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만동
1. 개요
우만동은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옛날 이 지역에서 소를 많이 키웠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조선 정조 시대에 수원부 읍치가 옮겨온 후 수원 신도시 건설과 행정구역 개편을 거쳤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 수원시 승격과 행정구역 통합 및 분리를 통해 현재의 우만 1동과 우만 2동으로 나뉘었다. 경수산업도로가 지나가며, 인근에 교육 시설이 있다.
| 법정동 | 우만동 |
|---|---|
| 면적 | 1.14 |
| 세대 | 10,489 |
| 세대 조사일 | 2014년 11월 30일 |
| 인구 | 24,052 |
| 인구 조사일 | 2014년 11월 30일 |
| 통 | 40 |
| 반 | 177 |
| 동주민센터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수대로656번길 37-17 |
| 홈페이지 | 우만1동 행정복지센터 |
| 법정동 | 우만동 |
|---|---|
| 면적 | 0.97 |
| 세대 | 7,164 |
| 세대 조사일 | 2014년 11월 30일 |
| 인구 | 19,078 |
| 인구 조사일 | 2014년 11월 30일 |
| 통 | 21 |
| 반 | 57 |
| 동주민센터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207번길 33 |
| 홈페이지 | 우만2동 행정복지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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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법정동 -
망포동
망포동은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박지성축구센터와 분당선 망포역이 있으며, 주거 지역으로 발달했다. -
수원시의 법정동 -
영통동
영통동은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행정 구역으로, 분당선 역들을 통해 접근 가능하며, 다양한 학교와 대학교, 상업 시설, 공원 및 체육 시설, 행정 기관 등을 갖추고 있다. -
1993년 폐지 -
하나회
하나회는 1951년 육군사관학교 출신 전두환, 노태우 등이 결성한 군내 사조직으로,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으며, 1993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
1993년 폐지 -
심곡본동
심곡본동은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깊은 구지’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과거 심곡1동에서 분동되어 부천역을 중심으로 발달된 교통망을 갖추고 2010년 기준 41,107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
1990년 설치 -
서울노원경찰서
서울노원경찰서는 1990년 개서하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치안을 담당하며, 서울중랑경찰서와 서울강북경찰서에서 분할되었고 서울도봉경찰서 분리 및 관할 구역 편입을 거쳐 현재 여러 부서와 지구대, 파출소를 관할한다. -
1990년 설치 -
심곡본동
심곡본동은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깊은 구지’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과거 심곡1동에서 분동되어 부천역을 중심으로 발달된 교통망을 갖추고 2010년 기준 41,107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2. 역사
우만동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최씨와 임씨 등이 소를 많이 먹여 키웠기 때문에 ‘소만이’,‘우만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1789년 수원부의 읍치(邑治)가 옮겨오기 전 이 지역은 수원부에 속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조선 정조 13년 1789년 9월 수원부의 읍치를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기고 1796년 화성 신도시를 건설한 후 팔달산 주변 지역을 남부와 북부로 나누었는데, 이때 이곳은 남부에 속하였다. 1899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는 ‘우만리(牛滿里)’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부면 인계와 구천동 일부를 합하여 인계리라 하여 태장면 관할이 되었다. 193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94호에 의하여, 수원읍이 확장 될 때 수원읍으로 편입되면서 ‘우만정(牛滿町)’이란 일본식 명칭이 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자 ‘우만동(牛滿洞)’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통합에 의해 지동과 함께 지만동(池滿洞) 관할이 되었다가, 1990년 1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607호에 의하여 ‘지만동’이 다시 ‘지동’과 ‘우만동’으로 분리되었다. 1992년 8월 11일에는 수원시 조례 제1816호에 의하여 지동의 일부가 우만동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우만동은 1993년 12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872호에 의하여 우만 1동과 우만 2동으로 분동되어 있다.
2.1. 지명 유래
우만동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최씨와 임씨 등이 소를 많이 먹여 키웠기 때문에 ‘소만이’,‘우만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1789년 수원부의 읍치(邑治)가 옮겨오기 전 이 지역은 수원부에 속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조선 정조 13년 1789년 9월 수원부의 읍치를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기고 1796년 화성 신도시를 건설한 후 팔달산 주변 지역을 남부와 북부로 나누었는데, 이때 이곳은 남부에 속하였다. 1899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는 ‘우만리(牛滿里)’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부면 인계와 구천동 일부를 합하여 인계리라 하여 태장면 관할이 되었다. 193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94호에 의하여, 수원읍이 확장 될 때 수원읍으로 편입되면서 ‘우만정(牛滿町)’이란 일본식 명칭이 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자 ‘우만동(牛滿洞)’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통합에 의해 지동과 함께 지만동(池滿洞) 관할이 되었다가, 1990년 1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607호에 의하여 ‘지만동’이 다시 ‘지동’과 ‘우만동’으로 분리되었다. 1992년 8월 11일에는 수원시 조례 제1816호에 의하여 지동의 일부가 우만동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우만동은 1993년 12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872호에 의하여 우만 1동과 우만 2동으로 분동되어 있다.
2.2. 연혁
우만동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최씨와 임씨 등이 소를 많이 먹여 키웠기 때문에 ‘소만이’,‘우만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1789년 정조 13년에 수원부의 읍치가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겨오고 1796년 화성 신도시를 건설한 후 팔달산 주변 지역을 남부와 북부로 나누었을 때 남부에 속하였다. 1899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는 ‘우만리(牛滿里)’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부면 인계와 구천동 일부를 합하여 인계리라 칭하고 태장면 관할이 되었다. 193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94호에 따라 수원읍이 확장될 때 수원읍으로 편입되면서 ‘우만정(牛滿町)’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자 ‘우만동(牛滿洞)’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통합에 의해 지동과 함께 지만동(池滿洞) 관할이 되었다가, 1990년 1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607호에 의하여 ‘지만동’이 다시 ‘지동’과 ‘우만동’으로 분리되었다. 1992년 8월 11일에는 수원시 조례 제1816호에 의하여 지동의 일부가 우만동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우만동은 1993년 12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872호에 의하여 우만 1동과 우만 2동으로 분동되어 있다.
3. 법정동
우만동은 법정동이다.
4. 교육
5. 교통
경수산업도로가 우만동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