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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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더우드관은 연세대학교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건물이다. 1921년에 착공하여 1925년에 준공되었으며, 연희캠퍼스 내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헨리 머피가 설계하고, 화학과 교수 밀러가 공사 감독을 맡았다. 백양로의 중심에 위치하며, 좌우에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이 자리하여 캠퍼스의 시각적 정점을 이룬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내부와 지붕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으며,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의 중심 건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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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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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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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서울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
로마자 표기 | Seoul Yonsedaehakgyo Underwoodgwan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276 |
지정일 | 1981년 9월 25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
소유 | 연세대학교 |
면적 | 692m² |
시대 | 일제강점기(1925년) |
문화재청 ID | 13,02760000,11 |
2. 역사
언더우드관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Chosun Christian College)을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건물이다. 연희캠퍼스에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석조 건물로, 1921년 10월에 착공하여 1925년 6월에 준공되었다.[1]
건축 당시에는 '학관' 또는 '문학관'으로 불렸으며, 설계는 헨리 머피(Henry Killian Murphy)가, 공사 감독은 화학과 교수 밀러(E. H. Miller)가 맡았다. 연희전문학교 초대 교장 올리버 에비슨은 언더우드의 아들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에게 초석을 놓게 했다.[1]
건물 앞 정원은 하늘에서 보면 미국(米國)의 미 자 형, 혹은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Union Jack) 모양으로 구획되었다는 해석이 있다.[1]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내부와 지붕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 20세기 초 대표적인 대학 캠퍼스인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의 중심 건물이면서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1]
2. 1. 건립 배경
언더우드관은 연세대학교 설립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ko|원두우(元杜尤)|영어 1859년 ~ 1916년)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1] 언더우드는 1885년 한국에 와서 1915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Chosun Christian College)을 설립하는 등 선교와 교육사업에 헌신하였다. 그러다 건강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가 1916년에 사망하였다.[1]이 건물은 '학관' 또는 '문학관'으로도 불리며, 연희캠퍼스에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1] 연희전문학교 초대 교장인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ko|어비신(魚丕信)|영어 1860년 ~ 1956년)은 언더우드의 아들인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ko|원한경(元漢慶)|영어 1890년 ~ 1951년)에게 건물 초석을 놓게 했다.[1]
건물 설계는 헨리 머피(Henry Killian Murphy)가, 공사 감독은 화학과 교수 밀러(E. H. Miller)가 맡았다.[1] 1921년 10월 스팀슨관 준공 후 착공하여 1925년 6월 완공되었으며, 지상 3층(중앙탑 5층), 건축면적 693.4m2 규모였다.[1] 건물은 초기 캠퍼스 계획의 중심축인 백양로 끝에 위치하며, 좌우에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이 있어 캠퍼스 내 시각적 중심을 이룬다.[1]
2. 2. 건축 과정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영어, 원두우한국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건물로, 학관(學館) 또는 문학관이라고도 불린다.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1]1921년 10월에 착공하여 1925년 6월에 준공되었으며, 설계자는 헨리 머피(Henry Killian Murphy)이고, 공사 감독관은 화학과 교수 밀러(E. H. Miller)였다. 연희전문학교 초대 교장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영어, 어비신한국어)은 언더우드의 아들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영어, 원한경한국어)에게 초석을 놓게 했다.[1]
건물 규모는 지상 3층(중앙탑 5층), 건축면적 693.4m2였다. 초기 마스터플랜 상 중심축인 백양로 종점에 위치하며, 좌우에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이 있어 캠퍼스 내 시각적 정점을 형성한다. 건물 앞 정원은 하늘에서 보면 미국(米國)의 미 자 형, 혹은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Union Jack) 모양으로 구획되었다는 해석이 있는데, 이는 학교 초대 교장 언더우드와 2대 교장 에비슨이 모두 영국 출신 미국/캐나다 이민자였다는 공통점이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1]
전체적인 건축 특징은 스팀슨관과 유사하다. 좌우대칭의 장방형 평면에 백양로 축과 일치하는 5층 높이 중앙탑, 전면 좌우 측 베이 윈도(bay window)를 설치하여 기념성을 높였다. 외벽은 넓은 창과 장식 없는 석조 외벽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었다. 주 외장 재료는 주변 산에서 채취한 흑록색 운모편암석(거친 마감)이며, 창문 테두리는 다듬은 화강암, 주 출입구 1층에는 튜더 아치(tudor arch)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박공지붕에 슬레이트 마감, 목조 트러스 구조로 추정된다.[1]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소실되어 내부와 지붕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1]
2. 3. 건축적 특징
스팀슨관과 유사하게, 좌우대칭의 단순한 장방형 평면을 가지며 백양로 축과 5층 높이의 중앙탑을 일치시키고, 전면 좌우 측에 베이 윈도(bay window)를 설치하여 기념성을 높였다. 외벽은 넓은 창과 장식이 없는 석조로 단순하게 처리되었다. 주 외장 재료는 주변 산에서 채취한 흑록색 운모편암을 거친 마감 상태로 사용하였고, 창문 테두리는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주 출입구 1층에는 튜더 아치(tudor arch)가 사용되었다. 지붕은 박공지붕에 슬레이트 마감으로, 목조 트러스 구조로 추정된다.[1]1950년 한국 전쟁으로 소실되어 내부와 지붕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의 중심 건물이자 20세기 초 대표적인 대학 캠퍼스 건물로서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
2. 4. 한국 전쟁과 복구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건물 내부와 지붕부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의 중심 건물이면서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1]3. 역사적 가치
언더우드관은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건물이다. 1921년 10월에 착공하여 1925년 6월에 준공되었으며,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에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1] 설계자는 헨리 머피(Henry Killian Murphy)이며, 공사 감독관은 화학과 교수 밀러(E. H. Miller)였다.[1]
건물은 백양로 축 상에 5층 높이의 중앙탑을 배치하고, 전면 좌우 측에 베이 윈도(bay window)를 설치하여 기념성을 높였다. 외벽은 넓은 창과 장식이 없는 석조로 단순하게 처리되었으며, 주변 산에서 채취한 흑록색 운모편암석을 거친 마감 상태로 사용하였다. 창문 테두리는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했고, 주 출입구 1층에는 튜더 아치(tudor arch)를 사용하였다.[1]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내부와 지붕부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1] 20세기 초 대학 캠퍼스의 중심 건물로서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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