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나나리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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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타나나리보 주는 마다가스카르의 주였으며, 수도인 안타나나리보가 위치해 정치 및 상업 중심지였다. 이 주는 1946년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2009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폐지되었다. 과거에는 높은 문해율과 고용 기회를 제공했으며, 메리나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2001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적 혼란을 겪었으며, 디디에 라치라카,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등 저명한 정치인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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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나나리보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유형 | 주 |
수도 | 안타나나리보 |
행정 | |
국가 | 마다가스카르 |
ISO 3166-2 | MG-T |
웹사이트 | http://www.gov-antananarivo.mg/ |
지리 | |
면적 | 58,283 km² |
인구 통계 | |
총 인구 | 5,370,900명 (2004년)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2. 역사
안타나나리보 주는 주 의회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의회 의원들은 지역 주민들이 5년 임기로 선출했다. 의회는 주지사와 최대 12명의 총무위원으로 구성되었다. 이 주는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높은 문해율과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1997년 기준 문맹률은 34%였고, 약 30%는 중등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 국가 공무원의 약 42%가 이 주에서 근무했고, 주민의 3분의 2는 빈곤선 이상에서 생활했는데, 이는 수도가 이 주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안타나나리보 주는 "푸른 숲"이라 불리는 고원 지대에 위치했으며, 마다가스카르의 주요 정치 및 상업 중심지였다. 1946년 프랑스 식민 당국이 이 주를 설립했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빈곤층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1993년에는 마하장가 주만이 더 낮은 빈곤율을 보였으나, 이후 조사에서는 안타나나리보 주가 가장 높은 빈곤선 이상 인구 비율을 기록했다. 마다가스카르 전체 인구의 약 30%가 이 주에 거주했다. 2003년 국제통화기금 연구에 따르면, 이 주 가구의 약 92%가 식수를 이용할 수 있었다.
앙치라나나 주를 제외한 안타나나리보 주는 마다가스카르의 다른 모든 주와 국경을 접했다. 북쪽은 마하장가 주, 동쪽은 토아마시나 주, 남쪽은 피아나란초아 주, 서쪽은 톨리아라 주와 경계를 이뤘으며, 마다가스카르에서 유일하게 내륙에 위치한 주였다.
안타나나리보 주는 여러 차례 전염병 피해를 겪었다. 1924~25년과 1933~37년에는 심각한 전염병으로 650명이 사망했고, 1999~2000년 마하장가 주에서 발생한 콜레라 유행과 1987~88년 말라리아 유행으로 수도에서 여러 명이 사망했다.
2. 1. 2001년 대통령 선거와 정치적 혼란
이곳은 디디에 라치라카, 노르베르 라치라호나나,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등 저명한 정치인들의 고향이다.[1] 마르크 라발로마나나는 이 지역 만자칸드리아나 현의 이메린카시니나(Imerinkasinina) 마을에서 태어났으며,[1] 안타나나리보 시장을 역임한 후 대통령이 되었다. 이 지역은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크고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인 메리나족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한다. 2002년, 마르크 라발로마나나가 2001년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했다고 발표하자, 당시 대통령 디디에 라치라카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초기 선거 결과는 결선 투표가 필요함을 시사했고, 이는 심각한 정치적 긴장과 시위를 야기했다. 라치라카 대통령 지지 지역들은 안타나나리보주를 제외한 새로운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으며,[2] 해안 지역에서는 메리나족이 민족 폭력의 피해를 입었다. 라치라카는 암살 계획 소식이 알려지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2002년 4월, 마다가스카르 헌법재판소는 라발로마나나를 승자로 선언했고, 이후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국가에 평화가 회복되었다.[2]2. 2. 행정 구역 개편
2007년 마다가스카르 헌법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주(Province)들이 폐지되었고, 지역 개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22개의 더 작은 지역(faritra 또는 Region)이 설립되었다.[3] 이에 따라 안타나나리보 주는 아날람앙가, 봉골라바, 이타시, 바키난카라트라의 4개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2009년 주가 폐지되면서 이 4개 지역은 1차 행정구역이 되었고, 이들은 다시 20개의 현으로 세분되었다.
