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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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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신 타이거스는 1935년 창단된 일본의 프로 야구팀으로, 오사카 타이거스를 거쳐 현재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센트럴 리그 소속으로, 1962년, 1964년, 1985년, 2003년, 2005년, 2023년에 리그 우승을, 1985년과 2023년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구단이며, 열정적인 팬들과 함께 고시엔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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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기본 정보
팀 이름한신 타이거스
영어 표기Hanshin Tigers
일본어 표기阪神タイガース
창단일1935년 12월 10일
연고지효고현 (1952년~2004년)
효고현, 오사카부 (2005년~2007년)
효고현 (2008년~)
홈구장한신 고시엔 구장
수용 인원47,359명
별명'Tora' (, 호랑이)
'Mōko' (, 맹호)
기타 명칭니시노미야 타이거스
이전 팀 이름오사카 타이거스 (1935년~1940년)
한신 클럽 (1940년~1944년)
오사카 타이거스 (1946년~1960년)
구단 운영 회사주식회사 한신 타이거스
가맹 단체센트럴 리그
모기업한신 전기 철도 ( 한큐한신홀딩스 자회사)
구단주스기야마 겐히로 (한신 전기 철도, 한큐한신홀딩스 이사)
사장아와이 가즈오
감독후지카와 규지
선수 회장나카노 다쿠무
마스코트토-럭키, 럭키, 키타
팀 색상노란색, 검은색, 흰색
공식 웹사이트한신 타이거스 공식 웹사이트
유튜브 채널한신 타이거스 공식 유튜브 채널
기록
리그 우승 횟수10회
리그 우승 연도1937년 가을
1938년 봄
1944년
1947년
1962년
1964년
1985년
2003년
2005년
2023년
일본 시리즈 우승 횟수2회
일본 시리즈 우승 연도1985
2023
일본 시리즈 출전 횟수7회
일본 시리즈 출전 기록2승 5패
일본 시리즈 출전 연도1962
1964
1985
2003
2005
2014
2023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 횟수12회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 기록2승 10패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 연도2007
2008
2010
2013
2014
2015
2017
2019
2021
2022
2023
2024
영구 결번10: 후지무라 후미오
11: 무라야마 미노루
23: 요시다 요시오
구단 정보
소재지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초 2번 33호
설립일1935년 12월 10일 (주식회사 오사카 야구 구락부)
사업 내용프로 야구 구단 운영, 프로 야구 흥행 사업 등
자본금4,800만 엔
순이익26억 5,900만 엔 (2024년 3월 기준)
총자산249억 3,200만 엔 (2024년 3월 31일 기준)
주요 주주한신 전기 철도 (100%)
연결 자회사한큐한신홀딩스
기타 정보
유튜브 구독자 수53.1만 명
유튜브 조회수2억 4,403만 회
유튜브 채널 개설일2020년 2월 1일
은색 버튼 획득 여부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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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단의 역사

1962년,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을 중심으로 고야마 마사아키, 무라야마 미노루 원투펀치의 활약과 유격수 요시다 요시오, 3루수 미야케 히데시, 2루수 가마다 미노루를 필두로 한 '''수비의 야구'''로 양대 리그 분할 이후 최초이자 팀 통산 5번째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도에이 플라이어스를 상대로 2연승을 거뒀으나, 3차전 무승부 이후 4연패를 기록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1964년에는 야마우치 가즈히로와 진 바크 등을 영입, 고야마 마사아키의 공백을 메워 통산 6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시즌 막판 9연승으로 역전 우승을 이뤄냈으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난카이 호크스에게 3승 4패로 패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프로 야구단인 한신 타이거스는 1935년 12월 10일에 창단되었으며, 1936년에 팀이 결성되었다.[1] 초기 명칭은 오사카 타이거스였다. 1940년, 반외국 정서와 도조 정권의 영어 별칭 금지로 인해 팀 이름을 한신으로 변경했다. 1947년, 영어 별칭 의무화로 팀 이름은 다시 오사카 타이거스로 돌아갔다. 현재의 팀 이름은 1961년에 채택되었다.

한신 타이거스는 1950년 2리그 체제 도입 전에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분리 후, 센트럴 리그에서 6번(1962년, 1964년, 1985년, 2003년, 2005년, 2023년), 일본 시리즈에서 2번(1985년, 2023년) 우승했다.

200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즌이 일본에서 시작되었을 때, 타이거스는 3월 29일 도쿄 돔에서 뉴욕 양키스와 친선 경기를 치러 11-7로 승리했다.[2]

2005년부터 2007년, 그리고 2009년에는 300만 명 이상의 관중이 타이거스의 홈 경기를 관람했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12개 팀 중 유일한 기록이다. 2011년 한신 타이거스의 평균 홈 관중 수는 40,256명이었다.[3]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은 봄과 여름에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를 위해 일본 전역의 고등학교 야구팀이 사용한다. 여름 대회는 타이거스 시즌 중간에 열리기 때문에, 타이거스는 원정 경기를 치르고 홈 경기는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해야 한다. 팬들은 이것을 "죽음의 로드"라고 부른다.

한신 타이거스 역사상 유명한 선수로는 후지무라 후미오, 카게우라 마사루, 무라야마 미노루, 에나쓰 유타카, 카케후 마사유키, 랜디 배스, 후지타 타이라 등 많은 선수들이 있다.

2. 1. 창단과 전쟁 이전 (1935년 ~ 1945년)

1934년 말, 요미우리 신문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대도시와 그 교외를 중심으로 직업 야구 리그를 결성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오사카 권에서는 한신 전기 철도가 요미우리 신문의 요청을 받아들여 당시 일본 최대의 야구장이던 고시엔 구장을 홈으로 한 구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1935년 10월 22일, 몬젠 마사토와의 입단 계약을 시작으로 고시엔을 통해 탄생한 여러 야구 스타들과 도시간 대항 야구의 강자였던 다롄 실업 소속이던 마쓰키 겐지로 등을 모아 12월 10일에 ‘주식회사 오사카 야구 클럽’을 발족하고 구단명을 '''오사카 타이거스'''로 정하였다.

1936년 1월 9일, 실업팀인 가와사키 콜롬비아의 와카바야시 다다시, 2월 28일 릿쿄 대학가게우라 마사루 등의 선수들과 추가로 계약하면서 같은 해 4월 9일 구단 창단 기념 경기 전까지 17명의 선수를 수급했다. 2월 5일에는 도쿄 자이언츠, 나고야군, 한큐군, 나고야 긴코군 등과 함께 7개 구단이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을 결성하였으며, 이는 지금의 일본 야구 기구의 시초가 되었다.

같은 해 공식전은 춘계, 하계, 추계 시즌으로 나누어 도쿄, 오사카, 나고야의 각 도시권에서 몇 개의 경기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춘계 시즌은 고시엔 구장, 나루미 구장, 다카라즈카 구장에서 세 개의 대회가 거행되었으나 도쿄 자이언츠가 미국 원정 중에 있었고 나고야 긴코군도 대외 원정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리그 통합 우승은 결정되지 않았다.

춘계 리그와 추계 리그의 각 시즌은 각 대회에서 1위가 된 횟수로 시즌 우승을 결정하는 승점제 방식이었다. 하계 시즌의 나고야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오사카 타이거스는 도쿄 대회, 오사카 대회에서 각각 1등이 된 나고야군, 한큐군과의 우승 결정전을 실시하게 되어 있었으나 결정전 직전에 중지되면서 첫 우승의 기회를 놓치게 됐다. 그러던 와중 모회사 내에서 경쟁 관계에 있었던 한큐군에게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단 최초의 감독이었던 모리 시게오 감독이 해임되고 이시모토 슈이치가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가을에는 24승 1무 6패를 기록하며 시즌 우승 승점이 도쿄 자이언츠와 동일했으나 12월 스자키 구장에서의 우승 결정전에서 1승 2패로 석패하며 끝내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다.

1937년 추계 시즌과 1938년 춘계 시즌에는 미소노오 다카오를 필두로 한 강력한 투수진과 다나카 요시오 등으로 구성된 파괴력 있는 타선을 바탕으로 하여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시즌 2연패에 성공했다. 게다가 2년 동안 모두 첫 시즌 우승 결정전의 상대가 되었던 도쿄 자이언츠를 물리치며 2년 연속 우승 달성에도 성공했다.

1938년 조선을 방문한 오사카 타이거스는 같이 조선을 방문한 나고야와 경성에서 친선경기를 펼쳐 6대 1로 승리한다. 다음날 오사카는 자체 홍백전을 하기로 했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나고야전에서 분전한 몇몇 선수가 피로와 부상으로 도저히 자체 홍백전에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1936년 창단 이후 줄곧 얇은 선수층 때문에 고생했던 오사카로선 예견된 낭패였다. 오사카는 이참에 조선에서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저기서 선수를 소개받는다. 이때 오사카가 소개 받은 선수가 체신국 투수 박현명이었다. 오사카는 공개 테스트로 박현명을 스카우트했다. 박현명은 오사카 유니폼을 입고 1939년 8월 12일 첫 등판을 한다.[346]

1940년 9월 25일, 일본의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일본 야구 연맹의 방침으로 영어 사용을 금지받아 구단명을 오사카 타이거스에서 '''한신군'''으로 개칭했다. 전시에 따라 수많은 선수들이 징집되면서 선수들의 인원 수가 부족한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1944년 감독 겸 선수였던 37세의 와카바야시 다다시가 35경기 중 31경기에 등판하여 타이틀을 따내 3번째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1945년 1월에 벌어진 정월 대회(비공식전)에 ‘'''맹호'''’(한신과 산교군의 합동 팀)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것을 마지막으로 같은 해 활동이 정지됐다.

2009년 고시엔 구장

2. 2. 전후 혼란기와 부흥 (1946년 ~ 1960년대)

한신 전기 철도(한큐 한신 홀딩스 산하)의 株式会社阪神タイガース일본어가 운영 법인이다.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한신 고시엔 구장을 홈 구장으로, 2군(웨스턴 리그) 홈 구장은 니시노미야 시에 있는 한신 나루오하마 구장이다.[345]

제2차 세계 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후, 1945년 11월 동서 대항전(비공식 대회)을 통해 복귀했고, 1946년 3월 구단명을 오사카 타이거스로 변경했다.

1947년, 와카바야시는 1944년 리그 우승 때처럼 감독 겸 투수로 최고 수훈 선수상(MVP)을 받으며, 전쟁 이후 첫, 통산 4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미스터 타이거스' 후지무라 후미오 중심의 거포 타선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49년 팀 순위가 6위로 추락했음에도 후지무라는 MVP를 수상했다.

마쓰키 겐지로(1937년)


1949년 오프 시즌 신구단 가맹 문제에서, 마이니치 오리온스 등 신구단 가입에 소극적 찬성 입장이었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과 센트럴 리그를 창설했다. 마이니치는 한신의 선수들을 집중 영입, 감독 겸 투수 와카바야시, 타격 및 수비 주요 선수들을 데려갔고, 한신 입단 예정 선수들도 빼앗았다. 주전 유격수 하세가와 젠조는 니시테쓰 클리퍼스로, 몬젠 마사토는 다이요 웨일스로 이적하며,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붕괴되었다.

1950년 센트럴 리그 원년, 와카바야시 대신 마쓰키 겐지로 감독 체제로, 후지무라, 가네다 마사야스, 고토 쓰구오 중심으로 팀을 재편, 전년도 6위보다 높은 리그 4위를 기록했으나, 신규 가맹 구단 제외 시 최하위로, 선수 유출 피해가 컸다.

1950년대, 팀 재건을 위해 2군 구성, 스카우트 제도 도입 등 개혁을 통해 세대교체를 준비, 요시다 요시오, 와타나베 쇼조, 고야마 마사아키, 다미야 겐지로 등 신진 선수들이 주전에 합류하며 성적은 상승했으나, 투타 부조화로 미즈하라 시게루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황금기에 우승과는 멀어졌다.

1954년 마쓰키 감독 퇴임 후, 프로 경력 없는 기시 이치로 감독 기용은 팬과 매스컴을 놀라게 했다. 기시는 선수 융화 실패, 성적 부진으로 1955년 5월 중순 휴양했고, 후지무라 후미오가 감독 대행, 시즌 후 정규 감독이 되었다. 1956년 시즌 후, 일부 선수들이 후지무라 감독 퇴진 요구, 구단과 대립하며 내분이 일어났고, 2개월 만에 해결되었다. 1957년 요미우리와 선두 경쟁 끝에 1경기 차 2위, 시즌 후 다나카 요시오로 감독이 교체되었다. 후지무라는 현역 복귀, 1958년 은퇴, 등번호 10번은 구단 최초 영구 결번이 되었다.

1952년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으로 효고현을 연고지로 삼았다.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관중들이 풍선 날리고 있는 모습


1961년 4월 1일, 회사명을 ‘주식회사 한신 타이거스’(株式会社阪神タイガース일본어)로, 팀명도 '''한신 타이거스'''로 변경했다.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은 성적 부진, 선수와 갈등으로 시즌 중 해임, 요미우리 시절 7차례 우승, 당시 수석 코치 후지모토 사다요시가 후임 감독이 되었다.

2. 3. 요미우리 9연패 저지와 암흑기 (1970년대 ~ 1990년대)

1973년 당시 한신은 8연패 중이던 요미우리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8월 5일 요미우리와의 경기(고시엔) 9회 초 2아웃에서 중견수 이케다 준이치가 구로에 토오루의 평범한 플라이볼을 쫓다가 당시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외야 천연잔디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이때 1루 주자들이 모두 홈에 들어오면서 승리 직전이었던 한신은 역전패를 당했다. 이케다가 넘어졌을 뿐 '''플라이볼을 놓친 것은 아니었지만''', 한신이 이후 경기 결과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이 플레이는 후대까지도 「세기의 '''낙구'''」로 불렸다. 이케다 본인은 무심한 팬들로부터 「전범」으로 몰리는 등의 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야구계를 떠난 후 2005년에 사망했다.[276]

8월 30일 중일과의 경기(고시엔)에서는 선발 에나쓰노히트 노런을 이어가던 중 연장 10회말 타석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중일의 우승 가능성을 없애긴 했지만, 다음 날인 8월 31일에는 요미우리가 선두로 올라섰다. 10월 10일 요미우리와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는 타부치가 구라타 마코토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쳐냈고, 에나쓰가 막아내 승리하면서 흐름은 한신 쪽으로 기울어 보였다.[276] 하지만 다음 날은 7-0으로 앞서다가 요미우리가 추격해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10-10 무승부로 끝났다.[277]

남은 2경기를 앞두고 근소한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1승만 더하면 우승이라는 상황까지 몰렸던 10월 20일 중일과의 경기(중일 구장)에서는 중일 킬러 우에다의 선발이 예상됐지만, 킨다 마사야스 감독은 팀 최다승 투수 에나쓰를 선발로 지명했다.[278][279] 그러나 이것이 역효과를 불러와 키마타 타츠히코에게 홈런을 맞고 역전을 허용했고, 타선은 호시노 센이치에게 막히면서 2-4로 패배했다.[278][280] 에나쓰는 자서전에서 「19일 프런트로부터 구단 사무실로 불려가서, 『남은 2경기는 이기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278][281] 에나쓰가 중일전 경기 종료 후, 7회 초 2아웃 주자 없는 자신의 타석에서 대타로 교체된 것에 대해 발언하면서 「벤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고 하고, 우에다는 「벤치 분위기의 어색함」 때문에 요미우리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팽팽했던 것이 끊어졌다」고 후에 언급했다.[282]

이 중일전 종료 직전, 경기장 근처를 지나는 도카이도 신칸센을 요미우리 선수단을 태운 열차가 통과했다는 일화가 있으며, 실제로 당시 경기 영상이 남아있다. 선수 중 한 명은 차 안에서 스코어보드를 보려고 했지만 보지 못했고, 나고야역 도착 시 팬들이 경기 결과를 알려주자 선수들은 기분이 좋아졌다고 전해진다.[283]

10월 22일(원래는 21일이었지만 우천으로 연기) 요미우리와의 경기(최종전)에서 '''그 경기에서 이긴 팀이 우승'''하는 상황이 되었다.[284] 하지만 약 4만 8천 명의 많은 관중이 모인 이 경기에서도 0-9로 대패하며 요미우리의 V9를 허락했다. 16시 19분, 마지막 타자 윌리 커클랜드가 삼진으로 물러난 순간, 패배와 V9를 허용한 한신의 부진에 분노한 팬 약 1500명이 폭도로 변해 1루측 관중석과 알프스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난입해 양팀 벤치를 향했다. 한신 선수와 스태프는 경기 종료와 함께 라커룸으로 피신해 무사했지만, 요미우리 선수들은 곧바로 벤치로 피했지만, 은 맞아 벤치 앞에서 쓰러졌고, 모리는 캐처 마스크를 빼앗기는 등 선수와 코치를 포함한 7명이 구타를 당했다. 요미우리 관계자는 벤치 뒤편으로 도망쳐 헹가래도 없이 아시야시 숙소로 돌아갔다. 선수들의 퇴장을 알게 된 한신 팬들은 3루측 관중석의 요미우리 팬들에게 「꺼져, 꺼져」라고 고함을 지르며 그라운드의 흙과 방석, 빈 깡통 등을 던져 응수했다. 「그만둬」라며 그라운드에 내려온 요미우리 팬들을 한신 팬들이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져 효고현 경찰 기동대원과 고시엔 경찰서 경찰 약 180명이 출동하는 사태가 되었다.[285][286]

경기장 밖에서도 16시 40분경 한신 구단 관계자들이 탄 차를 팬 약 500명이 둘러싸고 「그 경기는 뭐냐!」라며 차체를 흔들기도 했다.[287] 고시엔 경찰서가 설치한 경비 본부도 투석을 당했다.[288]

이 경기는 요미우리 TV가 닛폰TV 계열 전국 방송으로 중계했고,[290] 킨키 광역권 지역에서는 아사히 방송산테레비를 포함한 3개 방송국이 동시에 TV 중계를 했다. 라디오도 아사히 방송·마이니치 방송·TBS 라디오·닛폰 방송·분카 방송·라디오 칸토이 각각 중계했지만,[291] 요미우리 TV와 아사히 방송의 중계석에는 도중부터 위험물 등이 던져졌고, 선수들의 퇴장 후에는 200명 정도의 폭도들이 몰려들었다.[286]

아사히 방송의 TV 중계석에서는 폭도 일부가 우에쿠사 사다오나 네모토 리쿠오 등에게 「방송을 그만둬」라고 고함을 지르거나, 빈 깡통을 던지기도 했다. 우에쿠사는 폭도가 아닌 한신 팬 한 명으로부터 머리 위에 방석을 든 채 실황을 계속했다. 당시 한신 팬이었던 나카무라 에이이치가 아사히 방송 라디오에서 진행했던 생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의 청취자로 보이는 한신 팬이 「여기는 에이치 씨[292] 자리(아사히 방송의 TV 중계석)니까 봐주세요」라고 외쳤다.[293] 또한, 양심적인 한신 팬들이 폭도들을 설득하면서 중계석과 장비에 대한 공격은 면했다.[294] 하지만 방송 종료(16시 38분 30초)까지 30초 동안 음성이 끊겨 TV에는 중계 영상만 흘러나왔다.[286]

폭도들은 요미우리 TV 중계석도 공격하며 「요미우리 편만 들지 마」라며 당시 고가였던 TV 카메라와 VTR 장비 등 방송 장비를 파괴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말리려고 들어간 해설자 무라야마 미노루에게도 「한신 선수였으면서 요미우리 TV 해설을 하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기동대원 약 30명이 3개 방송국의 중계석을 둘러싸고 폭도들을 막았지만, 고시엔 경찰서 조사에 따르면 요미우리 TV의 피해는 약 1000만에 달했다. 이 난동 때문에 우승 순간은 선명한 VTR 영상이 없고, 영화 필름에 옮긴 것만 남아있다.

