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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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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이 킨은 아일랜드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코브 램블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노팅엄 포레스트를 거쳐 199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 2005년까지 팀의 주장을 맡아 프리미어 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우승했다. 2006년 셀틱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킨은 강력한 태클과 리더십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알프잉에 홀란드에게 보복성 태클을 가한 사건과 사이판 훈련에서의 불화 등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선덜랜드와 입스위치 타운의 감독,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코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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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4년의 로이 킨
2014년의 킨
본명로이 모리스 킨
출생일1971년 8월 10일
출생지코크, 아일랜드
180cm
포지션미드필더/수비수
은퇴 여부은퇴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록마운트
클럽코브 램블러스 (1989-1990): 23경기 (1골)
노팅엄 포리스트 (1990-1993): 114경기 (22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3-2005): 326경기 (33골)
셀틱 (2005-2006): 10경기 (1골)
총 클럽 출장 및 득점473경기 (57골)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국가대표아일랜드 U-21 (1991): 4경기 (0골)
국가대표아일랜드 (1991-2005): 67경기 (9골)
감독 경력
감독선덜랜드 (2006-2008)
입스위치 타운 (2009-2011)
코치아일랜드 (2013-2018, 수석 코치)
애스턴 빌라 (2014, 수석 코치)
노팅엄 포리스트 (2019, 수석 코치)

2. 선수 경력

아일랜드 코크 출신의 중앙 미드필더인 로이 킨은 잉글랜드 축구에서 견습 선수 자격을 얻지 못하자 코브 램블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14] 1990년 노팅엄 포리스트로 이적을 했고,[14] 1993년 여름 375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합류하였다.

그는 3-0으로 승리한 셰필드 유나이티드 상대의 홈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였고,[20] 그 시즌에 프리미어십 메달 일곱 개 중 첫 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그 밖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한 번, 인터콘티넨털컵 한 번 및 FA컵 네 번의 우승을 기록하였다.[20]

그는 1997-98 시즌부터 에리크 캉토나에 이어 팀의 주장을 맡았다. 그러나 1997년 9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알프잉에 홀란에게 한 무리한 태클로 인해 십자 인대가 손상되어 시즌을 마감했으나, 이후 2001년 당시 맨체스터 시티로 팀을 옮긴 홀란에게 다시 태클을 하여 그에게 부상을 입혔다.

1998-99 시즌 역사적인 트레블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아스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FA컵 준결승에서 퇴장을 당했고, 이어 유벤투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헤딩골을 포함 영웅적인 활약으로 3대2 역전극을 이끌었으나 옐로카드를 받았기 때문에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서의 영광을 맛보지 못한다.

그는 2002년 FIFA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있던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사이판섬 전지훈련 도중에 당시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믹 매카시와의 불화를 이유로 팀을 떠나 홀로 귀국하기도 했다. 2004년 5월 브라이언 커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다시 복귀하였다. 그러나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이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자, 킨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2005년 9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은 후, 그는 유명했던 '키노게이트' 사건으로 상호간에 계약 해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셀틱에 합류해 시즌이 끝나고 2006년 5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은퇴 경기에서 올드 트래퍼드 관중의 기립 박수 속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 1. 초기 경력

아일랜드 코크 출신의 중앙 미드필더인 로이 킨은 잉글랜드 축구에서 견습 선수 자격을 얻지 못하자 코브 램블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14] 1990년 노팅엄 포리스트로 이적했다.[14]

로이 모리스 킨[9]은 1971년 8월 10일 코크 시의 메이필드 교외에 있는 볼린더리 파크 지역의 노동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9] 그의 가족은 특히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에 열정적이었으며, 그의 친척들 중 다수는 록몬트와 같은 코크의 주니어 클럽에서 뛰었다. 킨은 9세에 복싱을 시작하여 몇 년 동안 훈련했으며, 신인 리그에서 4번의 시합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록몬트에서 훨씬 유망한 축구 선수로 성장했고, 첫 시즌에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면서 그의 잠재력이 부각되었다. 그의 많은 팀 동료들이 해외 잉글랜드 축구팀에서 트라이얼 제안을 받았지만, 킨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 셀틱토트넘 홋스퍼를 응원했으며, 리암 브래디와 글렌 호들을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꼽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인 브라이언 롭슨이 나중에 그가 가장 존경하는 축구 선수가 되었다.[10]

로이 킨은 더블린에서 열린 테스트를 거친 후 아일랜드 학교 대표팀에 처음에는 합류하지 못했다. 전 아일랜드 코치이자 스카우트인 로난 스칼리는 당시 14세였던 킨이 "너무 작아서" 요구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10]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잉글랜드 클럽 입단을 위한 테스트를 지원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서 그는 축구 선수로서의 돌파구를 기다리며 육체노동과 관련된 임시직을 가졌다. 1989년, 그는 램블러스의 유소년팀 감독 에디 오루크의 설득으로 결국 세미 프로 아일랜드 클럽인 코브 램블러스와 계약했다. 킨은 더블린 교외 팔머스타운에서 열린 최초의 FAI/FAS 계획에 램블러스 대표 2명 중 한 명이었으며, 이 계획을 통해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인근 레이슬립, 카운티 킬데어에 거주하며 풀타임 훈련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11][12][13] 촉망받는 축구 선수로의 그의 빠른 성장은 그가 램블러스의 유소년팀과 1군팀에서 모두 정기적으로 출전하며, 종종 같은 주말에 두 번이나 경기를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킨의 코브 시니어 데뷔는 1989년 8월 13일 벅클리 파크에서 열린 오펠 리그 컵 경기에서 램스가 킬케니 시티에 2-0으로 패했을 때 이루어졌다. 1군 감독 리암 맥마흔은 그해 11월 5일 브레이 원더러스와의 2-1 패배에서 로이에게 아일랜드 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했다. 그 시즌에 그는 29번의 시니어 경기에 출전했고 코브는 7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의 두 골은 세인트 프란시스와 핀 하프스를 상대로 기록되었다.

1990년 2월 FAI 유스컵 경기에서 벨베데레를 상대로 한 킨의 활약은 경기를 지켜보던 노팅엄 포레스트 스카우트 노엘 맥케이브의 눈길을 끌었고, 그는 킨에게 잉글랜드로 건너가 테스트를 받을 것을 요청했다. 킨은 포레스트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결국 1990년 여름 코브 램블러스와 킨에 대한 47,000파운드의 계약이 체결되었다.[14]

소년 시절에는 수년간 복서 훈련을 받았지만, 이내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이 만개하여 주목을 받게 된다. 10대 시절에는 체격 조건이 좋지 않아, 여러 클럽의 선발 테스트를 받았지만 계속 불합격했다. 결국 1989년에 아일랜드 리그에 소속된 지역 클럽인 코브 램블러스 FC와 계약했다. 세미 프로 축구 선수가 되자마자 그 실력을 발휘하여, 퍼스트 팀의 레귤러 자리를 얻었다.

2. 2. 노팅엄 포리스트

아일랜드 코크 출신의 중앙 미드필더인 로이 킨은 잉글랜드 축구에서 견습 선수 자격을 얻지 못하자 코브 램블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여름,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Football League First Division영어(당시 1부)의 노팅엄 포리스트 FC로 이적료 4만 7천 파운드에 이적했다.[19] 킨은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것이 힘들어 종종 클럽에 며칠 간의 휴가를 요청하여 코르크로 돌아가곤 했다. 킨은 이러한 요청을 고려해 준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의 너그러움에 감사를 표했으며, 이는 클럽에서의 초기 시절을 잘 헤쳐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10]

킨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프리 시즌 토너먼트에서 21세 이하 팀으로 포레스트에서 처음 경기를 뛰었다. 하를렘과의 결승전에서 그는 승부차기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곧바로 리저브 팀에서 정기적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1990-91 시즌 초반 리버풀과의 원정 경기에서 1군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시즌 중반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19]

킨은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고, 1991년에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스티브 호지를 대신하여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킨은 1991 FA컵 결승전까지의 여정에서 3골을 넣었지만, 포레스트는 결국 토트넘 홋스퍼에게 패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그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상대에게 골을 헌납하며 동점을 허용했다.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으로 돌아온 클러프는 화가 나서 킨의 가슴을 주먹으로 쳐 바닥에 쓰러뜨렸다.[16]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킨은 감독에게 앙심을 품지 않았으며, 이후 클러프가 감독으로서 겪는 압박감에 공감한다고 밝혔고[17], 잉글랜드 축구에서 기회를 준 그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1년 후, 킨은 풋볼 리그 컵 결승전을 위해 포레스트와 함께 웸블리에 돌아갔지만, 다시 한 번 1-0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했다.