지역 | 현 |
---|---|
아날람앙가 (파란색) | |
봉골라바 (갈색) | |
이타시 (녹색) | |
바키난카라트라 (주황색) |
안타나나리보 주는 '푸른 숲'이라고 불리는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었다.[2]
3. 지리
이 주는 여러 차례 전염병의 피해를 입었다. 1924~25년과 1933~37년에 심각한 전염병으로 주 전체에서 650명이 사망했고,[3] 1999~2000년 마하장가 주에서 발생한 콜레라 유행과 1987~88년의 말라리아 유행 또한 안타나나리보 주에 영향을 미쳤다.[3]
3. 1. 위치
안타나나리보 주는 앙시라나나 주를 제외한 마다가스카르의 다른 모든 주와 국경을 접했다. 북쪽은 마하장가 주, 동쪽은 토아마시나 주, 남쪽은 피아나란초아 주, 서쪽은 톨리아라 주와 경계를 이루었다. 안타나나리보 주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주였다.
3. 2. 기후
남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안타나나리보 주는 4월부터 10월까지 겨울을, 나머지 기간에는 습한 여름을 경험한다.[1]
4. 행정 구역
안타나나리보 주는 2007년 마다가스카르 헌법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폐지되고, 지역 개발을 위해 22개의 더 작은 지역(faritra)이 설립되었다.[3] 안타나나리보 주는 아날라망가(Analamanga), 봉골라바(Bongolava), 이타시(Itasy), 바키난카라트라(Vakinankaratra)의 네 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2009년 주 폐지 이후 이 네 지역은 1차 행정구역이 되었고, 다시 20개의 현으로 세분되었다.
각 지역별 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지역 | 현 |
---|---|
아날라망가(Analamanga) | 암보히드라트리모(Ambohidratrimo), 안드라마시나(Andramasina), 안조조로베(Anjozorobe), 안카조베(Ankazobe), 안타나나리보 아치몬드라노(Antananarivo-Atsimondrano), 안타나나리보 아바라드라노(Antananarivo-Avaradrano), 안타나나리보 레니보히트라(Antananarivo-Renivohitra), 만자칸드리아나(Manjakandriana) |
봉골라바(Bongolava) | 페누아리보베(Fenoarivobe), 치로아노만디디(Tsiroanomandidy) |
이타시(Itasy) | 아리보니마모(Arivonimamo), 미아리나리보(Miarinarivo), 소아비난드리아나(Soavinandriana) |
바키난카라트라(Vakinankaratra) | 암바톨람피(Ambatolampy), 안타니포치(Antanifotsy), 안치라베(Antsirabe) 농촌, 안치라베(Antsirabe) 도시, 베타포(Betafo), 파라치호(Faratsiho), 만도토(Mandoto) |
4. 1. 아날라망가 지역 (Analamanga)
아날라망가(Analamanga)는 안타나나리보주를 구성하는 네 개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아래의 현들로 구성되어 있다.
- 암보히드라트리모 (2)
- 안드라마시나 (3)
- 안조조로베 (4)
- 안카조베 (5)
- 안타나나리보 아치몬드라노 (6)
- 안타나나리보 아바라드라노 (7)
- 안타나나리보 레니보히트라 (8)
- 만자칸드리아나 (16)
4. 2. 봉골라바 지역 (Bongolava)
봉골라바 지역은 갈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다음 두 현으로 구성된다.
- 15. 페누아리보베(Fenoarivobe)
- 19. 치로아노만디디(Tsiroanomandidy)
4. 3. 이타시 지역 (Itasy)
이타시 지역은 아리보니마모(Arivonimamo), 미아리나리보(Miarinarivo), 소아비난드리아나(Soavinandriana)로 구성된다.
번호 | 지역명 |
---|---|
12 | 아리보니마모(Arivonimamo) |
17 | 미아리나리보(Miarinarivo) |
18 | 소아비난드리아나(Soavinandriana) |
4. 4. 바키난카라트라 지역 (Vakinankaratra)
안타나나리보주는 마다가스카르의 네 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바키난카라트라(Vakinankaratra) 지역이다. 2009년 주가 폐지되면서 이 지역은 1차 행정구역이 되었다. 바키난카라트라 지역은 다음 현으로 구성된다.
