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게이이치
1. 개요
이노우에 게이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를 거쳐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롯데 오리온스에서, 1975년에는 한신 타이거스에서 활동했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 후 지역 회사에서 근무했다. 현역 시절에는 직구와 커브를 주무기로 사용했으며, 체인지업도 드물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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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현 출신 -
이마이 유카
이마이 유카는 1970년 9월 19일에 태어난 일본의 성우이며, 1994년 데뷔하여 여러 작품에 출연했고, 2018년에 은퇴를 발표했다. -
시즈오카현 출신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연도별 투수 성적을 포함한 문서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연도별 투수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2. 선수 경력
*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
* 롯데 오리온스 (1973년 ~ 1974년)
* 한신 타이거스 (1975년)
시즈오카현립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했다. 사회인 야구팀 시절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1971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에 입문했다.
롯데 오리온스에서는 입단 첫 해 4경기 등판에 그쳤고, 이듬해에는 팔꿈치 부상 등으로 인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74년 시즌 종료 후, 이케베 이와오와 함께 스즈키 간무, 우에츠지 오사무, 오가와 세이이치, 모리야마 마사요시, 히라야마 히데오를 상대로 하는 2대 5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한신에서는 1군 공식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나 24세의 젊은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고향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했다.
선수 시절 주무기는 직구와 커브였으며, 슈트나 체인지업도 가끔 구사했다.
2.1. 아마추어 시절
시즈오카현립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1970년에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가와사키 공장으로 변경)에 입사하여 이케다 젠고와 함께 좌우 투수진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1970년 11월, 도에이 플라이어스로부터 드래프트 2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거부했다.
197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으나, 1차전에서 신일본제철 히로하타의 미사와 준 등과 투수전을 벌인 끝에 패했다. 같은 해 11월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로부터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지만, 협상권을 보류하고 이듬해인 1972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다시 출전했다. 이 대회의 준준결승전에서는 덴덴 규슈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팀은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일본악기의 신미 사토시에게 완봉패를 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당시 팀 동료로는 하라다 도시하루, 스즈키 히로아키, 나가오 야스노리(이스즈 자동차에서 보강) 등이 있었다. 이후 드래프트 마감 기한 전에 롯데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2.2. 프로 시절
시즈오카현립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1970년에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가와사키 공장으로 변경)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했다. 1970년 11월, 도에이 플라이어즈로부터 드래프트 2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거부했다.
1971년 11월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고, 사회인 야구팀에서 1년 더 활동한 뒤 1972년 드래프트 최종 기한 전에 롯데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롯데에서는 1년차에 4경기 등판에 그쳤고, 2년차에는 팔꿈치 부상 등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1974년 시즌 종료 후, 이케베 이와오와 함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한신에서는 1군 공식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나 24세의 젊은 나이로 프로 야구계를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고향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했다.
주무기는 직구와 커브였으며, 슈트나 체인지업도 가끔 구사했다.
2.2.1. 롯데 오리온스
1971년 11월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로부터 전체 1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협상권을 보류하고 사회인 야구팀에 남았다. 이듬해인 1972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 소속으로 출전했다. 준준결승전에서는 덴덴 규슈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팀은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일본악기의 신미 사토시에게 완봉패를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팀 동료로는 하라다 토시하루, 스즈키 히로아키, 나가오 야스노리(이스즈 자동차에서 보강) 등이 있었다. 도시 대항 야구 대회가 끝난 후, 드래프트 마감 기한 전에 롯데 오리온스에 정식으로 입단했다.
롯데 입단 첫 해인 1973년에는 1군 공식전에 4경기 등판하는 데 그쳤고, 이듬해인 1974년에는 팔꿈치 부상 등의 영향으로 거의 활약하지 못했다. 결국 1974년 시즌 종료 후, 이케베 이와오와 함께 스즈키 간무, 우에츠지 오사무, 오가와 세이이치, 모리야마 마사요시, 히라야마 히데오를 상대로 하는 2대 5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2.2.2. 한신 타이거스
1974년 시즌 종료 후 이케베 이와오와 함께 스즈키 간무, 우에츠지 오사무, 오가와 세이이치, 모리야마 마사요시, 히라야마 히데오 등과의 2대 5 맞트레이드로 한신 타이거스에 이적했다. 하지만 한신에서도 공식전에서의 단 한 번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그 해를 끝으로 퇴단, 24세의 나이로 야구계를 은퇴했다.
4. 상세 정보
시즈오카현립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를 거쳐 1971년 드래프트 1순위로 롯데 오리온스에 입단했으나,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1974년 한신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한신에서는 1군 등판 없이 1년 만에 은퇴했다. 주특기는 직구와 커브였으며, 슈트와 체인지업도 간혹 구사했다.
4.1. 출신 학교
시즈오카 현립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4.2. 선수 경력
시즈오카현립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에 입단하여 이케다 젠고와 함께 좌우 투수진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1970년 11월, 도에이 플라이어스로부터 드래프트 2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거부했다.
197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1회전에서 신닛테쓰 히로하타의 미사와 준 등과 맞붙었으나 패배했다. 같은 해 11월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다. 하지만 교섭권을 보류하고 이듬해 1972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준준결승에서는 덴덴 규슈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팀은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일본 악기의 신미 사토시에게 완봉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팀 동료로는 하라다 하루아키, 스즈키 히로아키, 나가오 야스노리(이스즈 자동차에서 보강) 등이 있었다. 이후 드래프트 최종 기한 전에 롯데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롯데 오리온스에서는 입단 첫 해부터 공식전에 등판했지만 4경기 출장에 그쳤고, 2년차에는 팔꿈치 부상 등으로 인해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1974년 시즌 종료 후, 이케베 이와오와 함께 스즈키 간무, 우에츠지 오사무, 오가와 세이이치, 모리야마 마사요시, 히라야마 히데오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한신에서는 공식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프로 야구계를 은퇴한 후에는 고향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했다.
주무기는 직구와 커브였으며, 슈트와 체인지업도 간혹 구사했다.
4.3. 등번호
* 19 (1973년 ~ 1974년)
* 43 (19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