킨은 프리미어 리그의 최고 클럽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92년에는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 케니 달글리시가 킨에게 시즌 말에 랭커셔 클럽으로 이적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포레스트가 리그에서 고전하며 강등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킨은 강등 탈출 조항이 포함된 새로운 계약을 협상했다. 이러한 장기간의 협상은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고, 특히 브라이언 클러프는 아일랜드 출신인 킨이 요구하는 높은 임금 때문에 그를 "탐욕스러운 아이"[10]라고 묘사했다. 클러프는 "킨은 지금 축구계에서 가장 핫한 선수이지만, 그는 이 클럽을 파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기간의 계약 협상에도 불구하고, 포레스트 팬들은 그를 시즌의 선수로 선정했다.[18] 킨은 최선을 다했지만, 포레스트의 강등을 막을 수 없었고, 그의 계약 조항이 발동되었다.

1992-93 시즌에는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챔피언십으로의 강등이 결정되었다.[19] 블랙번은 킨에 대한 4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합의했고, 킨은 곧 클럽과 계약에 합의했다. 그러나 계약 직전에 알렉스 퍼거슨이 전화를 걸어 설득했고, 당시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액인 이적료 375만 파운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의 이적을 선택했다.[19]

{{인용 상자

| quote =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은 경기 전에 내게 이렇게 조언하곤 했어요. '공을 잡으면,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다른 선수에게 패스해.' 그게 제가 포레스트와 유나이티드에서 하려고 했던 전부였어요. 패스하고 움직이는 것 말이에요. 그걸로 제 경력을 만들었죠.

| source = 로이 킨[15]

| align = right

| width = 25%

}}

2.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3년 여름 375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하였다. 그는 3-0으로 승리한 셰필드 유나이티드 상대의 홈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였고, 그 시즌에 프리미어십 메달 일곱 개 중 첫 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그 밖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한 번, 인터콘티넨털컵 한 번 및 FA컵 네 번의 우승을 기록하였다.[20]

==== 초기 (1993-1997) ====

1993-94 시즌 당시 최고 이적료에도 불구하고, 킨은 곧바로 주전으로 보장받지 못했다. 폴 인스브라이언 롭슨미드필더 중앙에서 막강한 파트너십을 구축했으며,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967년 이후 처음으로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롭슨은 36세로 선수 경력의 마지막 단계였고, 부상으로 1992-93 시즌 대부분과 1993-94 시즌 초반에 결장했다. 홈 데뷔전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0 승리에 두 골을 넣었고, 석 달 뒤 메인 로드에서 2-0으로 뒤지던 맨체스터 더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킨은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을 방어하며 첫 트로피를 획득했다. 2주 후, 1994 FA컵 결승전에서 첼시를 4-0으로 꺾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연패를 끊었으며,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더블"을 달성했다.

다음 시즌은 리그 우승을 블랙번 로버스에게 내주고, 1995 FA컵 결승전에서 에버턴에게 1-0으로 패했다. 킨은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1994-95 FA컵 준결승 재경기에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를 밟아 첫 레드 카드를 받았고, 세 경기 출장 정지에 5,000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1995년 여름, 인스가 인테르로 이적하고, 마크 휴즈가 첼시로 이적하며, 안드레이 칸첼스키스가 에버턴으로 팔렸다. 데이비드 베컴, 니키 버트, 폴 스콜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고, 킨은 미드필더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선수가 되었다. 1995-96 시즌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을 확보했다. 킨은 1-0 승리로 리버풀을 꺾고 FA컵에서 9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3년 만에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

다음 시즌에는 킨이 무릎 부상과 잦은 출장 정지로 인해 선발과 벤치를 오갔다. 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옐로 카드를 받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차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맨유는 두 경기 모두 1-0으로 패했지만, 며칠 뒤 리그 타이틀을 획득했다.

==== 주장 (1997-2001) ====

에릭 칸토나의 예기치 않은 은퇴 이후, 킨은 클럽의 주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1997-98 시즌 대부분을 부상으로 결장했다. 이는 시즌 9번째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리즈 유나이티드 선수 알피 홀란에게 태클을 시도하다가 십자 인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킨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동안, 홀란드는 킨 위에 서서 부상당한 유나이티드의 주장이 자신을 다치게 하려 했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부상을 가장했다고 비난했는데, 이 주장은 4년 후 두 선수 사이에 악명 높은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킨은 그 시즌에 경쟁적인 축구로 복귀하지 못했고, 유나이티드가 아스널에 11점 차 리드를 날려버리고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놓치는 것을 벤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킨의 부재가 팀의 리그 트로피 포기에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킨은 다음 시즌에 다시 팀의 주장을 맡았고, FA 프리미어 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도록 이끌었다.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그는 2골을 뒤지고 있던 팀을 3-2로 역전승을 거두도록 도왔고, 유나이티드의 첫 골을 넣었다. 이 경기에서의 그의 활약은 축구 선수로서 그의 최고의 순간으로 묘사된다.

{{인용 상자

|quote="축구장에서 이타심을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모든 풀잎 위를 짓밟고, 지는 것보다 탈진으로 죽는 것이 낫다는 듯이 경쟁하며, 그는 주변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는 그런 선수와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느꼈다."

| source = 알렉스 퍼거슨 경이 1999년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킨의 활약에 대해 언급

|align=right

| width = 40%

}}

그러나 킨은 지네딘 지단에게 반칙을 범해 옐로 카드를 받았고, 이로 인해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2-1로 꺾었지만, 킨은 출장 정지로 인해 승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경기 전 생각을 떠올리며 킨은 "겉으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것은 축구에서 겪었던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킨은 1999 FA컵 결승전에서 발목 부상을 입었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4일 전까지 다음 시즌까지 출전할 수 없었다. 그해 말 킨은 인터컨티넨탈컵 결승전에서 유일한 골을 넣어, 유나이티드가 도쿄에서 파우메이라스를 꺾었다.

다음 시즌에는 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이에 장기간의 계약 협상이 벌어졌고, 킨은 이탈리아 이적설이 돌면서 연간 2백만 파운드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1999-2000 시즌 중반에 결국 더 높은 요구를 충족시켜 2004년까지 유나이티드에 헌신하게 되었다. 킨은 구단 관계자들이 시즌 티켓 가격 인상이 그의 계약 개선의 결과라고 설명했을 때 분노했고, 구단에 사과를 요구했다. 계약 체결 며칠 후 킨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자축했지만,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고, 레알 마드리드에 8강에서 패했는데, 부분적으로 킨의 불운한 자책골이 2차전에서 터진 탓이었다. 그는 8년 만에 6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끌며 시즌 말 PFA 올해의 선수와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킨은 2000년 11월, 챔피언스 리그에서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 올드 트래포드에서 승리한 후 유나이티드 서포터의 일부에 대해 비판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디나모가 경기를 지배할 때 일부 팬들이 보내는 응원 부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원정에서는 우리 팬들이 환상적이고, 나는 그들을 핵심 팬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홈에서는 술을 좀 마시고 새우 샌드위치나 먹고,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한다. 올드 트래포드에 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축구'의 철자를 쓸 줄도 모를 것이고, 이해도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킨의 발언은 잉글랜드에서 축구 경기장의 변화하는 분위기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새우 샌드위치 여단"이라는 용어는 이제 영어 축구 어휘의 일부가 되었으며, 축구에 대한 진정한 관심보다는 유행을 따르기 위해 축구 경기에 참석하거나 축구 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 알피 홀란드 사건 (2001) ====

2001년 맨체스터 더비에서 경기 종료 5분 전, 키는 알피 할란에게 무릎 높이의 반칙을 범해 퇴장당했는데, 많은 이들은 이를 복수 행위로 여겼다. 그는 처음에 잉글랜드 축구 협회(FA)로부터 3경기 출장 정지 및 5,000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지만, 2002년 8월 키의 자서전이 발간된 후 추가 징계를 받게 되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할란을 "다치게 할" 의도였다고 밝혔다. 키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나는 충분히 기다렸다. 이 망할 자식을 아주 세게 찼다. 공이 거기 있었지(내 생각엔). 이 썅, 받아라. 그리고 다시는 가짜 부상이라고 비웃으며 내 위에 서 있지 마라.

그의 발언은 태클이 계획된 공격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FA는 그에게 축구계를 훼손한 혐의를 적용했다. 그는 추가로 5경기 출장 정지 및 15만 파운드의 벌금을 받았다. 광범위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 생각은, 엿 먹어라. 뿌린 대로 거둔다. 그는 그럴 만한 대가를 치렀다. 그는 나를 망쳤고, 나는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아마 같은 짓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란은 그 후 풀 경기를 뛴 적이 없다. 그러나 할란은 그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에서 68분을 뛰었다. 그는 두 경기 사이에 노르웨이를 위한 친선 경기도 뛰었다. 사실 그의 선수 경력을 끝낸 것은 그의 오른쪽 무릎이 아닌, 왼쪽 무릎의 오래된 부상이었다.

==== 말년 (2001-2005) ====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키언


유나이티드는 4년 만에 2001-02 시즌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국내에서는 FA컵 4라운드에서 미들즈브러에게 패해 탈락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991년 이후 최저 순위인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1999년 성공적인 시즌 이후 최고의 성적인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했다. 결국 유나이티드는 키언이 3-2로 앞서가는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버쿠젠과의 합계 3-3 무승부 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탈락했다.

