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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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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니온은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 두 정당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기독교 민주주의와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설립되었으며, 독일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CDU는 바이에른 주를 제외한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며, CSU는 바이에른 주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두 정당은 연방 의회 선거에서 공동으로 활동하며, 연정 협상과 정부 구성에 함께 참여한다. CDU와 CSU는 정치적 입장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특히 사회 정책에서 CSU가 CDU보다 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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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중앙당은 19세기 초 정치적 가톨릭주의를 바탕으로 설립되어 프로이센 정부의 종교 탄압에 맞서 가톨릭 신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 시대에 저항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주요 정당으로 활동했으나 나치즘 부상과 함께 해산되었고, 전후 서독에서는 기독교민주연합의 등장으로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하며 현재는 유럽 기독교 정치 운동에 가맹하여 활동하고 있다.
우니온
기본 정보
이름우니온
원어 이름Union
약칭CDU/CSU
로고
창당1949년
색상파랑 (공식)
|border=darkgray}} 검정 (관례)
지도부
공동 의장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마르쿠스 죄더 (CSU)
원내대표프리드리히 메르츠 (CDU/CSU 그룹)
조직
청년 조직청년 연합
학생 조직Pupil Union of Germany
중소기업 연합중소기업 및 비즈니스 연합
이념 및 정치 성향
이념기독교 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친유럽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정치 성향중도우파
내부 계파기민련: 중도우파
기사련: 중도우파 ~ 우익
국제 관계
유럽 의회유럽 국민당
국제 조직국제민주연합
유럽 의회 그룹유럽 국민당 그룹
연합 정당
연합 정당독일 기독교민주연합 (CDU)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CSU)
의회 의석
독일 연방의회}} 197 / 736석
주의회}} 610 / 1894석
유럽 의회}} 29 / 96석
주 정부 수반}} 7 / 16석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www.cducsu.de

2. 역사

역사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SU)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독교 민주주의와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설립된 정당이다. CDU는 중도우파 성향의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중앙당(DZP)의 사실상 후계자로 여겨진다.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들까지 포용하며 초기에는 독일당 등 다른 가톨릭, 개신교 또는 국가 보수주의 정당들과 경쟁했지만, 바이에른을 제외한 독일의 유일한 주요 보수 정당으로 성장했다. 특히 1933년까지 독일 인민당과 관련이 있었던 비가톨릭 기독교인들의 지지까지 확보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전후 독일 정계의 중도우파 진영 재편 과정에서 이루어진 성공적인 전략으로 평가된다.

CSU는 바이에른 인민당(BVP)의 사실상 후계자로 여겨진다. BVP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앙당(DZP)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바이에른 농민 동맹의 일부와 DVP의 바이에른계 일부도 포함하며 다양한 성향을 포괄했다. BVP는 DZP의 자매 정당으로 활동했으며, 1924년 5월 독일 연방 선거, 1924년 바이에른 주 선거, 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는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두 정당은 대부분 제국 정부에서 공동으로 대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1925년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BVP가 중앙당이 지지한 빌헬름 마르크스가 아닌, 파울 폰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BVP가 정치적으로 더 우익 성향을 띠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바이에른과 프로이센 간의 오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용병 출신 장군인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며 군주제 지지자 및 민족주의 정당과 연합한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BVP의 행보는 현대 CDU/CSU의 분열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CDU와 CSU는 오랜 기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연방 의회 선거에서 공동으로 활동해왔다. 연방정부 구성 과정에서 거의 항상 하나의 정당처럼 행동해 왔으며, 이는 독일 정치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이 되었다.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 CDU는 동독 지역의 정당들, 특히 기독교민주연합 동독(CDU)과 민주각성(DA)과 협력했다. 당시 동독 사회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위해 노력하던 이들 정당은 서독의 CDU와 협력하여 통일 과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 차이와 통합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여러 정당들의 통합과 협력을 통해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통합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희생된 이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 과정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사회적 화합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2. 1. 창립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기독교 민주주의와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독일의 중도우파 정치 세력인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이 설립되었다. CSU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바이에른 인민당(BVP)의 사실상 후계자로 여겨진다. BVP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 독일 가톨릭 중앙당(DZP)으로부터 분리된 정당이었다. CSU는 바이에른 농민 동맹의 일부와 DVP의 바이에른계 일부도 흡수했지만, 주된 기반은 BVP였다. 반면 CDU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중앙당을 계승하는 동시에, 비가톨릭 기독교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독일 내 유일한 주요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1933년까지 독일 인민당과 관련이 있던 비가톨릭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었다. 초기에는 다른 가톨릭, 개신교 또는 국가 보수주의 정당들과 경쟁이 있었으나(예: 독일당(1947)), CDU는 결국 바이에른을 제외한 독일 전역에서 주요 보수 정당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BVP는 DZP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1924년 5월 독일 연방 선거, 1924년 바이에른 주 선거, 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정당은 제국 정부에서 공동으로 대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 CDU/CSU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바이에른 인민당은 정치적으로 더 우익 성향을 띠었다. 1925년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중앙당이 라인 지방 가톨릭 출신의 바이마르 연정 후보 빌헬름 마르크스를 지지한 반면, BVP는 프로테스탄트 출신이자 군주제 지지자였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며, 민족주의 정당들과 연합한 것은 이러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이는 바이에른과 프로이센 간의 오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CDU와 CSU는 전후 독일 정치 지형에서 중도우파 세력으로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참고로, 1957년 서독 연방 선거 당시 CSU의 자매 정당이었던 크리스틀리케 폴크스파르타이 데스 자를란데스, 1990년 동독 총선거 이전 CSU의 자매 정당이었던 독일 사회 연합(DSU), 독일 재통일까지 CDU의 자매 정당이었던 동독 CDU, 그리고 1947년까지 존재했던 바덴 크리스틀리히-소치알레 폴크스파르타이 등 다양한 정당들이 존재했다. 또한, 1990년 동독 총선거를 위해 CDU, DSU, 민주 각성이 결성한 독일을 위한 연합은 이후 CDU와 합병되었다.