번호 | 이름 |
---|---|
1 | 암바톨람피(Ambatolampy) |
9 | 안타니포치(Antanifotsy) |
10 | 안치라베(Antsirabe) 농촌 |
11 | 안치라베(Antsirabe) 도시 |
13 | 베타포(Betafo) |
14 | 파라치호(Faratsiho) |
20 | 만도토(Mandoto) |
5. 정치
안타나나리보 주는 주 의회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의회 의원들은 지역 주민들이 5년 임기로 선출했다. 의회는 주지사와 최대 12명의 총무위원으로 구성되었다.[1] 이 주는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높은 문해율을 자랑했고, 가장 많은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1997년 기준으로 인구의 34%만이 문맹이었고, 약 30%는 중등 교육까지 받았다.[2] 같은 해, 국가 공무원의 약 42%가 이 주에서 근무했고, 주민의 3분의 2는 빈곤선 이상의 생활을 했다. 이는 수도가 이 주에 위치했기 때문이다.[2]
이곳은 디디에 라치라카, 노르베르 라치라호나나,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등 저명한 정치인들의 고향 지역이다.[3] 마르크 라발로마나나는 이 지역 만자칸드리아나 현의 이메린카시니나(Imerinkasinina)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안타나나리보 시장을 역임한 후 대통령이 되었다. 이 지역은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크고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인 메리나족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했다.
2002년, 마르크 라발로마나나가 2001년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했다고 발표한 후, 당시 대통령 디디에 라치라카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초기 선거 결과는 결선 투표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이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긴장과 시위가 발생했다.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역들은 안타나나리보 주를 제외한 새로운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해안 지역에서는 메리나족이 민족 폭력의 피해를 입었다. 디디에 라치라카는 암살 계획 소식이 알려지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2002년 4월, 마다가스카르 헌법재판소는 마르크 라발로마나나를 승자로 선언했다. 이 발표 후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국가에는 평화가 회복되었다.
6. 경제
안타나나리보 주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문해율이 가장 높고 고용 기회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2] 1997년 기준으로 인구의 34%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없었고, 약 30%는 중등 교육을 받았다.[2] 같은 해, 국가 공무원의 약 42%가 이 주에서 근무했으며, 주민의 3분의 2는 빈곤선 이상에서 생활했다. 이는 수도가 이 주에 위치했기 때문이다.[2] 안타나나리보 주는 마다가스카르의 가장 중요한 정치 및 상업 중심지였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빈곤층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1993년에는 마하장가 주만이 47.9%의 빈곤율로 더 나은 수치를 보였다. 이후 모든 조사에서 안타나나리보 주는 빈곤선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았다. 마다가스카르 전체 인구의 약 30%가 이 주에 거주했다. 2003년 국제통화기금 보고서에 따르면 이 주 가구의 약 92%가 식수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연도 | 빈곤층 비율 |
---|---|
1993년 | 63.4% |
1997년 | 61.8% |
1999년 | 57.1% |
2001년 | 48.3% |
7. 주민
안타나나리보 주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문해율이 가장 높고, 고용 기회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1997년 기준으로 인구의 34%만이 문맹이었고, 약 30%는 중등 교육을 받았다.[2] 같은 해, 국가 공무원의 약 42%가 이 주에서 근무했으며, 주민의 3분의 2는 빈곤선 이상에서 생활했다. 이는 수도가 이 주에 위치했기 때문이다.[2]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빈곤층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여, 1993년 63.4%에서 2001년 48.3%가 되었다. 1993년에는 마하장가 주만이 47.9%의 빈곤율로 더 나은 수치를 보였으나, 이후 모든 조사에서 안타나나리보 주는 빈곤선 이상 인구 비율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마다가스카르 전체 인구의 약 30%가 이 주에 거주했다. 2003년 국제통화기금 보고서에 따르면, 이 주 가구의 약 92%가 식수를 이용할 수 있었다.
8. 주요 도시
- 안타나나리보
- 안시라베
- 치로아노만디디
- 미아리나리보
참조
[1]
웹사이트
Ravalomanana le PDG de la République
http://www.jeuneafri[...]
Jeune Afrique
2007-01-15
[2]
뉴스
Madagascar : Timeline
http://news.bbc.co.u[...]
2011-06-21
[3]
뉴스
Initial result shows "Yes" to revision of constitution in Madagascar
http://english.peopl[...]
200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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