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포르타
1. 개요
엔리케 포르타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는 SD 우에스카에서 1967-68 시즌에 34골을 기록한 후 그라나다 CF에 입단하여 1971-72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라나다 소속으로 유일하게 득점왕에 오른 선수이며, 레알 사라고사, 테라사 FC에서 선수 생활을 한 후 1978년에 은퇴했다. 그라나다의 홈 구장 정문과 고향의 구장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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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사도 출신 -
프란시스코 고야
스페인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는 궁정 화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청력을 잃은 후 사회 비판적인 작품과 어두운 화풍으로 인간 내면을 탐구하며 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쳐 '마지막 거장'이자 '최초의 현대 미술가'로 평가받는다. -
사라고사도 출신 -
마르티알리스
마르티알리스는 1세기 로마 제국 시대에 활동한 히스파니아 출신의 시인으로, 풍자적인 내용의 에피그램을 주로 썼으며,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
테라사 FC의 축구 선수 -
미겔 에르난데스 산체스
미겔 에르난데스 산체스는 (관련 내용, 관련 주제, 추가 정보, 추가 자료)와 관련된 인물 또는 주제이다. -
테라사 FC의 축구 선수 -
후아넬레
후아넬레는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동하며 스포르팅 히혼, CD 테네리페, 레알 사라고사 등에서 뛰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축구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
아라곤주 출신 축구 선수 -
헤수스 바예호
헤수스 바예호는 레알 사라고사 유소년팀 출신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여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스페인 출신 중앙 수비수이며,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에서 U-19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U-21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및 준우승 등을 기록했다. -
아라곤주 출신 축구 선수 -
루이스 미야
루이스 미야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스페인 U-21 대표팀에서 감독으로 활약하며 라리가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한 스페인의 축구인이다.
2. 클럽 경력
엔리케 포르타는 우에스카에서 1967-68 시즌 34골을 기록하며 데뷔한 후, 라 리가의 그라나다, 사라고사, 테라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라나다 소속으로 처음 3년 동안은 총 12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넣는 데 그쳤으나, 1971-72 시즌에는 31경기에서 20골(페널티 골 제외)을 기록하여 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했고, 1972-73 시즌에도 11골을 기록했다.
1975년 사라고사로 이적했고, 1976-77 시즌 팀이 강등된 후 테라사에서 1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2.1. 초기 경력
사라고사 도 비야누에바 데 가예고 출신인 포르타는 고향 아라곤을 연고로 하는 테르세라 디비시온의 우에스카 소속으로 1967-68 시즌에 신고식을 치러 34골을 기록했다. 그 후, 라 리가의 그라나다에 입단했다.
2.2. 그라나다 CF 시절
사라고사 도 비야누에바 데 가예고 출신인 포르타는 아라곤를 연고로 하는 테르세라 디비시온의 우에스카 소속으로 1967-68 시즌에 34골을 기록하며 데뷔하였고, 이후 라 리가의 그라나다에 입단했다.
그라나다 소속으로 처음 3년 동안은 총 12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넣는 데 그쳤는데, 이 골은 1970년 9월 20일 에스파뇰과의 안방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1971-72 시즌에는 31번의 경기에서 페널티 골 없이 20골을 기록하여 트로페오 피치치의 주인공이 되었고, 안달루시아 연고 구단은 역대 최고 성적인 6위에 올랐다. 1971년 11월 14일 사바델과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완성하여 3-1 승리를 이끌었으며, 포르타는 현재까지 그라나다 선수 중 유일한 득점왕이다.
1972-73 시즌에도 11골을 기록했는데, 1973년 2월 11일 오비에도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는 1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3. 레알 사라고사 이적과 은퇴
1975년 여름, 포르타는 라리가의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1976-77 시즌에 사라고사가 강등되면서, 포르타는 세군다 디비시온의 테라사에서 마지막 1년을 보냈다. 그는 테라사에서 28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1977-78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영향
2015년 5월, 그라나다 CF의 홈구장인 누에보 로스 카르메네스 정문은 포르타의 업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그의 고향 비야누에바의 경기장 또한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