2. 2. 초기 발전 과정

CDU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기독교 민주주의와 보수주의에 기반하여 설립되었으며, 중도우파 성향을 띄는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중앙당(DZP)의 사실상 후계자로 설립되었지만,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들까지 포용하며, 초기에는 독일당 등 다른 가톨릭, 개신교 또는 국가 보수주의 정당들과 경쟁했으나, 결국 바이에른을 제외한 독일의 유일한 주요 보수 정당으로 성장했다. 이는 전후 독일 정계의 중도우파 진영 재편 과정에서 이루어진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1933년까지 독일 인민당과 관련이 있었던 비가톨릭 기독교인들의 지지까지 확보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CSU는 바이에른 인민당(BVP)의 사실상 후계자로 여겨진다. BVP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중앙당(DZP)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바이에른 농민 동맹의 일부와 DVP의 바이에른계 일부도 포함하며 다양한 성향을 포괄했다. 하지만 BVP는 DZP의 자매 정당으로 활동했으며, 1924년 5월 독일 연방 선거, 1924년 바이에른 주 선거, 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는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두 정당은 대부분 제국 정부에서 공동으로 대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1925년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BVP가 중앙당이 지지한 빌헬름 마르크스가 아닌, 파울 폰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BVP가 정치적으로 더 우익 성향을 띠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바이에른과 프로이센 간의 오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용병 출신 장군인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며 군주제 지지자 및 민족주의 정당과 연합한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BVP의 행보는 현대 CDU/CSU의 분열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2. 3. 자매 정당과의 관계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자매 정당으로는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SU)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두 정당은 오랜 기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연방 의회 선거에서 공동으로 활동해왔다. 특히 연방정부 구성 과정에서 CDU/CSU는 거의 항상 하나의 정당처럼 행동해 왔으며, 이는 독일 정치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이 되었다.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도 CDU는 동독 지역의 정당들과 협력을 맺었다. 특히 기독교민주연합 동독(CDU)과 민주각성(DA)과의 협력이 주목할 만하다. 당시 동독 사회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위해 노력하던 이들 정당은 서독의 CDU와 협력하여 통일 과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념 차이와 통합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여러 정당들의 통합과 협력을 통해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통합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희생된 이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통합 과정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사회적 화합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3. CSU의 전국 정당화 시도

== CSU의 전국 정당화 시도 ==

1970년대와 2015년 이후, 여러 CSU 지도자들은 CDU와의 공식적인 유대 없이 CSU를 독립적인 전국 정당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특히 1969년 이후 CDU/CSU가 분데스탁에서 야당이 된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CDU 지도자 헬무트 콜은 FDP와의 연정을 통해 집권을 노렸지만, 당시 CSU 지도자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FDP 없이 우익 다수를 통해 집권을 목표로 했다. 슈트라우스는 CDU와 CSU가 서로 다른 유권자층을 대상으로 별도의 전국 정당이 되어야 하지만, 선거 후에는 여전히 함께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믿었다.

1975년, CDU는 CSU와의 협의 없이 1976년 총선을 위한 총리 후보로 콜을 지명했다.[8] 총선에서 콜은 선전했지만, 사회민주당과 FDP의 연정이 유지될 만큼 충분한 의석을 확보했다. 이후 크로이트 사건이 발생했다. 1976년 11월, 49명의 CSU 분데스탁 의원들이 크로이트에 있는 당의 교육 센터에 모여 독자적인 CSU 분데스탁 의원단 구성을 논의했고, 30명이 찬성했다.[9] 이 '크로이트 분리 결정'은 CDU로 하여금 바이에른에 CDU 당 조직을 설립하는 등 강력한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10] 슈트라우스는 11월 24일 비공개 회의에서 콜을 비판했고, 이 내용은 언론에 유출되었다.[11]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CSU 지도자들과 보수적인 CDU 지도자들은 분리에 반대했고, 결국 CSU 분데스탁 의원들은 결정을 철회했다. 1980년 슈트라우스는 CDU/CSU의 공동 총리 후보였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으며 그의 연방 CSU 야망은 끝났다.

