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허시
1. 개요
앨프리드 허시는 미국의 세균학자이자 유전학자로, 1969년 바이러스 복제 메커니즘과 유전 구조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박테리오파지 연구에 몰두했다. 막스 델브뤼크, 살바도르 루리아와 함께 파지 그룹을 형성하여 유전적 재조합 현상을 발견했으며, 마사 체이스와 함께 수행한 허시-체이스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 물질임을 밝혀냈다. 1962년 카네기 연구소 유전학부 부장이 되었으며, 199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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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Alfred Day Hershey |
|---|---|
| 출생일 | 1908년 12월 4일 |
| 출생지 | 미국 미시간주 오워쏘 |
| 사망일 | 1997년 5월 22일 |
| 사망지 | 미국 뉴욕주 사이오셋 |
| 국적 | 미국 |
| 분야 | 세균학 유전학 DNA |
|---|---|
| 연구 기관 |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
| 모교 | 미시간 주립 대학교 |
| 주요 업적 | 생명의 유전 물질로서 DNA 증명 |
| 수상 내역 | 앨버트 래스커 기초 의학 연구상 (195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1969년) |
|---|---|
| 노벨상 수상 정보 | 바이러스의 복제 메커니즘과 유전적 구조에 관한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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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대학교 세인트루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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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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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초기
앨프리드 허시는 1908년 미시간주 오와소에서 로버트 데이 허시와 알마 윌버 허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서 1930년 화학 학사 학위를, 1934년 세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4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에서 세균학 및 면역학 강사로 재직했다.
3. 박테리오파지 연구
워싱턴 대학교에서 허시는 학과장 자크 브론펜브레너와 긴밀히 협력하여 세균 내에서 감염되고 복제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연구했다. 바이러스가 표적을 감염시키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허시의 연구는 동료 파지 연구자인 막스 델브뤼크와 살바도르 루리아의 주목을 받게 했다.
3.1. 파지 그룹
1943년, 막스 델브뤼크는 앨프리드 허시를 밴더빌트 대학교로 초청하여 그의 파지 연구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살바도르 루리아와 함께 "파지 그룹"이라 불리는 연구자들의 비공식 네트워크의 핵심을 형성했다.
3.2. 유전적 재조합 발견
1946년, 허시와 막스 델브뤼크는 서로 다른 균주의 박테리오파지가 동일한 세균 세포를 감염시킬 때 유전 물질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을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허시는 이 과정을 "유전적 재조합"이라고 칭했다.
3.3. 허시-체이스 실험 (1952년)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전신인 카네기 워싱턴 연구소(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유전학과에서, 1952년 마사 체이스와 함께 유명한 허시-체이스 실험(일명 '와링 블렌더'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은 유전 정보를 가진 주체가 단백질이 아닌 DNA라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4. 노벨상 수상 및 이후 활동
1962년, 허시는 카네기 연구소 유전학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69년, "바이러스의 복제 메커니즘과 유전 구조에 관한 발견"에 대한 공로로 막스 델브뤼크, 살바도르 루리아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1971년, 세균성 파지에 대한 저서 The Bacteriophage λ를 편집하여 출판했다. 1981년, 세계 문화 위원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5. 사망 및 유산
앨프리드 허시는 1997년 5월 22일, 뉴욕주 로럴 할로우 자택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88세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해리엇 데이비슨(1918–2000)과 외아들 피터 매닝 허시(1956–1999)가 있었다.
허시의 사망 이후, 동료 과학자 프랭크 스톨은 파지 그룹을 '파지 교회'라고 칭하며, "델브뤽은 교황과 같은 권위를 가진 설립자였고, 루리아는 열심히 일하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제이자 고해 신부였으며, 허시는 성인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는 허시가 허시-체이스 실험을 통해 유전물질에 대한 이해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등 유전학 및 분자생물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