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가키 노부카타
1. 개요
이타가키 노부카타는 다케다 신겐을 섬긴 가신으로, 가로와 스루가노카미를 역임했다. 그는 신겐의 아버지 다케다 노부토라를 추방하는 데 기여하고, 시나노국 정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다케다 신겐의 24장' 중 한 명으로 불렸다. 스와 군다이로 임명되어 스와 지역을 통치했으며, 외교에서도 활약했다. 말년에는 자만하는 모습을 보였고, 1548년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후손 중에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인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이타가키 노부카타 |
|---|---|
| 일본어 이름 | 板垣 信方 |
| 가명 | 신교(信形) |
| 관위 | 스루가노카미(駿河守) |
| 출생 | 1489년 |
| 사망 | 1548년 3월 23일 |
| 묘소 | 이타가키 신사(나가노현우에다시 시모노조 와카미야 하치만구 부근) 이타가키 산(고치현고치시 아자미노) 조세이지(군마현이세사키시) |
| 씨족 | 가이 겐지다케다 씨 지류 이타가키 씨 |
|---|---|
| 아버지 | 이타가키 노부야스 |
| 형제자매 | 이타가키 노부카타, 무로즈미 토라노리(무로즈미 토라미츠의 양자) |
| 자녀 | 노부카타 사카이 마사미츠 이타가키 노부히로 딸 (이타가키 노부야스의 아내) 딸 (오기하라 도요젠노카미 마사아키의 아내) 딸 (이토 시게사다의 아내) |
| 소속 | 다케다 씨 |
|---|---|
| 주요 전투 | 안코쿠지 전투(1542년) 오다이하라 전투(1547년) 시카 성 포위전(1547년) 우에다하라 전투(1548년) |
| 인물 관련 |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친척 |
|---|
-
이타가키씨 -
이타가키 다이스케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가이자 자유민권 운동가로, 자유당을 창당하여 일본 입헌정치 발전에 기여했으며, 자유민권운동을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보였으나 제국주의적 팽창과의 연관성 등 비판도 있다. -
이타가키씨 -
이타가키 세이시로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 등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전쟁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
다케다 이십사장 -
바바 노부하루
바바 노부하루는 다케다 신겐을 섬긴 무장으로 70번 이상의 전투에서 부상없이 활약하여 불멸의 별칭을 얻었으며, 스와·이나 공략, 가와나카지마 전투, 미카타가하라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고 축성에도 능했으나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사하여 다케다 가문 몰락의 계기가 되었다. -
다케다 이십사장 -
사나다 노부쓰나
사나다 노부쓰나는 센고쿠 시대 다케다 가문을 섬긴 사나다 유키타카의 아들로, 다케다 신겐을 섬기며 공을 세우고 가독을 계승했으나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사했다. -
1489년 출생 -
숙의 나씨 (중종)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는 나주 나씨로, 중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26세에 출산 중 사망하여 경빈 박씨와의 관계 속에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그녀의 묘는 이천시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1489년 출생 -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건축가이자 토목 기사로, 쉴레이만 1세, 셀림 2세, 무라트 3세 세 명의 술탄을 섬기며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와 셀리미예 모스크를 포함한 300개가 넘는 건축물을 설계하여 오스만 건축 양식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2. 생애
이타가키 노부카타의 출생 시기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케다 노부토라를 섬기면서 가로를 역임했고, 관직명은 스루가노카미(駿河守)이다. 1540년(덴분 9) 4월, 다케다 노부토라의 명으로 군대를 이끌고 시나노국 사쿠군 오이 사다타카(大井貞隆)의 우스다성(臼田城)·이리사다성(入沢城) 등을 공격하고, 마에야마성(前山城)에 포진했다는 기록이 처음 나타난다.