슈트라우스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2015년 난민 사태 이후 메르켈의 중도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인해 CSU의 전국화 가능성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호르스트 제호퍼를 비롯한 CSU 지도부는 메르켈의 자유주의적 난민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CSU의 전국 정당화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2018년 정부 위기와 2021년 총선 결과는 CSU의 전국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CDU와 CSU는 동일한 유권자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분리 출마는 오히려 양 당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 1. 1970년대의 시도

1969년 이후 CDU와 CSU는 야당이 되었고, CDU 지도자 헬무트 콜은 자유민주당(FDP)과의 연정을 통해 집권을 노렸다. 하지만 CSU 지도자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FDP 없이 우익 다수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슈트라우스는 온건한 성향의 콜을 불신했고, CDU와 CSU가 각기 다른 유권자층(CDU는 온건·사회·자유주의 유권자, CSU는 보수 유권자)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전국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후에는 여전히 연정을 구성하되, 각 당의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1975년, 연방 CDU는 CSU와의 사전협의 없이 1976년 총선에서 헬무트 콜을 CDU/CSU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8] 1976년 총선에서 콜은 선전했지만, 사회민주당(SPD)과 FDP의 연정이 유지될 만큼 충분한 의석을 확보했다. 이에 콜은 라인란트팔츠 주 총리직을 사임하고 CDU/CSU 분데스탁 의원단 의장직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49명의 CSU 분데스탁 의원들이 크로이트에서 당 교육 센터에 모여 독자적인 CSU 의원단 구성을 논의했고, 30명이 찬성했다. 이른바 '크로이트 분리 결정'(Kreuther Trennungsbeschluss)은 CDU에 큰 충격을 주었고, 콜은 바이에른에 CDU 당 조직을 설립하여 CSU에 맞서겠다고 위협했다. 1977년 3월, 뉘른베르크에서 'CDU 바이에른' 설립이 예정되어 있었다.[10] 이러한 움직임은 악치온스게마인샤프트 피어테 파르타이, 분트 프라이어스 도이칠란트, 크리스트리히 소치알레 벨러 우니온, 도이체 우니온, 파르타이 프라이어 뷔르거 등의 정당 설립과도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CDU가 바이에른 내 지역 협회를 설립하고 CSU에 맞서 바이에른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위협하자, 12월 12일 크로이트 분리 결정은 무효화되었다.

슈트라우스는 11월 24일 비공개 CSU 회의에서 콜을 비판하는 연설(비너발트 연설)을 했고, 이 내용은 ''데어 슈피겔''에 유출되어 보도되었다.[11] 슈트라우스는 이 연설에서 "헬무트 콜은 결코 총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90세가 되어 그는 회고록을 쓸 것이다: '나는 40년 동안 총리 후보였습니다; 쓰라린 시대의 교훈과 경험.' 마지막 장은 시베리아 또는 다른 곳에서 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역 CSU 지도자들과 보수적인 CDU 주 지도자들도 CSU와 CDU의 분리를 반대했고, 결국 CSU 분데스탁 의원들은 분리 결정을 철회했다. 12월 7일, CDU/CSU 분데스탁 의원단은 콜을 의장으로 선출했다.[12] 1980년 슈트라우스는 CDU/CSU의 공동 총리 후보였으나 4% 이상의 득표율을 잃으면서 그의 연방 CSU 야망은 끝났다.

3. 2. 2016년 이후의 긴장

메르켈의 중도 정책으로 인해 CDU와 CSU 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특히 2015년 난민 사태는 이러한 갈등을 심화시켰다. 안젤라 메르켈의 자유주의적 난민 정책에 대해 호르스트 제호퍼를 비롯한 CSU는 강한 반발을 표하며, 법과 질서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난민 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CSU의 전국화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보수 일간지 벨트의 칼럼니스트 안스가어 그라우는 CDU와 CSU가 법과 질서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CSU가 체류 허가권이 없는 난민들을 엄격하게 추방하는 우익 정당, 즉 전국 정당이 될 것을 촉구했다.[14] 반면 전 CSU 당수 테오 바이겔은 별도의 선거 운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CDU와 CSU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15]

2018년에는 당시 연방 내무부 장관이었던 제호퍼가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며 갈등이 극에 달했다. 제호퍼는 바이에른 주를 통한 난민 유입 증가를 이유로 입국 난민 제한을 주장했고,[16] 이는 당시 다가오던 바이에른 주 선거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득세 우려와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메르켈 정부의 연정을 위협했고, 제호퍼의 사임설까지 나왔으나, 연정 당사자 간 합의 후 사임은 철회되었다.[16] 이례적으로 CDU와 CSU 연방의원들은 난민 문제에 대한 별도 회의를 열었고,[17] 가짜 트위터 계정을 통한 허위 정보 유포 사건까지 발생하며[17]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정치학자 하인리히 오버로이터는 CSU의 전국화 시도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제시하며, 두 당이 동일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별도 출마 시 양측 모두 손해를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18]