패배 후 키언은 팀 동료들의 부에 대한 집착이 유나이티드의 부진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며, "그들은 경기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롤렉스, 자동차, 저택을 얻게 해준 열정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시즌 초 키언은 트레블 우승팀의 해체를 공개적으로 옹호했는데, 이는 1999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을 이끌었던 팀 동료들이 더 이상 열심히 뛸 동기를 갖지 못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02년 8월, 키언은 선덜랜드의 제이슨 맥아티어를 팔꿈치로 쳐서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15만 파운드의 벌금과 3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이는 홀란드에 대한 논란이 많은 발언으로 인해 5경기 출전 정지 처분이 추가되면서 더욱 가중되었다. 키언은 이 휴식 기간을 이용하여 1년 전부터 진통제를 복용하게 했던 엉덩이 수술을 받았다. 부상이 선수 경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초기 우려와 그의 외과 의사의 엉덩이 인공 관절 수술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는 12월에 유나이티드 팀으로 복귀했다.

수술 후 휴식 기간 동안 키언은 잦은 부상과 출전 정지의 원인에 대해 성찰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무모한 태클과 분노 폭발이었으며, 이것이 점점 그의 경력을 망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그는 경기장에서 더욱 자제하게 되었고 다른 선수들과의 분쟁과 대립을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부 관찰자들은 "새로운" 키언이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 아마도 엉덩이 수술 후 감소한 기동성 때문에 미드필드에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복귀 후 키언은 2003년 5월 또 한 번의 리그 우승을 팀에 안겨주면서 예전의 끈기를 보여주었다.

2000년대 내내 키언은 아스날의 주장 패트릭 비에이라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 사이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05년 하이bury에서 일어났으며, 이는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사이에 극심한 악감정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비에이라는 경기 전 터널에서 유나이티드 수비수 게리 네빌에게 이전 경기에서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에 대한 파울에 대해 항의했고, 이에 키언은 아스날 주장에게 말로 대항했다.

이 사건은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생중계되었으며, 키언이 경기 심판 그레이엄 폴에게 "그[비에이라] 입 좀 닥치라고 해!"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유나이티드가 4-2로 승리한 후, 키언은 비에이라가 출생 국가인 세네갈 대신 프랑스를 위해 국제 경기를 뛰는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나 비에이라는 나중에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국가대표팀을 떠난 키언이 그러한 문제에 대해 논평할 자격이 없다고 암시했다. 심판 폴은 나중에 경기 시작 전에 두 선수를 모두 퇴장시켰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키언은 유나이티드를 9개의 주요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이는 구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주장이었음을 의미한다. 키언은 2005년 2월 5일 버밍엄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50번째 골을 기록했다. 2005 FA컵 결승전 출전은 유나이티드가 승부차기에서 아스날에게 패했는데, 이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에서 7번째로 많은 출전 기록이었다.

키언은 또한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많은 레드 카드를 받은 기록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선수 경력 동안 총 13번 퇴장당했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그의 기여를 인정받아 2004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펠레가 선정한 살아있는 최고의 축구 선수 목록인 FIFA 100에 유일한 아일랜드 선수로 선정되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퇴단 ====

케인은 2005년 11월 18일, 상호 합의 하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예상치 못하게 떠났다. 이는 클럽에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팀을 오랫동안 떠나 있던 중 일어난 일이었으며, 루이스 가르시아와의 리버풀과의 거친 경합으로 인해 발생했다. 그의 떠남은 포르투갈에서 열린 클럽의 프리시즌 훈련 캠프에서 케인이 시설의 질에 대해 퍼거슨과 언쟁을 벌인 이후, 케인과 유나이티드 경영진 및 선수들 간의 갈등이 고조된 것의 정점에 달했다. 퍼거슨은 케인이 MUTV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시즌 말에 만료된 후 "다른 곳에서 뛸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발언한 것에 더욱 분노했다.

케인이 MUTV에 출연한 또 다른 사건은 11월 초 미들즈브러에게 4-1로 패한 후 존 오셔, 앨런 스미스, 키어런 리처드슨, 대런 플레처의 경기력에 대해 비판하면서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클럽의 최고액 영입 선수인 리오 퍼디난드에 대해서는 "주급 12만 파운드를 받고 토트넘을 상대로 20분 동안 잘했다고 슈퍼스타가 된 줄 아나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유나이티드 경영진에 의해 너무나 비난조로 여겨졌고, 결국 클럽의 TV 방송국에서 방송이 중단되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케인의 의견을 "그의 기준에서도 폭발적"이라고 묘사했다.

2주 후, 퍼거슨과의 또 다른 논쟁 이후, 케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합의하여 즉시 클럽을 떠나 다른 클럽과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12년 반 동안 뛴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 경기 제안을 받았으며, 퍼거슨과 유나이티드 최고 경영자 데이비드 길 모두 그의 앞날을 응원했다.

케인은 2019년 9월 아일랜드 미디어 회사 오프 더 볼과의 인터뷰에서 MUTV 사건보다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당시 수석 코치였던 카를루스 케이로스와 나중에 알렉스 퍼거슨 경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를 클럽에서 내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케인의 기념 경기는 2006년 5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와 셀틱 간에 열렸다. 홈팀은 경기를 1-0으로 이겼으며, 케인은 전반전을 셀틱 선수로, 후반전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장으로서 뛰었다. 69,591명의 만원 관중은 잉글랜드에서 열린 기념 경기 사상 최대 규모로 남아 있다. 경기에서 발생한 모든 수익금은 케인이 가장 좋아하는 자선 단체인 아일랜드 맹인 안내견 협회에 기부되었다.

2. 3. 1. 초기 (1993-1997)

1993-94 시즌 당시 최고 이적료에도 불구하고, 킨은 곧바로 주전으로 보장받지 못했다. 폴 인스브라이언 롭슨미드필더 중앙에서 막강한 파트너십을 구축했으며,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967년 이후 처음으로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롭슨은 36세로 선수 경력의 마지막 단계였고, 부상으로 1992-93 시즌 대부분과 1993-94 시즌 초반에 결장했다. 킨은 홈 데뷔전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0 승리에 두 골을 넣었고,[20] 석 달 뒤 메인 로드에서 2-0으로 뒤지던 맨체스터 더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21]

킨은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을 방어하며 첫 트로피를 획득했다. 2주 후, 1994 FA컵 결승전에서 첼시를 4-0으로 꺾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연패를 끊었으며,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더블"을 달성했다.[22]

다음 시즌은 리그 우승을 블랙번 로버스에게 내주고, 1995 FA컵 결승전에서 에버턴에게 1-0으로 패했다.[23][24] 킨은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1994-95 FA컵 준결승 재경기에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를 밟아 첫 레드 카드를 받았고,[25] 세 경기 출장 정지에 5,000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26][27]

1995년 여름, 인스가 인테르로 이적하고,[28] 마크 휴즈가 첼시로 이적하며,[29] 안드레이 칸첼스키스가 에버턴으로 팔렸다.[30] 데이비드 베컴, 니키 버트, 폴 스콜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고, 킨은 미드필더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선수가 되었다. 1995-96 시즌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을 확보했다. 킨은 1-0 승리로 리버풀을 꺾고 FA컵에서 9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3년 만에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31]

다음 시즌에는 킨이 무릎 부상과 잦은 출장 정지로 인해 선발과 벤치를 오갔다. 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옐로 카드를 받아,[32]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차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32] 맨유는 두 경기 모두 1-0으로 패했지만,[33] 며칠 뒤 리그 타이틀을 획득했다.[34]

2. 3. 2. 주장 (1997-2001)

에릭 칸토나의 예기치 않은 은퇴 이후, 킨은 클럽의 주장 자리를 물려받았다.[208] 하지만, 1997-98 시즌 대부분을 부상으로 결장했다. 이는 시즌 9번째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리즈 유나이티드 선수 알피 홀란드에게 태클을 시도하다가 십자 인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킨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동안, 홀란드는 킨 위에 서서 부상당한 유나이티드의 주장이 자신을 다치게 하려 했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부상을 가장했다고 비난했는데, 이 주장은 4년 후 두 선수 사이에 악명 높은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킨은 그 시즌에 경쟁적인 축구로 복귀하지 못했고, 유나이티드가 아스널에 11점 차 리드를 날려버리고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놓치는 것을 벤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킨의 부재가 팀의 리그 트로피 포기에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35]

킨은 다음 시즌에 다시 팀의 주장을 맡았고, FA 프리미어 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도록 이끌었다.[208]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그는 2골을 뒤지고 있던 팀을 3-2로 역전승을 거두도록 도왔고, 유나이티드의 첫 골을 넣었다. 이 경기에서의 그의 활약은 축구 선수로서 그의 최고의 순간으로 묘사된다.[37][38]

{{인용 상자

|quote="축구장에서 이타심을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모든 풀잎 위를 짓밟고, 지는 것보다 탈진으로 죽는 것이 낫다는 듯이 경쟁하며, 그는 주변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는 그런 선수와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느꼈다."

| source = 알렉스 퍼거슨 경이 1999년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킨의 활약에 대해 언급[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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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킨은 지네딘 지단에게 반칙을 범해 옐로 카드를 받았고, 이로 인해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2-1로 꺾었지만, 킨은 출장 정지로 인해 승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경기 전 생각을 떠올리며 킨은 "겉으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것은 축구에서 겪었던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킨은 1999 FA컵 결승전에서 발목 부상을 입었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4일 전까지 다음 시즌까지 출전할 수 없었다.[39] 그해 말 킨은 인터컨티넨탈컵 결승전에서 유일한 골을 넣어, 유나이티드가 도쿄에서 파우메이라스를 꺾었다.

