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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장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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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헌장성황후는 이키레스 씨로, 쿠빌라이의 손자 카이샨의 첩으로 명종 쿠투크투 카안의 어머니이다. 카이샨 사후, 황위 계승 과정에서 코실라가 암살당하고 토크 테무르가 즉위한 후 인헌장성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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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장성황후
기본 정보
아야시리 (阿牙失里)
칭호선자혜성황후 (宣慈惠聖皇后)
인헌장성황후 (仁獻章聖皇后)
시호인헌장성황후 (仁獻章聖皇后)
출생?
사망1307년 (지원(至元) 44년)
아버지추밀사 칭기스 (칭기스/칭기즈, 칭기, 陳只/칭치)
남편원나라 무종 카이샨 퀼뤼그 칸
자녀원 명종 쿠살라
생애
칸 즉위 전원나라 무종 카이샨이 즉위하기 전에 아야시리(阿牙失里)는 칭기스(陳只)의 딸로 카이샨에게 시집갔다. 카이샨이 즉위한 후, 1307년(지원 44년) 6월에 훙서(薨逝)하였다.
카이샨이 쿠빌라이 칸의 손자였으므로, 아야시리는 쿠빌라이 칸의 증손부(曾孫婦)가 된다.
칸 즉위 후카이샨이 훙서한 후, 아야시리는 카이샨의 조카이자 동생인 아유르바르와다에 의해 시호가 추증되었다. 아유르바르와다는 아야시리를 선자혜성황후(宣慈惠聖皇后)로 추증하였으며, 태묘에 부묘(祔廟)되었다.
영종 즉위 후, 1321년(지원 8년) 4월, "인헌장성황후(仁獻章聖皇后)"로 다시 추시(追諡)되었다.
가계
조부불합 (不合)
아버지추밀사 칭기스 (칭기스/칭기즈, 칭기, 陳只/칭치)
어머니이름 미상
배우자원나라 무종 카이샨 퀼뤼그 칸
자녀원 명종 쿠살라

2. 생애

이키레스부 출신으로 네울린(공주)의 딸로 태어났다.[1] 카이샨에게는 징게라는 콩기라트부 출신의 정실 부인이 있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다. 카이샨의 아들은 인헌장성황후가 낳은 코실라(후의 명종 쿠툭투 카안)와 탕구트 씨가 낳은 토크 테무르(후의 문종 자야가투 카안) 뿐이었다.

카이샨은 즉위하면서 동생 아유르바르와다를 황태자로 삼고, 아유르바르와다 사후에는 카이샨의 아들을 황태자로 삼는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다기는 콩기라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콩기라트 출신이 아닌 인헌장성황후를 비롯한 이들을 카안으로 옹립하는 것을 꺼려 이 약속을 무시하였다. 결국 아유르바르와다의 황태자로는 시데바라(후의 영종 게겐 카안)가 지명되었다.[1]

다기는 코실라를 암살하려 했지만,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로 망명했다. 예순 테무르 카안(태정제) 사후 천력의 난이 발발하자, 코실라는 1329년에 쿠툭투 카안으로 즉위했다.[1]

같은 해, 인헌장성황후로 추시되었지만, 코실라는 엘 테무르 등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후 토크 테무르가 즉위했다.[2][3]

2. 1. 출신

이키레스부 출신으로 네울린(Neülin > 奴兀倫/núwùlún) 공주의 딸로 태어났다.[1]

2. 2. 카이샨과의 관계

카이샨에게는 징게라는 콩기라트부 출신의 정실 부인이 있었지만, 징게에게서는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카이샨의 아들은 인헌장성황후가 낳은 코실라(후의 명종 쿠툭투 카안)와 탕구트 씨가 낳은 토크 테무르(후의 문종 자야가투 카안) 뿐이었다.

카이샨이 카안으로 즉위했을 때, 동생인 아유르바르와다와 "아유르바르와다를 황태자(차기 카안)로 하는 대신, 아유르바르와다 다음은 카이샨의 아들(코실라, 토크 테무르)을 황태자(차기 카안)로 한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카이샨과 아유르바르와다의 어머니이자 막대한 권세를 얻었던 다기의 의향에 의해 무시되었다. 이는 다기가 콩기라트 출신이며, 비 콩기라트 출신 여성(인헌장성황후, 탕구트 씨)을 어머니로 둔 인물을 카안으로 옹립하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아유르바르와다의 황태자로 지명된 것은 아유르바르와다와 콩기라트 출신 비빈 라트나시리 사이에 태어난 시데바라(후의 영종 게겐 카안)였다.