2021년 총선을 앞두고 CSU의 전국화 논의는 재점화되었다. 당시 CSU 당수였던 마르쿠스 죄더는 CDU가 아르민 라셰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에 불만을 표했고,[19] CSU는 바이에른 주 외 지역 주민을 위한 온라인 회원 가입을 시작하기도 했다.[19] 설문조사 결과, CSU는 특히 동독과 FDP 유권자들 사이에서 9%의 득표율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19] 하지만 CDU와 CSU는 2017년 이후 선거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특히 2018년 바이에른 주 선거에서 CSU는 1950년 이후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다. 2021년 연방 선거에서도 두 당 모두 정당 명부 득표율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3. 3. 2018년 정부 위기

2015년 난민 사태는 독일 국민을 분열시키고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특히, 안젤라 메르켈 총리의 자유주의적인 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CSU의 전국화 가능성이 다시 논의되었다. 보수 일간지 벨트의 칼럼니스트 안스가어 그라우는 CDU와 CSU가 법과 질서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난민 추방을 강조하는 우익 정당으로서의 CSU 전국화를 촉구했다.[14] 반면, 전 CSU 당수 테오 바이겔은 별도의 선거 운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15]

2018년에는 이러한 갈등이 극에 달했다. 당시 바이에른 주지사이자 CSU 당수였던 호르스트 제호퍼 연방 내무부 장관은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며, 난민 입국 제한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강경한 입장은 2018년 바이에른 주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약진을 우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제호퍼의 반대는 메르켈 정부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그는 7월 2일 사임 의사를 표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연정 당사자들 간의 합의 후 하루 만에 사임을 철회했다.[16]

같은 해 6월, CDU와 CSU는 난민 문제에 대한 별도 회의를 개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심지어 가짜 트위터 계정을 통해 CSU가 CDU/CSU 연합을 해체하고 바이에른 주 CDU 창당을 촉구했다는 허위 정보가 유포되어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등 두 당 간의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다.[17] 정치학자 하인리히 오버로이터는 CSU의 전국 확장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두 당이 같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별도 출마는 오히려 양 당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CSU는 바이에른 지역 정당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상실할 위험이 있으며, 바이에른 내 CDU 출현은 CSU의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했다.[18]

3. 4. 2021년 총선과 그 이후

2015년 난민 사태는 독일 국민을 분열시키고 CDU와 CSU 간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후 보수 일간지 벨트의 칼럼니스트 안스가어 그라우는 CDU와 CSU가 법과 질서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메르켈의 CDU가 우익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CSU의 전국화를 촉구했다. [14] 반면 전 CSU 당수 테오 바이겔은 별도의 선거 운동으로 인한 두 당 간의 치열한 경쟁을 우려하며 경고했다.[15] 2018년에는 당시 바이에른 주지사 겸 CSU 당수였던 호르스트 제호퍼가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며 갈등이 극에 달했다. [16] 제호퍼는 난민 유입 제한을 주장하며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연정 당사자들 간의 합의 후 사임을 철회했다. [16] 같은 해 가짜 트위터 계정을 통한 허위 정보 유포 사건으로 CDU/CSU 연합 해체설까지 나돌았고,[17] 정치학자 하인리히 오버로이터는 CSU의 전국화 시도가 두 당 모두에게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18]

2021년 총선을 앞두고 CSU의 전국화 논의가 다시 불거졌다. 당시 CSU 당수 마르쿠스 죄더는 CDU가 아르민 라셰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에 불만을 표했고,[19] CSU는 바이에른 주 외 거주자를 위한 온라인 회원 가입을 시작했다. 2021년 5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CSU가 동독과 FDP 유권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19] 그러나 CDU와 CSU는 2017년 이후 선거에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특히 2018년 바이에른 주 선거에서 CSU는 10.5%p 하락한 37.2%의 득표율을 기록, 1950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2021년 연방 선거에서도 CDU와 CSU는 각각 7.9%p, 1.0%p의 정당 명부 득표율 하락을 경험했다.

4. 정치적 입장

== 정치적 입장 ==

CDU와 CSU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CSU는 CDU보다 더 보수적인 사회적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가족 문제에 있어서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공공 보육 시스템 대신 영아 부모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CSU는 찬성하는 반면, CDU는 공공 보육 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을 더 선호한다.[20] 바이에른 주의 CSU 정부는 직원 보호를 위해 독일에서 가장 엄격한 영업시간 제한 규제 중 하나를 시행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CDU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던 소득과 관계없는 공공 의료 보험료 부과 시스템에 대해서도 CSU는 강하게 반대했다.[21]

CSU 정치인들은 연방 정부나 유럽 연합 관료들 사이에서도 바이에른 주의 권리와 문화적 독립을 옹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1998년 당시 총리 헬무트 콜은 유로 도입에 대한 CSU의 반대를 막기 위해 상당한 압력을 행사해야 했다.[22] 반면, '유로'라는 명칭 자체는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에드문트 슈토이베르와 달리 친유럽적인 입장을 가진 전 CSU 의장 테오 바이겔의 아이디어였다. 최근에는 2016년부터 난민 수를 연간 20만 명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Obergrenze)을 CSU가 강하게 제기했는데, 이는 국경 통제를 통한 난민 수 제한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CDU의 입장과 상반된다.[23]

