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 팔영루
1. 개요
제천 청풍 팔영루는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 역할을 하던 누문으로, 충청북도 제천시에 위치해 있다. 고종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에서 유래하여 팔영루로 불리게 되었다.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 칭했던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건물을 지었으며,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 복원되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2.2m 높이의 석축 기단을 쌓고 4각 문을 내고, 문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물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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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제천 청풍 팔영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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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Jecheon Cheongpung Palyeongnu |
| 위치 |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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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일 | 1976년 12월 21일 |
| 시대 | 조선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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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작품 -
상브르-뫼즈 연대 행진곡
상브르-뫼즈 연대 행진곡은 로베르 플랑케트가 작곡하고 알프레드 세자노가 가사를 쓴 행진곡으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 후 프랑스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제작되어 여러 국가에서 군가나 군사 훈련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
1870년 작품 -
예천 초간정
초간정은 권문해가 심신 수양을 위해 1582년에 건립한 정자이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소실된 후 1870년에 재건되었고,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다. -
제천시의 문화유산 -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찾던 성지로, 황사영 백서 집필 토굴, 한국 최초 신학교, 최양업 신부 묘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와 신앙의 자유, 한국 천주교 성립과 발전의 역사적 의미를 보여준다. -
제천시의 문화유산 -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높이 13m의 화강암 마애불로서, 부드러운 신체 표현과 힘있는 얼굴 선이 특징이며, 과거 목조 건축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멍이 있고, 덕주 공주 창건 설화가 전해지나 조성 시기와 차이가 있으며, 고려 초기 지방 호족 세력의 불교 번성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
충청북도의 누정 -
강선대
강선대는 고양시 대화동 금강 기슭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신선이 놀던 곳이라는 전설과 조선 시대 문인들의 시가 전해지며, 여씨 문중에서 건립한 6각정이 있다. -
충청북도의 누정 -
여의정
여의정은 1935년 밀양 박씨 종중이 솔밭 안에 지은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로, 일제강점기 민족의식 고취와 문중 결속력 강화 목적으로 건립되어 현재는 지역 문화 공간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된다.
2. 역사
제천 청풍 팔영루는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다. 조선 고종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해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 칭했던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고,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2.1. 건립과 중수
조선 고종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해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 칭했던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종 7년(1870)에 세워진 '팔영루사적비'에 따르면,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중건하고 현덕문이라 칭한 것을 고종 7년에 부사 이직현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다. 그 후 부사 민치상이 청풍팔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읍리 286번지의 청풍 북쪽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2. 팔영루 명칭 유래
고종(재위 1863∼1907)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해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 칭했던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이후 민치상이 청풍팔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다.
2.3. 이전 및 복원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해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고 한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해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졌다.
원래는 읍리 286번지의 청풍 북쪽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이전 및 복원되었다. 2.2m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4각의 문을 내고 문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락집을 세웠다.
3. 건축 양식
팔영루는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 역할을 하던 누문이다. 고종 (재위 1863~1907)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해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 칭했던 자리에 고종 7년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2.2m 높이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사각 문을 냈으며, 문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다락집을 세웠다.
3.1.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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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루는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 역할을 하던 누문이다. 고종 (재위 1863~1907) 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해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 칭했던 자리에 고종 7년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2.2m 높이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사각 문을 냈으며, 문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다락집을 세웠다.
3.2. 건물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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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으로, 고종 때(재위 1863∼1907)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고 한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2.2m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4각의 문을 내고 문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다락집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