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반틴
1. 개요
응우옌반틴은 1888년 베트남 남부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인도차이나 의과대학 수석 졸업 후 파리 공립 병원 인턴 의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판쩌우찐의 장례식을 거행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인도차이나 민주당을 창당했고, 베트남어 보급 협회 창립 및 기아 퇴치 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코친차이나 민주당을 창당한 그는, 1946년 코친차이나 공화국 임시정부 총리 및 임시 대통령을 지냈으나, 실질적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허수아비 역할에 수치심을 느껴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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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코친차이나 자치 공화국 제1대 대통령 |
|---|---|
| 임기 시작 | 1946년 6월 1일 |
| 임기 종료 | 1946년 11월 10일 |
| 부통령 | 응우옌반쑤언 |
| 이전 | 직책 신설 |
| 이후 | 레반호아치 |
| 출생 | 1888년 |
| 출생지 | 프랑스 코친차이나 |
| 사망 | 1946년 11월 10일 |
| 사망지 | 사이공, 프랑스 코친차이나 |
| 정당 | 인도차이나 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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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의사 -
당투이쩜
당투이쩜은 베트남의 의사이자 작가로, 야전 외과 의사로 활동하며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쓴 일기가 사후 출판되어 베트남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전쟁의 참상 속 희망을 잃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어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비교되며,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제작되었다. -
베트남의 의사 -
판후이꽛
판후이꽛은 베트남의 정치인으로, 바오 다이 정권과 응우옌 칸 정권에서 요직을 역임했으며 1965년 총리로 취임했으나 종교 갈등으로 인해 퇴진하고 수감 중 사망했다. -
1888년 출생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1888년 출생 -
프리츠 제르니커
프리츠 제르니커는 위상차 현미경 발명 및 제르니커 다항식 개발을 통해 광학 분야에 기여하여 195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물리학자이다. -
자살한 정치인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
자살한 정치인 -
최익현
2. 생애
응우옌반틴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1926년 컨시스턴치날리스트 당에 입당했다. 1937년 코친차이나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가 되었으며, 1946년 코친차이나 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총리와 임시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에게 무시당하며 허수아비 역할에 수치심을 느껴 1946년 11월 10일 자살했다. 1888년 베트남 남부 명문가에서 태어나 1907년 인도차이나 의과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파리 공립 병원 인턴 의사 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베트남인 의대생 중 한 명이었다. 파스퇴르 연구소(파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판쩌우찐 장례식 거행을 통해 헌법주의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베트남어 보급 협회 창립, 기아 퇴치 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응우옌반틴은 1888년 베트남 남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인도차이나 의과대학 수석 졸업생이었으며, 파리 공립 병원의 인턴 의사 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베트남인 의대생 중 한 명이었다. 파스퇴르 연구소(파리)에서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2.2. 정치 활동
응우옌반틴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이미 소수의 선택된 베트남인들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던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고, 1926년에 컨시스턴치날리스트 당(Constitutionalist)에 입당하였다. 1937년에 코친차이나 민주당(Cochinchinese Democratic Party)을 창당하고 총재가 되었다. 1946년 초 베트남 남부 코친차이나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던 드골 정부를 도와 코친차이나 공화국 정부 수립에 동참하였다. 1946년 3월 26일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의 총리가 되고 6월 1일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정책 결정에 있어서 번번히 프랑스인들에게 무시를 당하던 그는 "내가 어리석은 짓을 다시 강요 당하고 있다"며 늘 한탄했다 한다.
공식 직함은 코친차이나 공화국 임시정부 대통령이었으나 공화국은 사실상 프랑스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고 허수아비 같은 역할에 수치심을 느껴 그해 11월 10일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판쩌우찐의 장례식을 거행하며 헌법주의자로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고, 1937년 인도차이나 민주당을 창당했다. 베트남어 보급 협회 창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기아 퇴치 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3. 코친차이나 공화국 임시 대통령과 죽음
응우옌반틴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이미 소수의 선택된 베트남인들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던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고, 1926년에 컨시스턴치날리스트 당(Constitutionalist)에 입당하였다. 1937년에는 코친차이나 민주당(Cochinchinese Democratic Party)을 창당하고 총재가 되었다. 1946년 초, 베트남 남부 코친차이나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던 드골 정부를 도와 코친차이나 공화국 정부 수립에 동참하였다. 1946년 3월 26일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의 총리가 되었고, 6월 1일에는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정책 결정에 있어서 번번히 프랑스인들에게 무시당하던 그는 "내가 어리석은 짓을 다시 강요당하고 있다"며 늘 한탄했다 한다.
그의 공식 직함은 코친차이나 공화국 임시정부 대통령이었으나, 공화국은 사실상 프랑스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고, 허수아비 같은 역할에 수치심을 느껴 1946년 11월 10일 사무실에서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