두 정당 모두 공식적으로 무교파 기독교를 표방하지만, 바이에른이 주로 가톨릭 지역인 점을 고려하면, CSU는 CDU보다 가톨릭 교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러나 바이에른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지역이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및 남서부 독일의 가톨릭 지역 등 지역적 종교적 특성 역시 CDU와 CSU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장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자를란트 주의 전 CDU 주지사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2017년 동성 결혼에 반대했지만,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CDU는 찬성하는 등 지역적 차이가 정치적 입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존재한다.

4. 1. 정책 차이

CDU와 CSU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사회 정책에서 CSU는 CDU보다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영아 부모의 공공 보육 시스템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CSU는 찬성하지만, CDU는 공공 보육 시설 지원을 더 선호한다. [20] 또한, 바이에른 주의 CSU 정부는 독일에서 가장 엄격한 영업시간 제한 규제를 시행하며 직원 보호에 힘썼다. [21] 2010년 CDU에서 지지를 얻었던 소득과 관계없는 공공 의료 보험료 부과 시스템에 대해서도 CSU는 강하게 반대했다. [21]

CSU 정치인들은 연방 정부나 유럽 연합 관료들로부터 바이에른 주의 권리와 문화적 독립을 지켜내는 보호자 역할을 자처한다. 1998년 당시 총리 헬무트 콜은 유로 도입에 대한 CSU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압력을 가해야 했다. [22] 반면, 유로라는 명칭 자체는 친유럽적인 성향의 전 CSU 의장 테오 바이겔의 아이디어였다.[22] 2016년부터는 난민 수를 연간 20만 명으로 제한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해왔는데, 이는 난민 수 제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CDU의 입장과 상반된다. [23]

두 정당 모두 무교파 기독교를 표방하지만, 바이에른이 가톨릭 지역인 점을 감안하면, CSU는 CDU보다 가톨릭 교회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하지만 독일 내 지역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비율의 차이, 특히 프로테스탄트 지역이 많은 바이에른 북부와 가톨릭 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및 남서부 독일의 영향 등 지역적 차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17년 동성 결혼에 대해 자를란트(가톨릭 비율이 높은 지역)의 전 CDU 주지사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강력히 반대했지만,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CDU는 찬성하는 등 지역적 차이에 따른 입장 차이를 보였다.

4. 2. 종교적 영향

CDU와 CSU는 모두 공식적으로 무교파 기독교를 표방하지만, 지역적 종교적 특성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에 차이가 있다. 바이에른 주는 가톨릭 신자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CSU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반면, 독일 전체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자 비율이 비슷하기 때문에 CDU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바이에른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지역이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와 남서부 독일의 가톨릭 지역 등 지역별 종교적 특성은 CDU와 CSU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장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자를란트주의 전 CDU 주지사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2017년 7월 동성 결혼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프로테스탄트 신자 비율이 높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CDU는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등 지역적 차이가 정치적 입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20][21][22][23]

5. 협력 형태

== 협력 형태 ==

독일의 기독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는 별도의 조직을 가진 독립된 정당이다. CDU는 바이에른 주를 제외한 15개 주에 당원과 지역 조직을 갖고 있고, CSU는 바이에른 주에만 당원과 조직을 갖고 있다. CSU 당원 중 바이에른 주 외 거주자는 투표권이 없으며, CDU는 바이에른 주를 제외한 지역 및 지방 선거에서만 활동한다. 두 정당은 연방의회(Bundestag) 총선을 위해 각각 당 목록을 제출하는데, CDU는 바이에른 주를 제외한 15개 주에서 각각 명단을 제출하고, CSU는 바이에른 주에서만 명단을 제출한다.

1972년 이후 두 정당은 연방 선거를 위한 공동 선거 강령에 합의해왔다. 때때로 CSU는 별도의 강령을 추가로 발표하기도 했다.[24] 두 정당은 항상 총리 후보에 대해 공동 후보를 지지하지만, 공식적인 후보 선출 절차가 없어 긴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선거 운동 기간에는 CSU가 선거 포스터에 바이에른 주 후보를 우선적으로 내세우고 CDU의 공동 총리 후보를 배제하는 경우도 있으며,[25] CDU의 인기 후보가 바이에른 주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연방의회에서는 공동 의원단(Fraktion)을 구성한다. 이는 두 정당이 선거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며, ''Fraktionsvertrag''(의원단 협약)에 따라 운영된다. 의원단은 의장(항상 CDU 당원)과 부의장(2021년에는 12명)으로 구성되며, 제1부의장은 CSU 주 그룹(CSU-Landesgruppe) 대표가 맡는다. 의원단은 16개의 주 그룹(Landesgruppen)으로 나뉘며, CSU 주 그룹 대표는 의원단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CSU 주 그룹 대표들이 연방 정부 구성원이 되었다.

