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 (광척후)
1. 개요
유현(광척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광척후 유훈의 아들이자 유자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광척후에 봉해졌으며, 원시 5년 평제가 붕어한 후 왕망이 선제의 현손 중 가장 어렸던 유현의 아들 유자를 유자로 추대하면서, 유현과 그의 작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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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전한의 왕자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왕자후 -
유내시 (동양경후)
유내시는 아버지 유종의 뒤를 이어 동양경후 작위를 받았으며, 시호는 경, 아들은 유봉친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3. 행적
아버지 유훈의 뒤를 이어 광척후에 봉해졌다.
원시 5년(5년), 평제가 붕어하였다. 이때 황실의 혈통은 원제의 후손은 끊겼고, 선제의 증손은 제후왕 다섯 명, 열후는 유현 등 마흔여덟 명이 있었다. 왕망은 이들이 장성하였음을 불안히 여겨 형제 사이에서는 제위를 이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선제의 현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유현의 아들 유영을 유자(孺子)로 추대하여 평제의 뒤를 잇게 하였다. 이후 유현과 그의 작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3.1. 광척후 즉위
아버지 유훈의 뒤를 이어 광척후에 봉해졌다.
원시 5년(5년), 평제가 붕어하였다. 이때 황실의 혈통은 원제의 후손은 끊겼고, 선제의 증손은 제후왕 다섯 명, 열후는 유현 등 마흔여덟 명이 있었다. 이들이 장성하였음을 불안히 여긴 왕망은 형제 사이에서는 제위를 이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선제의 현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유현의 아들 유영을 유자(孺子)로 추대하여 평제의 뒤를 잇게 하였다. 이후 유현과 그의 작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3.2. 왕망의 집권과 유자 영의 추대
유훈의 뒤를 이어 광척후에 봉해졌다.
원시 5년(5년), 평제가 붕어하였다. 이때 황실의 혈통은 원제의 후손은 끊겼고, 선제의 증손은 제후왕 다섯 명, 열후는 유현 등 마흔여덟 명이 있었다. 왕망은 이들이 장성하였음을 불안히 여겨 형제 사이에서는 제위를 이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선제의 현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유현의 아들 유영을 유자(孺子)로 추대하여 평제의 뒤를 잇게 하였다. 이후 유현과 그의 작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3.3. 유현의 이후 행적
아버지 유훈의 뒤를 이어 광척후(廣戚侯)에 봉해졌다.
원시 5년(5년), 평제가 붕어하였다. 이때 황실의 혈통은 원제의 후손은 끊겼고, 선제의 증손은 제후왕 다섯 명, 열후는 유현 등 마흔여덟 명이 있었다. 이들이 장성하였음을 불안히 여긴 왕망은 형제 사이에서는 제위를 이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선제의 현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유현의 아들 유영을 유자(孺子)로 추대하여 평제의 뒤를 잇게 하였다. 이후 유현과 그의 작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4. 출전
반고중국어의 《한서》
* 권15하 왕자후표 下
* 권80 선원육왕전
* 권98 원후전
* 권99상 왕망전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