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광
1. 개요
정령광은 양 무제의 후궁으로, 간문제의 생모이다. 번성에서 태어나 14세에 무제와 결혼하여 첩이 되었으며, 무제가 거병할 당시에는 옹주에 머물렀다. 502년에 귀빈으로 봉해졌고, 불교 신자인 무제를 위해 채식을 권장했다. 527년에 사망하여 목(穆)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간문제 즉위 후 목태후로 추존되었다. 소통, 소강, 소속 등 세 아들을 낳았다.
| 이름 | 정령광 (丁令光) |
|---|---|
| 칭호 | 목황태후 (穆皇太后) |
| 출생 | 485년 |
|---|---|
| 출생지 | 남제 초군 (현재의 안후이성 보저우시) |
| 사망 | 527년 1월 3일 (41세) |
| 사망지 | 양나라 |
| 시호 | 목비 (穆妃), 목황태후 (穆皇太后) |
| 배우자 | 양 무제 소연 |
|---|---|
| 자녀 | 소통 (昭明帝), 소강 (梁簡文帝), 소서 (蕭續, 廬陵威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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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남조)의 후궁 -
완령영
남제 시안왕의 희첩이었다가 소보권의 후궁, 양 무제의 후궁을 거쳐 양 원제를 낳은 완령영은 뛰어난 미모와 지략으로 여러 왕조 황제들의 총애를 받은 여인이다. -
485년 출생 -
쿠마라 다투세나
쿠마라 다투세나는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군주 모갈라나 1세의 서자로 태어나 왕위에 올랐으며, 서자인 키티세나를 왕태자로 책봉했으나 홍역으로 사망했다. -
485년 출생 -
테우데리쿠스 1세
테우데리쿠스 1세는 6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클로비스 1세의 아들이며 랭스를 수도로 아우스트라시아 지역을 통치하며 부르군트족, 훈족과의 전투와 주변 국가와의 외교를 통해 프랑크 왕국의 세력을 확장했고, 533년 또는 534년에 사망했다. -
제 (남조) 사람 -
치휘
치휘는 남조 송나라 태자 치엽의 딸로, 소연과 혼인하여 양나라 황후로 추존되었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했지만 질투심이 많았고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제 (남조) 사람 -
왕정풍
왕정풍은 남북조 시대 유송의 황후로, 회양왕비에서 명제의 황후가 되었고, 명제 사후 황태후가 되었으나 유송 멸망 후 여음왕태비로 생을 마감한 후 명공황후로 추증되었다.
2. 생애
정령광은 번성에서 태어났다. 498년 14세의 나이로 당시 옹주자사였던 소연과 결혼했다. 소연이 거병할 당시에는 출산 때문에 옹주에 머물렀다가 501년에 건강으로 들어왔으며, 이듬해인 502년 8월에 귀빈으로 봉해져 현양전(顯陽殿)에 머물렀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소연을 위해 채식 식단을 권했으며, 수계일에는 궁전 앞에 감로가 내렸다고 전해진다.
526년 음력 11월 15일(527년 1월 3일)에 향년 42세로 죽었고, 소연이 목황비(穆皇妃)로 추시했다. 이후 아들인 간문제가 즉위한 뒤에 목황태후(穆皇太后)로 추숭했다.
2.1. 출생과 혼인
498년 14세의 나이로 당시 옹주자사(雍州刺史)였던 소연과 결혼했다. 정령광은 번성에서 평민 집안의 딸로 태어났으며, 태어났을 때 방에 빛이 가득했다는 전설이 있다. 같은 고향 사람과 약혼했으나, 14세 때 물가에서 일하던 중 옹주 자사였던 소연의 눈에 띄어 금반지를 받고 첩이 되었다. 소연의 본처 희휘는 정령광에게 엄격하게 대하며 노비처럼 부렸지만, 정령광은 성실하게 일했다. 소연이 거병할 당시에는 출산 때문에 옹주에 머물렀다가 501년에 건강으로 들어왔다.
2.2. 귀빈 책봉과 궁중 생활
498년 14세의 나이로 당시 옹주자사(雍州刺史)였던 무제와 결혼했다. 무제가 거병할 당시에는 출산 때문에 옹주에 머물렀다가 501년에 건강으로 들어왔으며, 이듬해인 502년 8월에 귀빈으로 봉해져 현양전(顯陽殿)에 머물렀다. 같은 고향 사람과 약혼했으나, 14세 때 물가에서 일하던 중, 옹주 자사 소연에게 눈에 띄어 금반지를 받고 첩이 되었다. 소연의 본처 희휘는 정령광에게 엄격하게 대하며 노비처럼 부렸지만, 정령광은 성실하게 일했다.
불교를 독실하게 믿는 소연을 위해 채식 식단을 권했으며, 수계일에는 궁전 앞에 감로가 내렸다고 전해진다. 정령광은 화려한 장식을 싫어했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고 낮은 지위의 후궁들의 존경을 받았다.
2.3. 죽음과 추존
498년에 14세의 나이로 당시 옹주자사(雍州刺史)였던 무제와 결혼하였다. 무제가 거병할 당시에는 출산 때문에 옹주에 머물렀다가 501년에 건강으로 들어왔으며, 이듬해인 502년 8월에 귀빈으로 봉해져 현양전(顯陽殿)에 머물렀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무제를 위해 소식으로만 반찬을 올렸으며, 수계를 받던 날 궁전 앞에 감로가 내렸다고 한다.
526년 음력 11월 15일에 향년 42세로 죽었고, 무제가 목황비(穆皇妃)로 추시했다. 이후 아들인 간문제가 즉위한 뒤에 목황태후(穆皇太后)로 추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