한편, 산테레비의 중계석과 장비는 「산테레비는 우리 편이다」라는 한신 팬들에게 지켜져 무사했다.[294] 또한 아사히 방송과 달리 폭도들에 의한 실황 방해 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

평소 경기에서는 경찰관 100명, 구장 직원 30명의 경비 체제였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경찰관 200명, 한신 전기 철도 직원 80명, 아르바이트 120명, 경비원 50명 총 450명을 대기시키는 특별 경비 체제를 갖췄지만, 이 소동을 진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효고현 경찰의 기동대 70명이 16시 50분에 출동했다.[286] 흩어진 팬들은 기동대를 멀리서 지켜보며 「꺼져!」라고 외쳤다. 팬 대부분은 17시가 지나 경기장 밖으로 나갔지만, 그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한신 팬과 약 800명의 군중은 고시엔 구장 지정석 매표소 앞에 모여 「한신 관계자에게 사과하게 해라」라고 소란을 피우며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를 합창하며 기세를 올렸다. 현 경찰의 요청으로 18시가 지나 한신 감독 킨다가 유니폼 차림으로 경기장 밖에 나타나 휴대용 마이크를 사용해 팬들에게 사과와 감사를 전했다.[295] 이에 따라 19시에 팬들은 해산했지만, 경비 본부에 대한 투석으로 경찰 1명이 부상하고 팬 6명이 다쳤다.[286][296] 그 외에 요미우리 TV 방송 장비를 파손한 혐의 등으로 몇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한신은 우승을 가정해 타부치 코이치를 기용한 일본 시리즈용 포스터[297]와 「우승 기념」이라고 쓰인 성냥을 제작했지만, 모두 폐기처분되었고, 성냥[298]은 한신 전철의 휴양소에서 사용되었다.[299]

2. 4. 부활과 황금기, 그리고 현재 (2000년대 ~ 현재)

2005년부터 연간 관중 수 공식 집계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신 타이거스는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연간 300만 명 이상을 동원하고 있다.[345] 효고현과 인접한 오사카부에서도 오사카 부를 본거지로 하는 오릭스 버펄로스를 훨씬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다.

그 해에는 시즌 종료 때까지 주니치와의 치열한 우승 쟁탈전을 펼쳤다. 시즌 중반에 9연승을 달렸지만 이마오카의 부진과 구보타의 갑작스런 부상 등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리그를 2위로 마쳤다. 그러나 1985년 ~ 1986년 이래 20년 만에 2년 연속 A클래스 진입 및 구단으로서는 처음으로 2년 연속 80승을 달성했다. 2005년부터 시작된 실제 관객동원수 집계에서는 2년 연속으로 300만명을 넘겼으며 1경기당 평균 관객수는 12구단 중 최다인 4만 3천명을 기록했다. 오프 시즌 중 에이스 이가와가 포스팅 시스템으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기 때문에 이를 메꾸기 위하여 용병 에스테반 얀, 라이언 보겔송 등을 영입하였다.

4월부터 5월에 걸친 선발진과 타격진의 동반 부진으로 내리 9연패를 당한데다가 교류전에서도 9승 1무 14패의 전체 10위를 기록하는 침체로 승차를 -9까지 기록하였으나 정규 리그전이 재개된 이후로는 JFK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 야구를 구사하며 요미우리와 주니치를 추격했다. 특히 7월에는 요미우리와 주니치를 상대로 10승 3패, 이 달 전체 15승 6패를 기록한데 이어, 8월에는 12승 1무 8패를 기록하며 임시 선두에 올라섰으나, 9월 JFK 계투진의 위력이 떨어진데다가 타격진과 선발진의 페이스가 떨어진 채 8연패를 기록, 결국 리그 3위에 그쳤다. 그 해에 도입된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에서 리그 2위를 기록한 주니치와 대결했지만 2연패를 기록하며 패했다.

이 해 선발의 완투가 스기야마 나오히사, 노미 아쓰시, 우에조노 게이지에 의한 3회에 그치고, 2003년 오릭스 이후 4년 만에 그 어떤 팀내 투수도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팀 타율과 득점에서도 12개 구단 중 최하위에 그쳤다. 그 한편으로는 사쿠라이 고다이, 사카 가쓰히코, 가노 게이스케 등 신인 선수들이 일정한 활약을 보인 시즌이기도 했다. 오프 시즌에 3년간 팀에서 활약했던 앤디 시츠가 은퇴했고, FA로 입단한 선수로는 아라이 다카히로, 트레이드로 오릭스로부터 히라노 게이이치, 닛폰햄으로부터 가네무라 사토루, 메이저 리그로부터 류 포드를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선수 보강을 했다.

시즌 초반부터 선두를 질주하면서 5월 6일의 요미우리전에서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두 번째인 팀 통산 4500승을 달성, 7월 8일에는 2위였던 요미우리에게 최대 13경기차를 벌렸고 같은 달 22일에는 매직 넘버를 점등시켰으나 주력 선수인 아라이, 야노, 후지카와가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팀에서 이탈했고 이마오카와 구보타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아라이의 요통으로 인한 부상, 선발진의 부진, JFK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그 후 맹추격하던 요미우리에게 10월 8일의 맞대결에서 패배해 결국 리그 우승을 빼앗겼다. 13게임차가 역전된 기록은 센트럴 리그의 가장 최악의 기록이었다.[348]

우승 달성에 실패한 후 오카다 감독은 이를 책임지는 의미에서 사의를 표명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에서 주니치와 2년 연속으로 결전했으나 1승 2패의 성적을 기록해 2년 연속 1스테이지에서 패배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오카다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이후 정식 사임했고, 마유미 아키노부가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4월에 가네모토가 절호조를 보였지만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했던 이와타 미노루, 포수인 야노와 선발로 전환했던 구보타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가세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라이 등의 타격 부진과 그 해에 입단한 외국인 용병 케빈 멘치마저 부진을 겪는 등 요미우리와 주니치에게 압도당하며 우울한 전반기를 보냈다. 6월에는 대타 용병으로 크레이그 브라젤을 영입, 이후에 아라이가 타격감을 되찾았고, 스콧 애치슨과 후지카와가 맹활약을 하면서 리그 순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전반기에서는 요미우리전에서의 부진의 한을 풀듯 후반기에 요미우리를 압도하면서 야쿠르트와의 3위 싸움을 벌였다.

리그 우승을 거둔 요미우리와의 대결에서는 유일하게 상대 전적에 뒤지지 않은 구단이었으나 최종전에서 야쿠르트에게 연패하며 4위에 머물러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제동이 걸렸고 결국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놓치게 되었다. 그 해에는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한 선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이틀 획득자도 없어 3개 부문에서 모두 수상자가 없는 것은 1995년 이후 14년 만의 일이었고 규정 타석수 이상으로 타율 3할대에 오르지 못한 타자들조차 2000년 이후 9년 만에 아무도 기록하지 못했다. 특히 야수진들의 부진이 눈에 띈 시즌이었고 게다가 12구단에서 유일하게 5연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오프 시즌에 시애틀 매리너스에 소속해 있던 조지마 겐지를 영입하는 한편, 9년 동안 팀을 계속 유지한 아카호시가 은퇴했고 이마오카, 제프 윌리엄스 등이 팀을 탈퇴했다.

그 해에 새로 입단한 조지마 겐지, 맷 머턴, 제이슨 스탠드리지와 함께 신인 후지카와 슌스케, 아키야마 다쿠미 등이 활약하며 대약진을 이루었으나 투수진의 부상이나 부진이 겹치면서 선발과 중간 계투 양면에서 안정감이 떨어졌고, 가네모토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연속 이닝 출전 기록이 멈추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반면 야수진은 대활약을 펼치며 12개 구단 중 팀 타율 1위를 기록했다.

9월 들어 날마다 리그 선두가 바뀌는 혼란이 계속되었고, 9월 26일에 선두로 달리고 있던 주니치에 비해 남은 경기가 많았던 한신에게 매직 넘버 8이 점등된 적도 있었으나 매직 넘버 점등 이후 요미우리전(9월 28일)과 요코하마전(9월 30일)에서 잇달아 패해 자력 우승에 실패하면서 주니치에게 매직 넘버가 이동되었다. 10월 1일의 히로시마전에서도 0-5로 참패하며 주니치의 리그 우승이 확정되며 결국 리그 2위에 그쳤다. 처음으로 고시엔 구장에서 치루게 된[349]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에서 리그 3위의 요미우리와 대전했으나 1, 2차전 모두 선취점을 따내고도 역전패를 당했다. 오프 시즌에 FA로 고바야시 히로유키와 후지이 아키히토를 영입했으나 오랫동안 주전 포수로 활약한 야노가 은퇴하였다. 시니어 디렉터인 호시노 센이치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감독으로 취임하기 위해 팀을 떠났다.

FA로 영입한 고바야시에 대한 보상 선수로 다카하마 다쿠야가 지바 롯데로 이적했다. 3월 25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야쿠르트와 개막전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같은 달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개막일이 바뀌면서 4월 12일 고시엔 구장에서 히로시마와 개막전을 가졌는데 한신에게 있어서는 1993년 이후 18년 만의 일이었다. 이 경기에서는 승리하여 1971년 이후 40년 만에 고시엔 구장에서의 개막전 승리를 거두었다.

개막 초에는 선발진이 안정된 활약을 보여주면서 시즌 개막을 무난하게 보냈지만 팀 타선의 부진과 스프링 캠프 때 필승 공식으로 내정해 두었던 구보타와 고바야시 히로유키의 부진이 심해지면서 팀 성적이 요동쳤다. 6월 8일부터 대타 출전이 주요했던 세키모토는 선발 멤버로 기용되었고 부상 중이던 조지마를 대신해 후지이 아키히토를 주전 포수로 기용하는 등 팀내 상황을 바꿔 보았지만 한 때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부진에 시달리고 있던 일부 타자들도 부진에서 벗어났고 투수에서는 신인 선수인 에노키다 다이키가 셋업맨으로서 활약해 후지카와와 와타나베 료를 더한 새로운 필승조가 완성되는 등 조금씩 투타가 서로 맞물리게 되었다. 몇 차례나 주력 선수들의 이탈도 있었지만 이를 대체하는 신인 선수의 기용과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주면서 월간 성적도 6월 8일 이후의 6월, 7월, 8월 연속으로 승패마진에서 +를 기록하며 리그 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9월에 들어가면서 그때까지 호조를 보였던 투수진이 안정감을 잃었고 그 때까지 상대 전적에서의 우위를 보였던 선두 야쿠르트와 상대하면서 6연패를 당하는 등 구단으로서는 최악의 기록을 계속 써 나갔다. 결국 시즌 4위를 차지하면서 A클래스의 진입에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마유미 감독은 사임했고 후임에는 1군 타격 코치였던 와다 유타카가 부임했다. 그 해는 시모야나기 쓰요시가 퇴단했다.

한신 구단 설립 이후 처음으로 ‘캡틴 제도’를 도입해 야수에는 도리타니 다카시, 투수에는 후지카와 규지가 각각 발탁되었다.

그러나 이 해는 심각할 수준의 타격 부진을 기록하였다. 팀타율, 타점, 득점 전부 리그 최하위였으며, 에이스 노미 아쓰시와 맷 머턴이 언쟁을 벌이기까지 하는 등 팀 내 분위기도 어수선하였다. 결국 시즌 5위로 마감하고 만다. 가네모토 도모아키는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식을 통해 은퇴했다.

후지카와 규지의 메이저 리그 진출에 따라 도리타니 다카시가 팀 주장을 맡았다. 8월 31일, 후지나미 신타로가 고시엔 구장에서 가진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면서 센트럴 리그 역사상 다섯번째이자 1967년 에나쓰 유타카 이후 46년만의 고졸 신인 10승 투수에 이름을 올렸다. 개막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선두 다툼을 하다가 6월 2일 시즌 첫 리그 선두 자리에 올랐지만 6월 13일 다시 자이언츠가 선두로 올라섰 이후에는 1위로 올라서지 못했다. 선두였던 요미우리와 5경기차로 맞은 8월 27일부터 시작된 3연전에서 모두 패한 것도 치명적이었다. 9월 22일 홈에서 펼쳐진 야쿠르트전에서 6-7로 패하면서 자이언츠의 우승이 확정된 다음날 2-0으로 승리하면서 3년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10월 3일 요코하마전에서 7-3으로 승리하며 3년만의 위닝 시즌과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펼쳤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연패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쳐야했다. 시즌 종료 후 히야마 신지로가 은퇴했다.

한신 구단 설립 이후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영입했다. 리그 2위로 2년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1승1무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도입 이후 처음으로 퍼스트 스테이지를 돌파했다.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4연승을 거두며, 2005년 리그우승 후 9년만의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총 5차례의 접전을 펼친 끝에 1승 4패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준우승 하여 2014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2023년 15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한 오카다 아키노부는 2022년 10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우승합니다’라고 잘 말하지 않는데, 저는 계속 우승을 ‘アレ(are)’라고만 말했었습니다. 분명히 ‘우승합니다’라고 잘 말하지 않지만, 시즌이 끝날 무렵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언했고,[327] 이후로도 의도적으로 “우승”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고 “アレ(are)”라는 지시어로 바꿔 말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328] 이에 따라 선수들도 인터뷰에서 “アレ(are)”를 사용하는 등 확산되었고,[329] 2023년 팀 슬로건은 “アレ(are)”를 응용한 “A.R.E. (Aim! Respect! Empower!)” (에이알이)가 되었다.[330] 2005년 이후 우승 경쟁을 벌였지만 승부처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근소한 차이로 우승을 놓치는 시즌이 계속되었기에,[331] 과도하게 우승을 의식하지 않는 효과를 노린 이 표현은 팬들로부터 지지를 얻었고, 시즌 후반 한신이 선두를 질주하며 리그 우승이 다가오자 오사카 지역 방송을 중심으로 한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져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332] 그대로 18년 만에 리그 우승, 그리고 38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고, 12월 1일에는 “アレ(A.R.E.)”로 2023년 신조어·유행어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오카다는 유행어 대상 수상 무대에서 “アレ(are)”인 이유에 대해 “‘コレ(kore)’는 바로 손에 닿는다. ‘アチラ(achira)’는 멀다. ‘アレ(are)’는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한다.”라고 설명하며, 취임 전 2, 3위가 많았던 한신에게는 “딱 좋다”고 말했다.[333] 참고로 “A.R.E.”에 이어지는 각 단어는 영어에 능통한 오카다의 아내가 고안했다.

3. 주요 시설

한신 타이거스는 효고현을 연고지로 하며,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 외에도 다양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전지훈련 시설'''


  • 이노자손 마을 야구장(오키나와현): 1군 춘계 전지훈련
  • 우루마시 구시가와 야구장(오키나와현): 2군 춘계 전지훈련 (2023년 이후)
  • 아키 타이거스 구장(아키 시영 구장)(고치현): 추계 전지훈련 (과거에는 1군·2군 춘계 전지훈련도 실시)
  • 한신 고시엔 구장, 한신 나루오하마 구장에서도 캠프를 실시했다.[210]


'''과거 전지훈련 시설'''

구장명소재지
하마노미야 운동장효고현 가코가와시
가고시마현립 가모이케 야구장가고시마현
나라 카스가 야구장 (현재 나라 공원)나라현
도쿠시마현영 구라모토 구장도쿠시마현
고치시 야구장고치현
타이거타운미국 플로리다주
템피미국 애리조나주
마우이섬미국 하와이주
미야코지마시 시모지 야구장오키나와현 (일부 투수만)
무로토 광역공원 야구장고치현



'''기타 구장'''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서일본에서 경기를 개최하며, 오사카 돔(쿄세라 돔 오사카)을 사실상 준본거지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까지는 매년 오사카 돔에서 3카드 8~9경기, 구라시키 마스캇트 스타디움에서 1경기를 개최했으나, 코로나19 유행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구라시키 마스캇트 스타디움 경기는 중단되었다가 2023년 재개되었다.

과거에는 홋토모토 필드 고베 등에서도 경기를 개최했으나, 2013년 이후 중단되었다. 교토시 사이쿄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에서도 경기를 했지만 2005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그 외 가가와현영 야구장, 마쓰야마 보짱 스타디움,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 나하 등에서도 경기를 개최한 적이 있다.

3. 1. 홈구장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한신 고시엔 구장을 홈 구장으로 두고 있으며[345], 2군(웨스턴 리그)의 홈 구장은 니시노미야 시에 있는 한신 나루오하마 구장이다.

고시엔 구장은 1924년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으로, 1934년에는 미국의 야구 전설 베이브 루스메이저 리그 스타들의 일본 순회 공연 당시 이곳을 방문했다.[4] 구장 내 미즈노 광장에는 이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고시엔 구장은 "성스러운" 야구장으로 여겨지며,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과 나가기 전에 절을 한다. 이 구장에서는 매년 여름 일본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와 봄 일본 고등학교 야구 선발 대회가 개최된다.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고등학교 야구 경기에서 패한 팀은 고시엔 구장 내야의 흙을 한 움큼씩 주워 신발 가방에 넣을 수 있으며, 일본 언론들은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구단 설립 당시부터 모회사가 소유한 한신 고시엔 구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서 본거지가 되는 구장 중 가장 오래된 구장이다(단, 미군에 접수되었던 1946년만 사용할 수 없었다).[192] 특히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개최 기간은 2주 이상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1개월 정도[193]에 이르는 장기 원정을 "죽음의 로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는 장기 원정 중에도 비교적 고시엔에 가깝고, 또한 냉난방 시설이 완비된 오사카 돔에서도 경기가 편성되기 때문에, "죽음의 로드"는 사어가 되어가고 있다.[196] 다만, 오사카 돔은 오릭스 버펄로스의 본거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릭스가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2군의 본거지는 1995년부터 한신 나루와하마 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고시엔과 나루와하마는 같은 니시노미야시에 있으며, 12구단 중에서 1군 본거지와 2군 본거지 사이의 거리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다음으로 가깝다. 2025년부터 2군의 본거지는 닛테쓰 강판 SGL 스타디움 니시노미야(니시노미야시)로 이전할 예정이다.