1541년 6월 14일, 다케다 신겐이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하자 신겐을 지지하였다. 아마리 도라야스와 함께 료시키(両職)라는 다케다씨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고 전해지지만, 신뢰할 만한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547년 시가성(志賀城) 포위 작전과 간토간레이(関東管領) 우에스기씨(上杉氏)와 싸운 오다이하라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스루가국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사가미국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와 동맹 협상을 할 때 중신으로서 교섭에 참여했다. 특히 삼국동맹에서처럼, 이마가와씨(今川氏)나 혼간지(本願寺)와의 외교 담당으로서도 활약했다.
1548년 2월 14일,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이 무라카미 요시키요에게 패하였을 때 전사하였다.
2.1. 초기 활동과 신겐의 옹립
이타가키 노부카타는 다케다 노부토라를 섬기면서 가로를 역임했다. 관직명은 스루가노카미(駿河守)이다. 1540년(덴분 9) 4월, 노부토라의 명으로 군대를 이끌고 시나노국 사쿠군 오이 사다타카(大井貞隆)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우스다성(臼田城)·이리사다성(入沢城) 등을 공격하고, 마에야마성(前山城)에 포진했다는 기록이 가장 이른 시기의 출현 기록이다.
1541년 6월 14일, 다케다 신겐이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하자, 신겐을 지지하였다. 이때 아마리 도라야스와 함께 료시키(両職)라는 다케다씨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고 전해지지만, 신뢰할만한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542년, 신겐이 시나노국 스와군의 스와 요리시게(諏訪頼重)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다카토 요리쓰구(高遠頼継)를 공격할 때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다. 이 공적으로 신겐을 대신해서 스와군을 대리 통치하는 스와 군다이(諏訪郡代, 군지(郡司))에 임명되었다. 1543년에는 정식으로 스와군 우에하라성(上原城) 성주대리(城代)에 임명되어 스와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와 지배에 신겐의 결정이나 명령없이 독단적인 결정이 많았으므로, 나중에 신겐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다씨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확실하며, 1547년에 시가성(志賀城) 포위작전·간토간레이(関東管領) 우에스기씨(上杉氏)와 싸운 오다이하라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것으로도 잘 드러난다. 또, 스루가국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사가미국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와 동맹협상을 할 때에도 중신으로서 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다케다씨 내에서의 이타가키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특히 삼국동맹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마가와씨(今川氏)나 혼간지(本願寺)와의 외교 담당으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1548년 2월 14일, 다케다 신겐과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싸움을 벌인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신겐이 패하였을 때, 노부카타는 전사하였다. 노부카타가 전사한 이후에는 장남이었던 이타가키 야지로 노부노리(板垣弥次郎信憲)가 이타가키씨를 상속했다.
2.2. 시나노 경략과 스와 군다이 부임
1542년, 다케다 신겐이 시나노국 스와군의 스와 요리시게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다카토 요리쓰구를 공격할 때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다. 이 공으로 신겐을 대신해서 스와군을 대리 통치하는 스와 군다이(군지)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543년에는 정식으로 스와군 우에하라성 성주대리에 임명되어 스와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와 지배에 신겐의 결정이나 명령 없이 독단적인 결정이 많았으므로, 나중에 신겐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다.
2.3. 다케다 가문의 중신
다케다 노부토라를 섬기며 가로를 역임했다. 1541년 6월 14일, 다케다 신겐이 다케다 노부토라를 추방하자 신겐을 지지하였다. 이때 아마리 도라야스와 함께 료시키(両職)라는 다케다씨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고 전해지지만, 신뢰할 만한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542년, 신겐이 시나노국 스와군의 스와 요리시게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다카토 요리쓰구를 공격할 때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다. 이 공으로 신겐을 대신해서 스와군을 대리 통치하는 스와 군다이(諏訪郡代, 군지)에 임명되었다. 1543년에는 정식으로 스와군 우에하라성 성주대리(城代)에 임명되어 스와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와 지배에 신겐의 결정이나 명령 없이 독단적인 결정이 많았으므로, 나중에 신겐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다.
