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남경대
1. 개요
영양 남경대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5호로 지정된 정자이다.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반변천변의 구릉 위에 위치하며, 영남학파 학맥의 중심지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동 권씨 3대에 걸쳐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영남 사림과의 교류 및 향촌 사회 네트워크 구축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건물은 1993년에 중건되었으며,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중당협실형 구조에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린 목조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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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의 문화유산 -
약천정
약천정은 조선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남구만이 1695년에 고향 옥천에 지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쓴 정자로,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옥천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
영양군의 문화유산 -
영양 한양 조씨 사월 종택
영양 한양 조씨 사월 종택은 1602년 조임이 건립한 조선 시대 고택으로, ㄷ자형 안채와 ㄱ자형 월담헌이 尸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 주택의 변화 과정과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국가민속문화재이다. -
영양군의 건축물 -
약천정
약천정은 조선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남구만이 1695년에 고향 옥천에 지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쓴 정자로,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옥천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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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한양 조씨 사월 종택
영양 한양 조씨 사월 종택은 1602년 조임이 건립한 조선 시대 고택으로, ㄷ자형 안채와 ㄱ자형 월담헌이 尸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 주택의 변화 과정과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국가민속문화재이다. -
대한민국의 누정 -
보신각
보신각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루에서 유래하여 고종이 이름을 내린 종각으로, 현재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어 매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며 한국 전통 범종의 의미를 공유한다. -
대한민국의 누정 -
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은 조선 정조가 수원 현륭원에 행차할 때 쉬어가기 위해 건립된 목조 단청 기와집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 역사
2.1. 건립과 중건
2.2. 영남학파와의 관계
3. 건축
3.1. 위치 및 경관
4. 지정 문화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지정 사유 ===
영양 남경대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반변천변의 나지막한 구릉 위에 세워진 정자로, 영남학파 학맥의 중심지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동 권씨 3대에 걸쳐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그리고 영남 사림과의 교류 및 향촌 사회 네트워크 구축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남경대는 권지(權誌)가 창건하고, 아들 권창업(權昌業)이 별서(別墅)로 삼았으며, 손자 권태시(權泰時)가 중건하여 강학처로 삼았다. 특히 권창업·태시 부자는 퇴계학통에 연결되는 영남학파의 일원으로서 남경대를 유수한 영남사림과 교유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또한 "약계"를 조직하여 유력 향중 인사들과 함께 남경대에서 계회를 개최하는 등 인적 네트워크 운영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916년에 중건되었고, 1993년에 다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3년에 중건된 남경대는 세부 구성에서 부분적으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규모 및 위치, 주변 공간의 구성 등은 1916년 중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반변천과 동산천이 합수하는 지점의 언덕 위에 위치하여 주변 풍광이 수려하고, 송림이 둘러싸여 있어 학문 연구와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였다.
=== 지정 내역 ===
정식 명칭은 영양 남경대 (英陽 攬景臺)이다. 1993년에 중건된 목조 건물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 명칭 | 재료 | 구조·형식·형태 | 규격 | 수량 |
|---|---|---|---|---|
| 남경대 | 목조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3칸, 측면 1.5칸 | 1동 |
4.1. 지정 사유
영양 남경대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반변천변의 나지막한 구릉 위에 세워진 정자로, 영남학파 학맥의 중심지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동 권씨 3대에 걸쳐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그리고 영남 사림과의 교류 및 향촌 사회 네트워크 구축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남경대는 권지(權誌)가 창건하고, 아들 권창업(權昌業)이 별서(別墅)로 삼았으며, 손자 권태시(權泰時)가 중건하여 강학처로 삼았다. 특히 권창업·태시 부자는 퇴계학통에 연결되는 영남학파의 일원으로서 남경대를 유수한 영남사림과 교유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또한 "약계"를 조직하여 유력 향중 인사들과 함께 남경대에서 계회를 개최하는 등 인적 네트워크 운영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916년에 중건되었고, 1993년에 다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3년에 중건된 남경대는 세부 구성에서 부분적으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규모 및 위치, 주변 공간의 구성 등은 1916년 중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반변천과 동산천이 합수하는 지점의 언덕 위에 위치하여 주변 풍광이 수려하고, 송림이 둘러싸여 있어 학문 연구와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