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룡 (부후)
1. 개요
유룡(부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원삭 3년(기원전 127년)에 부후에 봉해졌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종을 시켜 사람을 죽인 죄로 옥사했으며, 《사기》에는 사망 기사가 보이지 않고, 《한서》에는 연호가 '원강'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유룡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언급되어 있다.
유룡 (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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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룡은 원삭 3년(기원전 127년)에 부후(富侯)에 봉해졌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종을 시켜 사람을 죽인 죄로 옥사하였다. 사기에서는 사망 기사가 보이지 않으며, 한서에는 연호가 '원강'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3. 사료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부후 유룡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사기》에는 기원전 124년에 부후(胊侯)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서》에는 기원전 122년에 부후(富侯)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