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 (남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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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창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본시 원년(기원전 73년)에 남리후에 봉해졌으나 지절 2년(기원전 68년)에 살인죄로 작위가 박탈되었다. 《한서》 무오자전에 등장하는 광릉여왕의 아들 유보와 동일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전대소와 왕선겸은 유보가 유창의 오기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록은 반고의 《한서》 왕자후표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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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본시 원년(기원전 73년), 남리후(南利侯)에 봉해졌으나, 지절 2년(기원전 68년)에 살인죄로 작위가 박탈되었다.

《한서》 무오자전에 광릉여왕의 아들로 남리후 유보(劉寶)가 등장하는데, 유창과 행적이 일부 일치한다. 전대소·왕선겸은 둘은 동일인물이며, 무오자전의 '유보'는 '유창'의 오기라고 주장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남리후 책봉

본시 원년(기원전 73년), 남리후(南利侯)에 봉해졌으나, 지절 2년(기원전 68년)에 살인죄로 작위가 박탈되었다.

《한서》 무오자전에 광릉여왕의 아들로 남리후 유보(劉寶)가 등장하는데, 유창과 행적이 일부 일치한다. 전대소·왕선겸은 둘은 동일인물이며, 무오자전의 '유보'는 '유창'의 오기라고 주장하였다.

2.2. 작위 박탈과 죽음

본시 원년(기원전 73년), 남리후(南利侯)에 봉해졌으나, 지절 2년(기원전 68년)에 살인죄로 작위가 박탈되었다.

《한서》 무오자전에 광릉여왕의 아들로 남리후 유보(劉寶)가 등장하는데, 유창과 행적이 일부 일치한다. 전대소·왕선겸은 둘은 동일인물이며, 무오자전의 '유보'는 '유창'의 오기라고 주장하였다.

3. 《한서》 무오자전과의 관계

4. 평가

5. 가계

6. 출전

반고가 지은 《한서》의 왕자후표에 남리후 유창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남리후 유창은 기원전 73년 7월 임자일에 남리후로 봉해졌으나, 기원전 68년에 봉국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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