2024년은 7월 말의 대 거인 3연전에서 보통보다 관객을 많이 들인 것[198]으로 주최 72경기에서 2019년 이후로 연간 관객 동원 수 300만 명(3,009,693명)을 달성했다.[199]

3. 2. 2군 구장

1995년부터 한신 나루와하마 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고시엔과 나루와하마는 같은 니시노미야시에 있으며, 12구단 중에서 1군 본거지와 2군 본거지 사이의 거리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다음으로 가깝다. 2025년부터 2군의 본거지는 닛테쓰 강판 SGL 스타디움 니시노미야(니시노미야시)로 이전할 예정이다.[196]

1950년대에는 고베 시민 운동장 야구장(고베시)을, 1979년부터 1994년까지는 한신 하마다 구장(니시노미야시)을 사용했다.

3. 3. 기타 시설

구단 설립 당시부터 모회사가 소유한 한신 고시엔 구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서 본거지가 되는 구장 중 가장 오래된 구장이다(단, 미군에 접수되었던 1946년만 사용할 수 없었다).[192] 1948년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 이후 일관되게 전용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용 구장을 변경하지 않은 구단은 한신 외에 2005년 새로 참여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뿐이다.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 전까지는 홈 경기를 본거지에서 하는 관례가 없어, 한신 고시엔 구장 외에 고라쿠엔 구장,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등에서 일정상 편리한 구장을 골라 개최했다.

한신 고시엔 구장은 원래 고교 야구 개최를 위해, 또 그 외에도 다목적으로 스포츠 행사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구장이기 때문에,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일정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192] 특히 후자 대회의 개최 기간은 2주 이상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1개월 정도[193]에 이르는 장기 원정을 '죽음의 로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해 교통기관 발달로 이동 시간이 짧아진 것[194]과 숙박 시설 등급이 높아진 것[195], 특히 1990년대 이후 장기 원정 중에도 비교적 고시엔에 가깝고 냉난방 시설이 완비된 오사카 돔에서도 경기가 편성되기 때문에, '죽음의 로드'는 사어가 되어가고 있다.[196] 다만, 오사카 돔은 오릭스 버펄로스의 본거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릭스가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며, 세·파 양대 리그 동시 개막을 원칙으로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A클래스를 확보하더라도 오릭스가 본거지 개막권을 가진 연도에는 한신이 본거지 개막권을 포기하고 원정에서 개막을 맞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2군 본거지는 1950년대 고베 시민 운동장 야구장(고베시), 1979년부터 1994년까지 한신 하마다 구장(니시노미야시)을 사용했지만, 1995년부터 한신 나루와하마 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고시엔과 나루와하마는 같은 니시노미야시에 있으며, 12구단 중에서 1군 본거지와 2군 본거지 사이 거리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다음으로 가깝다. 2025년부터 2군 본거지는 닛테쓰 강판 SGL 스타디움 니시노미야(니시노미야시)로 이전할 예정이다.

2005년 이후, 2010년까지 2008년을 제외하고 매년 공식전에서 연간 관객 동원 수가 300만 명 이상을 기록했지만, 2011년 이후는 300만 명에 달하지 않고 대략 260만 명~280만 명 대에서 변동했다.[197] 그러나, 2017년 최종 2위를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여 10월 10일 공식전 최종전에서 3만 명의 관객을 모아 7년 만에 연간 관객 동원 수 300만 명을 초과했다. 현재 고시엔에서도 그룹석 설치, 좌석 간격 확장 등으로 좌석 수를 이전보다 크게 줄였기 때문에 300만 명을 초과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38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2023년은 주최 71경기에서 291만 5528명(1경기 평균 4만 1064명)을 동원했고, 2024년 7월 말 대 거인 3연전에서 평소보다 관객을 많이 들인 것[198]으로 주최 72경기에서 2019년 이후 연간 관객 동원 수 300만 명(계 3,009,693명)을 달성했다.[199] 최근에는 관객 동원 수가 12구단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200][201]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서일본에서 경기를 개최하는 것이 특징이다.

2014년까지 연간 경기 수가 144경기제였고, 2013년까지 주최 경기 72경기 중 본거지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60경기, 사실상 준본거지인 오사카 돔(쿄세라 돔 오사카)을 포함한 지방 개최에서 12경기가 편성되었다. 한신 입장에서는 오사카 돔을 지방 구장으로 취급한다. 이 지방 개최는 매년 오사카 돔에서 3카드 8~9경기, 구라시키 마스캇트 스타디움(이전 오카야마현 야구장)에서 1경기, 총 9~10경기가 반드시 개최되어 왔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유행의 영향으로 구라시키 마스캇트 스타디움에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편성되지 않았다(2023년부터 재개). 과거 홋토모토 필드 고베를 포함한 그 외 지방 구장에서도 매년 2~3경기가 개최되었지만, 2014년에는 오사카 돔에서 3카드 9경기, 구라시키 마스캇트 스타디움 1경기, 총 10경기만 개최되었고, 2019년까지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 다른 구단이 지방 개최를 줄이는 가운데, 연간 경기 수가 143경기제가 된 2015년 이후도 2014년과 마찬가지로 주최 71~72경기[202] 중 지방 개최를 9~10경기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경기 수 기준으로 한신이 세 리그에서 가장 지방 개최를 많이 하고 있다. 다만, 개최 구장 수 기준으로는 자이언츠가 가장 많다.

오사카 돔은 1997년 개장 이후 사용하고 있지만, 2005년~2007년 3년간 효고현의 오릭스가 오사카부의 오사카 긴테쓰를 흡수 합병한 것에 의한 임시 조치로 효고현・오사카부 더블 프랜차이즈가 되었기 때문에, 오사카 돔을 준본거지로 사용하는 것이 인정되었다. 현재 고시엔에서 봄・여름 고등학교 야구 개최 기간 중 개막 카드 또는 그 직후 1카드 3경기, 하계 장기 로드에 해당하는 8월 2카드 5~6경기, 총 8~9경기 개최가 기본이다. 원칙적으로 나이트 게임으로 실시되지만, 주말 개최라면 데이 게임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하계 장기 로드 중에는 기본적으로 비지터에서 2~3카드를 끝낸 후 오사카 돔에서 1카드, 다시 비지터에서 1~2카드를 끝낸 후 오사카 돔에서 1카드라는 패턴 외에, 연도에 따라서는 옛날 초파일(8월 15일 전후) 1주일에 오사카 돔에서 2카드 5~6경기를 연속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2009년은 이들 외에 장마 시기인 6월 16일・17일에도 교류전 2경기를 개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정 연기로 당초 예정되었던 4월 상순 오사카 돔 주니치 3연전과 고시엔 야쿠르트 3연전이 개최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일정 보충으로 10월에 야쿠르트 3연전이 오사카 돔에서 실시되었다.

홋토모토 필드 고베는 여름 장기 로드 때 개최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당시 오릭스가 프랜차이즈로 하고 있던 관계도 있어 1994년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 후 지역 자치단체 요망도 있어, 오픈전이지만 2007년에 개최가 부활하고, 이후 공식전에서는 2008년 우천 취소 대체 경기 1경기(고시엔 개수 공사로 사용 불가능했기 때문), 2010년 2경기, 2012년 1경기를 각각 개최했다.[203] 다만, 2013년 이후 개최가 없고, 이 구장에서는 다시 철수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2군이 공식전을 8월에 1카드 개최하고 있으며, '불꽃 나이트 게임'으로 고시엔 구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경기 중 불꽃놀이를 실시하고 있다.

2007년부터 3기에 걸쳐 실시된 10월 이후 고시엔 개수 공사 영향으로, 2008년 우천 취소분 1경기가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가 오사카 돔에서 개최되었다.

과거 교토시 사이쿄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에서도 매년 1~6경기를 실시했지만, 2005년 대세이부 라이온즈전을 마지막으로 주최 경기는 없다.[204] 그 외, 1999년 가가와현영 야구장, 2005년・2006년・2012년 각각 2경기씩 마쓰야마 보짱 스타디움에서 실시했다. 2013년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 나하에서 처음으로 공식전 2경기를 개최했다. 이 외, 2014년 미국에서 공식전을 개최할 계획이 있었지만, 그 후 단념했다.

여름 고등학교 야구 개최 기간 중 고시엔을 사용할 수 없는 기간 주최 구장은 1997년부터 오사카 돔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교토시 사이쿄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1965년~1979년), 오카야마현 야구장(1973년~1979년), 헤이와다이 야구장(1980년~1988년), 그린 스타디움 고베(1988년~1994년),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1991년~1996년)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쇼와 말기인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고시엔이 고등학교 야구에 사용할 수 없는 기간, 간사이 지방에서는 다른 구단(한큐=니시노미야 구장, 난카이=오사카 구장, 긴테쓰=닛폰세이메이 구장・후지이데라 구장) 본거지는 그 구단 경기에 일정이 잡혀 사용 허가가 내려오지 않았고, 그 외 구장도 나이트 게임 설비, 수용 인원 등 시설 사양 문제로 개최가 사실상 어려워, 이 기간 2경기를 헤이와다이 구장에서 주최하면서 거의 3주간 간사이를 떠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로드'라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 이전에는 고시엔에 나이트 게임 설비가 도입될 때까지인 1953년~1955년 오사카 스타디움(오사카 구장)에서 나이트 게임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외, 이와테현영 야구장, 구리야마시영 카이세이산 야구장, 현영 미야기 구장, 후지사키다이 현영 야구장(모두 1975년)에서도 경기를 실시하고 있다.

  • 이노자손 마을 야구장(오키나와현): 1군 춘계 전지훈련
  • 우루마시 구시가와 야구장(오키나와현): 2군 춘계 전지훈련 (2023년 이후)
  • 아키 타이거스 구장(아키 시영 구장)(고치현): 추계 전지훈련 (과거 1군·2군 춘계 전지훈련도 실시)

이 외에도 한신 고시엔 구장(阪神甲子園球場), 한신 나루와하마 구장(阪神鳴尾浜球場)에서도 캠프를 실시했다.[210]

과거 전지훈련 구장은 다음과 같다.

구장명소재지
하마노미야 운동장(浜の宮運動場)효고현(兵庫県)고코가와시(加古川市)
가고시마현립 가모이케 야구장(鹿児島県立鴨池野球場)가고시마현(鹿児島県)
나라 카스가 야구장(奈良春日野球場)(현재 나라공원(奈良公園))나라현(奈良県)
도쿠시마현영 구라모토 구장(徳島県営蔵本球場)도쿠시마현(徳島県)
고치시 야구장(高知市野球場)고치현(高知県)
타이거타운(タイガータウン)미국(アメリカ合衆国)플로리다주(フロリダ州)
템피(テンピ)미국(アメリカ合衆国)애리조나주(アリゾナ州)
마우이섬(マウイ島)미국(アメリカ合衆国)하와이주(ハワイ州)
미야코지마시 시모지 야구장(宮古島市下地野球場)오키나와현(沖縄県) - 일부 투수만
무로토 광역공원 야구장(室戸広域公園野球場)고치현(高知県)


4. 팀 문화 및 특징

한신 타이거스는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에 소속된 프로 야구팀으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한신 고시엔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군(웨스턴 리그)의 홈구장은 니시노미야 시에 있는 한신 나루오하마 구장이다. 운영 법인은 주식회사 한신 타이거스이며, 모기업은 한신 전기 철도(한큐한신홀딩스 산하)이다.

1985년, 요시다 요시오가 8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하면서 1번 마유미 아키노부, 3번 랜디 바스, 4번 가케후 마사유키, 5번 오카다 아키노부를 주축으로 한 강력한 타선(제2차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4월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백 스크린 3연발’을 포함하여 시즌 총 219홈런을 기록, 2004년 요미우리에 의해 깨질 때까지 센트럴 리그 신기록을 유지했다. 특히 랜디 바스는 한신 역사상 첫 타격 3관왕을 차지하며 시즌 54홈런을 기록, 오 사다하루(요미우리)의 55홈런 기록을 추격했으나, 시즌 막판 오 사다하루가 이끄는 요미우리와의 2연전에서 고의사구로 인해 역전에 실패했다.

그해 여름까지 팀은 선두를 지켰지만, 1985년 8월 12일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당시 구단 사장이었던 나카노 하지무가 급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요시다 감독과 선수들은 충격을 받았고, 선수 전원은 유니폼 차림으로 나카노 사장의 영전에 우승을 맹세했다. 시즌은 막강한 타선과 나카니시 기요오키, 후쿠마 오사무, 야마모토 가즈유키 등의 불펜 투수진의 활약으로 10월 16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21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85년 일본 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를 상대로 4승 2패를 기록, 1985년 11월 2일 구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리그 MVP로 선정된 랜디 바스는 다음 시즌에도 타격 3관왕을 차지하며 맹활약했다.

1986년, 랜디 바스는 시즌 타율 3할 8푼 9리, 장타율 7할 7푼 7리, 7경기 연속 홈런, 13경기 연속 타점 등의 일본 신기록을 세웠으나, 가케후 마사유키와 주축 투수였던 이케다 지카후사의 부상, 오카다 아키노부 등 다른 선수들의 부진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와의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며 3위로 시즌을 마쳤다. 1987년에도 투수진 붕괴와 가케후, 오카다의 타격 부진으로 최하위를 기록, 요시다 감독은 사임했다. 그 해의 승률 3할 3푼 1리는 구단 역사상 최저 승률이었다.

1988년, 무라야마 미노루가 감독으로 복귀, ‘소년대 트리오’(와다 유타카, 오노 히사시, 나카노 사토루) 등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세대 교체를 진행했으나, 바스의 귀국, 루퍼트 존스의 부상, 가케후의 은퇴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1989년에는 세실 필더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 5위를 기록, 3년 연속 최하위는 면했지만 시즌 중 감독 책임 문제로 무라야마 감독은 사임했다.

1990년, 나카무라 가쓰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래리 패리시와 오카다는 5월 중반까지 호조를 보였지만, 에이스 매튜 키오의 부상 이탈과 팀 투수진의 부진으로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를 기록했다. 1991년에는 개막 5연패, 6월 10연패 등 부진을 겪었다. 리그 후반부에는 이노마타 다카시, 가사이 미노루 등 신예 투수들이 등장하며 반전을 꾀했으나, 전반기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2년 연속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1992년, 가메야마 쓰토무, 신조 쓰요시 등 ‘가메신 피버’라 불리던 양대 외야수의 등장과 함께 많은 선수들이 활약했고, 나카고미 신, 유후네 도시로, 노다 고지 등의 선발진, 유미나가 다쓰히로, 다무라 쓰토무 등의 중간 계투진의 활약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우승을 내주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공동 2위가 되었다.

고시엔 구장 홈 경기에서 한신 팬들


오릭스 버펄로즈의 홈구장인 교세라 돔에서 한신 팬들이 풍선을 날리는 모습


한신 타이거스 팬들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충실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6] 원정 경기에서 홈팀 팬보다 더 많은 수를 자랑하며, 과거에는 거친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요즘은 싸움이 드물다.[6]

한신 팬들의 유명한 전통 중 하나는 7회말 스트레칭과 팀 응원가가 끝난 직후 수백 개의 풍선을 하늘로 날리는 것이다. 이 전통은 원정, 홈 경기 모두에서 행해지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규정 때문에 도쿄 돔에서의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제외된다.

한신과 자이언츠의 라이벌리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스앤젤레스 다저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라이벌리,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 라이벌리, 스페인 축구의 엘 클라시코와 비견될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라이벌리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두 팀은 비슷한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자이언츠가 1127승, 타이거스가 888승을 거두었다. 두 팀 간의 총 경기 중 77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7]

한신 타이거스는 현재 세·리그에서 유일하게 간사이 지방에 연고지를 둔 구단이며,[220] 간사이 지역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스포츠 신문 각지의 간사이판에서는 주로 타이거스 관련 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1면 이외의 페이지에서도 크게 다루어진다.[221] 오사카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정보 프로그램 내 스포츠 코너의 대부분이 타이거스 정보로 채워지며, 프로야구 중계에서도 타이거스 응원 색채를 강조하고 있다(ABC의 「호반 주의。」, MBS의 「with Tigers」 등). 1985년 10월 16일 간사이 TV가 중계한 한신이 21년 만에 우승을 결정지은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은 간사이 지역에서 시청률 56.7%를 기록( 비디오 리서치 조사). 이는 간사이 지역 프로야구 중계 최고 시청률 기록이다.

과거 간사이 지역에서는 난카이 호크스도 타이거스와 마찬가지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황금기를 맞이하면서 간사이에서도 점차 자이언츠 경기 중계 수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간사이 TV는 자이언츠 중심의 방침을 강화했고, 한큐 경기는 중계가 감소했다. 마이니치 방송에서도 1960년대에는 난카이전 중계가 중요했지만, 1970년대에는 자이언츠전 중계 확보에 필사적이었다.[224]

이처럼 간사이에서도 자이언츠전이 중심적으로 중계되면서, 같은 리그에 소속된 팀으로서 자이언츠와 연중으로 대결하는 타이거스의 언론 노출이 다른 간사이 구단에 비해 증가했다. 산테레비가 개국(1969년)하면서 타이거스전 완전 중계 프로그램 『산테레비 박스석』의 방송을 시작했고, 간사이 전역에서 쉽게 타이거스전을 TV로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타이거스 인기 향상에 따라 원래 한신 대 자이언츠전만을 방송했던 대형 오사카 지역 TV 방송국도 적극적으로 타이거스를 중심으로 한 중계 방송을 늘리게 되면서, 간사이에서의 프로야구 방송은 타이거스전으로의 일극 집중화가 진행되었다.

구단가의 정식 명칭은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이지만, 가사의 첫머리를 따서 「롯코오로시(六甲おろし)」라는 애칭으로 친숙하다. 1936년에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1961년 구단명 변경과 함께 제목이 바뀌었다. 1936년 3월 25일 무코가와 여자대학 고시엔 회관(구 고시엔 호텔)에서 개최된 구단 결성 기념 연회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225] 현존하는 NPB 12구단의 구단가 중 가장 오래된 곡이다.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롯코오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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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구단가는 "타이거스의 노래"(통칭: "록코오로시"(六甲おろし))뿐이지만, 그 외에도 구단 응원가가 다수 있다.