다음 시즌에는 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이에 장기간의 계약 협상이 벌어졌고, 킨은 이탈리아 이적설이 돌면서 연간 2백만 파운드 제안을 거절했다.[40] 그는 1999-2000 시즌 중반에 결국 더 높은 요구를 충족시켜 2004년까지 유나이티드에 헌신하게 되었다. 킨은 구단 관계자들이 시즌 티켓 가격 인상이 그의 계약 개선의 결과라고 설명했을 때 분노했고, 구단에 사과를 요구했다.[41] 계약 체결 며칠 후 킨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자축했지만,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고, 레알 마드리드에 8강에서 패했는데, 부분적으로 킨의 불운한 자책골이 2차전에서 터진 탓이었다. 그는 8년 만에 6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끌며 시즌 말 PFA 올해의 선수와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킨은 2000년 11월, 챔피언스 리그에서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 올드 트래포드에서 승리한 후 유나이티드 서포터의 일부에 대해 비판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디나모가 경기를 지배할 때 일부 팬들이 보내는 응원 부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원정에서는 우리 팬들이 환상적이고, 나는 그들을 핵심 팬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홈에서는 술을 좀 마시고 새우 샌드위치나 먹고,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한다. 올드 트래포드에 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축구'의 철자를 쓸 줄도 모를 것이고, 이해도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41] 킨의 발언은 잉글랜드에서 축구 경기장의 변화하는 분위기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42] "새우 샌드위치 여단"이라는 용어는 이제 영어 축구 어휘의 일부가 되었으며, 축구에 대한 진정한 관심보다는 유행을 따르기 위해 축구 경기에 참석하거나 축구 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선수 생활 후반에는 부상과 싸우면서도 주장으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여, 2002-03 시즌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2003-04 시즌의 FA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2. 3. 3. 알피 홀란드 사건 (2001)

2001년 맨체스터 더비에서 경기 종료 5분 전, 키는 알피 할란에게 무릎 높이의 반칙을 범해 퇴장당했는데, 많은 이들은 이를 복수 행위로 여겼다.[43] 그는 처음에 잉글랜드 축구 협회(FA)로부터 3경기 출장 정지 및 5,000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지만, 2002년 8월 키의 자서전이 발간된 후 추가 징계를 받게 되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할란을 "다치게 할" 의도였다고 밝혔다. 키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충분히 기다렸다. 이 망할 자식을 아주 세게 찼다. 공이 거기 있었지(내 생각엔). 이 썅, 받아라. 그리고 다시는 가짜 부상이라고 비웃으며 내 위에 서 있지 마라.[44]



그의 발언은 태클이 계획된 공격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FA는 그에게 축구계를 훼손한 혐의를 적용했다.[45] 그는 추가로 5경기 출장 정지 및 15만 파운드의 벌금을 받았다. 광범위한 비난에도 불구하고,[46]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 생각은, 엿 먹어라. 뿌린 대로 거둔다. 그는 그럴 만한 대가를 치렀다. 그는 나를 망쳤고, 나는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아마 같은 짓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47]

할란은 그 후 풀 경기를 뛴 적이 없다. 그러나 할란은 그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에서 68분을 뛰었다.[48] 그는 두 경기 사이에 노르웨이를 위한 친선 경기도 뛰었다. 사실 그의 선수 경력을 끝낸 것은 그의 오른쪽 무릎이 아닌, 왼쪽 무릎의 오래된 부상이었다.[49]

2. 3. 4. 말년 (2001-2005)



유나이티드는 4년 만에 2001-02 시즌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국내에서는 FA컵 4라운드에서 미들즈브러에게 패해 탈락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991년 이후 최저 순위인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1999년 성공적인 시즌 이후 최고의 성적인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했다. 결국 유나이티드는 키언이 3-2로 앞서가는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버쿠젠과의 합계 3-3 무승부 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탈락했다.[10]

패배 후 키언은 팀 동료들의 부에 대한 집착이 유나이티드의 부진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며, "그들은 경기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롤렉스, 자동차, 저택을 얻게 해준 열정을 잃었다"고 주장했다.[10] 시즌 초 키언은 트레블 우승팀의 해체를 공개적으로 옹호했는데,[50] 이는 1999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을 이끌었던 팀 동료들이 더 이상 열심히 뛸 동기를 갖지 못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51]

2002년 8월, 키언은 선덜랜드의 제이슨 맥아티어를 팔꿈치로 쳐서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15만 파운드의 벌금과 3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이는 홀란드에 대한 논란이 많은 발언으로 인해 5경기 출전 정지 처분이 추가되면서 더욱 가중되었다. 키언은 이 휴식 기간을 이용하여 1년 전부터 진통제를 복용하게 했던 엉덩이 수술을 받았다. 부상이 선수 경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초기 우려[52]와 그의 외과 의사의 엉덩이 인공 관절 수술 제안[53]에도 불구하고, 그는 12월에 유나이티드 팀으로 복귀했다.

수술 후 휴식 기간 동안 키언은 잦은 부상과 출전 정지의 원인에 대해 성찰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무모한 태클과 분노 폭발이었으며, 이것이 점점 그의 경력을 망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10] 그 결과 그는 경기장에서 더욱 자제하게 되었고 다른 선수들과의 분쟁과 대립을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부 관찰자들은 "새로운" 키언이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 아마도 엉덩이 수술 후 감소한 기동성 때문에 미드필드에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복귀 후 키언은 2003년 5월 또 한 번의 리그 우승을 팀에 안겨주면서 예전의 끈기를 보여주었다.

2000년대 내내 키언은 아스날의 주장 패트릭 비에이라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54] 두 사람 사이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05년 하이bury에서 일어났으며, 이는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사이에 극심한 악감정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비에이라는 경기 전 터널에서 유나이티드 수비수 게리 네빌에게 이전 경기에서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에 대한 파울에 대해 항의했고,[55] 이에 키언은 아스날 주장에게 말로 대항했다.[50]

이 사건은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생중계되었으며,[56] 키언이 경기 심판 그레이엄 폴에게 "그[비에이라] 입 좀 닥치라고 해!"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유나이티드가 4-2로 승리한 후, 키언은 비에이라가 출생 국가인 세네갈 대신 프랑스를 위해 국제 경기를 뛰는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나 비에이라는 나중에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국가대표팀을 떠난 키언이 그러한 문제에 대해 논평할 자격이 없다고 암시했다.[57] 심판 폴은 나중에 경기 시작 전에 두 선수를 모두 퇴장시켰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55]

전반적으로 키언은 유나이티드를 9개의 주요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이는 구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주장이었음을 의미한다. 키언은 2005년 2월 5일 버밍엄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50번째 골을 기록했다. 2005 FA컵 결승전 출전은 유나이티드가 승부차기에서 아스날에게 패했는데, 이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에서 7번째로 많은 출전 기록이었다.[58]

키언은 또한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많은 레드 카드를 받은 기록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선수 경력 동안 총 13번 퇴장당했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그의 기여를 인정받아 2004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펠레가 선정한 살아있는 최고의 축구 선수 목록인 FIFA 100에 유일한 아일랜드 선수로 선정되었다.[4]

2. 3. 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퇴단

케인은 2005년 11월 18일, 상호 합의 하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예상치 못하게 떠났다.[59] 이는 클럽에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팀을 오랫동안 떠나 있던 중 일어난 일이었으며,[60] 루이스 가르시아와의 리버풀과의 거친 경합으로 인해 발생했다. 그의 떠남은 포르투갈에서 열린 클럽의 프리시즌 훈련 캠프에서 케인이 시설의 질에 대해 퍼거슨과 언쟁을 벌인 이후, 케인과 유나이티드 경영진 및 선수들 간의 갈등이 고조된 것의 정점에 달했다.[61] 퍼거슨은 케인이 MUTV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시즌 말에 만료된 후 "다른 곳에서 뛸 준비가 되어 있다"[62]라고 발언한 것에 더욱 분노했다.

