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연
1. 개요
이진연은 전라남도 함평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제9대, 제10대, 제1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영광·함평·장성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으며, 신한민주당 원내 수석부총무, 통일민주당 전라남도 지부장 등을 지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를 주장하며 통일민주당 분열을 반대했다.
| 이름 | 이진연 |
|---|---|
| 출생일 | 1932년 2월 28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남도 함평군 |
| 사망일 | 2009년 1월 12일 (향년 76세) |
| 본관 | 미상 |
| 직업 | 미상 |
| 종교 | 미상 |
| 자녀 | 이상일(아들) |
| 의원 선수 | 3 |
|---|---|
| 의원 대수 | 9·10·12 |
| 정당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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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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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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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출생 -
피터 아이젠먼
피터 아이젠먼은 탈구조주의 건축과 CAD의 선구적인 미국 건축가이자 이론가이며, 뉴욕 5인조의 일원으로서 활동했고, 유럽 유대인 학살 기념관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 디자인 어워드와 울프상을 수상했다. -
1932년 출생 -
박봉식 (정치학자)
박봉식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교육자로, 서울대학교 교수 및 총장, 부산외국어대학교와 금강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 활동, 총선 무소속 출마, 토지매입 알선 사기 사건 연루, 서울대학교 본부 점거 사태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2. 생애
전라남도 함평군 출신이다. 제9대 총선에 신한민주당 공천으로 영광·함평·장성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제10대 총선에 같은 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재선, 제12대 총선에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3선에 성공했다. 당직으로는 신한민주당 원내 수석부총무, 통일민주당 전라남도 지부장, 국회 내무위·건설위 간사 등을 역임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전에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를 강조하며 통일민주당 분열을 반대했다. 77세에 사망했다.
3. 정치 경력
전라남도 함평군 출신이다. 제9대 총선에 신민당 공천으로 영광·함평·장성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제10대 총선에 같은 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제12대 총선에는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3선에 성공했다. 신민당 원내 수석부총무, 통일민주당 전라남도 지부장, 국회 내무위·건설위 간사 등을 역임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전에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를 강조하며 통일민주당 분열을 반대했다. 77세에 사망했다.
4.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71년 | 총선 | 8대 | 국회의원 | 전남 함평군 | 신민당 | 20,868표 (48.09%) | 2위 | 낙선 | |
| 1973년 | 총선 | 9대 | 국회의원 | 전남 영광군·함평군·장성군 | 신민당 | 32,387표 (24.29%) | 2위 | 당선 | 초선 |
| 1978년 | 총선 | 10대 | 국회의원 | 전남 영광군·함평군·장성군 | 신민당 | 37,723표 (26.75%) | 2위 | 당선 | 재선 |
| 1981년 | 총선 | 11대 | 국회의원 | 전남 영광군·함평군·장성군 | 민주한국당 | 26,582표 (19.38%) | 3위 | 낙선 | |
| 1985년 | 총선 | 12대 | 국회의원 | 전남 영광군·함평군·장성군 | 민주한국당 | 33,477표 (23.20%) | 2위 | 당선 | 3선 |
| 1992년 | 총선 | 14대 | 국회의원 | 전남 함평군·영광군 | 통일국민당 | 2,870표 (4.01%) | 4위 | 낙선 |
5. 평가
이진연은 전라남도 함평군 출신으로,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후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신한민주당 원내 수석부총무, 통일민주당 전라남도 지부장, 국회 내무위·건설위 간사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주장하며 통일민주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점은 당시 민주화 세력의 결집을 통해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자 했던 그의 정치적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3선 의원으로서 지역구(영광·함평·장성) 발전에 기여했음에도 중앙 정치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