  •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작사: 사토 소스케 작곡: 고세키 유지 노래: 나카노 타다하루와 콜롬비아 나카노 리듬 보이즈)
  • 오사카 타이거스 행진곡
  •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
  • 타이거스 온도/나아가라! 타이거스(노래: 나카무라 에이이치,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아나운서)
  • 트라트라 마치(노래: 우에쿠사 사다오 아사히 방송 아나운서)
  • 한신 타이거스 세는 노래(노래: 미치카미 요조 아사히 방송 아나운서)
  • 트라트라 한신 응원가
  • 타이거스여 영원히/오늘도 이겼어 타이거스(노래: 히라타 카츠오, 요시타케 하루키, 이케다 친코=1985년 타이거스 소속 선수)
  •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 패러디 개사.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을 모르는 아이들(노래: 릴리안, 반도 에이지, 야시키 타카진, 카츠라 쟈쿠쟈쿠)
  • WIN!WIN! 타이거스(노래: JK21)
  • 지는 기분 안 돼/하이하이 패(노래: 신보 지로・모리 타케시=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 아나운서)
  • 멋지게 우승! 더 타이거스 온도(노래: 스기모토 히로우, 요로가시 야헤이)
  • CD 「한신 타이거스 선수별 응원가」


프로야구 최초의 공식 리그 경기인 1936년 봄부터 현재까지 전쟁으로 인한 중단을 제외한 모든 공식 시즌에 참가하고, 창단 당시부터 모회사가 바뀌지 않은 팀은 한신 타이거스뿐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있지만, 미국 원정으로 인해 1936년 봄 시즌에는 불참했다. 한신 타이거스처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경영 주체가 바뀌지 않고 존속하는 프로야구팀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또한 유니폼과 구단 심볼·로고 등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구단 창설 당시부터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다.

몇 가지 독특한 전통 행사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한신 타이거스가 전 선수·감독·코치를 모두 모시고 매년 스프링캠프 시작 전 1월에 광다 신사(무운장구 ⇒ 우승 기원)에 참배하는 행사는 구단 창립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또한, 현재는 개막 전 3월에 니시노미야 신사(장사 번창 ⇒ 구단 수익 기원)에 참배하는 것도 전통 행사가 되었다.

1985년 일본 시리즈 우승 당시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한 선수는 랜디 바스였고, 세·파 12구단 중 유일하게 일본인 선수의 일본 시리즈 MVP 수상자가 없는 구단이었으나, 2023년 MVP가 지카모토 고지가 됨으로써 이 기록도 끊기게 되었다.

홈런왕도 한신 타이거스에서는 1986년 바스를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2023년 지바 롯데 마린스그레고리 폴랑코가 홈런왕을 차지함에 따라 현존 12구단 중 최악이며, 2004년에 해체된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를 포함한 13구단 중에서도 21세기에 홈런왕을 배출하지 않은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211][212].

1972년 3월 12일에 OB회가 조직된 이후 마츠키 켄지로, 후지무라 후미오, 카지오카 타다요시, 타미야 켄지로, 안도 마사오, 타부치 코이치, 카와후지 코우조, 카케후 마사유키가 역대 회장을 역임했다.[213][214]

충명 아루무는 타이거스 창설은 중등 야구의 고시엔 대회의 영향이 있다고 논하며, 산요 지방, 시코쿠, 규슈 지방 출신자들이 한신 지방에서 상점의 점원이나 중소 공장의 공원 등으로 일하던 중, 8월 오봉 휴일에 고시엔 구장에 와서 고향 학교의 활약을 보고 열렬히 응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시엔 야구는 향수와 유랑의 야구와 다름없으며, 야구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굳게 결속시켰고, 이러한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중등 야구 출신 선수를 중심으로 한 프로 야구 ‘한신 타이거스’로 향했다고 한다.[219]

NPB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두 구단이자 동서의 인기 구단이기 때문에, 주로 미디어 등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전통의 한판 승부'''"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한신과 거인이 우승 경쟁을 펼치는 시즌도 많으며, 특히 한신에게 있어 라이벌 의식이 높은 카드이다. 2016년부터는 거인과의 공동 프로젝트로서 이 카드를 "전통의 한판 승부 〜THE CLASSIC SERIES〜"로 명명하여 상호 전개를 도모하고 있다.

2005년부터 연간 관중 수 공식 집계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신 타이거스는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연간 300만 명 이상을 동원하고 있다.[345] 오사카부에서도 오사카 부를 본거지로 하는 오릭스 버펄로스를 훨씬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다.

2017년 골든위크 기간(5월 5일~7일)에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개최된 이벤트 "타이거스 골든위크 어린이 축제"에서 당일 출전 선수 이름이 히라가나로 표시되었다.[323] 5월 5일이 어린이날이라는 점을 고려, 관전을 온 어린이 팬들이 선수들의 이름을 좀 더 쉽게 기억하고 발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원정팀 선수와 심판진을 포함하여 실시되었다.[324] 이후로도 매년 골든위크 기간 중 특정 주최 경기 3연전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7월에 개최되는 "여름방학 어린이 축제"(2024년은 칠석 시리즈인 7월 5일~7일에 해당)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수 이름의 히라가나 표기가 실시되고 있다.[325] 이러한 한신의 노력을 계기로 다른 구단에서도 골든위크 등에 스코어보드의 히라가나 표기를 실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326]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한신 타이거스 타선의 대명사로, 타이거스의 타선이 특히 강력할 경우 언론 등에서 사용된다. 과거 1940년대 후반, 1985년, 2003년경, 2010년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형성되었다.

한신 타이거스의 역대 노히트 노런 달성자는 다음과 같다.

날짜투수스코어상대팀경기장
1940년 8월 3일미와 하치로1-0도쿄 거인군대련
1946년 6월 16일오 쇼세이11-0세네터스니시노미야
1948년 8월 24일카지오카 타다요시3-0난카이 호크스신궁
1952년 5월 7일마나다 시게오12-0히로시마 카프고시엔
1965년 6월 28일진 바키7-0요미우리 자이언츠고시엔
1973년 8월 30일에나츠 유타카1-0주니치 드래곤즈고시엔
1992년 6월 14일유후네 토시로6-0히로시마 도요 카프고시엔
1998년 5월 26일카와지리 테츠로2-0주니치 드래곤즈쿠라시키
2004년 10월 4일이가와 요시1-0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특히 에나츠 유타카의 경우, 연장 11회말에 스스로 끝내기 홈런을 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명승부가 되었고, 연장전에서의 노히트 노런 달성은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참고로, 완봉승 달성자는 구단 창립부터 현재까지 전혀 없다. 하지만 준완봉승 기록은 있다. 타미야 켄지로가 1950년 3월 16일 국철 스왈로스전에서 9회 2사까지 완벽하게 막았다(타미야에게는 이 경기가 투수로서 마지막 승리). 코야마 마사아키가 1956년 6월 6일 다이요 호에루즈전에서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그 후 타자들을 완벽하게 막았다.

2024년 시즌 종료 시점까지 달성자는 없다.[188]

한신에서 3관왕을 달성한 선수는 랜디 바스 1명뿐이며, 외국인 타자로서 역사상 2번째 3관왕이자 외국인 타자로는 유일하게 2회(1985년, 1986년) 달성했다.[189]

한신 타이거스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 1985년 - 1996년: 3F (프레시, 파이트, 포어 더 팀)
  • 1997년 - 1998년: 허슬! 허슬! 허슬!
  • 1999년 - 2001년: 탑 야구
  • 2002년 - 2005년: NEVER NEVER NEVER SURRENDER
  • 2006년 - 2008년: Be the Best For the Fans
  • 2009년 - 2011년: Focus on this play, this moment!!
  • 2012년 - 2014년: Go for the Top 열광하라!!
  • 2015년: Go for The Top as One
  • 2016년: 초변혁 Fighting Spirit
  • 2017년: 도전 타이거스 체인지
  • 2018년: 집념 타이거스 체인지 2018
  • 2019년: 돌파하라! 내가 한다 2019
  • 2020년: It’s 승[266] time 내가 한다
  • 2021년: 도・초・정 -도전 넘어 정상으로-
  • 2022년: 일이 곱하기!
  • 2023년: A.R.E. (Aim! Respect! Empower!)
  • 2024년: A.R.E. GOES ON


한신 타이거스의 마스코트는 트라키(등번호 1985), 러키(등번호 없음), 키타(등번호 2011)이다. 모두 팀 이름 "타이거스"를 따서 호랑이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4. 1. 팀 컬러와 디자인

한신 타이거스는 디자인 면에서 역사적으로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해 온 구단으로, 구단기에서부터 각종 로고와 마크, 유니폼에 이르기까지 구단 창설 당시 디자인된 기본 형태를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프로 스포츠 팀이 이처럼 디자인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드물며, 특히 일본 프로야구계에서는 한신 타이거스가 유일하다.[226] 이러한 디자인들을 담당한 사람은 당시 한신 전기철도(阪神電気鉄道)의 선전과 디자인실에 근무하던 사내 디자이너 하야카와 겐이치(早川源一)(1906년 - 1976년)였다.[227] 한신 구단에는 그의 손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디자인 원화 몇 점이 남아 있다.[226]

이탤릭체를 모방한 “'''''Tigers'''''” 로고는 구단기와 홈 유니폼 가슴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1960년에 서체의 세부 조정이 있었을 뿐 창단 이래 줄곧 변경 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 “Tigers” 로고는 로만체를 모방한 “'''HANSHIN'''” 로고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962년 6월 15일에 상표 등록되었으며[228][229], 1982년에는 추가 조정을 거쳐 다시 등록되었다.[230]

또한, 영어 로고 양식을 계승한 명조체 풍의 “'''阪神タイガース(한신 타이거스)'''” 로고도 사용되고 있으며, 이 또한 1983년에 등록되었다.[231]

유니폼에 새겨진 거꾸로 된 호랑이 마크(토리타니 케이스케, 2008년)


심볼 마크(팀 마크)는 오른쪽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를 약간 아래에서 올려다본 구도로 그린 캐리커처이며, 통칭 "'''호랑이 마크'''"라고 불린다.[227] 구단 창설 이래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야구계를 대표하는 팀 마크로 여겨진다.[232] 참고로 유니폼 왼쪽 소매에 새겨진 호랑이 마크는 얼굴이 왼쪽을 향하고 있다.

팀 창설 멤버 와카바야시 타다시의 동창생인 호시나 스스무가 같은 학교의 마스코트를 바탕으로 그린 원화가 와카바야시를 통해 하야카와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하야카와의 손으로 마무리되어 마크가 완성되었다고 한다.[225][233] 구체적인 탄생 시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1936년 시즌 전에 공개된 구단 창설 기념 포스터와 1936년 3월 25일 구단 결성 피로연에서 구단가를 공개할 때 배포된 가사 카드에 호랑이 마크가 디자인되어 있었다.[225] 1970년대 후반쯤 눈 모양이나 털 표현 등 세부적인 부분이 다듬어졌다.

이 외에도 "'''H'''anshin '''T'''igers"의 머리글자를 따서 "T"의 세로선과 "H"의 가로선이 교차하도록 겹쳐 디자인된 "'''HT 마크'''"도 존재한다. 이 마크는 1961년 구단명 개칭을 계기로 모자 마크로 채택되었지만, 이후 심볼 마크나 간이적인 엠블럼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마크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세부적인 부분이 변경되었다.[234]

1980년대 전반부터 빨간 원 안에 호랑이 마크가 들어가 있고, 검은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상단에는 "HANSHIN", 하단에는 반원형으로 "Tigers"라는 흰색 로고가 들어간 마크(일명 '''원형 호랑이 마크''')가 사용되었다.[236] 이 마크는 상품이나 각종 미디어 등 다양한 곳에서 엠블럼, 프라이머리 마크 등으로 사용되었다.[236]

구단기는 검정과 노란색 가로 줄무늬(위에서부터 검정색 4줄, 노란색 3줄을 번갈아 배치)를 바탕으로 왼쪽 상단에 호랑이 마크가 들어간 빨간색 원, 가장 아래 노란색 줄의 오른쪽에 검정색으로 "HANSHIN Tigers" 로고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호랑이 마크 디자인, 로고 유무 등 시기에 따라 세부 사항이 약간 다르지만, 호랑이 마크와 검정색과 노란색 가로 줄무늬라는 기본 디자인은 구단 창설 이후 한 번도 변경되지 않았다.

; 세부 변경에 대해

  •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이 확립되지 않았던 관계로 초기에는 빨간색 원이 약간 연한 색으로 그려지거나, 1950년대부터 1960년대경에는 빨간색 원이 갈색으로 염색된 것, 검은색 선으로 둘러싸인 노란색 원에 정면을 향한 호랑이 그림이 들어간 마크가 들어간 디자인 등도 존재했으며, 그것들이 선수 명감이나 포스터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 1970년대 후반경 - : 호랑이 마크의 세부 조정을 반영하여 등록한 것을 공식 디자인으로 채택[237][238]
  • 1984년 10월 - : "HANSHIN Tigers" 로고가 들어간 현재 디자인으로 변경[239][240]


한신 타이거스의 유니폼은 창단 초기부터 현재까지 세로 줄무늬(ピンストライプ)에 왼쪽 소매에 호랑이 마크와 "Tigers" 로고라는 디자인 패턴을 채택하고 있다.

유니폼의 가장 큰 특징인 세로 줄무늬는 호랑이의 이미지에서 "세로 줄무늬(縦縞)"라고도 불린다. 미디어 등에서 "세로 줄무늬를 입다(타이거스에 입단하는 것을 의미)"와 같은 관용 표현도 볼 수 있듯이, "세로 줄무늬 유니폼"은 타이거스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창단 당시에는 연한 회색의 세로 줄무늬였지만, 마이너 체인지를 거치면서 점차 색이 진해지고 선도 두꺼워져 현재는 일반적인 세로 줄무늬와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디자인이 확립되었다.

프로야구 의장학 연구가인 쓰나시마 마사토모에 따르면, 세로 줄무늬를 채택한 이유에 대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팀 애칭의 유래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라는 점에 근거하여 유니폼 역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241][242]

; 현재 유니폼(2023년 ~)

