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이손초 전투
1. 개요
제1차 이손초 전투는 1915년 5월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한 직후, 이탈리아군이 류블라나 점령을 목표로 율리안알프스산맥과 소차강 일대에서 벌인 전투이다. 이탈리아군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인 전술과 오스트리아군의 견고한 방어에 막혀 제한적인 영토만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5군과 이탈리아 제2군, 제3군이 참전했으며, 이후 이손초 강 유역에서는 여러 차례 전투가 더 이어졌다.
| 시기 | 1915년 6월 23일 ~ 1915년 7월 7일 |
|---|---|
| 장소 | 이손초 강, 슬로베니아 북서부, 크른 산 ~ 트리에스테 만 |
| 결과 | 교착 상태, 이탈리아의 전략적 목표 달성 실패 |
| 교전국 1 | 이탈리아 왕국 |
|---|---|
| 교전국 2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 이탈리아 왕국 | 루이지 카도르나 |
|---|---|
| 아오스타 공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 |
| 피에트로 프루고니 |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스베토자르 보로에비치 폰 보이나 |
| 게자 루카치히 폰 소모르자 | |
| 귀도 노바크 폰 아리엔티 | |
| 이탈리아 왕국 | 225,000명 (18개 사단, 252개 대대, 111개 기병대, 700문 포) |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115,000명 (8개 사단, 84개 대대, 13개 기병대, 356문 포) |
| 이탈리아 왕국 | 14,947명 |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9,950명 |
| 힐 383 전투 제1차 이손초 전투 콜 바손 전투 제2차 이손초 전투 포드고라 전투 제3차 이손초 전투 제4차 이손초 전투 제5차 이손초 전투 아시아고 공세 (몬테 첸지오 전투) 고리치아 전투 (제6차 이손초) (도베르도 전투) 제7차 이손초 전투 제8차 이손초 전투 제9차 이손초 전투 하얀 금요일 제10차 이손초 전투 플론다르 전투 오르티가라 산 전투 제11차 이손초 전투 카포레토 전투 (제12차 이손초) 포주올로 전투 제1차 피아베 강 전투 제1차 몬테 그라파 전투 제2차 피아베 강 전투 (콜 모스킨 점령) 제2차 몬테 그라파 전투 산 마테오 전투 도스 알토 전투 제3차 몬테 그라파 전투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백색 전쟁 (1915–1918) 아다멜로 전투 몬테 파수비오 전투 센티넬라 고개 전투 마르몰라다 전투 라가주오이 광산전 콜 디 라나 전투 토파네 전투 몬테 크리스탈로 전투 몬테 피아나 전투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 전투 몬테 파테르노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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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7월 -
제2차 이손초 전투
제2차 이손초 전투는 제1차 전투 실패 후 이탈리아군이 오스트리아군 전선에 가한 공격으로, 전쟁 물자 부족으로 이탈리아군의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3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막대한 사상자를 내며 종료되었다. -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
제3차 이손초 전투
제3차 이손초 전투는 1915년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에 벌어진 전투로, 이탈리아군이 포병 전력을 강화하여 공세를 재개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저항에 막혀 소득 없이 끝났다. -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
제2차 이손초 전투
제2차 이손초 전투는 제1차 전투 실패 후 이탈리아군이 오스트리아군 전선에 가한 공격으로, 전쟁 물자 부족으로 이탈리아군의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3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막대한 사상자를 내며 종료되었다. -
1915년 이탈리아 -
런던 조약 (1915년)
1915년 런던 조약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이 이탈리아의 참전을 대가로 트렌티노, 남티롤, 달마티아 일부 등을 포함한 영토적 이익과 아프리카에서의 보상, 금전적 지원을 이탈리아에 약속한 비밀 조약이었으나, 이탈리아는 약속된 모든 영토를 얻지 못해 불만을 샀다. -
1915년 이탈리아 -
제3차 이손초 전투
제3차 이손초 전투는 1915년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에 벌어진 전투로, 이탈리아군이 포병 전력을 강화하여 공세를 재개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저항에 막혀 소득 없이 끝났다.