케인이 MUTV에 출연한 또 다른 사건은 11월 초 미들즈브러에게 4-1로 패한 후 존 오셔, 앨런 스미스, 키어런 리처드슨, 대런 플레처의 경기력에 대해 비판하면서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63] 클럽의 최고액 영입 선수인 리오 퍼디난드에 대해서는 "주급 12만 파운드를 받고 토트넘을 상대로 20분 동안 잘했다고 슈퍼스타가 된 줄 아나보다"라고 말했다.[64] 이 발언은 유나이티드 경영진에 의해 너무나 비난조로 여겨졌고, 결국 클럽의 TV 방송국에서 방송이 중단되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케인의 의견을 "그의 기준에서도 폭발적"이라고 묘사했다.[63]

2주 후, 퍼거슨과의 또 다른 논쟁 이후, 케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합의하여 즉시 클럽을 떠나 다른 클럽과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64] 그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12년 반 동안 뛴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 경기 제안을 받았으며, 퍼거슨과 유나이티드 최고 경영자 데이비드 길 모두 그의 앞날을 응원했다.[64]

케인은 2019년 9월 아일랜드 미디어 회사 오프 더 볼과의 인터뷰에서 MUTV 사건보다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당시 수석 코치였던 카를루스 케이로스와 나중에 알렉스 퍼거슨 경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를 클럽에서 내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68]

케인의 기념 경기는 2006년 5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와 셀틱 간에 열렸다. 홈팀은 경기를 1-0으로 이겼으며, 케인은 전반전을 셀틱 선수로, 후반전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장으로서 뛰었다.[69] 69,591명의 만원 관중은 잉글랜드에서 열린 기념 경기 사상 최대 규모로 남아 있다.[70] 경기에서 발생한 모든 수익금은 케인이 가장 좋아하는 자선 단체인 아일랜드 맹인 안내견 협회에 기부되었다.

2. 4. 셀틱

로이 킨은 2005년 12월 15일, 어린 시절부터 응원해 온 셀틱 선수로 발표되었다.[71] 초기 보도에는 주당 4만 파운드의 계약을 제안받았다고 알려졌으나, 킨은 자서전에서 주당 1만 5천 파운드만 받았다고 주장했다.[72]

2006년 1월, 셀틱에서의 경력을 시작했지만, 스코티시 컵 3라운드에서 클라이드에게 2-1로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73] 이 경기에서 킨은 거친 플레이를 보이며 팀 동료들을 비판하기도 했다.[73] 한 달 뒤, 팔키크와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20야드 밖에서 슛을 성공시켜 셀틱에서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74] 이후 올드 펌 더비에서 레인저스를 상대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고, 셀틱은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와 스코티시 리그 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킨은 선수로서 마지막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6년 월드컵 종료후, 킨은 셀틱에 합류한 지 6개월 만인 2006년 6월 12일에 의학적 권고에 따라 프로 축구 은퇴를 발표했다.[75] 그의 은퇴 발표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최고의 팀을 뽑는다면, 로이 킨은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라며 찬사를 보냈다.[75]

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계약 해지 이후, 2005년 12월 16일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셀틱에 입단했다. 킨은 이전부터 현역 마지막을 셀틱에서 보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셀틱 데뷔전인 스코티시컵 3라운드에서는 하위 팀에게 패했다. 당시 셀틱의 미드필더진은 스티리안 페트로프와 나카무라 슌스케를 중심으로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출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2006년 3월, 킨은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 2006년 5월 9일에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셀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의 헌정 경기가 개최되었고, 킨은 전반전에는 셀틱, 후반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 출전했다. 이 경기는 7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모았으며, 200만 파운드가 넘는 수익 대부분은 자선 단체에 기부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로이 킨은 1988년 UEFA U-16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선수단에 포함되었지만 출전하지는 않았다.[76] 그는 1990년 UEFA U-18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헝가리 U-19 축구 국가대표팀을 꺾고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진출하는 데 기여하며 아일랜드 U-19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77]

1991년, 터키 U-21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국제 경기에 출전하게 된 킨은 아일랜드 팀을 둘러싼 조직과 준비에 즉각적인 불만을 품었고, 나중에는 팀 구성을 "약간 우스꽝스럽다"라고 묘사했다.[10]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는 동안 이 견해를 계속 유지했으며, 이로 인해 아일랜드 감독진과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킨은 알제리로 가는 아일랜드 선수단에 합류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잭 찰턴 감독이 동료들과 합류하지 않으면 다시는 아일랜드 대표팀에서 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10]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킨은 노팅엄 포레스트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의 주장에 따라 집에 머물기로 했고, 1년 후 랜스다운 로드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 아일랜드 선수단에 소집되자 기뻐했다. 이후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면서 킨은 찰턴의 축구 스타일에 불만을 품게 되었는데, 이는 선수들의 기술보다는 지속적인 압박과 직접적인 플레이에 더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의 긴장은 스티브 스톤턴과 술을 마신 후 늦게 귀가한 킨을 찰턴이 질책하면서 미국에서 열린 프리 시즌 토너먼트에서 최고조에 달했다.[10]

킨은 미국에서 열린 1994년 FIFA 월드컵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토너먼트 우승 후보이자 준우승팀인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1-0으로 꺾는 유명한 경기를 포함해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2라운드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토너먼트는 아일랜드 팀에게 성공적인 대회로 여겨졌으며, 킨은 아일랜드의 캠페인에서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킨은 토너먼트 후의 축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나중에 아일랜드의 월드컵은 실망스러웠다고 주장했다. "축하할 일이 없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10]

킨은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199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의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팀의 주장을 맡아 UEFA 유로 2000 예선에서 UEFA 유로 2000 진출을 눈앞에 두었지만 UEFA 유로 2000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에 패했다. 아일랜드는 새 감독 믹 맥카시의 지휘 아래 2002년 월드컵 진출을 확정했으며, 킨은 여러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크게 기여했다. 예선 과정에서 아일랜드는 국제 축구 강호인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과 네덜란드를 상대로 홈과 원정 모두에서 무패를 기록했으며, 특히 랜스다운 로드에서 네덜란드를 1-0으로 꺾는 명성을 얻었다.

1991년 5월 22일 칠레와의 경기에서 아일랜드 대표팀 데뷔. 오랫동안 주전 선수로서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다. 그러나 선수 경력 후반에는 만성적인 엉덩이 부상으로 인해 중요한 경기를 중심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팀 내에서는 외톨이 기질을 유지하여, 나이도 많고 대표팀 통산 골 기록 보유자인 닐 퀸(Niall Quinn)조차 로이와 단 둘이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일화가 있다.[209]

3. 1. 2002 FIFA 월드컵 사이판 사건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는 2002년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아일랜드 대표팀의 훈련 기지로 사이판 섬을 선택했다. 첫 훈련에서 킨은 훈련 시설과 준비 수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며, 훈련 장비를 "주차장 같다"고 표현했다.[78] 훈련 둘째 날, 골키퍼 코치 패키 보너와 앨런 켈리 주니어와 언쟁을 벌인 후, 킨은 팀을 떠나 맨체스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발표했다. FAI는 킨에게 긴급 항공편을 구할 수 없었고, 그는 콜린 힐리로 교체될 예정이었으나, 다음 날 맥카시 감독의 설득으로 잔류했다.

킨의 마음의 변화 이후 긴장이 완화되는 듯했으나, 곧바로 ''아이리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설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며 팀을 떠나게 만든 사건과 우려 사항들을 언급했다. 맥카시는 인터뷰에 불쾌감을 느껴 킨과 대면했고, 킨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맥카시에게 "믹, 넌 거짓말쟁이야... 넌 빌어먹을 멍청이야. 선수로서도 별로였고, 감독으로서도 별로고, 인간으로서도 별로야."라고 비난했다.[41][79] 니얼 퀸은 킨의 연설이 냉정하고 격렬했으며, 아일랜드 사회에 큰 논란을 야기했다고 언급했다.[80]

킨의 동료들은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몇몇은 나중에 사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니얼 퀸과 스티브 스톤튼은 기자 회견에서 맥카시를 지지했다. 맥카시는 킨을 팀에서 해고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으며,[81][82] 국제 축구 연맹(FIFA) 선수단 명단 발표 마감일이 지나 힐리는 킨을 대신할 수 없었다.

이후 킨은 브라이언 커 (아일랜드 축구 감독)/브라이언 커영어 감독 하에 대표팀에 복귀하여 200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활약했지만, 예선 탈락 후 은퇴했다. 2006년 11월, 킨과 매카시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를 계기로 화해를 표명했다.

3. 2. 대표팀 복귀

믹 매카시는 2002년 11월 러시아스위스에게 2004년 유로 예선에서 패배한 후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했다.[83] 매카시의 후임인 브라이언 커는 2004년 4월 27일 루마니아와의 경기에 로이 킨을 아일랜드 대표팀에 복귀시켰다. 그러나 커는 주장을 케니 커닝햄에게 맡겨두기로 결정하면서 킨은 다시 주장으로 임명되지 않았다.[84] 2006년 월드컵 예선에서 팀이 본선 진출에 실패한 후, 그는 소속 클럽에서의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84]

3. 3. 은퇴 이후

킨은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의 태도와 선수 선발 정책에 대한 불만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2007년 3월, 킨은 여러 아일랜드 공화국 선수들이 언론 노출만을 기준으로 선발되고 있으며, 협회가 레스터의 더블린이나 다른 지역 출신 선수들에게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쌓은 명성이나 인터뷰를 많이 한다는 이유로 계속 기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충성심과 어리석음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85] 킨은 선덜랜드 선수 리암 밀러가 코크 출신이라 선발되지 않았으며,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85] 그는 또한 FAI가 업무 처리에 무능하다고 비난했다.[85]

킨은 2010년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아일랜드가 프랑스에 패한 후 또 다른 논란에 휩싸였다. 2009년 11월 20일 입스위치 타운 기자 회견에서 킨은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 사건에 대한 아일랜드의 반응을 비판했다. 그의 발언에는 아일랜드 팀의 수비와 FAI 당국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었다.