  • 1936년 - 1940년
  • : "Tigers" 로고가 2종류, "OSAKA" 로고가 1종류, 총 3종류의 유니폼을 사용. 모자도 3종류의 유니폼과 각각 디자인을 맞춘 3종류가 있으며, 마크는 검정 글씨의 "O". 스타킹은 검정 바탕에 노랑과 빨강의 2줄 라인과, 회색 바탕에 짙은 회색의 4줄 라인의 2종류.
  • : "Tigers" 로고의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연회색 줄무늬와, 회색 바탕에 짙은 회색 줄무늬이며, 모두 깃이 있고, 로고와 등번호 테두리, 앞단, 소매 등에 검정과 노랑색 파이핑 디자인.
  • : "OSAKA" 로고의 유니폼은 회색 무지에 로고와 등번호 테두리와 라인에 노랑색 파이핑 디자인으로, 깃이 있으며, 왼쪽 소매에 호랑이 마크 와펜이 부착되어 있음.
  • * 1937년
  • *: "Tigers" 로고의 흰색 유니폼 줄무늬를 진하게 하고, 로고와 등번호 테두리를 없애는 등의 작은 변경. 검정 바탕에 와인색 3줄 라인 스타킹 추가. 모자를 흰색 바탕에 회색 줄무늬, 검정 챙에 빨간색 O 마크 디자인으로 변경.
  • * 1938년 - 1940년
  • *: "Tigers" 로고의 흰색 유니폼 줄무늬를 더욱 진하고 두껍게 하고, 로고와 등번호 테두리를 부활. 흰색 바탕에 노랑색 2줄 라인과 빨간색 1줄 라인을 배치한 스타킹 추가.
  • 1940년 - 1943년
  • : 연맹의 지시에 따라 구단명을 "한신"으로 개칭함에 따라, 기본 디자인은 그대로 로고를 한자 "한신"(왼쪽 가슴에 세로쓰기. "신"은 구자체의 "示へんに申")으로 변경하고, 모자의 O 마크를 없앰.
  • * 1943년
  • *: 모자 대신 전투모를 착용하고, 한신 전철의 사장을 모자 마크로 함. 또한, 깃과 라인을 없앰.
  • * 1944년
  • *: 등번호를 없앰. 또한, 유니폼의 국방색화도 지시되었으나, 예전에 "OSAKA" 유니폼에 사용했던 회색 무지 천을 사용하는 것으로 용인됨. 그때 로고와 라인의 노란색은 제거되었지만, 소매의 호랑이 마크는 그대로 사용됨.
  • 1945년
  • : 다시 "오사카 타이거스"로 개칭되었지만, 천 부족으로 "Tigers" 로고가 없는 회색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 유니폼이었음. 스타킹은 회색 바탕에 짙은 회색 줄무늬가 주로 사용됨. 모자의 O 마크는 부활.
  • 1946년 - 1948년
  • : 가슴 로고가 부활. 그러나 회색 유니폼은 천의 내구 기간이 짧아 불과 3년 만에 폐지됨.
  • 1947년 - 1951년
  • : 물자 부족의 영향으로 세로 줄무늬가 없는 흰색 무지에 앞단 라인 유니폼을 채택. 앞단 라인이 2줄인 것과 1줄인 것 2종류가 있었음. "Tigers" 로고 테두리와 라인은 노란색. 언더셔츠는 선수에 따라 제각각이며, 흰색, 감색, 검정, 팥죽색 등이 사용되었고, 모자는 흰색 바탕에 검정색 O 마크, 챙 감색이며, 1938년 - 1940년에 사용되었던 흰색 스타킹이 부활. 특히 1줄 라인은 2리그 분열 후에도 사용되어 1951년까지 홈용으로 사용됨.
  • * 1948년 - 1949년
  • *: "검정 유니폼"이라고 불리는 진한 감색 천을 사용한 유니폼을 착용. 주로 원정용으로 사용됨. 상하 진한 감색에 흰색 글씨에 노란색 테두리의 "Tigers" 로고, 모자도 진한 감색에 흰색 O 마크였음. 스타킹은 기존의 흰색 외에 블루 그레이에 감색 라인과 노랑색에 감색 라인을 사용. 이 유니폼은 세로 줄무늬 천이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만든 것이지만, "다이너마이트 타선" 시대와 겹친 것과 21세기에 들어와 복각 유니폼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있어 남녀노소 팬들의 인지도가 높음.
  • * 1950년 - 1951년 올스타 전
  • *: 2리그 분열에 따라 원정용 유니폼을 진한 감색 유니폼에서 연회색을 기조로 한 "OSAKA" 로고 유니폼으로 변경. 1936년 - 1940년에 사용되었던 "OSAKA" 로고 유니폼을 계승한 디자인이며, 전후 처음으로 왼쪽 소매에 호랑이 마크가 부활. 이 유니폼 전용으로 모자 마크가 "T"인 모자가 등장, 검정색 바탕에 흰색 T 마크 디자인이었음.
  • 1951년 올스타 후 - 1953년
  • *: 올스타를 계기로 원정용 유니폼의 "OSAKA" 로고를 "Tigers" 로고로 변경하고, 앞단 라인을 없애 비지터용 유니폼으로 사용. "OSAKA" 로고는 호랑이 마크 대신 왼쪽 소매로 이동. 스타킹은 노랑색 바탕에 흰색, 검정색, 빨간색 라인이 들어간 것. 깃을 없앰.
  • * 1952년
  • *: 이 시즌만 흰색 바탕에 라인이 없는 홈용을 사용. 색깔 이외에는 전년부터 사용했던 비지터용과 공통 디자인이었음. 스타킹은 기존의 흰색 바탕에 노랑색, 빨간색 라인이 들어간 것. 또한, 비지터용 모자 마크가 T 마크에서 O 마크로 돌아옴.
  • 1953년 - 1957년
  • *: 전통의 세로 줄무늬와 흰색 줄무늬 모자가 부활, 1938년 - 1940년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디자인이 됨.
  • * 1954년 - 1957년
  • *: 비지터용 유니폼 로고가 다시 "OSAKA"가 됨. 가슴 로고와 등번호가 명조체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서체가 되고,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도 부활. 스타킹은 검정 바탕에 노랑색 2줄 라인.
  • 1958년 - 1959년
  • *: 홈, 비지터 모두 가슴 로고의 노란색 테두리가 없어짐. 또한, 홈용 흰색 세로 줄무늬 모자와 스타킹을 없애고 비지터용과 동일하게 통일.
  • 1960년
  • *: 홈용 유니폼의 "Tigers" 서체가 세부 조정되고, 가슴 번호를 채택. 모자 마크를 "OT"로 변경("T"에 작은 "o"를 덧붙인 "To"와 같은 디자인).
  • 1961년 - 1965년
  • *: 구단명이 "한신 타이거스"로 변경됨에 따라, 비지터용 유니폼의 가슴 로고가 "HANSHIN"으로, 모자 마크를 "HT"로 변경.
  • * 1962년 후기 - 1964년
  • *: 비지터용 가슴 번호가 등번호와 같은 둥근 서체가 됨.
  • * 1965년 전기
  • *: 비지터용 가슴 번호, 등번호 모두 각진 서체가 됨.
  • 1965년 - 1973년
  • *: 기본 디자인은 그대로, 깃, 소매, 바지 옆에 두꺼운 라인이 채택됨. 등번호 서체는 홈용 유니폼은 고딕체에 가까운 서체, 비지터용 유니폼은 각진 서체, 가슴 번호는 홈, 비지터 모두 각진 서체가 됨. 단, 홈용 가슴 번호는 등번호와 서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비지터용과도 다른 소위 "고교 야구형" 서체임("1"과 "4" 아래에 세리프 없음). 홈용 왼쪽 소매에 "OSAKA"가 부활, 비지터용은 종전대로 호랑이 마크.
  • * 1970년 - 1973년
  • *: 호랑이 마크가 약간 변경되어 수놓은 것 외에 등 이름을 채택. 따라서 등번호가 약간 작아짐. 등 이름에서 오단의 장음은 H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타이거스에서는 1985년경까지 H를 생략한 선수가 많았음(카와토우 코우조: KAWATOH→KAWATO, 토히 고로: TOHI→TOI 등).
  • * 1972년 - 1973년
  • *: 모자의 HT 마크가 투톤("H"가 노란색, "T"가 흰색)이 되고, 윗단추가 흰색, 통풍구가 노란색이 됨.
  • 1974년 - 1975년
  • *: 더블 니트 소재가 유니폼 소재로 채택됨에 따라, 가슴 로고, 등번호 테두리와 소매, 깃, 바지 옆 등의 라인에 팀 컬러인 노란색이 들어가고, 모자도 크라운이 검정색 + 챙이 노란색인 투톤 타입이 됨. 또한, 홈용 세로 줄무늬 색깔이 회색에서 검정색이 됨.
  • 1975년 - 1978년
  • *: 비지터용 유니폼만 변경. 바탕색이 회색에서 하늘색이 되고, 소매와 바지 라인이 톱니 모양이 됨. 이 라인은 나가이 카즈마사가 디자인한 것으로, "휘류 라인"이라고 불림(유래에는 "호랑이의 이빨"과 "적호 낭사의 법피" 두 가지 설이 있음). 또한, 구단 사상 처음으로 라글란 슬리브 사양이 채택됨. 깃 라인 위에 첫 번째 단추가 있는 드문 방식으로, 홈용 유니폼과 비지터용에서 단추 소재가 달라 홈용은 바탕색과 같은 플라스틱제, 비지터용은 반투명 플라스틱제 단추였음.
  • * 1976년 - 1978년
  • *: 홈용에도 "휘류 라인"을 채택하고, 왼쪽 소매의 "OSAKA" 로고가 호랑이 마크로 변경. 그에 따라 비지터용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Tigers" 로고로 변경.
  • 1979년 - 1983년
  • *: 브레이저 감독 취임과 동시에 휘류 라인을 폐지하고 종전의 검정과 노란색 라인으로 변경. 단추식에서 풀오버식이 되고, 홈용 유니폼에도 라글란 슬리브가 채택됨. 또한, 스타킹의 노란색 2줄도 폐지되어 검정색 한 가지가 됨. 홈용은 바지 옆 라인이 없어지고 세로 줄무늬가 약간 두꺼워짐.
    참고로, 등 이름은 성만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81년 - 1990년경 타이거스의 외국인 선수는 이름의 이니셜이 붙은 풀네임 표기를 사용한 선수가 많았음(랜디 바스: R.BASS, 리치 게일: R.GALE 등).
    1983년에는 비지터용 유니폼 왼쪽 소매의 "Tigers" 로고가 오른쪽 위로 기울어짐.
  • 1982년 - 1987년
  • *: 안도 마사토 감독 취임에 따라 홈용을 대폭 모델 체인지. 팀 컬러인 노란색이 없어지고, 모노톤 스타일과 줄무늬 모자(챙, TH 마크는 검정색)가 부활하고, 홈용 스파이크가 흰색 바탕에 검정색 선이 됨. 이 디자인 변경 이후, 중간에 작은 변경을 거듭하면서도 기본 디자인은 2006년까지 25년간 사용됨. 이 기간 1985년·2003년·2005년에 3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함.
  • * 1984년 - 1987년
  • *: 홈용 유니폼에 2년 늦게 비지터용 유니폼을 대폭 모델 체인지. 홈용과 마찬가지로 노란색 목과 소매 라인을 없애 회색 바탕에 검정색 세로 줄무늬가 되고,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부활. 또한, 모자가 검정색 바탕에 HT 마크와 윗단추가 흰색이 되고, 가슴 번호 서체가 등번호와 동일하게 됨. 홈용 등번호 서체가 고딕체에 가까운 서체에서 비지터용과 동일한 각진 형태가 됨. 가슴 번호는 종전대로 고교 야구형 서체.
  • 1988년 - 1990년
  • *: 기본적인 디자인은 변경되지 않은 채, 풀오버식에서 단추식이 됨. 또한, 비지터용 모자의 HT 마크와 통풍구를 은색, 윗단추를 흰색에서 검정색으로 변경하는 동시에, 비지터용 스파이크가 검정색 바탕에 흰색 선에서 홈용과 동일한 흰색 바탕에 검정색 선이 됨.
  • 1991년 - 2000년
  • *: 1985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편승하여 다시 풀오버식이 부활. 1984년 - 1987년에 사용되었던 디자인이 거의 완전히 계승됨(비지터용 모자만 이전 모델을 사용).
  • * 2000년
  • *: 당시 감독 노무라 가쓰야의 제안에 따라 홈용 세로 줄무늬 모자가 폐지되고, 비지터용 모자를 어레인지한 검정색 모자(HT 마크는 은색, 윗단추와 통풍구는 검정색)를 홈 게임에서도 사용하게 됨. 또한, 스파이크가 홈, 비지터 모두 검정색 바탕에 은색 라인이 됨.
  • 2001년 - 2006년
  • *: 홈용 유니폼은 기본 디자인을 변경하지 않은 채, 단추 달린 풀오버식을 채택(단추가 풀리는 것은 위에서부터 몇 개까지이고, 나머지는 장식이라는 사양), 등번호, 가슴 번호 서체를 고교 야구형("1"과 "4" 아래에 세리프 있음)으로 변경하고, 등번호는 약간 세로로 길어짐.
    비지터용 유니폼은 디자인을 크게 일신. 세로 줄무늬를 없애고 회색 바탕에 검정색과 흰색 라켓 라인과 소매 라인이 들어가고,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모노톤 컬러로 변경됨. 또한, "HANSHIN" 로고가 검정색 글씨에 흰색 테두리의 피츠버그 파이리츠형 서체가 됨("HANSHIN" 로고 서체 변경은 구단명 개칭 이후 처음) 외에 홈용과 마찬가지로 번호 서체가 고교 야구형으로 변경, 뉴욕 양키스를 본떠 등 이름 없는 스타일이 됨.
  • * 2002년 - 2006년
  • *: 비지터용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모노톤 컬러에서 종전 컬러로 변경.
  • * 2003년 - 2006년
  • *: 비지터용이 등 이름 없음에서 등 이름 있음 스타일로 변경.
  • * 2005년
  • *: 왼쪽 소매의 맹호 마크가 구단 창립 70주년 기념 로고 마크로 교체됨. 단, 홈, 비지터에서 약간 색상이 다름.
  • 2007년 - 2011년
  • *: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의 요청에 따라 팀 컬러인 노란색을 1981년 이후 25년 만에 도입하는 형태로 대폭 모델 체인지한 홈용 유니폼은 "Tigers" 로고와 등번호 등이 노란색으로 테두리가 둘러져 있고, 노랑색과 검정색 소매 라인과 바지 옆 라인이 추가되고, 옆구리에 검정색 배색을 배치한 현대적인 디자인이 됨. 모자는 1970 - 80년대 투톤 타입을 기반으로 윗단추와 통풍구를 검정색으로 한 사양으로 변경.
    비지터용 유니폼은 "HANSHIN" 로고 서체를 2000년까지의 것에 현대적인 어레인지를 더한 것으로 변경, 라켓 라인을 없애고 홈용과 마찬가지로 옆구리에 검정색 배색을 배치한 디자인으로 함. 모자는 종전의 검정색 모자에 챙 가장자리에 흰색 라인이 들어가고 HT 마크는 흰색.
    또한, 홈, 비지터 모두 등번호, 가슴 번호 서체가 1962년 여름 - 1965년까지 사용되었던 유럽풍 서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되고, 등 이름도 거기에 맞춘 둥근 서체가 됨.
  • * 2008년 - 2009년
  • *: 2008년 교류전 개막 이후 비지터용 모자 디자인 변경. 호평이었던 교류전 전용 비지터용을 윗단추와 통풍구를 회색에서 검정색으로 작게 변경하여 사용.
  • * 2010년 - 2011년
  • *: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구단 창립 75주년 기념 로고 마크로 교체됨(2010년만). 비지터용 모자가 2007년 타입으로 돌아옴.
  • 2012년 - 2014년
  • *: 새롭게 미즈노와 공급 계약을 맺음에 따라 모델 체인지. 홈용 유니폼의 세로 줄무늬는 작년까지보다 두꺼워지고, "Tigers" 로고와 등번호, 가슴 번호는 검정색 글씨 + 흰색 테두리가 됨. 셔츠의 어깨 부분과 옆구리, 바지의 옆 부분과 밑단 부분에 "이빨"을 이미지한 날카로운 배색(검정색에 노란색 테두리)이 배치됨.
    비지터용 유니폼은 구단 사상 처음으로 상하 투톤 타입(검정색 셔츠 + 흰색 바지)을 채택, "HANSHIN" 로고를 파이리츠형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으로 변경, 등번호, 가슴 번호와 함께 흰색 글씨에 회색 테두리를 하고, 홈용과 마찬가지로 배색(흰색에 회색 테두리) 외에 셔츠에는 그림자 줄무늬를 배치함.
    모자는 홈, 비지터 모두 검정색 한 가지가 되고, 챙 가장자리에 홈용은 노란색, 비지터용은 흰색 라인이 들어감(헬멧도 마찬가지). HT 마크는 홈용은 흰색 "T" + 노란색 "H", 비지터용은 흰색 "T" + 회색 "H".
    가슴 번호, 등번호는 1996년 - 2011년 주니치 드래건스와 같은 서체로 변경, 등 이름은 풀 블록체가 됨.
  • 2015년 - 2017년
  • *: 구단 창설 80주년을 계기로 모델 체인지. "역사, 전통, 새로움"을 콘셉트로, 홈용 유니폼은 흰색, 비지터용 유니폼은 회색을 기조로, 홈, 비지터 모두 어깨와 옆구리 부분의 배색 등을 없애고 흰색과 검정색 소매 라인 + 라켓 라인이 들어간 심플한 디자인이 됨. 비지터용의 "HANSHIN" 로고는 2000년 이전의 전통적인 디자인이 부활.
    모자는 홈, 비지터 공통 디자인이 되고,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HT 마크. 헬멧은 처음으로 무광택 타입을 채택. 또한, 등 이름 서체가 2006년 이전의 고딕체로 돌아옴.
  • * 2015년
  • *: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구단 창설 80주년 기념 심볼 마크로 교체됨.
  • * 2016년 - 2017년
  • *: 비지터용 일신. 2003년·2005년의 2번의 리그 우승 당시의 "강한 타이거스"를 이미지하여, 2001년 - 2006년에 사용되었던 상하 회색·세로 줄무늬 없는 비지터용을 베이스로 회색을 기조로 검정색과 흰색 라켓 라인과 소매 라인이 들어감. 어깨에서 소매에 이르는 슬리브 부분이 검정색이 됨.
  • 2018년 - 2021년
  • *: 홈용 유니폼은 전년까지 사용되었던 모델의 가슴 로고, 등번호, 가슴 번호, 등 이름, 라인 각각의 테두리를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작게 변경한 형태가 되고, 모자는 7년 만에 노란색 챙의 투톤 타입을 기반으로 윗단추와 통풍구를 노란색으로 어레인지한 것을 채택.
    비지터용 유니폼은 4년 만에 검정색 셔츠 + 흰색 바지의 투톤 스타일이 부활하고, 검정색 바탕에 노란색과 검정색 라켓 라인 + 소매 라인으로, 가슴 로고, 등번호, 가슴 번호, 등 이름은 노란색 글씨 + 흰색 테두리. 모자는 전년에 이어 검정색 한 가지이지만 HT 마크는 흰색 글씨에서 노란색 글씨 + 흰색 테두리로 변경. 비지터용에 노란색이 도입되는 것은 1983년 이후임.
  • * 2020년 - 2021년
  • *: 비지터용 일신. 로고, 라인 등의 기본 패턴은 그대로, 회색을 기조로 한 杢柄(모크)과 흰색 그라데이션을 배치한 디자인이 됨. 모자는 검정색을 베이스로 챙이 회색 杢柄(모크), HT 마크가 검정색 글씨 + 노란색 테두리가 됨. 참고로, 2020년 시즌만 왼쪽 소매의 호랑이 마크가 구단 창설 85주년 기념 심볼 마크로 교체됨.
  • 2022년 -
  • *: 홈용 유니폼은 전 모델을 계승한 기본 디자인이지만, "라켓 라인 + 소매 라인"을 "깃 라인 + 소매 라인"으로 하고, 미즈노로 공급 업체 변경 이후 다소 두꺼워졌던 세로 줄무늬를 세련된 사양으로 작게 변경(두께: 3mm→2mm, 간격: 31mm→25mm).
    비지터용 유니폼은 "상하 회색 + 세로 줄무늬"가 7년 만에 부활. 또한 홈용과 마찬가지로 노란색과 검정색 깃 라인 + 소매 라인을 더함으로써 구단 사상 처음으로 "상하 회색 + 세로 줄무늬 + 노란색 라인"이라는 디자인 패턴을 채택하게 됨.
    홈용 모자는 변경이 없었던 반면, 비지터용 모자는 검정색 한 가지에 노란색 글씨의 HT 마크, 윗단추와 통풍구가 노란색, 챙 가장자리에 노란색 라인이 들어간 사양으로 변경됨.[243]
  • * 2023년 -
  • *: 비지터용 모자 디자인을 홈용 모자와 공통 디자인으로 변경. 홈용 유니폼 왼쪽 가슴 부분에 새롭게 "Joshin" 로고가 게재됨(바지 왼쪽 다리 밑 부분은 폐지).

4. 2. 마스코트

トラッキー|Torakkii|트라키일본어는 한신 타이거스의 마스코트 캐릭터이다. 여자친구인 ラッキー|Rakkii|러키일본어와 함께 팀 경기에서 관중을 즐겁게 한다. 트라키의 등번호는 1985인데, 이는 그가 처음 등장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일본어 두 단어, トラ|Tora|토라일본어(호랑이를 의미)와 ラッキー|Rakkii|랏키일본어(행운을 의미)를 합쳐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일본어로 "행운의 호랑이"를 의미한다.

트라키는 1985년 한신 고시엔 구장의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1987년 실제 캐릭터로 등장했다. 그의 디자인은 1992년에 수정되었다.

트라키 외에도 타이거스의 다른 마스코트로는 그의 여자친구인 러키(ラッキー|Rakkii일본어)와 가장 최근에 추가된 러키의 남동생 キー太|키타일본어가 있다. 키타의 등번호는 2011년이며, 이는 그가 2011년 타이거스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다. 러키의 모자는 남자친구와 남동생과 달리 분홍색이다.

한신 타이거스의 마스코트는 다음과 같다. 모두 팀 이름 "타이거스"를 따서 호랑이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 트라키(TO-LUCKY) - 등번호 1985
  • 러키(LUCKY) - 등번호 없음
  • 키타 - 등번호 2011

4. 3. 응원 문화

한신 타이거스 팬들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충실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6] 이들은 종종 타이거스의 원정 경기에서 홈팀 팬보다 더 많은 수를 자랑한다. 과거에는 거친 행동과 다른 팬들과 싸움을 벌이는 경향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요즘은 싸움이 드물다.[6]

한신 팬들의 유명한 전통(NPB의 다른 팀들도 행한다) 중 하나는 7회말 스트레칭과 팀 응원가가 끝난 직후 팬들이 수백 개의 풍선을 하늘로 날리는 것이다. 이 전통은 원정 경기와 홈 경기 모두에서 행해지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엄격한 규정 때문에 도쿄 돔에서의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제외된다.

