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세 1세 모체니고
1. 개요
알비세 1세 모체니고는 1577년 11월 27일 목을 매 자살한 인물이다. 독실한 신자였지만, 어린아이들과는 잘 어울리는 반면 성인들과는 소통이 적어 우울증을 겪었다는 평이 있다. 그는 역대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묻혔으며,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알비세 1세 모체니고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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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세 1세 모체니고의 초상
| 재임 시작 | 1570년 5월 11일 |
|---|---|
| 재임 종료 | 1577년 6월 4일 |
| 이전 | 피에트로 로레단 |
| 다음 |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 |
개인 정보
| 출생 | 1507년 |
|---|---|
| 사망 | 1577년 6월 4일 |
| 배우자 | 라우레타 에리초 |
| 자녀 | 레오나르도 모체니고, 조반니 모체니고, 마르게리타 모체니고, 엘레나 모체니고 |
가문
| 가문 | 모체니고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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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마지막과 죽음
알비세 1세 모체니고는 1577년 11월 27일에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어린 아이들과는 많이 이야기하고 웃었던 반면 성인들과는 거의 대화하지 않아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2.1. 죽음
알비세 1세 모체니고는 1577년 11월 27일에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하였다. 독실한 신자였던 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린 아이들과는 많이 이야기하고 웃었지만 성인들과 있을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역대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묻혔다.
2.2. 사후
그는 1577년 11월 27일에 목을 매 자살하였다. 그의 시신은 역대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