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미나예프
1. 개요
예브게니 미나예프는 소련의 역도 선수이다. 미나예프는 1956년 올림픽에서 은메달, 1960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57년과 196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는 또한 7번의 소련 전국 선수권 대회 우승, 3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기록했다. 선수 경력 동안 13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선수 은퇴 후에는 방황하다 1993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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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예브게니 가브릴로비치 미나예프 |
|---|---|
| 로마자 표기 | Yevgeny Gavrilovich Minayev |
| 국적 | 소련 |
| 출생일 | 1933년 5월 21일 |
| 출생지 |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모스크바 주, 클린스키 군, 클린 |
| 사망일 | 1993년 12월 8일 (향년 60세) |
| 사망지 | 러시아, 모스크바 주, 클린 |
| 키 | 1.65m |
| 몸무게 | 75kg |
| 스포츠 | 역도 |
| 소속 클럽 | 소련 육군 |
| 올림픽 | 1960년 하계 올림픽 |
|---|---|
| 메달 | True |
| 메달 템플릿 |
| 로마 1960 | 금메달 (-60kg) |
|---|---|
| 멜버른 1956 | 은메달 (-60kg) |
| 테헤란 1957 | 금메달 (-60kg) |
|---|---|
| 부다페스트 1962 | 금메달 (-60kg) |
| 스톡홀름 1958 | 은메달 (-60kg) |
| 빈 1961 | 은메달 (-60kg) |
-
1956년 하계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 -
김성집 (역도 선수)
김성집은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 2회 연속 메달을 획득하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은퇴 후 체육계 요직을 맡아 한국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
1956년 하계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 -
김창희 (역도 선수)
김창희는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이자 지도자로, 1948년 런던 올림픽 6위,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동메달, 1954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은퇴 후에는 역도 국가대표팀 코치 및 감독, 대한역도연맹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역도 발전에 기여했다. -
소련의 남자 역도 선수 -
유리 바르다냔
아르메니아 출신 역도 선수이자 정치인인 유리 바르다냔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 세계 선수권 7회 우승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은퇴 후에는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
소련의 남자 역도 선수 -
라파옐 치미시캰
라파옐 치미시캰은 1929년 조지아 출신의 역도 선수로, 1952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하여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2연패, 유럽 역도 선수권 대회 6회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으며, 은퇴 후 국제 역도 심판으로 활동했다. -
소련의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 -
유리 바르다냔
아르메니아 출신 역도 선수이자 정치인인 유리 바르다냔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 세계 선수권 7회 우승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은퇴 후에는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
소련의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 -
라파옐 치미시캰
라파옐 치미시캰은 1929년 조지아 출신의 역도 선수로, 1952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하여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2연패, 유럽 역도 선수권 대회 6회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으며, 은퇴 후 국제 역도 심판으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예브게니 미나예프는 소련군 복무 중 역도 훈련을 시작했다. 1956년 소련 선수권 대회에서 프레스 부문 세계 기록을 세웠지만, 종합 4위에 머물렀다. 선수 경력 동안 총 13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2.1. 올림픽
미나예프는 1956년 올림픽에 예비 선수로 선발되어 아이작 버거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60년 올림픽에서는 9시간의 격전 끝에 아이작 버거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2.2. 세계 선수권 대회
미나예프는 1958년과 196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아이작 버거에게 져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1957년과 196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우승했다.
3. 선수 은퇴 이후
미나예프는 반항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코치의 지도를 거부했고, 종종 국가대표팀 훈련에 불참했다. 그 결과, 전국 챔피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중반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되었다. 1966년에 은퇴한 그는 잠시 역도 코치로 일하다가 고향 클린으로 돌아가 농장과 기계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했다. 모스크바에 차와 아파트, 가족을 남겨두었지만, 1993년 12월 클린 거리에서 노숙자로 지내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