한신과 자이언츠의 라이벌리는 메이저리그다저스-자이언츠 라이벌리, 양키스-레드삭스 라이벌리, 스페인 축구의 엘 클라시코와 비견될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라이벌리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두 팀은 비슷한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자이언츠가 1127승, 타이거스가 888승을 거두었다. 두 팀 간의 총 경기 중 77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7]

한신 타이거스는 현재 세·리그에서 유일하게 간사이 지방에 연고지를 둔 구단이며,[220] 간사이 지역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스포츠 신문 각지의 간사이판에서는 주로 타이거스 관련 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1면 이외의 페이지에서도 크게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221] 오사카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정보 프로그램 내 스포츠 코너의 대부분이 타이거스 정보로 채워지며, 프로야구 중계에서도 타이거스 응원 색채를 강조하고 있다(ABC의 「호반 주의。」, MBS의 「with Tigers」 등). 1985년 10월 16일 간사이 TV가 중계한 한신이 21년 만에 우승을 결정지은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은 간사이 지역에서 시청률 56.7%를 기록( 비디오 리서치 조사). 이는 간사이 지역 프로야구 중계 최고 시청률 기록이다. 그러나 그 인기가 처음부터 변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 격전의 간사이 구단

과거 간사이 지역에서는 난카이 호크스도 타이거스와 마찬가지로 많은 인기를 얻는 구단이었다. 특히 1950년대 전반 경, 고시엔 구장의 야간 경기 시설 설치(1956년 완료)가 오사카 스타디움보다 늦어져 관중 동원이 감소한 한신은 난카이의 관중 동원을 웃돌 수 없었고, 야간 경기 시설 설치 후에도 1959년부터 3년 연속 난카이에 뒤처졌다. 또한 TV 중계에서도 난카이 호크스마이니치 방송, 긴테쓰 버펄로스는 아사히 방송, 한큐 브레이브스는 간사이 TV 방송 등과 구단-방송국 간 우선적인 방송 계약을 맺고 있었던 탓에 타이거스 이외 간사이 구단에 대한 주목도가 비교적 높은 상황이었다.

; 간사이 구단 중계 수 감소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황금기를 맞이하고, 도쿄 소재 키국과의 관계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간사이에서도 점차 자이언츠 경기 중계 수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간사이 TV는 자이언츠 중심의 방침을 강화했고, 한큐가 호조를 보여도 "한큐의 경기를 내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이유로,[222][223] 이전에는 연간 약 30경기 정도였던 한큐전 중계가 1966년에는 8경기로 감소했다. 마이니치 방송에서도 1960년대에는 난카이전 중계 방송이 사업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1970년대에는 자이언츠전 중계 확보에 필사적이었다.[224]

; 한신전의 "출연 증가"에서 "일극 집중화"로

이처럼 간사이에서도 자이언츠전이 중심적으로 중계되면서, 같은 리그에 소속된 팀으로서 자이언츠와 연중으로 대결하는 타이거스의 언론 노출이 다른 간사이 구단에 비해 증가했다. 더욱이 같은 시기에 고베시를 거점으로 하는 방송국 산테레비가 개국(1969년), 개국 직후부터 편성의 간판으로 타이거스전 완전 중계 프로그램 『산테레비 박스석』의 방송을 시작했다. 동국 시청 가능 지역은 오사카 부하의 상당한 지역을 포함한 한신 지역 전역을 포함하며, 그 후 간사이 지역의 독립 UHF 각국에 대한 네트도 시작되면서 간사이 전역에서 쉽게 타이거스전을 TV로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에 따른 타이거스 인기 향상에 따라 원래 한신 대 자이언츠전만을 방송했던 상기의 대형 오사카 지역 TV 방송국도 적극적으로 타이거스를 중심으로 한 중계 방송을 늘리게 되면서, 간사이에서의 프로야구 방송은 타이거스전으로의 일극 집중화가 진행되었다.

4. 4. 구단가

阪神タイガースの歌|한신 타이거스의 노래|Hanshin Tigers no Uta일본어 또는 六甲颪|롯코오로시|롯코산의 (내려오는) 바람일본어한국어로 알려진 이 노래는 사토 소스케가 작사하고 고세키 유지가 작곡한 간사이 지역의 유명한 노래이다. 한신 타이거스의 공식 응원가이며, 일본에서는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을 차갑고 혹독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 노래는 역경 속에서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타이거스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 노래는 가라오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어로마자 표기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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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가의 정식 명칭은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이지만, 가사의 첫머리를 따서 「롯코오로시(六甲おろし)」라는 애칭으로 친숙하다. 1936년에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1961년 구단명 변경과 함께 제목이 바뀌었다.

1936년 3월 25일 무코가와 여자대학 고시엔 회관(구 고시엔 호텔)에서 개최된 구단 결성 기념 연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225] 현존하는 NPB 12구단의 구단가 중 가장 오래된 곡이다.


  •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작사: 사토 소스케 작곡: 고세키 유지 노래: 나카노 타다하루와 콜롬비아 나카노 리듬 보이즈)
  • 오사카 타이거스 행진곡(발표 당시 구단, 일본 컬럼비아(현 일본축음기상회) 제작, 위 곡의 레코드 B면에 수록된 기악곡으로, 일부에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와 같은 멜로디가 사용되었다)
  •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구단명 변경에 따른 개제 및 가사 변경 노래: 와카야마 아키, 타치카와 키요토, 나카무라 에이이치, 미치카미 요조, 카라와타 요시노리 등 다수)


공식 구단가는 "타이거스의 노래"(통칭: "록코오로시"(六甲おろし), "록코오라시"(六甲颪)[262])뿐이지만, 그 외에도 구단 응원가가 다수 있다.

  • 타이거스 온도/나아가라! 타이거스(노래: 나카무라 에이이치,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아나운서)
  • 트라트라 마치(노래: 우에쿠사 사다오 아사히 방송 아나운서)
  • 한신 타이거스 세는 노래(노래: 미치카미 요조 아사히 방송 아나운서)
  • 트라트라 한신 응원가(위와 같음)
  • 타이거스여 영원히/오늘도 이겼어 타이거스(노래: 히라타 카츠오, 요시타케 하루키, 이케다 친코=1985년 타이거스 소속 선수)
  •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 패러디 개사.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을 모르는 아이들(노래: 릴리안, 반도 에이지, 야시키 타카진, 카츠라 쟈쿠쟈쿠)
  • WIN!WIN! 타이거스(노래: JK21)
  • 지는 기분 안 돼/하이하이 패(노래: 신보 지로・모리 타케시=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 아나운서)
  • 멋지게 우승! 더 타이거스 온도(노래: 스기모토 히로우, 요로가시 야헤이)
  • 니가타 신용금고의 전 홍보부 요로가시 야헤이(본명: 타카하시 진지)[263]의 작사·작곡[264]. 첫 가사는 타이거스가 우승한 1985년에 쓰여졌고, 점차 가사가 늘어나 2003년 8월 시점에서는 17절까지 가사가 완성되었다.[264] 2003년 4월 자주 제작으로, 같은 해 8월 테이치쿠에서 메이저 음반으로 발매.[264] 메이저 음반에 수록된 것은 "멋지게 우승 버전"과 "환희의 고시엔 버전"을 각각 5절씩.[264]
  • CD 「한신 타이거스 선수별 응원가」
  • 1992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일본 컬럼비아에서 발매되었던 구단가와 구단 응원가, 선수 응원가 등을 수록한 CD. 2001년판은 1만 3000장, 2002년판은 2만 8000장, 2003년판은 11만 장을 판매했다(일본 컬럼비아 조사)[265]. 2004년판 이후는 제작되지 않았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한신 타이거스는 여러 논란과 사건 사고를 겪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외국인 선수 문제, 감독 교체, 주력 선수들의 부진 등이 겹치며 어려움을 겪었다. 1993년에는 짐 파쵸렉과 마쓰나가 히로미가 팀을 떠났고, 1995년에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84패)을 기록하며 최하위로 추락했다. 1996년과 1998년에도 최하위에 머물렀으며, 1997년에는 마이크 그린웰의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5위에 그쳤다. 1999년에는 노무라 가쓰야 감독 부임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1985년 4월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랜디 바스, 가케후 마사유키, 오카다 아키후미가 3연속 백스크린 홈런을 쳐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남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1973년 요미우리와의 우승 경쟁 중에는 이케다 준이치가 외야 잔디에 걸려 넘어진 '세기의 낙구' 사건이 있었다. 같은 해 8월 30일에는 에나쓰 유타카가 노히트노런 중 끝내기 홈런을 맞았고, 10월 20일 중일전 패배로 우승을 놓쳤다. 에나쓰는 이후 구단으로부터 남은 경기에서 이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278][281] 10월 22일 요미우리와의 최종전에서는 대패 후 분노한 팬들이 난동을 부렸다.

한신과 요미우리의 경기는 '전통의 한판 승부'로 불리며, 2016년부터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1946년 7월 26일 퍼시픽과의 경기에서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단 경기 시간(55분)을 기록했고, 1992년 9월 11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최장 경기 시간(6시간 26분)을 기록했다.

1954년1967년에는 몰수경기가 발생했다.

2002년에는 한신 타이거스와 무관한 개인이 '한신 우승'을 상표 등록해 논란이 되었으나, 특허청의 상표 무효 심결로 판매가 금지되었다.

2005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지바 롯데 마린스에 4연패를 당하며 '33-4'라는 숫자가 한신 팬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무라카미 펀드의 한신 전철 주식 매입과 한신 타이거스 주식 상장 제안은 호시노 센이치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2006년 한큐 홀딩스가 한신 전철 주식을 취득하며 한큐 한신 홀딩스가 한신 전철을 자회사로 만들었다.

5. 1. 커넬 샌더스의 저주

많은 다른 저성과 야구팀들과 마찬가지로, 한신 타이거스에게도 저주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어진다.[5] 1985년 한신 타이거스가 센트럴리그 페넌트를 획득하자 팬들은 타이거스 선수처럼 생긴 사람들을 도톤보리 운하에 던지는 축하 행사를 벌였다. 전설에 따르면, 팬들 중 아무도 1루수 랜디 베이스를 닮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팬들은 KFC 마스코트인 할랜드 샌더스 대령의 실물 크기 조각상을 잡아 강에 던졌다(베이스와 마찬가지로 대령은 수염이 있었고 일본인이 아니었다). 그 후 타이거스는 1985년 일본 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를 4승 3패로 물리쳤다. 그 사건 이후 페넌트 우승 없이 여러 시즌이 지나자, 타이거스는 대령이 강에서 구조될 때까지 다시는 시즌에서 우승하지 못할 운명이라고 여겨졌다.

2003년, 18년 만에 센트럴리그 최고 기록으로 일본 시리즈에 복귀하자, 고베와 오사카의 많은 KFC 매장들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타이거스 팬들로부터 할랜드 샌더스 대령 조각상을 보호하기 위해 매장 안으로 옮겼다.

2005년에도 2003년처럼 페넌트를 획득하고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패했다. 4경기에서 35-6으로 크게 뒤졌다.

조각상 상반신(두 손 제외)은 2009년 3월 10일, 미관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산책로 지역을 건설하던 건설 노동자들에 의해 운하에서 마침내 발견되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반신과 오른손도 발견되었다. 조각상은 여전히 왼손과 안경이 없다. 이 조각상이 있던 KFC 매장은 문을 닫았고, 현재 조각상은 요코하마에 있는 KFC 본사에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는 않는다. 그 후 한신 타이거스는 2014년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5경기 만에 패했다. 한신 타이거스가 라이벌 오릭스 버펄로스2023년 일본 시리즈에서 4승 3패로 물리친 후에야 마침내 저주가 깨졌다.

5. 2. 선수들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프로야구 시즌 개막이 연기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309][310] 이런 상황에서 3월 26일, 프로야구계 최초로 후지나미 슈타로 선수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고, 다음 날에도 2명의 선수가 추가 확진되었다.[311]

이들의 감염 경로는 불명확했으나, 감염이 확인되지 않은 다른 4명의 선수와 함께 구단 외부 인물 등 불특정 다수와 오사카 시내 지인의 집에서 회식을 한 것이 밝혀졌다.[311] 함께 있었던 20대 여성 2명도 감염되면서,[311] 개막을 앞두고 감염 방지 대책을 철저히 하려는 야구계와, 외출 자제 등 많은 제약을 받던 일본 사회에 큰 비판을 받았다.[309][311][312] 구단은 일시 활동을 중단했고, 감염된 선수가 중일 2군 경기에 출전했던 나고야 구장은 소독을 하는 등 다른 구단에도 영향을 미쳤다.[311]

9월 25일에는 2군에서 하마치 마스미 선수의 감염이 확인되었고,[313] 곧바로 실시한 PCR 검사에서 주장 이토하라 켄토 선수 등 1군 선수 4명과 스태프 2명의 감염이 확인되었다.[314] 같은 날, 감염된 선수 4명과 밀접 접촉자 6명 등 총 10명의 선수가 출전 선수 등록에서 제외되었고,[314] 2군에서 긴급 승격된 9명의 선수와 합쳐 19명의 선수로 경기를 치르는 사태가 벌어졌다.[314] 같은 날 예정되었던 2군 중일전은 취소되었다.[313]

10명의 선수와 하마치 선수 등의 행동 경로를 조사한 결과, 9월 19일 나고야에서 이토하라 선수와 팀 최고참 후쿠도메 코스케 선수 등 8명이 회식을 했고,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하마치 선수 등 중간 계투 투수 4명이 회식을 한 것이 밝혀졌다.[316][318] 한신은 나고야, 히로시마 원정 시 지정일에 한해 '4명까지', '같은 포지션은 피한다' 등의 조건부로 외식을 허용했지만,[316][317][315] 선수들의 행동은 이 내규를 위반한 것이었다.[316][317][315] 구단은 10월 11일 해당 선수들에게 제재금을 부과했다.[318]

두 차례에 걸친 선수들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구단의 관리 체제 허술함도 문제가 되었고, 한큐한신홀딩스의 카쿠 카즈오 대표이사 회장 겸 그룹 CEO도 구단의 관리 책임과 결단을 언급하며 진퇴 문제를 시사했다.[319][320]

이러한 사태에 대해, 10월 9일 요시오시 켄지 구단 사장은 책임을 지고 시즌 종료와 함께 사임할 것을 발표했다.[321] 또한, 앞으로는 원정지에서의 외식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감염 예방 대책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321]

6. 주요 선수

2000년대 초반, 한신은 노무라 가쓰노리 감독 영입, 이가와 게이, 아카호시 노리히로 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 부임 후 조지 아리아스, 가네모토 도모아키, 이라부 히데키, 제프 윌리엄스 등 선수 영입으로 팀을 재건, 2003년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3]
미스터 타이거스후지무라 후미오를 시작으로, 무라야마 미노루, 타부치 코이치, 카케후 마사유키 등이 이어받은 칭호이다. 대타의 신으로는 야기 유우를 필두로, 히야마 신지로,[272][273] 세키모토 켄타로,[274] 카리노 케이스케[269] 등이 활약했다.

1936년 창단 당시 선수 등번호는 이름의 가나다 순으로 정해졌으나, 1950년 포지션별 등번호 변경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1번을 제외한 한 자릿수 등번호를 투수가, 18번을 야수가 착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11번은 무라야마 미노루가 영구 결번으로 만들기 전까지 불길한 번호로 여겨졌다.

사와무라상은 1947년 제정된 이후 한신에서 총 6명이 수상했다. 무라야마 미노루는 3회 수상으로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루며, 진 바키는 외국인 투수 최초로 수상했다.

2014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영입했다.

6. 1. 영구 결번

6. 2. 전·현직 주요 선수

한신 타이거스의 전·현직 주요 선수는 다음과 같다.

2014년에는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영입했다.

7. 역대 감독

감독재임 기간정규 시즌
경기 수승률
오사카 타이거스 & 한신 타이거스
모리 시게오1936년 (춘계-하계)15960.600
이시모토 슈이치1936년 (추계)-1939년307223786.736
마쓰키 겐지로1940년–1941년, 1950년–1954년82446035212.565
와카바야시 타다시1942년–1944년, 1947년–1949년62033426224.558
후지무라 후미오1946년, 1955년-1957년3652111504.584
키시 이치로1955년13071572.554
타나카 요시오1958년–1959년2601341179.533
카네다 마사야스1960년–1961년, 1972년-1974년52024525223.493
후지모토 사다요시1961년-1965년, 1966년-1968년82243736520.544
스기시타 시게루1966년13564665.493
고토 츠구오1969년, 1978년26010913912.442
무라야마 미노루1970년–1972년, 1988년–1989년65031032119.491
요시다 요시오1975년–1977년, 1985년–1987년, 1997년–1998년105148451156.487
돈 블레이징게임1979년–1980년26011512619.479
나카니시 후토시1981년13067585.535
안도 모토오1982년–1984년39018018921.488
나카무라 가츠히로1990년–1995년7843384424.434
후지타 타이라1995년-1996년13054760.415
노무라 가쓰야1999년–2001년4111692384.416
호시노 센이치2002년–2003년2801531216.557
오카다 아키노부2004년–2008년, 2023년–2024년100455442327.567
마유미 아키노부2009년–2011년43221320613.508
와다 유타카2012년–2015년57527328121.493
카네모토 토모아키2016년–2018년4292042169.486
야노 아키히로2019년–2022년57427428812.486
후지카와 큐지2025년–0000.000