다기는 자신의 계획에 눈엣가시였던 코실라를 암살하려 했지만, 간신히 도망친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로 망명하게 되었다. 예순 테무르 카안(태정제)의 죽음을 거쳐 천력의 난이 발발하자, 이를 호기로 본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의 협력을 얻어 대원 울루스로 귀환하여, 천력 2년(1329년)에 쿠툭투 카안으로 즉위했다.[1]

2. 3. 황위 계승 분쟁

카이샨에게는 징게라는 콩기라트부 출신의 정실 부인이 있었지만, 징게에게서는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카이샨의 아들은 이키레스 씨가 낳은 코실라(후의 명종 쿠툭투 카안)와 탕구트 씨가 낳은 토크 테무르(후의 문종 자야가투 카안) 뿐이었다.[1]

카이샨이 카안으로 즉위했을 때, 동생인 아유르바르와다와 "아유르바르와다를 황태자(차기 카안)로 하는 대신, 아유르바르와다 다음은 카이샨의 아들(코실라, 토크 테무르)을 황태자(차기 카안)로 한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카이샨과 아유르바르와다의 어머니이자 막대한 권세를 얻었던 다기에 의해 무시되었다. 다기는 콩기라트 출신이며, 콩기라트 출신이 아닌 여성(이키레스 씨, 탕구트 씨)을 어머니로 둔 인물을 카안으로 옹립하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문에 아유르바르와다의 황태자로 지명된 것은 아유르바르와다와 콩기라트 출신 비빈 라트나시리 사이에 태어난 시데바라(후의 영종 게겐 카안)였다.[1]

다기는 자신의 계획에 걸림돌이었던 코실라를 암살하려 했지만, 코실라는 간신히 도망쳐 차카타이 울루스로 망명했다. 예순 테무르 카안(태정제)이 죽고 천력의 난이 발발하자,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의 협력을 얻어 대원 울루스로 귀환, 천력 2년(1329년)에 쿠툭투 카안으로 즉위했다.[1]

같은 해, 이키레스 씨는 '''인헌장성황후'''로 추시되었지만, 코실라는 엘 테무르 등에 의해 즉위 직후 암살되었다. 그 후, 엘 테무르 등의 후원 아래 코실라의 이복 동생이자 탕구트 씨의 아들인 토크 테무르가 즉위했다.[2][3]

2. 4. 코실라의 망명과 즉위

카이샨의 정실 부인인 징게는 콩기라트부 출신이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다. 카이샨의 아들은 이키레스 씨가 낳은 코실라(후의 명종 쿠툭투 카안)와 탕구트 씨가 낳은 토크 테무르(후의 문종 자야가투 카안) 뿐이었다.[1]

카이샨은 즉위하면서 동생인 아유르바르와다를 황태자(차기 카안)로 삼고, 아유르바르와다 사후에는 카이샨의 아들(코실라, 토크 테무르)을 황태자로 삼는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카이샨과 아유르바르와다의 어머니이자 막대한 권세를 누리던 다기는 이 약속을 무시했다. 다기는 콩기라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콩기라트 출신이 아닌 여성(이키레스 씨, 탕구트 씨)을 어머니로 둔 인물을 카안으로 옹립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아유르바르와다의 황태자로는 아유르바르와다와 콩기라트 출신 비빈 라트나시리 사이에서 태어난 시데바라(후의 영종 게겐 카안)가 지명되었다.[1]

다기는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코실라를 암살하려 했지만, 코실라는 가까스로 차카타이 울루스로 망명했다. 예순 테무르 카안(태정제)이 사망하고 천력의 난이 일어나자,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의 협력을 얻어 대원 울루스로 돌아와 1329년에 쿠툭투 카안으로 즉위했다.[1]

같은 해, 이키레스 씨는 '''인헌장성황후'''로 추시되었지만, 코실라는 엘 테무르 등에게 즉위 직후 암살당했다. 이후 엘 테무르 등의 후원으로 코실라의 이복동생이자 탕구트 씨의 아들인 토크 테무르가 즉위했다.[2][3]

2. 5. 죽음

카이샨은 아유르바르와다와의 약속과 달리, 그의 어머니 다기의 의향에 따라 코실라를 황태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다기는 콩기라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콩기라트 출신이 아닌 여성을 어머니로 둔 인물을 카안으로 옹립하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1]

다기는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코실라를 암살하려 했지만,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로 망명했다. 예순 테무르 카안(태정제) 사후 천력의 난이 발발하자, 코실라는 차카타이 울루스의 협력을 얻어 귀환하여 1329년에 쿠툭투 카안으로 즉위했다.[1]

같은 해, 이키레스 씨는 '''인헌장성황후'''로 추시되었지만, 코실라는 엘 테무르 등에 의해 즉위 직후 암살되었다. 그 후, 엘 테무르 등의 후원으로 코실라의 이복 동생이자 탕구트 씨의 아들인 토크 테무르가 즉위했다.[2][3]

참조

[1] 서적 杉山 1995
[2] 서적 元史
[3] 서적 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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