CDU와 CSU는 연정 협상과 연방 정부 구성에 항상 함께 참여하며, 적어도 하나의 주요 정부 부처는 CSU에 할당된다. 과거에는 우정청(존재했을 당시), 교통부, 건설부, 농업부 등을 CSU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별도의 당 목록을 제출하지만, 유럽 의회 내에서는 유럽 인민당 의원단 내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5. 1. 조직 구조

CDU와 CSU는 별도의 조직을 가진 독립된 두 정당이다. CDU는 독일 전역 15개 주에 당원과 지역 조직을 갖고 있는 연방 정당이지만, CSU는 바이에른 주에만 당원과 조직을 두고 있다.[24] 바이에른 주 외 지역 거주 CSU 당원은 투표권이 없으며, CDU는 바이에른 주를 제외한 지역 및 지방 선거에서만 활동한다. 두 정당은 모두 연방의회(Bundestag) 총선을 위한 당 목록을 가지고 있으며, CDU는 바이에른 주를 제외한 15개 주에 각각 명단을, CSU는 바이에른 주에만 명단을 제출한다.

1972년 이후 두 정당은 연방 선거를 위한 공동 선거 강령에 합의했지만, CSU는 때때로 별도의 강령을 추가로 발표하기도 했다.[24] 두 정당은 항상 총리 후보에 대한 공동 후보를 지지하지만, 후보 선출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긴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선거 운동 기간에는 CSU가 바이에른 주 후보를 주로 내세우고 CDU의 공동 총리 후보를 언급하지 않거나,[25] CDU의 인기 후보가 바이에른 주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연방의회(Bundestag)에서는 CDU와 CSU가 함께 의원단(Fraktion)을 구성한다. 이는 두 정당이 선거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유권자는 CDU 또는 CSU 후보 중 하나만 선택 가능) 합법적이다. 의원단은 의원단 협약(Fraktionsvertrag)에 따라 운영되며, CSU에 특별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의원단은 의장 1명과 부의장 여러 명(2021년에는 12명)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항상 CDU 당원이었고, 제1부의장은 CSU 주 그룹(CSU-Landesgruppe) 대표가 맡는다. 의원단은 각 주의 의원단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16개의 주 그룹(Landesgruppen)으로 나뉘며, CSU 주 그룹 대표(CSU-Landesgruppenchef)는 연방의회 의원단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연방 정부 구성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CDU와 CSU는 서로 다른 정당처럼 운영되지만, 항상 함께 연정 협상에 참여하며, 단독으로 정부에 참여한 적은 없다. 적어도 하나의 주요 정부 부처는 CSU에 할당되며, 과거에는 우정청, 교통부, 건설부 또는 농업부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별도의 당 목록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 의회에서는 유럽 인민당 의원단 내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5. 2. 선거 협력

1972년 이후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은 연방 선거를 위해 공동 선거 강령에 합의해 왔다. CSU는 때때로 별도의 강령을 추가로 발표하기도 했다.[24] 두 정당은 항상 총리 후보에 대해 공동 후보를 지지하지만, 공식적인 후보 선출 절차가 없어 긴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연방 선거 운동 기간에는 CSU가 선거 포스터에 바이에른 주 후보를 우선적으로 내세우고 CDU의 공동 총리 후보를 배제하는 경우도 있으며,[25] 인기 있는 CDU 후보가 바이에른 주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행은 두 정당의 독자적인 지역적 기반과 정치적 영향력 유지라는 상반된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CDU와 CSU의 이러한 협력 관계는 독일 연방 정치의 특징적인 현상으로, 때로는 내부 갈등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보수 진영의 압도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왔다. 이는 보수 정당의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국민의힘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지만, 각 당의 지역적 특수성과 독립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점이 차이점이다.

5. 3. 의회 협력

CDU와 CSU는 독립된 정당이지만, 연방의회(Bundestag)에서는 함께 의원단(Fraktion)을 구성한다.[24] 이는 두 정당이 선거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유권자는 CDU 후보와 CSU 후보 중 하나만 선택) 합법적이다.[24] 이러한 의원단 연합(Fraktionsgemeinschaft)은 ''Fraktionsvertrag''(의원단 협약)에 따라 운영되며, CSU에게 발언 시간 등에 대한 특별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24]

의원단은 의장 1명과 부의장 여러 명(2021년에는 12명)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항상 CDU 당원이었다.[24] 제1부의장은 CSU 주 그룹(CSU-Landesgruppe) 대표가 당연직으로 맡는다.[24] 또한 의원단은 각 주의 의원들로 구성된 16개의 주 그룹(Landesgruppen)으로 나뉘며, CSU 주 그룹 대표(CSU-Landesgruppenchef)는 의원단 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24] 역사적으로 많은 CSU 주 그룹 대표들이 연방 정부의 구성원이 되었다.[24]

