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
1. 개요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는 1496년경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베네치아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변호사로 일하다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관리로 활동했으며, 1570년에는 베네치아 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레판토 해전에서 베네치아 지원대를 지휘하여 승리에 기여했고, 1577년 도제에 선출되었다. 1578년 사망하여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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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에르가 -
안토니오 베니에르
안토니오 베니에르는 1679년 베니스에서 태어나 1761년 도제로 선출되어 1762년 사망할 때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치했다. -
베니에르가 -
프란체스코 베니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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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년대 출생 -
페드로 데 알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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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년대 출생 -
바르톨로메오 베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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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8년 사망 -
우에스기 겐신
우에스기 겐신은 전국시대 에치고의 무장으로, 나가오 가게토라에서 우에스기 가문을 계승하여 에치고 통일, 간토 진출, 다케다 신겐과의 가와나카지마 전투, 간토 관령으로서의 호조 가문과의 대립, 오다 노부나가와의 충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급사 후 우에스기 가문은 쇠퇴하였다. -
1578년 사망 -
이지함
이지함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사회 사상가로, 서경덕에게 학문을 배우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며 유랑 학자로서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고 관직에 나아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으며, 실학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2. 생애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는 1496년경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변호사와 베네치아 공화국의 관리로 일했다. 1570년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에서 베네치아 함대 총사령관이 되었고, 레판토 해전에서 베네치아 함대를 이끌고 기독교 동맹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1577년 81세의 나이로 도제에 선출되었으며, 1578년에 사망하여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안치되었다.
2.1. 초기 생애
베니에르는 1496년경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모이세 베니에르(Moisè Venier)와 엘레나 도나(Elena Donà)의 아들이며, 추안 프란체스코 베니에르의 조카였다. 그는 모이세 베니에르(1412년경 ~ 1476년경)의 친손자였으며, 체리고 총독 피에트로 베니에르의 고손자였다.
그는 공식적인 자격 없이 젊은 시절 변호사로 일했고,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의 관리로 일했다.
2.2. 경력
베니에르는 젊은 시절 정식 자격 없이 변호사로 일했고,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의 관리로 일했다. 1570년 베네치아 정부의 지사가 되었고, 같은 해 12월 오스만 튀르크와의 새로운 전쟁에서 베네치아 함대의 총사령관(capitano generale da mar)이 되었다.
레판토 해전에서 베네치아 지원대의 사령관이었으며, 기독교 동맹군은 이 해전에서 튀르크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강화 조약 후, 베네치아로 돌아와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1577년 81세의 나이에 만장일치로 도제에 선출되었다.
2.3. 도제 선출과 죽음
베니에르는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한 후 베네치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1577년 81세의 나이로 만장일치로 도제에 선출되었다.
그는 체칠리아 콘타리니와 결혼하여 딸 엘레나 베니에르를 낳았다. 그는 또한 두 명의 사생아 아들, 필리포와 마르코가 있었다. 베니에르는 나중에 필리포에게 교회 봉사직을 제공했고, 마르코는 관청의 관리인이 되어 달마티아에서 직책을 맡았다.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는 1578년 3월 3일에 사망했다. 그는 1568년 유언에서 표현한 대로, 가족 묘지 대신 무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1907년에 그의 유해는 도제들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으로 옮겨졌다.
3. 가족 관계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는 베네치아의 모이세 베니에르(Moisè Venier)와 엘레나 도나(Elena Donà)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추안 프란체스코 베니에르의 조카였다. 그는 모이세 베니에르(ca. 1412 - ca. 1476)의 친손자이자, 체리고 총독 피에트로 베니에르의 고손자였다.
세실리아 콘타리니와 혼인하여, 딸 엘레나 베니에르(Elena Venier)와 아들 프란시스코 베니에르(Francisco Venier)를 두었다. 프란시스코 베니에르는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는 사촌인 니콜로 베니에르의 딸이자 이슬람교로 개종 후 누르바누 술탄으로 알려진 세실리아 베니에르바포(Cecilia Venier-Baffo)와 먼 친척 관계일 가능성이 있다. 쉴레이만 1세는 록셀라나의 즉위를 막기 위해 1536년에 니콜로로부터 그녀를 넘겨받았다. 세실리아는 셀림 2세의 아내가 되었고, 무라트 3세의 어머니가 되면서 이후 술탄들은 그녀의 후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