8. 역대 성적

연도감독순위경기승리패전무승부승률승차타율홈런평균자책점
1936년모리 시게오·이시모토 슈이치15960.600.30553.36
1936년 추계모리 시게오·이시모토 슈이치312461.800.24851.79
1937년 춘계이시모토 슈이치2위5641141.7450.5.246101.71
1937년 추계이시모토 슈이치1위493991.813-.258132.03
1938년 춘계이시모토 슈이치1위352960.829-.268122.05
1938년 추계이시모토 슈이치2위4027130.6753.5.254112.46
1939년이시모토 슈이치2위9663303.6773.5.239322.02
1940년마쓰키 겐지로2위10464373.63410.5.223131.66
1941년마쓰키 겐지로5위8441430.48821.19761.61
1942년와카바야시 다다시3위10552485.52021.20491.82
1943년와카바야시 다다시3위8441367.53211.201121.80
1944년와카바야시 다다시1위352762.818-.24811.53
1945년제2차 세계 대전에 의한 경기 중단
1946년후지무라 후미오3위10559460.5627.288283.23
1947년와카바야시 다다시1위11979373.681-.258172.18
1948년와카바야시 다다시3위14070664.51517.262502.88
1949년와카바야시 다다시6위13765693.48520.5.2831414.47
1950년마쓰키 겐지로4위14070673.51130.2701204.19
1951년마쓰키 겐지로3위11661523.54020.5.269783.26
1952년마쓰키 겐지로2위12079401.6643.5.268612.77
1953년마쓰키 겐지로2위13074560.56916.270873.15
1954년마쓰키 겐지로3위13071572.55516.266682.78
1955년기시 이치로·후지무라 후미오3위13071572.55520.5.251512.49
1956년후지무라 후미오2위13079501.6124.5.224541.77
1957년후지무라 후미오2위13073543.5731.240682.38
1958년다나카 요시오2위13072580.5545.5.238882.55
1959년다나카 요시오2위13062599.51213.237762.37
1960년가네다 마사야스3위13064624.5086.242872.62
1961년가네다 마사야스·후지모토 사다요시4위13060673.47312.5.244802.60
1962년후지모토 사다요시1위13375553.577-.223642.03
1963년후지모토 사다요시3위14069701.49614.5.239953.20
1964년후지모토 사다요시1위14080564.588-.2401142.75
1965년후지모토 사다요시3위14071663.51819.5.220942.47
1966년스기시타 시게루·후지모토 사다요시3위13564665.49225.233812.52
1967년후지모토 사다요시3위13670606.53814.2451012.60
1968년후지모토 사다요시2위13372583.5545.2291192.67
1969년고토 쓰구오2위13068593.5356.5.2221142.41
1970년무라야마 미노루2위13077494.6112.2451102.36
1971년무라야마 미노루5위13057649.47112.5.2201012.76
1972년무라야마 미노루2위13071563.5593.5.2391253.00
1973년가네다 마사야스2위13064597.5200.5.2341152.82
1974년가네다 마사야스4위13057649.47114.2371363.45
1975년요시다 요시오3위13068557.5536.2521283.34
1976년요시다 요시오2위130724513.6152.2581933.54
1977년요시다 요시오4위130556312.46621.2671844.38
1978년고토 쓰구오6위13041809.33930.5.2541394.79
1979년돈 블레이저4위13061609.5048.2681724.15
1980년돈 블레이저·나카니시 후토시5위130546610.45020.5.2621343.73
1981년나카니시 후토시3위13067585.5368.2721143.32
1982년안도 모토오3위13065578.5334.5.2621183.44
1983년안도 모토오4위13062635.49611.5.2741694.22
1984년안도 모토오4위13053698.43423.2641654.46
1985년요시다 요시오1위13074497.602-.2852194.16
1986년요시다 요시오3위130606010.50013.5.2711843.69
1987년요시다 요시오6위13041836.33137.5.2421404.36
1988년무라야마 미노루6위13051772.39829.5.248823.82
1989년무라야마 미노루5위13054751.41930.5.2571354.15
1990년나카무라 가쓰히로6위13052780.40036.2521354.58
1991년나카무라 가쓰히로6위13048820.36926.2371114.37
1992년나카무라 가쓰히로2위13267632.5152.250862.90
1993년나카무라 가쓰히로4위13263672.48517.253863.88
1994년나카무라 가쓰히로4위13062680.4778.256923.43
1995년나카무라 가쓰히로6위13046840.35436.244883.83
1996년후지타 다이라6위13054760.41523.245894.12
1997년요시다 요시오5위13662731.45921.2441033.70
1998년요시다 요시오6위13552830.38527.242863.95
1999년노무라 가쓰야6위13555800.40726.259974.04
2000년노무라 가쓰야6위13657781.42221.2441143.90
2001년노무라 가쓰야6위14057803.41620.5.243903.75
2002년호시노 센이치4위14066704.48519.2531223.41
2003년호시노 센이치1위14087512.630-.2871413.53
2004년오카다 아키노부4위13866702.48513.5.2731424.08
2005년오카다 아키노부1위14687545.617-.2741403.24
2006년오카다 아키노부2위14684584.5923.5.2671333.13
2007년오카다 아키노부3위14474664.5294.5.2551113.56
2008년오카다 아키노부2위14482593.5822.268833.29
2009년마유미 아키노부4위14467734.47924.5.2551063.28
2010년마유미 아키노부2위14478633.5531.2901734.05
2011년마유미 아키노부4위14468706.4939.255802.83
2012년와다 유타카5위144557514.42331.5.236582.65
2013년와다 유타카2위14473674.52112.5.255823.07
2014년와다 유타카2위14475681.5247.264943.88
2015년와다 유타카3위14370712.4966.247783.47
2016년가네모토 도모아키4위14364763.45724.5.245903.38
2017년가네모토 도모아키2위14378614.56110.2491133.29
2018년가네모토 도모아키6위14362792.44020.253854.03
2019년야노 아키히로3위14369686.5046.251943.46
2020년야노 아키히로2위12060537.5317.5.2461103.35
2021년야노 아키히로2위143775610.5790.2471213.30
2022년야노 아키히로3위14368714.48912.243842.67
2023년오카다 아키노부1위14385535.616-.247842.66
2024년오카다 아키노부2위14374636.5403.5.234702.69


  •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순위에서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
  • 통산 성적 : 5609승 344무 5237패 (승률 .517)

