에서 가져온 축구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으며, 심지어 골키퍼 역할도 수행했다. 1903년 최초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골문을 지켰으나, 아틀레틱 클럽에게 3-2로 패했다. 존슨은 1905년 코파 델 레이부터 1908년 코파 델 레이까지 4년 연속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 팀의 일원이었다.
2.2.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
1902년 5월 13일, 존슨은 FC 바르셀로나와의 사상 첫 고전 더비에 출전,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 경기에서 1-3으로 패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첫 공식 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코파 데 라 그란 페냐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구단 역사상 첫 우승컵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존슨은 잉글랜드에서 가져온 축구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고, 심지어 골키퍼 역할도 수행했다. 그는 1903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골문을 지켰으나, 아틀레틱 클럽에게 3-2로 패했다. 이후, 존슨은 1905년 코파 델 레이부터 1908년 코파 델 레이까지 4년 연속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마드리드 팀의 일원이었다.
3. 감독 경력
아서 존슨은 선수 시절 팀에 전술적 지식을 전달하고 지시를 내려 선수들이 이를 첫 전술 규칙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1910년 레알 마드리드의 초대 감독이 되었으며, 10시즌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미겔 무뇨스만이 그보다 더 많은 경기에서 감독을 맡았다.
3.1. 레알 마드리드 감독 부임
존슨은 1910년 레알 마드리드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1920년까지 10년 동안 이 직위를 맡았다. 이는 미겔 무뇨스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간이다. 그는 코린시안 FC의 유니폼을 본떠 레알 마드리드가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영향을 주었다.
선수 시절 존슨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4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감독으로서는 4차례의 지역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17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17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는 아레나스 클럽 데 게초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3.2. 감독으로서의 업적
아서 존슨은 1910년 레알 마드리드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1920년까지 10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이는 미겔 무뇨스에 이어 클럽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감독 재임 기간이다.
존슨은 코린시안 FC의 유니폼을 본떠 레알 마드리드가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영향을 주었다.
감독으로서 존슨은 4번의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우승과 1917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1917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그의 팀은 아레나스 클럽을 2-1로 이겼다.
3.3. 전술 및 팀 문화에 끼친 영향
선수 시절 존슨은 팀에게 지시하고 지식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첫 번째 전술 규칙으로 채택하게 했다. 1910년,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초대 감독이 되었으며, 10시즌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미겔 무뇨스만이 그보다 더 많은 경기에서 감독을 맡았다. 존슨은 코린시안 FC가 입었던 유니폼을 본떠 레알 마드리드가 클래식한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영향을 주었다. 감독으로서 그는 4번의 지역 선수권 대회와 1917년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 대회에서 그의 팀은 아레나스 클럽 데 게초를 2-1로 이겼다.
4. 사망
존슨은 1929년 5월 23일, 50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는 1961년 캐나다에서 사망한 아내 아다와 함께 월라시의 레이크 레인 묘지에 묻혔다.
5. 수상 내역
5.1. 선수
1902년 5월 13일,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사상 첫 고전 더비에 출전했는데, 1-3으로 패한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의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첫 공식 경기 첫 공식 득점을 올렸다. 선수 시절, 존슨은 코파 델 레이에서 4차례 우승을 거두었다.
| 대회 | 우승 | 준우승 |
|---|---|---|
|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 1904–05, 1905–06, 1906–07, 1907–08 | |
| 코파 델 레이 | 1905, 1906, 1907, 1908 | 1903 |
| 코파 데 라 그란 페냐 | 1902 |
5.2. 감독
존슨은 1910년부터 192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클럽 최초의 감독이며, 미겔 무뇨스에 이어 클럽 역사상 두 번째로 긴 10년간 클럽을 이끌었다. 그는 코린시언 캐주얼스처럼 흰 유니폼을 입자고 건의하여, 마드리드가 전부 흰색으로 된 유니폼을 입도록 제안했다. 감독으로서 4번의 지역 선수권 우승과 1917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 마드리드 FC 감독 시절 기록 | |
|---|---|
| 대회 | 우승 |
|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 1912–13, 1915–16, 1916–17, 1917–18 |
| 코파 델 레이 | 1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