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촌 (니가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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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다촌 (니가타현)은 1889년 4월 1일에 성립하여, 1901년 시모이타쿠라촌, 야마토촌, 오쿠라촌, 쿠니아케촌을 합병하여 재발족한 일본 니가타현 나카쿠비키군에 속했던 촌이다. 1927년 폭설로 신에쓰 본선 열차가 멈추고 주민들이 고립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54년 아라이정 등과 합병하여 아라이시가 발족했고, 1955년 다카다시에 편입되면서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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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촌 (니가타현)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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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자치체 명칭 | 와다촌 |
한자 표기 | 和田村 |
요미가나 | 와다무라 |
행정 구역 | 촌 |
폐지일 | 1955년 2월 1일 |
폐지 이유 | 분할 편입 |
폐지 상세 | 가스가촌, 스와촌, 쓰아리촌, 산고촌, 와다촌(일부) → 다카다시 와다촌(일부) → 아라이시 |
현재의 자치체 | 조에쓰시 묘코시 |
행정 | |
도도부현 | 니가타현 |
군 | 나카쿠비키군 |
인접 자치체 | 이타쿠라촌, 산고촌, 다카다시, 아라이시 |
기타 정보 | |
위치 | 나카쿠비키군 와다촌 |
2. 역사
와다촌은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처음 성립되었으며, 1901년 주변의 시모이타쿠라촌, 야마토촌, 오쿠라촌, 쿠니아케촌과 합병하여 새롭게 발족하였다. 1927년에는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신에쓰 본선 운행이 중단되고 주민들이 고립되는 등 큰 피해를 겪기도 했다.[1] 이후 1954년과 195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근 지역에 편입되었는데, 먼저 일부 지역이 아라이정 등과 합병하여 아라이시가 되었고, 이듬해 나머지 지역도 아라이시와 다카다시에 각각 분할 편입되면서 와다촌은 폐지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연혁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1. 연혁
- 1889년 4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의해 나카쿠비키군 와다촌이 성립하였다.
- 1901년 (메이지 34년) 11월 1일 - 나카쿠비키군 시모이타쿠라촌, 야마토촌, 오쿠라촌 및 쿠니아케촌이 합병하여, 나카쿠비키군 '''와다촌'''이 새롭게 발족하였다.
- 1927년 (쇼와 2년) 2월 - 8일경부터 내린 폭설로 인해 신에쓰 본선 열차가 각 역에서 운행을 멈추었다. 특히 와키노다역(현 조에쓰묘코역)에서는 약 400명이 고립되었으며, 13일에는 적설량이 2장 5척(약 7.5m)에 달해 급식용 식량은 물론 마을 전체의 식량도 부족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1]
- 1954년 (쇼와 29년) 11월 1일 - 나카쿠비키군 아라이정, 야시로촌, 히다촌, 토리사카촌, 미즈카미촌, 이즈미촌, 가미고촌, 히라마루촌 및 와다촌의 일부(오아자 야나이다, 쿠리하라, 츠키오카, 쿠니가)가 합병하여 '''아라이시'''가 발족하였다.
- 1955년 (쇼와 30년) 2월 1일 - 와다촌의 나머지 구역이 분할되어, 오아자 가미도도 및 히로시마는 '''아라이시'''에, 그 외 지역은 '''다카다시'''에 편입되면서 와다촌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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