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891년)
1. 개요
임정은 891년 당 소종 시기에 태어났으며, 오월의 재상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명주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오월의 통치자 전유에게 발탁되어 전원관의 막료로 활동했다. 전원관 밑에서 정직하고 강직한 인품과 뛰어난 기억력을 보였으며, 학문에도 정진하여 서적 수집과 저술 활동을 했다. 937년 전원관이 오월 국왕에 즉위한 후 재상에 올랐으며, 940년 민나라 내전에 대한 반대 등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941년 전원관 사후에도 재상으로 남았으며, 944년 사망하여 정헌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오강응용집》 20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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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의 정치인 -
전류 (오대)
전류는 당나라 말기 혼란기에 군공을 세워 오월국을 건국하고 경제적 번영과 독자적인 지역 문화 발전을 이끈 오월국의 창건자이다. -
891년 출생 -
고종회
고종회는 오대 십국 시대 형남 절도사로, 아버지 고계흥의 뒤를 이어 형남 절도사가 되었으며 남평왕에 봉해졌고, 주변 국가에 신하를 자처하며 평화를 유지하고 형남을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다 사망했다. -
944년 사망 -
최언위
최언위는 신라 말과 고려 초의 문신으로, 당나라 유학 후 과거에 급제하고 신라와 고려에서 관직을 지냈으며, 고려 태조를 섬기며 평장사에 이르고 944년에 사망했다. -
944년 사망 -
왕연희
왕연희는 오대십국 시대 민나라의 제2대 군주이자 황제로, 조카 왕계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으나 재위 기간 동안 폭정을 일삼다 측근에 의해 살해당했다.
2. 생애
임정은 891년 당나라 소종 연간에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임무은(林無隱)은 푸젠성 푸저우시 출신 시인으로, 닝보시 자사 황성(黃晟)의 지원을 받았다.
임정은 전원관 밑에서 봉사하면서 정직하고 강직한 인품과 뛰어난 기억력을 보였다. 구양순과 우세남의 서체를 따라 글씨를 잘 썼으며, 중년에 학문에 정진하여 독서와 책 수집에 힘썼고, 책을 베끼고 빠진 부분을 채우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932년, 전류가 사망하고 전원관이 오월을 통치하면서, 임정은 장서기(掌書記) 겸 진해군 절도판관으로 임명되었다. 937년, 전원관이 오월 국왕에 즉위한 후에는 장교령(掌敎令)이 되었다. 이후 재상에 오른 임정은 전원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며 직언했다.
940년, 전원관이 민나라 내전에 개입하려 하자, 임정은 이를 반대했다. 전원관이 군대를 파견했지만, 임정의 예측대로 오월군은 실패했고, 이 일로 사람들은 임정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941년 전원관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전홍좌가 왕위를 계승한 후에도, 임정은 승상 직을 유지했다. 944년 임정은 사망했고, 정헌(貞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오강응용집(吳江應用集)》 20권이 있다.
2.1. 배경
임정은 891년 당나라 소종 연간에 태어났다. 아버지 임무은(林無隱)은 푸젠성 푸저우시 출신 시인으로, 저장성 닝보시에서 살았다. 당시 닝보시 자사 황성(黃晟)은 지식인들을 예우했고, 임무은은 그의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임정은 닝보시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2.2. 전류 휘하에서의 초기 활동
임정은 전원관 밑에서 봉사하면서 정직하고 강직한 인품을 보였으며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구양순과 우세남의 서체를 따라 글씨를 잘 썼다. 그는 중년에 학문에 정진하여 독서뿐만 아니라 책을 수집하는 데에도 힘썼다. 그는 또한 책을 베끼고 빠진 부분을 채우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2.3. 전원관 휘하에서의 사관
932년, 전류가 사망하고 전원관이 오월을 통치하면서, 임정은 장서기(掌書記) 겸 진해군 절도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임정은 성품이 정직하고 공정하였으며, 뛰어난 기억력을 보였다. 그는 구양순과 우세남의 서법을 계승한 뛰어난 서예 실력을 보였다. 중년에도 학문에 정진하여 독서와 서적 수집에 힘썼으며, 서적을 복사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데도 시간을 할애했다.
937년, 전원관이 오월 국왕에 즉위한 후, 임정은 장교령(掌敎令)이 되었다. 이후 재상에 오른 임정은 어려운 상의도 회피하지 않고 전원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며 직언했다.
940년, 전원관이 민나라 내전에 개입하려 하자, 임정은 이를 반대했다. 비록 전원관이 군대를 파견했지만, 임정의 예측대로 오월군은 실패했다. 이 일로 사람들은 임정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