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시데리스
1. 개요
요르고스 시데리스는 그리스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는 아트로미토스 피레우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올림피아코스에서 225골을 기록하며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 올랐다. 시데리스는 그리스 1부 리그에서 세 번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69년 유러피언 골든 슈 경쟁에서 2위를 기록했다. 1970년에는 로열 앤트워프로 이적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시데리스는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8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으며, 은퇴 후에는 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 이름 | 요르고스 시데리스 |
|---|---|
| 원어 이름 | Γιώργος Σιδέρης |
| 로마자 표기 | Georgios Sideris |
| 출생일 | 1938년 4월 5일 |
| 출생지 | 피레아스 아요스 이오아니스 렌티스 |
| 사망 여부 | 알려지지 않음 |
| 키 | 1.74m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유소년 클럽 | 아트로미토스 피레아스 (1953–1958) |
|---|---|
| 클럽 | 아트로미토스 피레아스 (1958–1959) 올림피아코스 (1959–1970) 로열 앤트워프 (1970–1971) 올림피아코스 (1971–1972) |
| 클럽 출장 및 득점 | 아트로미토스 피레아스: 30경기 28골 올림피아코스: 283경기 222골 로열 앤트워프: 25경기 7골 올림피아코스: 2경기 2골 |
| 총 출장 및 득점 | 340경기 259골 |
| 국가대표팀 | 그리스 (1958–1970) |
| 국가대표팀 출장 및 득점 | 28경기 14골 |
| 감독 클럽 | 알려지지 않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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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아스 출신 -
카티나 팍시누
그리스의 배우 카티나 팍시누는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그리스 국립극장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브로드웨이 무대와 텔레비전에도 출연했다. -
피레아스 출신 -
코스타스 시미티스
코스타스 시미티스는 그리스의 정치인으로,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며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고, 경제 현대화와 유로존 가입을 추진했으나 재정 적자와 부패 스캔들로 논란이 있었으며, 퇴임 후에도 정치 평론가 및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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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38년 출생 -
백낙청
백낙청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로서, 《창작과비평》 창간, D. H. 로런스 연구, 유신 정권 비판, 남북 화해와 통일 운동 참여, 민족 문학론과 분단 극복론 주창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1938년 출생 -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페루 중앙준비은행 총재, 에너지광산부 장관, 경제재정부 장관, 총리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오데브레히트 스캔들로 인해 2018년에 사임했다.
2. 클럽 경력
시데리스는 아트로미토스 피레우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59년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올림피아코스에서 그는 통산 225골을 기록하며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그리스 리그에서 세 번 득점왕을 차지했다. 1969년에는 유러피언 골든 슈 2위에 올랐다. 1970년에는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로 이적했다가 1972년 올림피아코스로 복귀하여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 아트로미토스 피레우스
시데리스는 아트로미토스 피레우스에서 유소년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코치들은 곧 그의 득점 능력을 알아차렸다. 1958년 시니어팀으로 승격된 그는 뛰어난 데뷔 시즌을 보냈고, 시데리스는 아트로미토스의 공격 중심이 되었다. 이 젊은 선수의 거침없고 과감한 공격 스타일은 30번의 리그 출전에서 28골을 기록하는 결과를 낳았다.
1959년 여름, 시데리스는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파나티나이코스로의 이적을 마음속으로 굳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 사바스 테오도리디스가 리그 6연패를 달성한 올림피아코스로 그를 이끌었다. 올림피아코스는 자국 내 지배력을 이어가기를 원했고, 이 이적에 대한 저항이 있었지만, 아트로미토스 회장은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제안을 받아 이적을 강행했다. 이 젊은 선수는 마지못해 '에리트로레프키'에 합류했고, 그 대가로 올림피아코스 선수 5명이 아트로미토스로 갔다.
2.2. 올림피아코스 FC
시데리스는 1959년 여름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을 원했지만, 친구 사바스 테오도리디스가 리그 6연패를 달성한 올림피아코스로 그를 이끌었다. 올림피아코스는 자국 내 지배력을 이어가기를 원했고, 아트로미토스 회장은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제안을 받아 이적을 강행했다. 시데리스는 마지못해 '에리트로레프키'에 합류했고, 그 대가로 올림피아코스 선수 5명이 아트로미토스로 갔다.
시데리스는 새로 창설된 알파 에트니키 리그를 올림피아코스와 함께 시작했지만, 데뷔 시즌은 좋지 않았다. 유러피언컵 예선에서 밀란과 맞붙었고, 시데리스는 브루노 발레 감독에 의해 유럽 데뷔전을 치렀다. 1차전에서 밀란과 2-2로 비겼지만, 2차전에서 3-1로 패배하여 탈락했다.
그는 이후 클럽에서 225골을 기록하여 올림피아코스 역대 득점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리스 1부 리그에서 1965년 29골, 1967년 22골로 세 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다. 1969년 유러피언 골든 슈 경쟁에서 불가리아의 페타르 제코프(CSKA 소피아)(36골)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후, 1970년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로 이적하여 그 시즌에 35골을 기록했다. 1972년 2월 6일, 벨기에에서 앤트워프에서 뛰고(1971년) 돌아온 후, 올림피아코스에 재합류했다(파나차이키와의 경기, 3-2). 그는 그리스 밖의 다른 유럽 팀에서 뛴 최초의 그리스 선수였다. 1972년 2월 20일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파나티나이코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경력을 마쳤다.
2.3. 로열 앤트워프
1970년 로열 앤트워프로 이적하여 그 시즌에 35골을 기록했다. 1972년 2월 6일, 벨기에에서 앤트워프에서 뛰고(1971년) 돌아온 후, 올림피아코스에 재합류했다(파나차이키와의 경기, 3–2). 그는 그리스 밖의 다른 유럽 팀에서 뛴 최초의 그리스 선수였다.
2.4. 올림피아코스 복귀
1972년 2월 6일, 조르조스 시데리스는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뛰고(1971년) 돌아온 후, 올림피아코스에 재합류했다(파나차이키와의 경기, 3–2). 그는 그리스 밖의 다른 유럽 팀에서 뛴 최초의 그리스 선수였다. 1972년 2월 20일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파나티나이코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치렀다. 시데리스는 또한 그리스 국가대표팀의 핵심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시데리스는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총 28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다(아트로미토스 선수 시절 1회 포함).
4. 은퇴 후
축구 선수 경력이 끝난 후, 시데리스는 성공적인 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5. 수상 내역
요르고스 시데리스는 올림피아코스에서 뛰며 알파 에트니키 (1965-66, 1966-67), 그리스 컵 (1959-60, 1960-61, 1962-63, 1964-65, 1967-68), 그레이터 그리스 컵 (1969, 1972)에서 우승했다. 1968-69 시즌 유러피언 골든 슈 2위를 차지했고, 알파 에트니키 득점왕을 3회 (1964-65, 1966-67, 1968-69) 차지했다.
5.1. 클럽
5.2. 개인
| 수상 | 내용 |
|---|---|
| 유러피언 골든 슈 | 1968-69 2위 |
| 알파 에트니키 득점왕 | 1964-65, 1966-67, 1968-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