2. 전투의 전개
이탈리아 왕국은 1915년 5월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한 직후, 오스트리아군이 양면전선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틈타 빠르게 국경지대를 점령하고자 했다. 이탈리아군 총사령관 루이지 카도르나는 류블라나를 신속히 점령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탈리아군의 목표는 율리안알프스산맥과 소차강에 위치한 적군의 방어진지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은 2대 1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공세에 실패했는데, 이는 사령관 루이지 카도르나가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시대착오적인 정면 돌격 전술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미숙한 보병의 공격은 불충분한 포격 지원과 함께 실시되었다. 반면 오스트리아군은 철조망과 잘 구축된 방어진지를 고지대에 구축하여 이탈리아군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전투 초기에 크룬 산(이탈리아명 몬테 네로)의 일부, 몬테 콜로라트, 플레초의 고지대를 점령하는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톨미노와 이손초의 방어진지에서 포화를 퍼붓는 오스트리아군을 퇴각시키지 못했다. 가장 격렬한 교전은 고리치아 요새를 두고 벌어졌는데, 고리치아는 험준한 강과 산맥 사이의 도시였고, 오스트리아군은 오슬라비아와 포드고라에 보루를 건설해 놓았다. 고리치아 전투는 건물 블록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맞붙고 포병 지원을 받는 전형적인 시가전 양상이었다. 이탈리아군의 레 여단과 카살라 여단은 교외까지 도달했지만 더 진격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이들은 크라스 평원의 아드그라도와 레디푸질라에 몇몇 교두보를 만들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오스트리아군의 레디푸질라를 탈환한 제5산악여단과 제338고지를 탈환한 제1산악여단을 각각 통솔하던 게다 루카치치 소장과 노바크 폰 아리엔티 소장은 서로 반목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7월이 되자 스베토자르 보로에비치 5군 사령관은 증원된 2개 사단을 투입하여 전선을 돌파하려는 이탈리아군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공세가 종료되고, 이탈리아군이 획득한 영토는 미미했다. 북부에서는 보베츠의 고지대(카닌 산)를 점령했고, 서쪽에서는 크라스 평원의 서쪽 능선(몬팔코네, 폴리아노 레디풀리아)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후 이탈리아군은 한번 더 공세를 가해 제2차 이손초 전투를 발발시킨다.
3. 교전 병력
제1차 이손초 전투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 양측이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투입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5군을 중심으로, 이탈리아는 제2군과 제3군을 주축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양측의 구체적인 편성은 다음과 같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이탈리아 왕국 |
| 제5군 | 제2군, 제3군 |
| 제7, 16, 15군단 | 제7, 10, 11, 6, 2, 4군단 |
| 제1, 17, 18, 20, 50, 57, 58, 61, 93 보병사단 | 제3, 4, 7, 8, 11, 12, 13, 14, 19, 20, 21, 22, 23, 27, 28, 29, 30, 32, 33 보병사단 |
| 제187, 39 헝가리 보병여단, 제81 헝가리 보병연대 | 베르사엘리 경보병사단, A, B 알피니 부대, 제1, 2, 3 기병사단 |
| 제1, 2, 3, 4, 5, 6, 7, 8, 10, 12, 13, 14, 15, 16 산악여단 | |
| 예비대: 제93보병사단 | 예비대: 제16군단, 제29보병사단의 절반 |
| 지휘소: 코스탄녜비차(제7군단), 도른베르크(제16군단), 크네차(제15군단) | 지휘관: 피에트로 프루고니(제2군),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제3군), 지휘소: 우디네(제2군), 체르비가노(제3군) |
이탈리아군은 수적으로 2대 1의 우세를 보였지만, 오스트리아군이 유리한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3.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 |||||||||||||||||||||||
|---|---|---|---|---|---|---|---|---|---|---|---|---|---|---|---|---|---|---|---|---|---|---|---|
| 제5군 | |||||||||||||||||||||||
| 제7군단 | 제16군단 | 제15군단 | |||||||||||||||||||||
| 제1보병사단 | 제17보병사단 | 제187보병여단 | 제39 헝가리 보병여단 | 제10산악여단 | 제8산악여단 | 제57보병사단 | 제18보병사단 | 제1산악여단 | 제2산악여단 | 제3산악여단 | 제61보병사단 | 제50보병사단 | 제12산악여단 | 제13산악여단 | 제16산악여단 | 제20보병사단 | 제5산악여단 | 제7산악여단 | 제14산악여단 | 제58보병사단 | 제81 헝가리 보병연대 | 제4산악여단 | 제15산악여단 |
| 예비대 | |||||||||||||||||||||||
| 제93보병사단 | |||||||||||||||||||||||
| 지휘소 | |||||||||||||||||||||||
| 코스탄녜비차(7군단) | 도른베르크(제16군단) | 크네차(제15군단) |
3.2. 이탈리아 왕국
제2군과 제3군으로 구성된 이탈리아군은 이손초 강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구축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방어 거점을 돌파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다. 이탈리아군은 수적으로 2대 1의 우세를 보였지만, 오스트리아군이 전투에 유리한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이탈리아군의 포병 지원 사격은 불충분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군의 공격은 오스트리아군 진지 전면의 철조망에 의해 저지당하며 실패했다.