1950년부터 현재까지의 팀 순위, 붉은점은 일본 시리즈 우승을 나타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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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문서 同行的阪神电气铁道本社常务董事石田一雄也遇难,这是因为他在事故当天参加了在运输省(现国土交通省)举行的民铁协会议,为了回阪而乘坐了事故航班。最初,球团老板、电铁本社社长久万俊二郎计划出席会议并乘坐同一航班回阪,但由于久万因私事无法出席,中埜和石田两人代替出席并乘坐同一航班,最终成为事故的遇难者。
[14] 문서 8月10日和11日在福冈市的平和台棒球场举行了阪神对阵名古屋的比赛(地方主办比赛),事故日是13日为在后乐园棒球场进行的巨人对阵阪神比赛而进行的移动日。遇难的中埜也在事故前一天访问了平和台棒球场以示支持。
[15] 문서 乘坐366航班的球员木戸克彦的妻子原计划乘坐该事故航班的123航班,但在最后一刻取消了行程,从而幸免于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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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서 1959年和1990年的巨人队,1960年的大毎队,2002年的西武队。
[34] 문서 未获得冠军的球队的魔术点亮最快纪录
[35] 문서 当时,甲子园正在进行改建工程,无法使用,因此比赛在大阪巨蛋举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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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웹사이트 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歴代監督・シーズン順位変遷一覧(3ページ目〜) https://www.baseball[...] カンゼン 2024-11-03
[99] 웹사이트 阪神タイガース、歴代監督・シーズン順位変遷一覧(3ページ目〜) https://www.baseball[...] カンゼン 2024-11-10
[100] 웹사이트 【プロ野球】歴代日本一チーム、日本シリーズMVP一覧|対戦カード・試合結果ほか(2ページ目〜) https://www.baseball[...] カンゼン 2024-11-10
[101] 문서 「平成時代に1度も日本一になれなかった球団」については、中日ドラゴンズと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は平成時代に1度も年間勝率1位によるリーグ優勝・日本一にどちらもなれなかった。
[102] 뉴스 木浪&近本の新人1、2番/阪神開幕スタメン https://www.nikkansp[...] 2019-03-29
[103] 뉴스 ついに借金生活に転落の矢野阪神…得点力不足は深刻も“光”あり 虎のご意見番が解説 https://www.daily.co[...] 2019-07-01
[104] 뉴스 「阪神に必要なのは防げるエラーをなくすこと」 防御率リーグ2位も、失策は12球団ワースト https://www.j-cast.c[...] 2019-08-05
[105] 뉴스 球児、奇跡の救援陣に自信 「強くなっている」CSでもフル回転だ https://www.daily.co[...] 2019-10-02
[106] 뉴스 阪神はなぜ勝負どころで勝てるのか…矢野監督が見せた巧みな“超積極采配” (1/2) https://dot.asahi.co[...] AERA dot. 2019-10-08
[107] 뉴스 阪神 今季初の6連勝を呼び込んだ鉄壁のブルペン陣「今までにないタイガースの形」 https://www.sponichi[...] Sponichi Annex 2019-10-01
[108] 뉴스 阪神「投手力」で大逆転 クライマックスシリーズ進出へ https://web.archive.[...] NHKニュース 2019-10-01
[109] 뉴스 阪神大逆転CSの軌跡 ラスト10戦で明暗 鳥谷、メッセ、高橋聡、横田の思いも力に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online 2019-09-30
[110] 뉴스 阪神はなぜ勝負どころで勝てるのか…矢野監督が見せた巧みな“超積極采配” (2/2) https://dot.asahi.co[...] AERA dot. 2019-10-08
[111] 뉴스 【阪神】藤川球児、NPB史上初の150セーブ&150ホールド https://hochi.news/a[...] スポーツ報知 2019-06-12
[112] 뉴스 阪神・近本、159安打で終える 新人歴代3位 https://web.archive.[...] SANSPO.COM 2019-09-30
[113] 뉴스 【阪神】近本、赤星以来の新人史上2人目の盗塁王「一番目標にしてきた」 https://hochi.news/a[...] スポーツ報知 2019-10-01
[114] 뉴스 阪神が球団初のバッテリーでゴールデングラブ受賞、西は失策「0」 https://www.sanspo.c[...] SANSPO.COM 2019-10-31
[115] 뉴스 阪神メッセンジャー涙 「非常にチクショー」引退会見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9-18
[116] 뉴스 引退の阪神高橋聡文貫いた「荒れたマウンドでいい」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9-25
[117] 뉴스 阪神横田涙…奇跡のプレーに鳥谷「神様も見ている」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9-26
[118] 뉴스 レギュラーシーズン最終戦を終えた阪神・鳥谷「人生で一番大きな歓声だった」 https://www.sanspo.c[...] SANSPO.COM 2019-09-30
[119] 뉴스 阪神・藤浪「軽率だった」会食で感染の3選手が会見 https://www.asahi.co[...] 朝日新聞デジタル 2021-02-20
[120] 문서 藤浪と同じ食事会に参加した伊藤隼太、長坂拳弥、女性数名も感染した。
[121] 뉴스 とにかく打てない阪神 史上初の対巨人開幕3連敗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1-02-20
[122] 뉴스 矢野阪神 惜しまれる開幕ダッシュ失敗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1-02-20
[123] 뉴스 阪神、コロナ感染7人…前代未聞10人抹消 https://www.sanspo.c[...] SANSPO.COM 2021-02-20
[124] 뉴스 バース以来34年ぶりのキングなるか https://www.asahi.co[...] 朝日新聞デジタル 2021-02-20
[125] 뉴스 阪神・スアレス セーブ王に喜び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21-02-20
[126] 뉴스 エラーに寛容過ぎるチーム 拙守の克服が至上命題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21-02-20
[127] 웹사이트 プロ野球ドラフト会議2020速報 https://hanshintiger[...] 2021-02-20
[128] 뉴스 藤川引退会見 粉骨砕身の22年間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21-02-20
[129] 뉴스 阪神・福留が今季限りで退団 https://www.sanspo.c[...] SANSPO.COM 2021-02-20
[130] 뉴스 阪神・能見も退団へ https://www.sanspo.c[...] SANSPO.COM 2021-02-20
[131] 뉴스 阪神・上本が現役引退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21-02-20
[132] 웹사이트 阪神ドラ1佐藤輝、プロ野球タイ記録の「新人OP戦5号」 ヤクルト相手に“開幕戦デモ” https://full-count.j[...] 2021-03-16
[133] 웹사이트 オープン戦“優勝”は5年ぶり阪神! ソフトバンク敗れて勝率単独1位に https://www.sponichi[...] 2022-01-04
[134] 웹사이트 阪神が2016年以来5年ぶりのオープン戦優勝 https://www.daily.co[...] 2022-01-04
[135] 웹사이트 阪神 開幕3連勝で2年ぶり単独首位 矢野監督「全員でやるのがうちの野球」 https://www.daily.co[...] 2022-01-04
[136] 웹사이트 阪神今季2度目の同一カード3連戦3連勝 ドラ6中野初適時打を含む3安打の活躍/デイリースポーツ https://www.daily.co[...] 2022-01-04
[137] 웹사이트 イケイケ阪神の真価問われる交流戦 パは“防御率十傑”+楽天・田中揃えて迎撃体勢 https://www.tokyo-sp[...] 2022-05-05
[138] 웹사이트 阪神、交流戦6連勝締め 13年ぶりの貯金「20」 近本が値千金の決勝打 https://www.daily.co[...] 2022-01-04
[139] 웹사이트 こだわった「4番大山」…13年ぶり首位ターン 阪神・矢野監督の選手起用を振り返る https://full-count.j[...] 2021-07-27
[140] 웹사이트 阪神佐藤輝の連続無安打、59打席でストップ 一回に先制右適時打 https://www.sankei.c[...] 2021-10-05
[141] 웹사이트 阪神に求められる「メンテナンス力」 後半戦失速する選手続出 藤田平氏が指摘 https://www.daily.co[...] 2022-01-04
[142] 웹사이트 阪神 ヤクルトとの首位攻防に敗れ自力優勝消滅 矢野監督「しっかり受け止めてやるしか」 https://www.tokyo-sp[...] 2022-05-05
[143] 웹사이트 ヤクルトがセ・リーグ優勝 6年ぶり8回目 前年最下位から頂点に https://mainichi.jp/[...] 2022-01-04
[144] 문서 우승을 놓친 예
[145] 웹사이트 2連敗でCS終了の阪神にSNSでもファンの嘆きあふれる「後半戦を象徴する2試合」「連敗は情けない」 https://www.chunichi[...] 2022-01-04
[146] 웹사이트 新人特別賞に異例の6選手 セはDeNA牧、阪神佐藤輝ら5人、パは日本ハム伊藤 https://full-count.j[...] 2021-12-15
[147] 웹사이트 「今季限りで退任」阪神・矢野監督の“衝撃発言”に、藤浪晋太郎や佐藤輝明らが戸惑わなかった理由「選手たちはもう自立している」 https://number.bunsh[...] 2022-02-11
[148] 웹사이트 阪神・矢野監督、裏目継投 史上最悪の開幕…7点差ひっくり返された ラストイヤー悪夢の船出 https://www.sanspo.c[...] 2022-03-26
[149] 웹사이트 【阪神】おまたせ今季初勝利!帰ってきた今季初甲子園で10連敗阻止 西勇輝完封、佐藤輝明1号 https://www.nikkansp[...] 2022-04-05
[150] 문서 개막 12연패 후 첫 승리를 거둔 1955년 톤보, 2무를 끼고 11연패를 당한 1979년 세이부, 11연패 후 2연승을 거둔 2002년 지바롯데, 10연패 후 3연승을 거둔 1961년 한큐 이후 5번째 사례이다.
[151] 뉴스 【阪神】サヨナラ負けで今季2度目の5連敗 勝率・067 勝率6分台はプロ野球史上初の珍事 https://www.nikkansp[...] 2022-04-13
[152] 뉴스 ついに最下位脱出!「何がなんでも食らいついて」佐藤輝明が由伸撃ち&熊谷敬宥の神走塁 https://www.nikkansp[...] 2022-06-11
[153] 웹사이트 【【12球団ペナントレース総括】阪神・守り重視で投打がうまくかみ合い、18年ぶり&38年ぶりに「アレとアレ」達成 https://column.sp.ba[...] 2023-12-31
[154] 뉴스 阪神タイガース2023年5月の日程・結果 https://www.nikkansp[...]
[155] 뉴스 【阪神】岡田監督、交流戦負け越し「借金3つでよういったと思うよ。もう御の字よ」一問一答 https://www.nikkansp[...]
[156] 뉴스 【阪神】打線改造も、鬼門横浜スタジアム13連敗で首位陥落 今季初の同一カード3連敗 https://www.nikkansp[...]
[157] 뉴스 【阪神】猛虎打線復活で首位返り咲き!14戦ぶり2ケタ得点11点で快勝 連敗「5」でストップ https://hochi.news/a[...]
[158] 뉴스 【阪神】伝統の一戦で痛恨の敗戦、31日ぶり首位陥落 10連勝の広島に明け渡す https://www.nikkansp[...]
[159] 뉴스 阪神タイガース2023年8月の日程・結果 https://www.nikkansp[...]
[160] 뉴스 【阪神】マジック29点灯!悲願「アレ」へ一直線 広島に追い上げ許すも救援陣が粘って逃げ切り https://www.nikkansp[...]
[161] 뉴스 阪神、18年ぶりアレへGO!!マジック「29」点灯 広島との接戦制した https://www.sponichi[...]
[162] 뉴스 【阪神】優勝マジック「18」再点灯!広島敗れ4日ぶり、ここから悲願の「アレ」までまっしぐら https://www.nikkansp[...]
[163] 뉴스 阪神が18年ぶりV 岡田監督、復帰1年目で「アレ」成し遂げる https://www.kobe-np.[...] 2023-09-14
[164] 뉴스 【阪神】38年ぶりの日本一導いた「494」と「9」2つの数字 四球激増と最強リリーフ陣 https://hochi.news/a[...]
[165] 뉴스 【ゴールデン・グラブ賞】阪神球団史上最多5人、両リーグ最多得票は阪神近本光司/受賞者一覧 https://www.nikkansp[...]
[166] 웹사이트 阪神、38年ぶり日本シリーズ制覇…オリックスに4勝3 敗 https://www.yomiuri.[...]
[167] 문서 연간 승률 1위로 리그 우승을 하지 않고 일본 시리즈를 제패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지바롯데 마린스와 주니치 드래곤스는 1번밖에 연간 승률 1위로 리그 우승·일본 일을 하지 못했다(전자는 마이니치 오리온스 시대의 1950년, 후자는 1954년이 유일).
[168] 뉴스 【阪神】球界最年長監督が12球団唯一の“平成生まれ”集団で成し得た日本一。プロ野球12球団担当記者が見た2023年 https://www.fnn.jp/a[...] 후지텔레비전 2023-11-19
[169] 뉴스 【阪神】佐藤輝明は「アレンパ」封印の意向 流行語大賞「2回連続はないでしょ(笑い)」 https://news.ntv.co.[...]
[170] 뉴스 【セ・リーグ順位表】首位・阪神3連勝 2位・巨人がやぶれゲーム差「2.5」に拡大 https://www.nikkansp[...]
[171] 뉴스 阪神 球団史上初の連覇が消滅 意地の巨人猛追も140試合目で終戦 神宮のスタンドから「岡田コール」ファンは戦いをたたえる https://www.daily.co[...]
[172] 뉴스 【阪神】まさかの逆転負け…8回に4点差ひっくり返され4位転落…貯金0で首位広島戦へ https://www.nikkansp[...]
[173] 뉴스 【阪神】42日ぶり2位浮上!首位巨人と3差 高橋遥人が広島戦3戦3勝のキラーぶり発揮 https://www.nikkansp[...]
[174] 뉴스 阪神タイガース2023年8月の日程・結果 https://www.nikkansp[...]
[175] 뉴스 【阪神】首位巨人とついに1ゲーム差!才木が気迫の7回無失点で13勝目 選手会長中野が決勝打 https://www.nikkansp[...]
[176] 문서 ここから阪神軍
[177] 문서 ここから大阪タイガース(第2次)
[178] 문서 1955年は5月19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藤村富美男が代行。
[179] 문서 ここから阪神タイガース
[180] 문서 1961年は6月4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藤本定義が代行。
[181] 문서 1966年は8月11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藤本定義が代行。
[182] 문서 1972年は4月19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金田正泰が代行。
[183] 문서 1980年は5月14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中西太が代行。
[184] 문서 1984年6月13日 - 6月15日は佐藤孝夫が監督代行。
[185] 문서 1995年は7月23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藤田平が代行。
[186] 문서 1996年は9月11日まで指揮。残り試合は柴田猛が代行。
[187] 문서 2011年の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と並ぶ。
[188] 웹사이트 投手三冠で沢村賞を逃したのは1人だけ。千賀滉大は2人目になる!? https://news.yahoo.c[...]
[189] 웹사이트 三冠王 各種記録達成者一覧 達成記録 https://npb.jp/histo[...] 日本野球機構 2022-10-05
[190] 웹사이트 最優秀選手(セ・リーグ) - プロ野球 : 日刊スポーツ https://www.nikkansp[...]
[191] 웹사이트 最優秀選手(セ・リーグ) - プロ野球 : 日刊スポーツ https://www.nikkansp[...]
[192] 문서 1975年には全国高等学校野球選手権大会の日程が雨天順延が相次いで5日延びたため、甲子園で行う予定だった阪神の試合が雨天中止に準じた扱いで予備日に振替開催されたこともある。
[193] 문서 現状では7月末から8月末までの1ヶ月程度に及んでいる。
[194] 문서 新幹線や飛行機を使うまでは、在来線の夜行列車などで長時間移動したりした。
[195] 문서 かつては旅館の大部屋で雑魚寝ということもあったが、今はシティホテルの個室である。
[196] 문서 実際には、阪神以外にも読売ジャイアンツ|巨人が毎年7月中旬 - 下旬の都市対抗野球開催期間中は東京ドームが使用できないため長期遠征を行っている。
[197] 웹사이트 『げんまつWEBタイガース歴史研究室』内「阪神タイガース観客動員数」/『プロ野球Freak』内「阪神タイガース」 http://baseball-frea[...]
[198] 뉴스 ベリーグッドマン 4万7000人と甲子園球場100周年祝う「夢の舞台甲子園に帰って来れた」 https://www.tokyo-sp[...] 東京スポーツ新聞社 2024-08-01
[199] 웹사이트 2024年度公式戦入場者300万人達成のお知らせ https://hanshintiger[...] 阪神タイガース 2024-09-30
[200] 웹사이트 2023年 セ・パ公式戦 入場者数 https://npb.jp/stati[...] NPB
[201] 웹사이트 2024年 セ・パ公式戦 入場者数 https://npb.jp/stati[...] NPB
[202] 문서 阪神の主催試合は、2015年から2019年までは奇数年が72試合・偶数年が71試合であったが、2021年より逆となっている。
[203] 문서 2011年も1試合を開催予定であったが、雨天中止となり甲子園での開催に振り替えられた。
[204] 문서 2006年も1試合を予定していたが、同球場の設備の老朽化を理由に甲子園に振り替えとなり、2007年以降はオープン戦も行っていない。なお、それ以降はオリックスと巨人が公式戦を開催した実績がある。
[205] 문서 2011年の公式戦開幕は東日本大震災の影響で日程が順延されたことによるもので、当初の予定ではビジターでの開幕だった。
[206] 웹사이트 能見 延びた開幕有効活用!理想投球フォーム追求 https://www.sponichi[...]
[207] 문서 なお、その次の主催ゲーム開幕シリーズ扱いとなる大阪ドームでの中日戦も中止となったため、延期日程補填の観点から10月にヤクルト3連戦を大阪ドームで開催している
[208] 웹사이트 公式戦2010年度カレンダー 3・4月 http://bis.npb.or.jp[...]
[209] 문서 2017年は、2017 ワールド・ベースボール・クラシック|WBCとの兼ね合いで開幕をずらすなどの日程の調整が難しかったという事情もあった。2024年は、巨人が球団創設90周年を迎えた記念すべき年でありその巨人に開幕権を譲るという配慮もあった。2025年は開催球場の都合により返上した。
[210] 뉴스 阪神来春キャンプ2軍も沖縄 1軍宜野座から30キロ、うるま市具志川野球場に移転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2-07-22
[211] 문서 null
[212] 웹사이트 【ロッテ】ポランコが本塁打王 楽天浅村、ソフトバンク近藤と並び26本 球団では落合博満以来 https://www.nikkansp[...] 2023-10-12
[213] 웹사이트 巨人刺激に発足の阪神OB会「永遠のテーマ」再確認 https://www.nikkansp[...]
[214] 웹사이트 【阪神】OB会長に掛布雅之氏が正式就任「天国にいる小林さんに、今は堂々と声をかけられる」 https://www.nikkansp[...]
[215] 뉴스 内田雅也が行く 猛虎の地(4)「タイガース」の由来は天守閣の虎!? https://www.sponichi[...] 2019-12-04
[216] 문서 null
[217] 문서 null
[218] 서적 プロ野球と共に五十年 恒文社
[219] 서적 虫明亜呂無の本3 時さえ忘れて 筑摩書房
[220] 문서 null
[221] 문서 null
[222] 서적 南海ホークスがあったころ 野球ファンとパ・リーグの文化史 紀伊國屋書店
[223] 서적 関西テレビ放送10年史
[224] 문서 null
[225] 웹사이트 特設コラム『若林忠志が見た夢』Vol.1 タイガースの礎 https://hanshintiger[...] 2011-06-15
[226] 웹사이트 綱島理友のユニフォーム物語 意匠関連 http://hanshintigers[...] 2019-01-20
[227] 웹사이트 阪神「虎マーク」が80年間も変わらない理由 https://toyokeizai.n[...] 2016-08-19
[228] 문서 null
[229] 문서 null
[230] 문서 null
[231] 문서 null
[232] 웹사이트 あの球団マーク、キャラクターは誰がデザインしたのか? https://yakyutaro.jp[...] 2015-09-06
[233] 웹사이트 【内田雅也の追球 特別編】見つかった幻のジャガー・マーク 伝説のデザイナー早川源一氏の原作を復元 https://www.sponichi[...] 2020-01-16
[234] 웹사이트 ベースボール百科 実は2021年で還暦だった阪神タイガースの「HT」マーク https://column.sp.ba[...] 2021-12-31
[235] 서적 スポーツマスコット図鑑
[236] 문서 null
[237] 문서 null
[238] 문서 null
[239] 문서 null
[240] 서적 プロ野球ユニフォーム物語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41] 웹사이트 網島理友のユニフォーム物語 戦前・戦後篇 1936~1940年② https://m.hanshintig[...] 阪神タイガース 2024-08-01
[242] 문서 null
[243] 웹사이트 阪神、来季の新ユニホーム発表 ストライプの仕様変更でスタイリッシュに https://www.nikkansp[...] 2021-12-04
[244] 간행물 復刻ユニフォーム物語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8-07-28
[245] 웹사이트 おいでやす小田が甲子園で絶叫もスタンドは微妙な空気に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online 2022-07-13
[246] 웹사이트 ウル虎の夏2013公式サイト http://hanshintigers[...]
[246] 웹사이트 7/26(金)〜9/1(日)はウル虎の夏2013 http://hanshintigers[...]
[247] 웹사이트 西岡 意味深「ノーコメントです」 限定ユニに苦笑い!? https://www.sponichi[...] 2017-04-09
[247] 웹사이트 【阪神】ウル虎グリーン・ユニホーム披露 https://www.nikkansp[...] 2014-02-01
[248] 뉴스 阪神 サードユニお披露目、黄色基調 上本「虎のイメージに合う」 https://www.sponichi[...] 2015-02-05
[249] 뉴스 【プロ野球】阪神・新井「かっこいい!」サードユニホーム発表、黄色に黒の袖 「ウル虎の夏」で着用 https://www.sankei.c[...] 2016-02-08
[250] 웹사이트 「ウル虎の夏2017」着用サードユニフォーム「ウル虎イエローユニフォーム」を発表! http://hanshintigers[...]
[251] 웹사이트 阪神・メッセ、ウル虎イエローユニホームは「かっこいい」 https://www.sanspo.c[...] 2017-01-31
[252] 웹사이트 「ウル虎の夏2019」着用サードユニフォーム 「ウル虎イエローユニフォーム」を発表! http://hanshintigers[...] 2019-01-31
[253] 웹사이트 「ウル虎の夏2020」着用サードユニフォーム 「ウル虎イエローユニフォーム」を発表! 球団ニュース|ニュース https://hanshintiger[...] 2020-01-31
[254] 웹사이트 阪神梅野「身が引き締まる」ウル虎の夏ユニお披露目 https://www.nikkansp[...] 2020-01-31
[255] 웹사이트 「ウル虎の夏2021」着用サードユニフォーム「ウル虎イエローユニフォーム」を発表!|球団ニュース https://hanshintiger[...] 2021-03-18
[256] 웹사이트 阪神「ウル虎の夏」実施へ 黄色基調に前面に虎主張 https://www.nikkansp[...] 2021-03-18
[257] 웹사이트 阪神夏恒例の「ウル虎イエローユニホーム」発表 7月巨人、中日戦計6試合 https://www.nikkansp[...] 2022-01-27
[258] 웹사이트 「ウル虎の夏2023」着用サードユニフォーム 「ウル虎イエローユニフォーム」を発表! https://hanshintiger[...] 2023-01-23
[259] 웹사이트 4/26-28「伝統の一戦」第1ラウンドで「輝流ラインユニフォーム2016」着用! http://hanshintigers[...] 2016-02-10
[260] 웹사이트 阪神 G戦用ブラックユニホームをお披露目 https://www.daily.co[...] 2017-01-25
[261] 웹사이트 ファンともっとプロジェクト! https://hanshintiger[...] 2023-01-26
[262] 서적 프로야구 12구단 전선수 백과명감
[263] 뉴스 우승을 엮어낸 신곡 피로/타이거스 음두로 전축하 https://www.shikoku-[...] 2003-08-09
[264] 뉴스 <03열호전설>니신OB의 열광적 팬 트라 응원가로 가수 데뷔 전진 있을 뿐이다!“타이거스 음두”경쾌한 목소리, 시대에 맞는 본오도리 안무도 2003-08-14
[265] 뉴스 중호연합회 간부 등 고발, 한신 응원가“저작자 사칭” https://web.archive.[...] 2005-03-02
[266] 문서 승의 일부에 적색으로 웃음을 겹쳐놓고 있다.
[267] 뉴스 한신의 슬로건“ARE”탄생 비화, 오카다 감독의 고집으로 직전 수정 https://www.asahi.co[...] 2023-09-13
[268] 웹사이트 한신, 내년 슬로건은 “A.R.E” 오카다 감독의 구구에 따른다…이례적인“읽는 법 주의” https://full-count.j[...] 2022-12-17
[269] 웹사이트 “대타의 신”도 도달할 수 없는, 마유미씨의 시즌 대타 타점 기록 https://www.sanspo.c[...] 산케이스포츠 2016-12-25
[270] 뉴스 【10월 10일】2004년(평16) 시작도 끝도 대타 “신”야기 유 은퇴 https://web.archive.[...] 2011-10-10
[271] 논문 한신 타이거스 팬에 보이는 오사카 문화 : 왜, 350만 명이나 고시엔 구장에 가는가? 2020-02-05
[272] 뉴스 한신 일편 22년. 히야마 신지로가 “대타의 신”이라고 불릴 때까지 https://sportiva.shu[...] 2013-11-07
[273] 서적 야생의 교육론: 투쟁심과 교양을 어떻게 갈고 닦을까 다이아몬드사 2013
[274] 뉴스 한신·세키모토가 은퇴 회견 “대타의 신”의 속마음은 “돌아오지 않고 이기고 싶어…” http://baseballking.[...] 2015-09-30
[275] 웹사이트 전통의 일전 2000경기째는 거인 승리 스모크가 역전의 결승 3런/상세 https://www.nikkansp[...] 2023-12-31
[276] 뉴스 고바야시 시게루전 나가시마도 극찬한 타부치의 역전 만루홈런 호반 질풍록 제사(16) https://www.sankei.c[...] 2022-03-29
[277] 뉴스 고바야시 시게루전 등번호「40」의 루키 등판, 고라쿠엔은 놀랐다 호반 질풍록 제사(18) https://www.sankei.c[...] 2022-03-31
[278] 뉴스 고바야시 시게루전 에나츠를 화나게 한 구단 간부의 말은… 호반 질풍록 제사(20) https://www.sankei.c[...] 2022-04-04
[279] 문서 이때, 오더표 제출 담당을 맡고 있던 오카모토 이사미는, 선발 투수에 “에나츠”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이래도 괜찮습니까?”라고 킨다에게 확인하고 있다.
[280] 문서 호시노는 거인에 대한 반골 정신과 이미 A클래스 진입이 결정되었던 것으로부터 중앙에 볼을 집중했다고 여겨지지만, 딱딱해진 한신 타선은 이것을 칠 수 없었다(자세한 것은 나카타 준의 “신죠군은, 바보가 아니다!”를 참조).
[281] 서적 左腕の誇り 江夏豊自伝 草思社
[282] 뉴스 小林繁伝 最終決戦、暴徒化した阪神ファン 虎番疾風録其の四(21) https://www.sankei.c[...] 2022-04-05
[283] 문서 산케이 신문 기사 내용 요약
[284] 문서 프로야구 경기 관련 설명
[285] 뉴스 197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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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문서 고토 가즈아키 관련 설명
[297] 문서 패시픽 리그 우승팀 관련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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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문서 한신 백화점 관련 설명
[300] 문서 경기 시간 관련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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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웹사이트 プロ野球さらに開幕延期 4月24日めざすも「流動的」 https://www.asahi.co[...] 2020-03-23
[311] 웹사이트 3・21嗅覚異常を訴える/藤浪これまでの経過 https://www.nikkansp[...] 2020-04-23
[312] 웹사이트 コロナ禍の今こそ問われる「プロ野球の真価」 阪神の藤浪は世間から大きな批判を浴びたが https://toyokeizai.n[...] 2020-04-24
[313] 웹사이트 阪神・浜地がコロナ陽性 2軍戦中止、1軍全員が検査実施 https://www.nikkei.c[...] 2020-09-25
[314] 웹사이트 阪神激震 糸原らコロナ感染で異例の計19選手を入れ替え 藤浪ら昇格 https://www.daily.co[...] 2020-09-25
[315] 웹사이트 コロナ騒動の阪神、選手の意識改善が最重要 球団社長が引責辞任 https://www.sankei.c[...] 2020-10-09
[316] 뉴스 阪神、福留らルール違反者は「厳正に対処していく」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0-10-05
[317] 뉴스 規則破り、責任を欠く行動 阪神、今度はコロナ集団感染―プロ野球 https://www.jiji.com[...] 時事通信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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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웹사이트 【阪神】佐藤輝明は「さとうて」表記「こどもまつり」でスコアボードがひらがな掲示 https://www.nikkansp[...]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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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웹사이트 <中・巨>選手名をひらがなで表示するスコアボード(撮影・椎名 航) https://www.sponichi[...] 2023-12-31
[327] 뉴스 【阪神】岡田彰布新監督いきなり出た「アレ」発言「はっきり『優勝します』とかよう言わない」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2-10-16
[328] 웹사이트 《発掘秘話》阪神・岡田彰布監督が「優勝」ではなく「アレ」と言い続けた“納得の理由” https://bunshun.jp/a[...] null
[329] 뉴스 岡田阪神“アレ”はや浸透 テルが岩崎が呼応、ファン「流行語が決まった」「アカン阪神アレしてまう」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22-10-24
[330] 웹사이트 阪神新スローガン、そらAREよ “岡田の考え”反映「まあアレアレって言ってるから(笑)」 https://www.daily.co[...] 2022-12-18
[331] 웹사이트 優勝目前の阪神、飛び交う言葉は「アレ」ばかり……いったいなぜ? https://www.asahi.co[...] 2023-09-13
[332] 웹사이트 阪神の「アレ」、テレビも知事も 苦い歴史「優勝」は禁句 https://www.nikkei.c[...] 2023-09-14
[333] 웹사이트 新語・流行語大賞「アレ(A.R.E.)」英語各文字には意味が…阪神・岡田監督「嫁さんが考えた。すごいなと」 https://hochi.news/a[...] 2023-12-31
[334] 웹사이트 オフィシャルスポンサー制度を初導入 http://hanshintigers[...]
[335] 웹사이트 株式会社ローソンとのオフィシャルスポンサー契約締結に合意 http://hanshintigers[...]
[336] 웹사이트 オフィシャルスポンサー契約の締結について http://hanshintigers[...] 2018-01-29
[337] 웹사이트 オフィシャルスポンサー契約の締結について https://m.hanshintig[...] 2021-12-27
[338] 웹사이트 2018年新ユニフォーム発表 http://hanshintigers[...] 2017-11-25
[339] 문서 2016年までは水曜ナイターでトップ&リレー中継を実施し、全編地上波中継と同じ出演者が担当。
[340] 문서 2014年から2016年までの平日ナイターはトップ&リレー中継で放送し、2014年は地上波中継と同じ出演者が全編担当し、2015年・2016年はトップ中継はTBSテレビのアナウンサー・解説者が東京からのオフチューブで中継し、リレー中継は地上波中継と同じメンバーが担当。
[341] 문서 HUNTER×HUNTER 19巻 第196話「vsハギャ隊」
[342] 문서 ポケットモンスター金銀編 第118話
[343] 문서 ポケットモンスター金銀編 第261話
[344] 뉴스 【動画あり】猛虎復活を! 尼崎の商店街で「日本一早いマジック点灯」 https://www.sankei.c[...] 産経ニュース 2019-03-27
[345] 뉴스 日 NPB 호황, 사상 첫 2500만 관중 돌파 http://www.sportalko[...] 스포탈코리아 2017-10-11
[346] 문서 출처 : 박동희의 야구탐사.
[347] 뉴스 "金在博(김재박) 스카우트 하겠다" 日(일)프로팀들 2千萬(천만)엔 제의…눈독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80-02-29
[348] 문서 지금까지 역전된 게임차에서의 센트럴 리그 최악의 기록은 1996년 요미우리에게 역전된 히로시마의 11.5게임차였다. 그리고 프로 야구 최악의 기록은 1963년 니시테쓰 라이온스에게 역전된 난카이 호크스의 14.5경기차였다.
[349] 문서 2008년 시즌에는 2위였기 때문에 홈구장에서의 경기는 있었지만 당시 고시엔 구장은 공사중인 관계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경기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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