CDU와 CSU는 서로 다른 정당으로 활동하지만, 연정 협상에는 항상 함께 참여하며, 연방 정부에도 함께 참여한다.[24] 적어도 하나의 주요 정부 부처는 CSU에 할당되며, 과거에는 우정청(존재했을 당시), 교통부, 건설부, 농업부 등을 CSU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24]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별도의 당 목록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 의회에서는 유럽 인민당 의원단 내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24]

5. 4. 정부 협력

CDU와 CSU는 별도의 정당이지만, 1972년 이후 연방 선거를 위한 공동 선거 강령에 합의하고, 항상 공동 총리 후보를 지지하며, 연방의회에서 공동 의원단을 구성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해왔다.[24] 때로는 CSU가 별도의 강령을 발표하기도 하고,[24] 총리 후보 선출 과정에서 긴장이 발생하기도 하지만,[25]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CSU는 선거 포스터에 바이에른 주 후보를 주로 제시하고 CDU의 공동 총리 후보를 제시하지 않을 수 있으며,[25] CDU의 인기 후보는 바이에른 주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연방의회 의원단은 CDU 의장과 CSU 제1부의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CSU 주 그룹 대표는 의원단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역사적으로 CSU 주 그룹 대표들은 연방 정부 구성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CDU와 CSU는 항상 함께 연정 협상에 참여하며, 연방 정부에 함께 참여해왔다. 특히 CSU는 우정청(존재했을 당시), 교통부, 건설부 또는 농업부 등 주요 정부 부처를 '할당'받아 운영해 왔다.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별도의 당 목록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 의회에서는 유럽 인민당 의원단 내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5. 5. 유럽 의회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는 유럽 의회 선거에서 별도의 당 목록을 제출하지만, 의회 내에서는 단일 그룹을 형성한다. 위 표는 1979년부터 2024년까지의 유럽 의회 선거 결과를 보여주는데, CDU와 CSU의 득표율과 의석 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정당은 오랜 기간 독일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유럽 의회에서도 공동 전선을 구축해왔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의석 수는 변동이 있었지만, 꾸준히 유럽 의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94년과 1999년에는 의석수가 크게 증가했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지지율 하락에 따라 의석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2024년 선거에서는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의 의석수를 유지했다.

6. 연방의회 의원단 대표

== 연방의회 의원단 대표 ==

역대 기독교민주연합(CDU)/기독교사회연합(CSU) 연방의회 의원단 대표는 다음과 같다. CDU/CSU는 오랫동안 독일의 보수 정치를 주도해왔지만, 최근 들어 지지율 하락과 함께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1949년부터 2021년까지의 연방의회 선거 결과와 1979년부터 2024년까지의 유럽 의회 선거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표를 통해 CDU/CSU의 득표율 변화와 집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98년과 2002년, 그리고 2021년 선거에서의 득표율 하락은 주목할 만하며, 이는 사회 변화와 다른 정당의 약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2021년 선거 이후 야당으로 전락한 CDU/CSU가 어떻게 재기를 모색할지는 향후 독일 정치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년도득표수지지율의석 수증감집권 여부
1949년7,359,08431.0139여당
1953년12,443,98145.2249+110여당
1957년15,008,33950.2277+28여당
1961년14,298,37245.3251-26여당
1965년15,524,06847.62510여당
1969년15,195,18746.1250-1야당
1972년16,806,02044.9234-16야당
1976년18,394,80148.6254+20야당
1980년16,897,65944.5237-17야당
1983년18,998,54548.8255+18여당
1987년16,761,57244.3234-21여당
1990년20,358,09643.8319+85여당
1994년19,517,15641.4294-25여당
1998년17,329,38835.1245-49야당
2002년18,482,64138.5248+3야당
2005년16,631,04935.2226-22여당
2009년14,658,51533.8239+13여당
2013년18,165,44641.5311+72여당
2017년15,315,57632.9246-65여당
2021년10,445,57124.1197-49야당



선거기독교민주연합 (CDU) 득표수기독교민주연합 (CDU) 지지율 (%)기독교사회연합 (CSU) 득표수기독교사회연합 (CSU) 지지율 (%)CDU/CSU 합계 지지율 (%)CDU/CSU 의석수의석수 증감
1979년10,883,08539.1 (#2)2,817,12010.1 (#3)49.240
1984년9,308,41137.5 (#1)2,109,1308.5 (#3)46.039-1
1989년8,332,84629.5 (#2)2,326,2778.2 (#4)37.731-8
1994년11,346,07332.0 (#2)2,393,3746.8 (#4)38.847+16
1999년10,628,22439.3 (#1)2,540,0079.4 (#4)48.753+6
2004년9,412,99736.5 (#1)2,063,9008.0 (#4)44.549-4
2009년8,071,39130.7 (#1)1,896,7627.2 (#6)37.942-7
2014년8,807,50030.0 (#1)1,567,2585.3 (#6)35.434-8
2019년8,437,09322.6 (#1)2,354,8166.3 (#5)28.929-5
2024년9,431,56723.7 (#1)2,513,3006.3 (#5)30.0290


7. 역대 선거 결과

역대 선거 결과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의 성적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1949년 첫 선거부터 꾸준히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왔지만, 최근에는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다.