7월 초, 오스트리아군 사령관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는 2개 사단의 증원을 받아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이탈리아군의 시도를 저지했다.
이탈리아 육군의 공세로 인한 승리는 최소한으로 억제되었고, 북부 전역에서는 보베츠, 남부 전역에서는 폴리아노 레디풀리아와 몬팔코네의 일부를 점령하는 데 그쳤다.
| 이탈리아 | ||||
|---|---|---|---|---|
| 제2군 | 제3군 | |||
| 제7군단 | 제10군단 | 제11군단 | 제6군단 | 제2군단 |
| 제6군단 | ||||
| 제13보병사단 | 제14보병사단 | 제20보병사단 | 제19보병사단 | 제21보병사단 |
| 제12보병사단 | 제11보병사단 | 제4보병사단 | 제3보병사단 | 제32보병사단 |
| 제7보병사단 | 제8보병사단 | 베르사엘리 경보병사단 | A,B 알피니부대 | 제29보병사단의 반 |
| 예비대 | ||||
| 제16군단 | ||||
| 제29보병사단의 반 | 제22보병사단 | 제28보병사단 | 제30보병사단 | 제23보병사단 |
| 제27보병사단 | 제33보병사단 | 제1기병사단 | 제2기병사단 | 제3기병사단 |
| 지휘관 | ||||
| 피에트로 프루고니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 |||
| 지휘소 | ||||
| 우디네(제2군) | 체르비가노(제3군) |
4. 이후 전투
이탈리아군은 이손초 강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구축된 방어 거점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기 위해 공세를 펼쳤다. 이탈리아군은 수적으로 2대 1의 우세를 보였지만, 오스트리아군이 전투에 유리한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이탈리아군의 포병 지원 사격은 불충분했다. 결국 이탈리아군의 공격은 오스트리아군 진지 전면의 철조망에 의해 저지당하며 실패했다. 7월 초, 오스트리아군 사령관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는 2개 사단의 증원을 받아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이탈리아군의 시도를 저지했다.
이탈리아 육군의 공세로 인한 승리는 제한적이었으며, 북부 전역에서는 보베츠, 남부 전역에서는 폴리아노 레디풀리아와 몬팔코네의 일부를 점령하는 데 그쳤다.
이후 이손초 강에서 벌어진 전투는 다음과 같다.
| 전투명 | 기간 |
|---|---|
| 제2차 이손초 전투 | 1915년 7월 18일 - 8월 3일 |
| 제3차 이손초 전투 | 1915년 10월 18일 - 11월 3일 |
| 제4차 이손초 전투 | 1915년 11월 10일 - 12월 2일 |
| 제5차 이손초 전투 | 1916년 3월 9일 - 3월 17일 |
| 제6차 이손초 전투 | 1916년 8월 6일 - 8월 17일 |
| 제7차 이손초 전투 | 1916년 9월 14일 - 9월 17일 |
| 제8차 이손초 전투 | 1916년 10월 10일 - 10월 12일 |
| 제9차 이손초 전투 | 1916년 11월 1일 - 11월 4일 |
| 제10차 이손초 전투 | 1917년 3월 12일 - 6월 8일 |
| 제11차 이손초 전투 | 1917년 8월 19일 - 9월 12일 |
| 카포레토 전투 (제12차 이손초 전투) | 1917년 10월 24일 - 11월 9일 |