1547년 시가성 포위 작전과 간토간레이 우에스기씨와 싸운 오다이하라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스루가국 이마가와 요시모토, 사가미국 호죠 우지야스와 동맹 협상을 할 때에도 중신으로서 교섭에 참여하여 다케다씨 내에서 이타가키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삼국동맹에서처럼 이마가와씨나 혼간지와의 외교 담당으로도 활약했다.
1548년 2월 14일,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신겐이 패했을 때 전사하였다. 이타가키 노부카타가 전사한 후에는 장남 이타가키 노부노리가 이타가키씨를 상속했다.
2.4. 우에다하라 전투와 죽음
1548년 2월 14일, 다케다 신겐과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싸움을 벌인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신겐이 패했을 때 이타가키 노부카타는 전사하였다. 이 전투에서 노부카타는 승리에 만족하여 군대를 물리고 의식을 치르려 했다. 그러나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군대가 재정비하여 반격을 가했고, 노부카타와 아마리 도라야스를 죽였다. 노부카타가 전사한 이후에는 장남이었던 이타가키 야지로 노부노리(板垣弥次郎信憲)가 이타가키씨를 상속했다.
다케다 신겐은 노부카타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음과 같은 와카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노부카타는 자신의 말표를 "초승달"로 삼았는데, 신겐은 이 와카에서 노부카타를 "달"에 비유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노부카타 역시 죽기 전 다음과 같은 사세구를 남겼다.
3. 문화적 소양
이타가키 노부카타는 문인으로서도 재능을 발휘하였다. 레이제이 다메카즈가 가이국을 방문했을 때 가카이(歌会)를 열고 이를 주도했다. 1547년 7월에는 요쓰쓰지 스에토오가 가이국과 스와군을 차례로 방문했을 때, 우에하라성에서 그를 맞이하여 접대하고 스와다이샤로 안내한 뒤 가카이를 개최했다는 기록이 있다.
4. 가족 관계
이타가키 가문은 가이 겐지 다케다씨의 일족으로, 이타가키 가네노부를 시조로 한다.
4.1. 가계도
이타가키 가문은 가이 겐지 및 다케다씨의 당주였던 다케다 노부요시를 시조로 하며, 이타가키 가네노부를 중시조로 한다.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로, 이타가키 노부카타의 직계 후손(12대손)이다.
노부카타의 가계도는 다음과 같다.
| 관계 | 이름 |
|---|---|
| 아버지 | 이타가키 노부야스 |
| 본인 | 이타가키 노부카타 |
| 아들 | 이타가키 노부노리 |
5. 이타가키 노부카타를 다룬 작품
NHK의 2007년 대하 드라마 풍림화산에서 이타가키는 치바 신이치가 연기했다.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노부카타는 더욱 영웅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젊은 다케다 신겐(하루노부)의 오만함을 제어하려 노력하고, 그가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 종류 | 작품명 | 방영/개봉 연도 | 방송사/제작사 | 배역 |
|---|---|---|---|---|
| 영화 | 바람과 숲과 불(風林火山) | 1969년 | 도호(東宝) | 나카무라 간에몬 |
| TV 드라마 | 천지인 | 1969년 | NHK대하드라마 | 오토모 류타로 |
| TV 드라마 | 다케다 신겐 | 1988년 | NHK 대하드라마 | 스가와라 분타 |
| TV 드라마 | 다케다 신겐 | 1991년 | TBS | 와카바야시 고 |
| TV 드라마 | 바람과 숲과 불 | 1992년 | 니혼 TV | 나츠야기 이사오 |
| TV 드라마 | 바람과 숲과 불 | 2006년 | TV 아사히 | 나츠야기 이사오 |
| TV 드라마 | 바람과 숲과 불 | 2007년 | NHK 대하드라마 | 치바 신이치 |
| 연극 | 바람과 숲과 불 | 2008년 | 치바 신이치 | |
| 연극 | 해가 저물어・YO 메이지자 대합전제 | 2018년 | 나카무라 류스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