4. 감독 경력

킨은 선수 은퇴 이후 2006년 8월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선덜랜드 감독에 취임하였다.[210] 그는 감독 첫 시즌인 2006-07 시즌 풋볼 리그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어내어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2008년 12월 5일 선덜랜드의 리그 순위가 18위로 하락하자, 그는 팀의 구단주인 나이얼 퀸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사임하였다.[211]

이후 그는 2009년 4월 23일 2년 계약에 입스위치 타운의 감독에 취임하였다.[212] 2011년까지 입스위치 타운 감독으로 활동했다.[213]

킨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214] 2014년애스턴 빌라의 코치로 활동했다.[215]

2019년 1월, 킨은 마틴 오닐을 따라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코치로 합류했다.[216] 2018-19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217]

4. 1. 선덜랜드 AFC

킨은 선수 은퇴 이후 2006년 8월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선덜랜드 감독에 취임하였다.[210] 그는 감독 첫 시즌인 2006-07 시즌 풋볼 리그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어내어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다.[96]

선덜랜드는 믹 매카시 전 감독 하에서 24개 클럽 중 23위에 머물렀지만, 킨은 취임 후 아일랜드 대표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인맥을 활용하여 드와이트 요크,[89] 리암 밀러,[90] 그레이엄 카바나, 데이비드 코놀리, 앤서니 스토크스 등 적극적인 선수 보강을 실시했다. 시즌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클럽의 연승 기록을 갱신, 지도 경력 1년 만에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2007-08 시즌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하게 되었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원하는 대로 유력 선수를 영입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전력적으로 힘든 팀을 이끌며, 특히 원정에서는 전혀 승리하지 못하는 시즌이 되었지만, 끈기 있는 경기를 펼치며 3월 이후 승점을 쌓아 잔류를 확보했다.

2008-09 시즌은 오랜만에 타인 위어 더비에서 승리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좀처럼 성적이 안정되지 않았다. 11월 말 볼턴 원더러스 FC(Bolton Wanderers F.C.)와의 4-1 홈 패배 이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한 후 2008년 12월 5일 팀의 구단주인 나이얼 퀸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사임하였다.[101][211] 킨의 가혹한 관리 스타일은 선덜랜드 선수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했으며, 그가 사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들이 축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102] 아이리시 타임스(The Irish Times)''와의 인터뷰에서 키인은 선덜랜드의 30% 주주인 엘리스 쇼트와의 의견 차이와 클럽 회장 니얼 퀸과의 불화를 선덜랜드 감독직 사임 결정의 요인으로 꼽았다.[103]

4. 2. 입스위치 타운 FC

킨은 2009년 4월 23일 2년 계약으로 입스위치 타운의 감독에 취임하였다.[105] 그의 첫 경기는 카디프 시티 FC와의 원정 경기였으며, 3-0으로 승리하였다.[106] 이 경기는 니니안 파크에서 열린 마지막 리그 경기였다. 그 다음 주, 입스위치는 코벤트리 시티 FC를 2-1로 이기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107]

2009-10 시즌에 킨은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일부는 선덜랜드에서 데려왔다. 골키퍼 마르톤 풀롭, 미드필더 카를로스 에드워즈, 그랜트 리드비터를 영입했고, 잭 콜백, 데이비드 힐리, 대릴 머피를 임대 영입했다. 입스위치는 처음 14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해 리그에서 가장 늦게 첫 승을 기록했고, 10월 31일 더비 카운티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11월 29일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시즌 첫 원정 승리를 따냈다. 시즌 내내 경기력이 점차 향상되었지만, 입스위치는 너무 많은 무승부를 기록하여 승격 경쟁에 근접하지 못하고 15위로 시즌을 마쳤다.[108]

2009-10 시즌과 2010-11 시즌의 일관성 부족은 킨의 입스위치가 승격을 위해 경쟁하지 못하게 했고, 부진한 경기력으로 챔피언십에서 21위까지 떨어졌다. 결국 킨은 2011년 1월 7일 입스위치 감독에서 해임되었다.[7]

4. 3. 국가대표팀 코치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했다.[109] 2013년 11월 5일,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는 마틴 오닐이 아일랜드 공화국 감독으로, 킨이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다고 발표했다.[109] 그들의 첫 경기는 2013년 11월 15일 아비바 스타디움에서 라트비아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110]

닐 레논이 2013-14 시즌 말에 셀틱을 떠나자 킨은 셀틱의 새로운 감독이 될 것처럼 보였다. 마틴 오닐은 그가 지휘봉을 잡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인정했다.[111] 하지만 킨은 아일랜드의 수석 코치로 남았고, 그 직책에 고려되지 않도록 요청했다.[112] 킨은 나중에 셀틱 감독직을 맡기 직전이었고, 셀틱 구단주인 더모트 데스몬드를 만났지만 "그들이 그를 충분히 원한다고 느끼게 해주지 않았다"고 느껴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113]

킨은 이후 아스톤 빌라의 새로운 수석 코치가 되었고, 빌라와 아일랜드에서의 역할을 병행했다.[114]

2014년 10월, 킨은 유로 2016 예선에서 지브롤터독일을 상대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그의 책이 출간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마틴 오닐은 이것이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주장을 일축했다.[115]

한 달 후, 아일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중요한 예선을 앞두고 킨은 팀 호텔에서 팬과 충돌하는 사건에 연루되었다. 팬을 위한 구급차가 호출되었고, 가르다 시오차나도 출동했지만 체포나 고소는 없었다.[116] 아일랜드 축구 협회와 마틴 오닐은 이 사건 이후 킨을 지지했다.[117] 나중에 CCTV 영상으로 킨의 무혐의가 밝혀졌다. 이 사건에 연루된 남자는 브렌든 그레이스의 사위인 프랭크 길레스피로, 킨에게 킨의 자서전 "The Second Half"에 서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킨은 거절했고, 길레스피는 킨에게 대항했지만 쓰러져 호텔로 구급차가 호출되었다. 그레이스는 길레스피와 킨이 "오랜 친구"라고 말했다.[118][119]

스코틀랜드 경기 후 킨은 에버턴이 시머스 콜먼과 제임스 맥카시 (부상으로 스코틀랜드 경기에 불참)와 같은 아일랜드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버턴 회장 빌 켄라이트는 킨이 "어리석은 말"을 한다며 이 주장을 반박했다. 당시 에버턴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또한 킨의 발언을 일축했다.[120][121]

킨은 미국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의 격렬한 기자 회견 이후 다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킨은 아일랜드 공화국 문제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는지 질문을 받자 기자와 말다툼을 벌였다.[122] 이먼 던피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와 마틴 오닐에게 킨이 인터뷰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 그를 둘러싼 언론의 관심을 끝내라고 촉구했다.[123]

2018년 11월, 킨과 오닐은 "상호 합의"로 그들의 직책에서 물러났다.[8]

4. 4. 애스턴 빌라 FC

2014년 7월 1일, 킨은 폴 램버트 감독과 함께 애스턴 빌라의 새로운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다.[124] 그는 이 역할을 아일랜드의 수석 코치 역할과 병행했다.[124] 그러나 2014년 11월 28일, 킨은 아일랜드 수석 코치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애스턴 빌라의 수석 코치직에서 사임했다.[125]

4. 5. 노팅엄 포레스트 FC

킨은 2019년 1월 노팅엄 포레스트의 수석 코치가 되었고,[126] 같은 해 6월에 이 직책을 떠났다.[127]

5. 플레이 스타일

로이 킨은 동시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강력하고 지배적이며 꾸준하고 매우 경쟁적인 선수였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전성기 시절 킨은 엄청난 활동량, 기동성, 에너지, 피지컬, 거친 태클 스타일로 유명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그의 성격, 카드를 받는 경향, 상대와 충돌하는 경향, 무모한 태클을 하는 경향 때문에 어느 정도 악명을 얻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수비형 미드필더 또는 박스 투 박스 역할을 맡아 경기장 중앙에서 활약했으며,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구력, 지능, 위치 감각, 끈기, 공격성, 신체적 강인함, 공을 빼앗는 능력이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그는 다재다능한 기술을 갖춘 완벽한 미드필더로, 공을 소유한 후 효과적으로 전진하여 다른 선수에게 전달하거나, 경기를 제어하고 미드필드에서 템포를 조절하거나, 공격을 시작하거나, 심지어 공을 다루는 침착함, 첫 번째 터치, 정확하고 효율적인 패스를 통해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특히 선수 초창기에는 공격적인 추진력, 골 결정력, 먼 거리에서의 강력한 슛, 페널티 지역으로 늦게 침투하는 능력으로 인해 스스로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말년에는 플레이 스타일을 수정하여 엉덩이 수술 이후 신체적 쇠퇴와 기동성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더 신중한 플레이를 펼치며 더 깊은 역할을 수행했으며, 격분이나 무모한 태클로 인해 너무 많은 경고를 받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경기장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였던 킨은 플레이 능력 외에도 선수 경력 내내 리더십과 투지, 강한 성격으로 두각을 나타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그러나 그는 선수 경력 내내 부상으로 고생했다.[4][10][52][128][129][130][131][132][133][134][135][143][136][137][138][139][140][141][142] 비교적 작은 체구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중볼에도 능했고 정확한 헤더를 구사했다.[143][136][139][144][145] 그는 보통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지만, 때로는 센터백이나 스위퍼로 활동하며 수비수로도 투입되었다.[142][146][147]