아래 표는 1949년부터 2017년까지 CDU/CSU의 연방의회 선거 결과를 보여준다. 득표수, 지지율, 획득 의석수, 그리고 전 선거 대비 의석수 증감, 집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69년 이후로는 집권 여부가 변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각 선거 항목을 참고하라.

년도득표수지지율 (%)의석수+/-집권 여부
1949년7,359,08431.0139여당
1953년12,443,98145.2249+110여당
1957년15,008,33950.2277+28여당
1961년14,298,37245.3251-26여당
1965년15,524,06847.62510여당
1969년15,195,18746.1250-1야당
1972년16,806,02044.9234-16야당
1976년18,394,80148.6254+20야당
1980년16,897,65944.5237-17야당
1983년18,998,54548.8255+18여당
1987년16,761,57244.3234-21여당
1990년20,358,09643.8319+85여당
1994년19,517,15641.4294-25여당
1998년17,329,38835.1245-49야당
2002년18,482,64138.5248+3야당
2005년16,631,04935.2226-22여당
2009년14,658,51533.8239+13여당
2013년18,165,44641.5311+72여당
2017년15,315,57632.9246-65여당



상세한 유럽 의회 선거 결과는 별도의 항목에서 다룬다.

7. 1. 연방의회 선거 결과

1949년부터 2021년까지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와 기독교사회연합(CSU)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CDU/CSU는 1949년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권을 이어왔으나, 1969년과 1972년, 1976년, 1980년에는 야당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특히 1998년과 2002년 선거에서의 득표율 하락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회 변화와 다른 정당의 약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2005년 앙겔라 메르켈의 총리 취임 이후, CDU/CSU는 다시 집권세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2017년 이후 득표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2021년 선거에서는 큰 폭으로 의석수가 줄어들며 야당으로 전락했다. 각 선거에서의 총리 후보와 집권 여부는 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년도득표수지지율의석 수증감집권 여부
1949년7,359,08431.0139여당
1953년12,443,98145.2249+110여당
1957년15,008,33950.2277+28여당
1961년14,298,37245.3251-26여당
1965년15,524,06847.62510여당
1969년15,195,18746.1250-1야당
1972년16,806,02044.9234-16야당
1976년18,394,80148.6254+20야당
1980년16,897,65944.5237-17야당
1983년18,998,54548.8255+18여당
1987년16,761,57244.3234-21여당
1990년20,358,09643.8319+85여당
1994년19,517,15641.4294-25여당
1998년17,329,38835.1245-49야당
2002년18,482,64138.5248+3야당
2005년16,631,04935.2226-22여당
2009년14,658,51533.8239+13여당
2013년18,165,44641.5311+72여당
2017년15,315,57632.9246-65여당
2021년10,445,57124.1197-49야당


7. 2. 유럽 의회 선거 결과

1979년부터 2024년까지 독일에서 실시된 유럽 의회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의 성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 정당은 오랫동안 독일의 보수 정치를 대표해왔으나, 최근 선거에서는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선거기독교민주연합 (CDU) 득표수기독교민주연합 (CDU) 지지율 (%)기독교사회연합 (CSU) 득표수기독교사회연합 (CSU) 지지율 (%)CDU/CSU 합계 지지율 (%)CDU/CSU 의석수의석수 증감
1979년10,883,08539.1 (#2)2,817,12010.1 (#3)49.240
1984년9,308,41137.5 (#1)2,109,1308.5 (#3)46.039 1
1989년8,332,84629.5 (#2)2,326,2778.2 (#4)37.731 8
1994년11,346,07332.0 (#2)2,393,3746.8 (#4)38.847 16
1999년10,628,22439.3 (#1)2,540,0079.4 (#4)48.753 6
2004년9,412,99736.5 (#1)2,063,9008.0 (#4)44.549 4
2009년8,071,39130.7 (#1)1,896,7627.2 (#6)37.942 7
2014년8,807,50030.0 (#1)1,567,2585.3 (#6)35.434 8
2019년8,437,09322.6 (#1)2,354,8166.3 (#5)28.929 5
2024년9,431,56723.7 (#1)2,513,3006.3 (#5)30.029 0



표에서 보듯이 CDU/CSU는 1979년 선거에서 49.2%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높은 지지도를 보였으나, 이후 지지율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2019년 선거에서는 28.9%로 급감하며, 독일 정치 지형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2024년 선거에서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1979년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이러한 하락세는 독일 사회의 정치적 변화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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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뉴스 CSU käme auf mindestens 9 Prozent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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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뉴스 CSU chief Seehofer pounds on upper limit https://www.faz.net/[...] 2017-09-25
[24] 웹사이트 CSU-Programme zu den Bundestagswahlen https://www.hss.de/a[...] 2022-05-09
[25] 뉴스 "Nicht nur den Armin zeigen": Söder will für die Bundestagswahl offenbar auch eigene Plakate https://www.fr.de/po[...]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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