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준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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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준은 25년에 왕조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후한 광무제에 의해 낙랑 태수로 임명되었다. 산동성 출신의 왕굉이 양읍과 협력하여 왕조를 암살한 후 낙랑 태수 왕준을 맞이했다.

왕준 (후한)
왕준 (낙랑태수)
이름왕준 (王遵)
생몰년도알 수 없음
국적전한 → 신나라 → 후한
활동 시기기원전 1세기 말 ~ 1세기 초
관직낙랑군 태수
봉작식향 300호
왕준 (후한)
이름왕준 (王遵)
생몰년도알 수 없음
자원 (子元)
국적후한
활동 시기1세기
관직포한령 (褒漢令)
촉군태수 (蜀郡太守)
기도위 (騎都尉)
간의대부 (諫議大夫)
하남윤 (河南尹)
태중대부 (太中大夫)
태상 (太常)
사공 (司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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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활동

왕준(王遵)은 후한 초기의 관료로, 낙랑태수를 지냈다.

25년, 왕조가 낙랑 태수 유헌을 죽이고 스스로 낙랑 태수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는 왕준을 낙랑 태수로 파견하였다. 산동성 출신 왕굉은 양읍과 협력하여 왕조를 암살하고 왕준을 낙랑 태수로 맞이하였다.

2.1. 낙랑군 반란 진압

25년, 왕조가 낙랑 태수 유헌을 죽이고 낙랑 태수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후한 태조 광무제는 왕조의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왕준을 낙랑 태수로 파견하였다. 산동성 출신 왕굉은 양읍과 협력하여 왕조를 암살하고, 왕준을 새 낙랑 태수로 맞이하였다.

2.2. 그 후의 행적

왕조 암살 이후 왕굉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