그의 전 동료 게리 네빌은 "그의 가장 큰 재능은 팀에게 최고를 요구하는 경기력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가 필사적으로 뛰는 것을 보면서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바치지 않으면 그를 배신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했다.[135]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 당시 알렉스 퍼거슨의 수석 코치를 지낸 스티브 맥클라렌은 미드필더의 경쟁 정신에 대해 "그는 경기장에서 감독을 반영한다. 그들은 승리자들이다."라고 말했다.[143] 2002년 ''가디언''의 숀 오'해건은 그를 "...경기장에서는 헌신적이고 자신감 있는 전사, 경기장 밖에서는 수줍고, 사회성이 부족하며, 종종 외로운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썼다.[148]

6. 논란 및 비판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는 아일랜드의 월드컵 캠페인 기간 동안 사용할 훈련 기지를 사이판 섬에 마련했다.[78] 첫 훈련 세션에서 킨은 훈련 시설의 적절성과 아일랜드 팀의 준비 수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고, 훈련 장비가 늦게 도착하여 첫 훈련 세션을 방해한 것에 분노했는데, 킨은 그라운드를 "주차장 같다"고 표현했다. 훈련 둘째 날, 골키퍼 코치 패키 보너와 앨런 켈리 주니어/앨런 켈리 주니어영어와 언쟁을 벌인 후, 킨은 팀을 그만두고 아일랜드의 준비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맨체스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발표했다. FAI는 킨에게 긴급 항공편을 구할 수 없었고, 그는 사이판에 하룻밤 더 머물렀지만, 그를 대신하여 콜린 힐리를 소집했다. 그러나 다음 날, 믹 매카시는 킨에게 다가가 훈련 캠프로 돌아올 것을 요청했고, 킨은 결국 잔류하도록 설득되었다.[78]

킨의 마음의 변화 이후 아일랜드 캠프의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곧 악화되었다. 킨은 곧바로 유력 스포츠 기자 톰 험프리스와 ''아이리시 타임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이판의 시설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며, 그를 일시적으로 팀에서 떠나게 만든 사건과 우려 사항들을 열거했다. 맥카시는 킨의 인터뷰에 불쾌감을 느껴, 팀 전체와 코칭 스태프 앞에서 킨과 그 기사에 대해 대면하기로 결정했다. 킨은 물러서기를 거부하며 신문에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했고 아일랜드 팬들은 캠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10] 그러고 나서 그는 맥카시를 향해 "믹, 넌 거짓말쟁이야... 넌 빌어먹을 멍청이야. 선수로서도 별로였고, 감독으로서도 별로고, 인간으로서도 별로야. 넌 빌어먹을 멍청이고 너의 월드컵을 네 엉덩이에 꽂아버려. 내가 너랑 어떤 관계를 맺는 유일한 이유는 어쨌든 네가 내 나라의 감독이기 때문이야! 너는 그것을 네 불알에 꽂아버려."[41][79]라고 맹렬한 언어적 비난을 퍼부었다. 니얼 퀸은 자서전에서 "로이 킨의 10분간의 연설 [위의 믹 맥카시에 대한] ... 은 냉정하고, 격렬했으며, 그 대상에게는 충격적이었고, 궁극적으로 아일랜드 사회에 거대한 논란을 야기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킨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그는] 우리를 사이판에 남겨두었고, 그 반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더 벌했다."라고 말했다.[80]

킨의 동료 중 누구도 회의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몇몇은 나중에 사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베테랑 니얼 퀸과 스티브 스톤튼은 사건 이후 기자 회견에서 맥카시를 지지했다. 이때 맥카시는 킨을 팀에서 해고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발표했다.[81][82] 이 시점에서, 월드컵 선수단 명단을 발표하는 국제 축구 연맹(FIFA) 마감일이 지나, 콜린 힐리는 킨을 대신하여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고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없었다.

이후 브라이언 커 (아일랜드 축구 감독)/브라이언 커영어 감독 하에 대표팀에 복귀하여 200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팀의 중심이 되어 활약했지만, 예선 탈락이 결정되자 다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006년 11월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를 계기로 매카시와의 화해를 상호 표명했다. 그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매카시가 선덜랜드 AFC의 선수 영입을 위해 킨에게 직접 전화로 문의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앙금을 풀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6. 1. 알프잉에 홀란드 사건

2001년 맨체스터 더비에서 경기 종료 5분 전, 킨은 알피 할란에게 무릎 높이의 반칙을 범해 퇴장당했는데, 많은 이들은 이를 복수 행위로 여겼다.[43] 킨은 처음에 잉글랜드 축구 협회(FA)로부터 3경기 출장 정지 및 5,000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2002년 8월 발간된 그의 자서전에서 할란을 "다치게 할" 의도였다고 밝히면서 추가 징계를 받게 되었다. 킨은 자서전에서 "나는 충분히 기다렸다. 이 망할 자식을 아주 세게 찼다. 공이 거기 있었지(내 생각엔). 이 썅, 받아라. 그리고 다시는 가짜 부상이라고 비웃으며 내 위에 서 있지 마라."라고 적었다.[44]

이러한 발언은 태클이 계획된 공격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고, FA는 그에게 축구계를 훼손한 혐의를 적용했다.[45] 그는 추가로 5경기 출장 정지 및 15만 파운드의 벌금을 받았다.[45] 광범위한 비난에도 불구하고,[46] 킨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내 생각은, 엿 먹어라. 뿌린 대로 거둔다. 그는 그럴 만한 대가를 치렀다. 그는 나를 망쳤고, 나는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후회하지 않으며, 아마 같은 짓을 다시 할 것이라고 밝혔다.[47]

2002년에 출판된 자서전 『로이 킨: 영혼의 축구 인생』(원제 'Keane: The Autobiography')에서 킨은 2001년 4월에 열린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맨체스터 더비에서 알프잉에 홀란에게 보복으로 고의적인 하드 태클을 가해 부상을 입혔다고 묘사했다. 1997년 경기 중 홀란과 가볍게 충돌하여 넘어진 킨은 "과장되게 넘어지지 마라"는 취지의 발언을 홀란에게 들었다. 실제로는 십자 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으로 약 1년을 허비하게 되었지만, 무릎을 삐끗한 것은 다소 늦은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홀란은 부상을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킨은 나중에 이 묘사가 대필 작가에 의한 각색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을 심각하게 본 FA는 고의적인 위험 행위와 축구 선수로서의 품성을 잃은 자서전 출판으로 인한 금전적 수수를 이유로 킨에게 프리미어 리그 5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15만 파운드의 처분을 내렸다. 킨은 "이 출장 정지 기간을 부상당한 엉덩이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코멘트를 했다.

홀란은 그 후 풀 경기를 뛴 적이 없다.[48] 그러나 홀란은 그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에서 68분을 뛰었으며,[48] 두 경기 사이에 노르웨이를 위한 친선 경기도 뛰었다. 사실 그의 선수 경력을 끝낸 것은 그의 오른쪽 무릎이 아닌, 왼쪽 무릎의 오래된 부상이었다.[49] 홀란은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 피치에 복귀하여 몇 경기에 출전했지만, 결국 이 태클로 입은 부상으로 약 2년 후에 현역 은퇴를 하게 되었다[218].

