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 (태복)
1. 개요
왕양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양평후에 봉해지고 위위, 태복을 역임했다. 영시 2년에 태복에 임명되었으나 3년 후 병으로 면직되었으며, 건평 4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희라 하였다. 작위는 아들 왕잠이 이었다.
왕양 (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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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관직 생활
양삭 3년(기원전 22년), 왕봉의 뒤를 이어 양평후(陽平侯)에 봉해졌다. 홍가 원년(기원전 20년)에는 위위에 임명되었고, 영시 2년(기원전 15년)에는 태복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태복으로 임명된 지 3년 만인 기원전 12년에 병으로 인해 면직되었다. 건평 4년(기원전 3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희(釐)이고 작위는 아들 왕잠이 이었다.
2.2. 죽음과 사후
건평 4년(기원전 3년)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희(釐)이며, 작위는 아들 왕잠이 계승하였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18 외척은택후표·권19하 백관공경표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