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세 1세 모체니고
1. 개요
알비세 1세 모체니고는 1577년 11월 27일 목을 매 자살한 인물이다. 독실한 신자였지만, 어린아이들과는 잘 어울리는 반면 성인들과는 소통이 적어 우울증을 겪었다는 평이 있다. 그는 역대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묻혔으며,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알비세 1세 모체니고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알비세 1세 모체니고의 초상
| 재임 시작 | 1570년 5월 11일 |
|---|---|
| 재임 종료 | 1577년 6월 4일 |
| 이전 | 피에트로 로레단 |
| 다음 |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 |
개인 정보
| 출생 | 1507년 |
|---|---|
| 사망 | 1577년 6월 4일 |
| 배우자 | 라우레타 에리초 |
| 자녀 | 레오나르도 모체니고, 조반니 모체니고, 마르게리타 모체니고, 엘레나 모체니고 |
가문
| 가문 | 모체니고 가문 |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모체니고가 -
조반니 모체니고
조반니 모체니고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명문가 출신 정치인이자 제70대 도제로서, 외교관, 행정관 등 다양한 공직을 역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고, 도제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페라라 전쟁에서 승리했다. -
모체니고가 -
피에트로 모체니고
피에트로 모체니고는 15세기 베네치아 해군 제독으로, 해군 재건, 스미르나 점령, 키프로스 공화국 편입, 슈코더르 공방전 승리 등 군사적 업적을 남겼다. -
1577년 사망 -
공빈 김씨
조선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는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고 선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궁들과의 갈등과 산후병으로 사망하여 광해군 즉위 후 왕후로 추존되었다가 인조반정 이후 빈으로 강등되었으며, 그녀의 묘소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1577년 사망 -
에리크 14세
에리크 14세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1세 바사의 맏아들로, 외국어와 학문에 능통했으나 귀족과의 갈등, 정신 질환, 동생에게 폐위된 후 독살되었으며, 발트해 팽창 정책을 펼쳤다. -
1507년 출생 -
사토미 요시타카
사토미 요시타카는 센고쿠 시대의 무장으로, 부친의 사망 후 가독을 상속받아 호조 가문과 대립하며 간토 지방에서 세력을 확장하다가 아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퇴 후 사망했다. -
1507년 출생 -
알탄 칸
알탄 칸은 16세기 몽골의 지배자로서 투메트부를 다스리고 명나라와 교역을 시도하다 베이징을 공격하고 화의를 맺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몽골에 부흥시키고 후허하오터를 건설하는 등 몽골의 종교적, 사회적 통합에 기여했다.
2. 생애 마지막과 죽음
알비세 1세 모체니고는 1577년 11월 27일에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어린 아이들과는 많이 이야기하고 웃었던 반면 성인들과는 거의 대화하지 않아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2.1. 죽음
알비세 1세 모체니고는 1577년 11월 27일에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하였다. 독실한 신자였던 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린 아이들과는 많이 이야기하고 웃었지만 성인들과 있을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역대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묻혔다.
2.2. 사후
그는 1577년 11월 27일에 목을 매 자살하였다. 그의 시신은 역대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