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쿠라 가쓰쓰구
1. 개요
이타쿠라 가쓰쓰구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이타쿠라 가쓰사토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문을 상속받았다. 후쿠시마 3만 석 소동과 쌀 소동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가신의 재정적 실책으로 에도 막부로부터 폐문 처분을 받았다. 자녀 없이 사망하여 동생 이타쿠라 가쓰토가 가문을 이었다.
| 씨명 | 이타쿠라 씨 |
|---|---|
|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 출생 | 교호 20년 7월 1일 ( 1735년8월 18일) |
| 사망 | 메이와 2년 3월 26일 ( 1765년5월 15일) |
| 묘소 | 니시오시의 초엔지 |
| 관위 | 종5위내선사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요시무네 → 도쿠가와 이에시게 → 도쿠가와 이에하루 |
| 번 | 무쓰국후쿠시마번 번주 |
| 부모 | 이타쿠라 가쓰사토, 소마 마사타네 딸·진 |
| 형제 | 가쓰쓰구, 가쓰토모, 와타나베 히로쓰나, 이타쿠라 가쓰노부 정실 |
| 배우자 | 교고쿠 다카노리 딸·데쓰코 |
| 자녀 | 이타쿠라 가쓰토모 양녀 |
| 전임자 | 이타쿠라 가쓰사토 |
|---|---|
| 후임자 | 이타쿠라 가쓰토모 |
| 직책 | 후쿠시마번 번주 (이타쿠라 가문) |
| 임기 | 1743년 ~ 17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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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 출생 -
존 애덤스
존 애덤스는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미국 독립 혁명 시기 독립 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독립 후에는 외교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프랑스와의 준전쟁 해결, 해군 창설 등의 업적을 남겼다. -
1735년 출생 -
심이지 (1735년)
심이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조판서, 판중추부사, 우의정을 역임했으며, 영조와 정조 시대에 사간원 헌납, 홍문관 부수찬, 암행어사 등을 거쳐 청나라 사행 중 사망 후 우의정으로 추증되었다. -
이타쿠라씨 -
후쿠시마성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성은 1413년 다테 모치무네가 축성한 다이부쓰성을 기원으로, 스기노메성으로 불리다 후쿠시마성으로 개칭되었으며, 에도 시대에는 번주가 교체되고 메이지 유신 이후 폐성되어 현재는 현청사와 공원이 조성된 터에서 다테씨 관련 유물이 발굴된다. -
이타쿠라씨 -
이타쿠라 시게마사
이타쿠라 시게마사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오사카 전투 등에 참전했고, 미코시바 번의 번주가 되었으나 시마바라의 난 진압 중 전사했다. -
1765년 사망 -
프랑스의 루이 (1729년)
프랑스의 루이(1729년)는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아들이자 루이 16세의 아버지이며, 군사 기술에 관심을 갖고 두 번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으며, 결핵으로 사망했다. -
1765년 사망 -
응우옌푹코앗
응우옌 푹 코앗은 베트남 응우옌 주의 제8대 군주로, 1744년 칭왕을 선포하고 독립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캄보디아 내란 개입과 참파 속국화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사치와 과세로 서산당의 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 생애
이타쿠라 가쓰쓰구의 장남으로 태어나, 1743년(간포 3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문을 상속받았다. 1745년(엔교 2년) 후쿠시마 3만 석 소동이라고 불리는 잇키가 발생했고, 이후에도 쌀 소동 등으로 고통받았다. 1764년(메이와 원년)에는 성대 가로인 마쓰바라 가쓰마사에게 재정상의 실책이 있어 에도 막부로부터 폐문 처분을 받았다. 1765년(메이와 2년)에 사망했으며, 아들이 없어 동생인 이타쿠라 가쓰토가 뒤를 이었다.
2.1. 가문 상속과 번주 취임
이타쿠라 가쓰쓰구는 이타쿠라 가쓰쓰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43년(간포 3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문을 상속받아 번주가 되었다. 1745년(엔쿄 2년), 후쿠시마 3만 석 소동이라고 불리는 잇키가 발생하였다. 그 후에도 쌀 소동 등으로 고통받았다. 1764년(메이와 원년)에는 성대 가로인 마쓰바라 가쓰마사에게 재정상의 실책이 있어, 에도 막부로부터 폐문 처분을 받았다. 1765년(메이와 2년)에 사망했으며, 아들이 없어 동생인 이타쿠라 가쓰토가 뒤를 이었다.
2.2. 후쿠시마 3만 석 소동과 민란
엔교 2년(1745년) 후쿠시마 3만 석 소동이라고 불리는 잇키가 발생했다. 그 후에도 쌀 소동 등으로 고통받았다. 메이와 원년(1764년)에는 성대 가로인 마쓰바라 가쓰마사에게 재정상의 실책이 있어, 에도 막부로부터 폐문 처분을 받았다.
2.3. 가로의 실책과 막부의 처벌
엔쿄 2년(1745년) 후쿠시마번에서 '후쿠시마 3만 석 소동'이라고 불리는 잇키가 발생했다. 이후 쌀 소동 등으로 고통받았다. 메이와 원년(1764년)에는 성대 가로인 마쓰바라 가쓰마사에게 재정상의 실책이 있어, 에도 막부로부터 폐문 처분을 받았다.
2.4. 사망과 가문의 계승
간포 3년(1743년) 아버지 이타쿠라 가쓰쓰구가 사망하면서 가문을 상속받았다. 엔교 2년(1745년) 후쿠시마번에서 '후쿠시마 3만 석 소동'이라 불리는 잇키가 발생하였다. 그 후에도 쌀 소동 등으로 고통받았다. 메이와 원년(1764년) 성대 가로(가로)였던 마쓰바라 가쓰마사에게 재정상의 실책이 있어, 에도 막부로부터 폐문 처분을 받았다. 메이와 2년(1765년) 사망하였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인 이타쿠라 가쓰토가 가문을 이었다.
3. 가계
이타쿠라 가쓰사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소마 마사타네의 딸 진이다. 정실은 교고쿠 다카노리의 딸 데쓰코이다.
3.1. 부모
* 아버지: 이타쿠라 가쓰사토
* 어머니: 진 - 소마 마사타네의 딸
3.3. 자녀
| 구분 | 이름 | 비고 |
|---|---|---|
| 정실 | 데쓰코 | 교고쿠 다카노리의 딸 |
| 자녀 | 이치야나기 스에히데 정실 | 이타쿠라 가쓰토의 양녀, 생모는 데쓰코(정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