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석향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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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리(석향양후)는 전한 원제 때 석향후에 봉해진 인물이다. 영광 3년(기원전 41년) 3월에 석향후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양(煬)이다. 아들 유건국이 작위를 이었다. 관련 기록은 반고의 《한서》에 전해진다.

유리 (석향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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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석향후 책봉

영광 3년(기원전 41년), 석향(石鄕侯)에 봉해졌다.

2.2. 사망과 작위 계승

시호를 양(煬)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유건국이 이었다.

3. 관련 기록

반고班固중국어의 《한서》漢書중국어 권15하 왕자후표 하(王子侯表 下)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유리는 교동경왕 유음의 아들이며, 전한 원제 때인 기원전 41년 3월에 석향후(石鄕侯)로 봉해졌다. 시호는 양(陽)으로 石鄕陽侯중국어이며, 아들 유건국이 작위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