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덕황후
1. 개요
원덕황후는 송 태종의 후궁으로, 송 진종의 어머니이다. 이영의 딸로 태어나 미모와 덕행을 갖추어 태조 조광윤에 의해 태종에게 측실로 보내졌다. 농서현군, 농서군부인을 거쳐 태종 즉위 후 현비로 추증되었고, 진종 즉위 후 황태후로 추존되었다. 998년 원덕의 시호를 받았으며, 1000년 태종의 묘인 영희릉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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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덕황후는 진주 진정현 출신으로, 건주 방어사 이영의 딸이었다. 용모가 아름답고 덕행이 있어 조광윤이 동생 조광의에게 측실로 주었다. 처음에는 농서현군에 봉해졌다가 태종 즉위 후 농서군부인으로 진봉되었다. 태종과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한왕 조원좌, 다른 아들은 훗날 황제가 되는 진종이었다. 두 딸은 일찍 죽었다.
977년(태평흥국 2년) 3월에 사망했다.
2.1. 사후
997년 5월, 진종이 즉위하자 현비(賢妃)로 추서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황태후로 추봉되었다.
998년(함평 원년), 진종이 원덕(元德)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황후로 추존하였으며, 1000년(함평 3년) 태종의 묘인 영희릉(永熙陵)에 이장하였다. 1008년(대중상부 원년) 진종은 원덕황후의 아버지 이영을 검교태위로, 어머니를 위국부인으로 추증하였으며, 이후 태종의 태묘에 합사되었다.
3. 가족 관계
원덕황후는 한공헌왕, 조항 2남과 등국공주, 빈국공주 2녀를 두었다.
3.1. 부모
| 아버지 | 어머니 |
|---|---|
| 이영(李英) | 위국부인(魏國夫人) |
3.2. 남편
태종(939년 ~ 997년)
3.3. 자녀
| 이름 | 설명 |
|---|---|
| 조원좌 | 한공헌왕(漢恭憲王) |
| 조항 | 진종(眞宗) |
| 등국공주 | 화경제희(和慶帝姬) |
| 빈국공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