6. 2. 사이판 사건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는 아일랜드의 월드컵 캠페인 기간 동안 사용할 훈련 기지를 사이판 섬에 마련했다.[78] 첫 훈련 세션에서 킨은 훈련 시설의 적절성과 아일랜드 팀의 준비 수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고, 훈련 장비가 늦게 도착하여 첫 훈련 세션을 방해한 것에 분노했는데, 킨은 그라운드를 "주차장 같다"고 표현했다. 훈련 둘째 날, 골키퍼 코치 패키 보너와 앨런 켈리 주니어/앨런 켈리 주니어영어와 언쟁을 벌인 후, 킨은 팀을 그만두고 아일랜드의 준비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맨체스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발표했다. FAI는 킨에게 긴급 항공편을 구할 수 없었고, 그는 사이판에 하룻밤 더 머물렀지만, 그를 대신하여 콜린 힐리를 소집했다. 그러나 다음 날, 믹 매카시는 킨에게 다가가 훈련 캠프로 돌아올 것을 요청했고, 킨은 결국 잔류하도록 설득되었다.[78]

킨의 마음의 변화 이후 아일랜드 캠프의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곧 악화되었다. 킨은 곧바로 유력 스포츠 기자 톰 험프리스와 ''아이리시 타임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이판의 시설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며, 그를 일시적으로 팀에서 떠나게 만든 사건과 우려 사항들을 열거했다. 맥카시는 킨의 인터뷰에 불쾌감을 느껴, 팀 전체와 코칭 스태프 앞에서 킨과 그 기사에 대해 대면하기로 결정했다. 킨은 물러서기를 거부하며 신문에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했고 아일랜드 팬들은 캠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10] 그러고 나서 그는 맥카시를 향해 "믹, 넌 거짓말쟁이야... 넌 빌어먹을 멍청이야. 선수로서도 별로였고, 감독으로서도 별로고, 인간으로서도 별로야. 넌 빌어먹을 멍청이고 너의 월드컵을 네 엉덩이에 꽂아버려. 내가 너랑 어떤 관계를 맺는 유일한 이유는 어쨌든 네가 내 나라의 감독이기 때문이야! 너는 그것을 네 불알에 꽂아버려."[41][79]라고 맹렬한 언어적 비난을 퍼부었다. 니얼 퀸은 자서전에서 "로이 킨의 10분간의 연설 [위의 믹 맥카시에 대한] ... 은 냉정하고, 격렬했으며, 그 대상에게는 충격적이었고, 궁극적으로 아일랜드 사회에 거대한 논란을 야기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킨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그는] 우리를 사이판에 남겨두었고, 그 반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더 벌했다."라고 말했다.[80]

킨의 동료 중 누구도 회의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몇몇은 나중에 사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베테랑 니얼 퀸과 스티브 스톤튼은 사건 이후 기자 회견에서 맥카시를 지지했다. 이때 맥카시는 킨을 팀에서 해고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발표했다.[81][82] 이 시점에서, 월드컵 선수단 명단을 발표하는 국제 축구 연맹(FIFA) 마감일이 지나, 콜린 힐리는 킨을 대신하여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고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없었다.

이후 브라이언 커 (아일랜드 축구 감독)/브라이언 커영어 감독 하에 대표팀에 복귀하여 200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팀의 중심이 되어 활약했지만, 예선 탈락이 결정되자 다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006년 11월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를 계기로 매카시와의 화해를 상호 표명했다. 그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매카시가 선덜랜드 AFC의 선수 영입을 위해 킨에게 직접 전화로 문의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앙금을 풀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6. 3. 기타 논란

2002년에 출판한 자서전 『로이 킨: 영혼의 축구 인생』(원제 'Keane: The Autobiography')에서 2001년 4월 맨체스터 더비 당시 알프-잉게 홀란에게 고의적인 하드 태클을 가해 부상을 입혔다고 묘사하여 논란이 되었다.[218] 1997년 경기 중 홀란과 충돌 후 "과장되게 넘어지지 마라"는 말을 들었으나, 실제로는 십자 인대 파열로 약 1년을 허비했다. 킨은 훗날 이 묘사가 대필 작가에 의한 각색이라고 주장했다.

FA는 고의적인 위험 행위와 축구 선수로서의 품성을 잃은 자서전 출판을 이유로 5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15만 파운드의 처분을 내렸다. 킨은 "이 출장 정지 기간을 부상당한 엉덩이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218] 홀란은 이 태클로 입은 부상으로 약 2년 후 은퇴했다.[218]

지도자로서는 선수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한편, 외부에는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면모를 보였다. 2006-07 시즌 우승 후 "모든 선수가 칭찬받을 만한 활약을 했다"며 특정 선수를 꼽지 않는 등 현역 시절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FAI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2 FIFA 월드컵 당시 대표팀 선수단과 협회 간부의 좌석 등급 차이, 열악한 훈련 환경 등을 비판했다.[218] 2007년 3월에는 EURO2008 예선 웨일스전 소집 멤버에 대해 리암 밀러와 데이비드 코놀리가 소집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특히 남부 출신 선수들이 더블린 출신 협회 간부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220]

7. 수상 내역



| 선수 =


  • '''노팅엄 포레스트'''
  • * 풀 멤버스 컵: 1991–92


|#default =

}}

| =

  • 발롱도르 6위 : 1999
  • 맷 버스비 경 상 : 1999, 2000
  • PFA 올해의 팀 : 1992-93, 1996-97, 1999-00, 2000-01, 2001-02
  • PFA 세기의 팀 : 2007
  • PFA 올해의 선수 : 1999-00
  • FWA 올해의 선수 : 1999-00
  • ESM 올해의 팀 : 1999-00
  • RTE 올해의 운동선수 : 1999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 98년 10월, 99년 12월
  • 프리머어리그 10주년 기념 올스타 : 2002
  • 프리미어리그 20주년 기념 올스타 : 2012
  • 아일랜드 올해의 선수상 : 1997, 2001
  • 아일랜드 올해의 신인상 : 1993, 1994
  • 챔피언십 이 달의 감독 : 07년 2월, 3월
  • LMA 챔피언십 올해의 감독 : 2006-07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 2004
  •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 2021
  • 명예 법학박사 학위 : 2002
  • 올해의 코크인 : 2004
  • FIFA 100 : 2004


|#default =

}}

7. 1. 선수

로이 킨은 선수 시절 다음과 같은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다.

케인이 1999년 FA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장으로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


'''노팅엄 포레스트'''

  • 풀 멤버스 컵: 1991–9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셀틱'''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2005–06
  • 스코틀랜드 리그 컵: 2005–06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1992–93 프리미어리그, 1996–97 프리미어리그, 1999–2000 프리미어리그, 2000–01 프리미어리그, 2001–02 프리미어리그[159]
  • PFA 세기의 팀: (1907–2007)
  • *세기의 팀 1997–2007[160]
  • *세기의 팀 전체[161]
  • FAI 올해의 영 플레이어: 1993, 1994
  • FAI 올해의 시니어 국제 선수: 1997, 2001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1998년 10월, 1999년 12월[158]
  • 맷 버스비 경 올해의 선수: 1999, 2000[162]
  • RTÉ 올해의 스포츠 인물: 1999[163]
  • FWA 올해의 축구 선수: 2000
  •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2000
  • ESM 올해의 팀: 1999–2000
  • 프리미어리그 10 시즌 어워드: (1992–93 to 2001–02)[164]
  • *10년간의 해외팀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4
  • FIFA 100[4]
  • 프리미어리그 20 시즌 어워드: (1992–93 to 2011–12):[165]
  • *20 시즌의 판타지 팀 (패널 선택)
  •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2021[16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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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Roy Keane: When it all started for Roy http://rockmountfc.c[...] rockmountfc.com 2016-12-03
[3] 웹사이트 Most Decorated Footballers : Ireland : Honours : Trophies http://www.soccer-ir[...]
[4] 웹사이트 Pele's list of the greatest http://news.bbc.co.u[...] 2013-11-22
[5] 뉴스 A jolt of T&T sets Sunderland dancing to promotion tune http://football.guar[...] 2010-05-22
[6] 뉴스 Keane and Sunderland part company http://news.bbc.co.u[...] 2008-12-04
[7] 뉴스 Roy Keane sacked as Ipswich manager http://news.bbc.co.u[...] 2010-01-07
[8] 뉴스 Martin O'Neill and Roy Keane leave Ireland jobs by mutual agreement https://www.rte.ie/s[...] RTE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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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뉴스 The man behind the myth http://sport.scotsma[...] 2012-08-13
[17] 뉴스 When managers attack http://news.bbc.co.u[...] 2010-01-04
[18] 뉴스 Drop could spark Forest break-up https://news.google.[...] 201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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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뉴스 Football / FA Cup Final: Cantona's Doubletake: Rampant United realise the dream after Chelsea pay the penalty for missed chances https://www.independ[...] 2011-01-20
[23] 뉴스 Rideout's ticket to glory https://www.independ[...] 2010-01-20
[24] 뉴스 Underdogs Everton win FA Cup https://www.independ[...] 2011-01-20
[25] 뉴스 United carry on regardless to reach Wembley https://www.independ[...] 2011-01-20
[26] 뉴스 Keane to feel the full force of FA retribution https://www.independ[...] 2011-01-20
[27] 뉴스 Keane hit with fine after ban https://www.independ[...] 2011-01-20
[28] 뉴스 Inter land Ince and chase Cantona https://www.independ[...] 2011-01-20
[29] 뉴스 Football: Hughes' move to Chelsea criticised https://www.independ[...] 2011-01-20
[30] 뉴스 Kanchelskis to make debut for Everton https://www.independ[...] 2011-01-20
[31] 뉴스 Cantona the incomparable https://www.independ[...] 2011-01-20
[32] 뉴스 Football: United shocked by Tretschok https://www.independ[...] 2011-01-20
[33] 뉴스 Wasteful United stricken by Ricken https://www.independ[...] 2011-01-20
[34] 뉴스 Football: Cruyff's delight enlivens drudge match https://www.independ[...] 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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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뉴스 Birmingham & Sunderland promotion BBC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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